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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문무왕릉비문-투후 제천지윤-한국의기원원77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다- 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也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고, 쓸모없이 버려지고 만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도 이와 같으리라. 비록 평화의 시기라기는 해도 무사의 국가에 대한 충성과 담대한 용기가 알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늘의 별은 낮에는 해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온 하늘에 흩어져 총총히 빛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생각해 보라.”[1] “雖有嘉肴,弗食,不知其旨也;雖有至道,弗學,不知其善也。是故,學然後知不足,教然後知困。知不足,然後能自反也;知困,然後能自強也。故曰:教學相長也。《兌命》曰:「學學半」其此之謂乎?”, 《禮記·學記》, 禮記卷十八. 이 “.. 2022. 1. 3.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비문 앞면 □□□□國新羅文武王陵之碑□□□及飱國學少卿臣金□□奉□敎撰 □□□□□□□□□□□□通三後兵殊□□□匡□配天統物畫野經圻積德□□匡時濟難應神□□□□□靈命□□□ □□□□□□□□□□□□派鯨津氏映三山之闕東拒開梧之境南鄰□桂之□□接黃龍駕朱蒙□□□□承白武仰□□ □□□□□□□□□□□□閒盡善其能名實兩濟德位兼隆地跨八夤勲超三□□巍蕩蕩不可得而稱者□□□□我新□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焉□□ 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大王思術深長風姿英拔量同江海威若雷霆□地□□□方卷蹟停烽罷候萬里澄氛克勤開□ □□□□□□□□□□□□□□當簡□之德內平外成光大之風邇安遠肅□功盛□□□於將來㬪粹凝貞.. 2022. 1. 3.
15. 비문앞면제5행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 비문앞면제5행 秺侯 祭天之胤 투후 제천지윤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국편위 번역: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 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추홍희 해석: (우리 신라 사람들은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올라가서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 창성한 왕업을 화관지후에게 이어받게 하고, (불의 임금님-화후는 요임금인데, 제곡 고신씨는) 요임금님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방정하고 드높은 구조물들을 건설하며 사방으로 반듯하게 뻗어 나갔다. 조상으로부터 복록을.. 2022. 1. 3.
투후는 ?侯 (투후)인가? 14. 투후는 ?侯 (투후)인가? 1. ?侯 (투후/타후) 金日磾(금일제) 북송(宋) 때 977-984년 사이에 편찬된 사서 太平御覽(태평어람)의 관직(職官部) 시중(侍中) 편에서 金日磾(금일제)를 ?侯(투후)로 봉했다는 삼보고사의 기사를 인용해 놓고 있다: 《三輔故事》曰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삼보고사 왈 금일제 자 옹숙 봉 투후 유 충근지절 칠엽시중).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금일제의 본명 이외의 흔히 부른 이름 자는 옹숙이었고 ?侯(투후)의 봉작을 받았다. 그는 충성심이 깊고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근무한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고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피는 궁정내시라는 높은 관직을 지냈다. 시중(侍中) 시중(侍中)은 진(秦)나라 때부터 설치한 관직이름으로 왕의 곁을 따.. 2022. 1. 1.
투후 김일제 투후 김일제 1. 사기 년표 《史記•年表》 투후 김일제 秺侯 金日磾 사기 년표에 다음과 같은 김일제를 투후로 봉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後元元年 二月己巳,光祿大夫霍光為大將軍 博陸侯 都尉金日磾為車騎將軍 秺侯 太僕安陽侯上官舛為大將軍 후원원년 이월 기사일 광록대부 곽광을 대장군에 임명하고 박륙후에 봉하고, 도위김일제를 거기장군에 임명하고 투후에 봉하며, 태복 안양후 상관천을 대장군에 임명함. 2. 한서 서전하(敘傳下) “秺侯狄孥”(투후적노) 해석 한서 서전하(敘傳下)에 “秺侯狄孥 虔恭忠信 奕世載德 貤于子孫”(투후적노 건공충신 혁세재덕 이우자손): 투후는 적(敵)의 자식으로, 성실하고 정성을 다해 충성을 바치고 믿음을 지켰고. 누대에 걸쳐 대대로 덕을 쌓고 자손 대대로 이어졌다. 반고의 편제에 따라서 여기의 투.. 2022. 1. 1.
12장 무고지화 무고지화 무고(巫蠱)의 뜻 무고(巫蠱)는 무술사(巫師)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저주와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蠱(고)의 한자 고어체는 인데 글자모양처럼 벌레 먹은 것 즉 고독무술(蠱毒巫術, poisonous magic)을 의미한다. 증거를 날조하여 무고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헐뜯는 무고(巫蠱)는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서의 “吊 戾園 于 湖邑 諒遭世之巫蠱”(조려원어호읍 량조세지무고) 구절 표현처럼 BC 91년에 일어난 무고지화 여태자 반란 사건을 가르키기도 하다. 반악의 서정부 무고지화 구절 반악 서정부 구절 문선 이선 주 弔戾園於湖邑 諒遭世之巫蠱 探隱伏於難明 委讒賊之趙虜 加顯戮於儲貳 絕肌膚而不顧 作歸來之悲臺 徒望思其何補 〈漢書曰:戾太子據與江充有隙。會巫蠱事起,充遂至太子宮,掘得桐木人。太.. 2022. 1. 1.
한기(韓暨) 번역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한기(韓暨)(150년대-238년)번역 韓暨字公至,南陽堵陽人也。楚國先賢傳曰:暨,韓王信之後。祖術,河東太守。父純,南郡太守。同縣豪右陳茂,譖暨父兄,畿至大辟。暨陽不以為言,庸賃積資,陰結死士,遂追呼尋禽茂,以首祭父墓,由是顯名。舉孝廉,司空辟,皆不就。 한기(韓暨)는 자가 공지(公至)이고 남양군(南陽郡) 도양현 사람이다. 초국선현전에 이르길 한기는 한왕신(韓王信)의 후예이다. 할아버지 한술(韓術)은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었고, 아버지 한순(韓純)은 남군태수가 되었다. 같은 현의 큰 호족세력 진무(陳茂)가 한기의 부친과 형을 헐뜯고 중상 모함하여 이들은 사형을 당했다. 한기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금을 주고 고용하여 자금을 축적하여 죽음을 각오한 자객들을 남몰래 모아서, 마침내 진무를.. 2022. 1. 1.
10장 한왕신(韓王) 한신(韓信) 10장 한왕신(韓王) 한신(韓信) 太史公曰:韓信、盧綰非素積德累善之世,徼一時權變,以詐力成功,遭漢初定,故得列地,南面稱孤。內見疑彊大,外倚蠻貊以為援,是以日疏自危,事窮智困,卒赴匈奴,豈不哀哉! 陳豨,梁人,其少時數稱慕魏公子;及將軍守邊,招致賓客而下士,名聲過實。周昌疑之,疵瑕頗起,懼禍及身,邪人進說,遂陷無道。於戲悲夫!夫計之生孰成敗於人也深矣! 【索隱述贊】韓襄遺孽,始從漢中。剖符南面,徙邑北通。穨當歸國,龍雒有功。盧綰親愛,群臣莫同。舊燕是王,東胡計窮。 태사공 사마천 저자의 의견: “한왕(韓王) 한신(韓信)과 연왕(燕王) 노관(盧綰)은 본래 조상 대대로 공덕을 쌓고 베푼 집안이 아니며, 한때의 임기응변식 요행과 사술로 공을 이루고, 한(漢)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그 시기를 타서 개국공신이 되어 봉지를 받고 제후국의 왕조를 열었다.. 2022. 1. 1.
투후 상구성(商丘成)은 누구인가? 9장투후 상구성 전기 투후 상구성(商丘成)은 누구인가? 상구성(商丘成)은 성은 상구(商丘) 이름은 성(成)이다. “열선전”에 상구자서(商丘子胥)라는 선인이 소개되어 있고, 상구는 복성이다. 상나라의 수도가 상구였다. 투성이 위치한 성무현이 이 근처이고 오늘날 산동성 하택(荷澤)시 부근이다. 상구성의 출생 연도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대홍려와 어사대부를 지낸 관직 경력과 무고의 난 때 한고조 묘지기를 지낸 전천추(?-BC 77)의 기록을 통해서 대략 추측해 보면 BC 2세기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한서 기록에 따르면 한문제(BC 202-BC 157) 묘지기 첨사로 재직 중 설화를 입어 BC 88년 황제에 대한 불경죄의 판결이 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구성은 한무제 때 조선시대로 치면 예조.. 2021. 12. 31.
8장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번역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번역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반악潘岳(247-300)의 “西征賦”(서정부)에 투후에 관련된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구절이 등장한다.[1] 반악의 서정부에서의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의 의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여 당나라 이선의 주해가 틀렸음을 입증해 내고 “秺侯”(투후)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밝혀낸다. 문무왕릉비 비문에 등장하는 “秺侯”(투후)는 “金日磾”(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임을 밝혀내어 그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한다. 1. “西征賦”(서정부) 秺侯(투후) 부분 단락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懷夫蕭曹魏邴之相辛李衛霍之將銜使則蘇屬國震遠則張博.. 2021. 12. 30.
7장 “文武王陵碑”(문무왕릉비)의 “秺侯”(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이다 “文武王陵碑”(문무왕릉비)의 “秺侯”(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이다 글 차례 들어가기 1. 한서 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 2. 漢書(한서) 劉屈氂(유굴리)전에 기재된 투후 상구성 기록 3. 한서 양창(楊敞) 양운(楊惲) 열전의 “副帝隸 秺侯御”(부제례 투후어) 해석 4. 자치통감 “商丘成力戰獲張光 封成為秺侯”. 5. 반악의 “西征賦”(서정부)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과 투후 상구성,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1.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2. 서정부 단락 한글 번역 3. 서정부 거론 인물군 분류 4. 서정부 단락 단어 해석 5. 인물 분류 6.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 2021. 12. 30.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차례 1. 당나라 백제 흑치준 묘지명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2 흑치준(黑齒俊) 묘지명 추홍희 번역 3. 흑치준 묘지명 구절 국사편찬위원회 번역과 추홍희 번역 비교 4. 추홍희 번역 역주 5 흑치준 묘지명의 “투후”와 문무왕릉비 비문의 “투후”관계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흑치준 묘지명(大唐故右金吾衛守翊府中郞將上柱國黑齒府君墓誌銘幷序)에 나타난 “秺侯入仕 西戎孤□(臣/家)” (투후입사 서융고신)의 해석 1. 당나라 백제 흑치준 묘지명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소재 당나라 신룡(神龍)이년(706년)의 백제 출신 당나라 장군 흑치준(黑齒.. 2021. 12. 30.
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란 없다. 만약 있다면 인간 삶의 모든 면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가 있을 뿐이다. 여러 역사 중의 하나가 정치권력의 역사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의 역사로써 승격되어 있는 것이다.”[1] 이 인용된 내용의 견해가 서술된 칼 포퍼의 책에서 그가 많은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주듯이, 역사서는 실제 일어난 사건 대신 이념에 따라 구성하거나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건을 선택하여 쓰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왜 문학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포퍼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왜 권력의 역사만 .. 2021. 12. 30.
하버드대 로스쿨이 80년역사의 학교 심벌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 4. 敎(교)의 의미 인간 사회의 부족과 잘못은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여지껏 그토록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가? 한쪽에서는 많아서 넘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부족해서 굶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사람들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즉 문제해결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공정한 기회 마저 박탈당하고 상실된 사회로 변해 버렸지 않는가? 교육은 받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양자의 존재가 필수이기에 교육에는 큰 돈이 들어간다. 교육은 도로 건설처럼 돈과 시간이 크게 들어가는 국가의 기간 인프라이고 돈과 시간이 .. 2021. 12. 30.
투후제천지윤 3. 어떻게 임무를 달성해 낼 것인가? 1. 어떻게 임무를 달성해 낼 것인가? “忠臣藏”(충신장)은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진수를 나타내준다고 흔히 말하는데 충신장 47인 의사들이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47인 무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스스로 뜻을 세웠고 그 뜻을, 모든 난관을 뚫고 즉 최고권력에 맞서서까지 정해진 시간내에 한정된 자원으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해냈다는 것에 있다. 47인의 사무라이들이 영웅으로 칭송받은 까닭은 한정된 자원과 제한된 시간 가운데 전략적으로 움직여 목표를 실행해냈다는 그러한 전쟁 전략의 성공과 또 그것을 이끈 사람의 정신의 위대함에 깊은 공감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가 죽는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는 소크라테스의 삼단논법을 거들멱거릴 필요도 없이 장삼이사 초동목동도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 2021. 12. 30.
투후제천지윤 들어가기 서문 들어가기 서문 책을 펴내면서 이 책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에 대한 역사 교과서, 대학 참고서, 학계 연구서의 서술 내용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새롭게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다. 이 책은 문무왕릉비 비문 내용을 새롭고 정확하게 해석하고, 지금까지의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위”로 표기)가 문무왕릉비 비문을 번역하고 해석한 그 글과 내용을 정면으로 통박한다. 또 문무왕릉비의 정확한 해석을 통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저지른 역사 조작을 만천하에 밝혀내, 오천년 한국사의 비밀의 문을 열어낼 황금열쇠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학문의 전당에 들어선 대학생은 물론이고 교육자, 역사가, 박물관, 예술관 담당자, 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교수와 교사에게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 2021. 12. 30.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 목차 문무대왕 왕릉비문 속에 등장하는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을 “투후”를 “김일제”로 해석하여 “신라인은 흉노족의 후손”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이들 때문에 역사 교육의 혼란스러움이 극한 상황에 다다른 지경이다. 하지만 문무왕릉 비문 속의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은 “투후 김일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투후 상구성”을 지칭한다는 추홍희 저자의 올바른 비문 해석 논지가 이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문무대왕릉비문의 “투후 제천지윤”에서의 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상구성이라는 가장 새롭고 가장 진실한 역사분석적 주장이 창천이사황천당립의 욱욱한 기세로 온 천지를 뒤덮을 것이다. 한서 공신표(功臣表)와 한서 유굴리전에서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사기 년.. 2021. 12. 30.
정말 신라는 흉노족의 후손일까? 1장 1. 들어가기-말과 글과 문화-사전의 가치와 위대성 정말 신라는 흉노족의 후손일까? 문무대왕 왕릉비문 속에 등장하는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을 “투후 김일제”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탈-진실사회에서 활개치는 인터넷 가짜글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지난 30년간 식민사학자들이 진행시켜 온 특히 KBS 방송 역사 스페셜 등 각종의 신문 방송에서 문무대왕 왕릉비문의 “투후”를 “김일제”로 해석하여 “신라인은 흉노족의 후손”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이들 때문에 역사 교육의 혼란스러움이 극한 상황에 다다른 지경이다. 그렇게 떠들어댄 이유 중 하나는 공자도 칭찬해 마지 않았던 우수한 한반도 동이 민족을 침략자 서방 강족 흉노족으로 변신시켜 민족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유구한.. 2021. 12. 30.
공자의 春秋(춘추)와 西狩獲麟(서수획린) 22 卄五日景辰建碑 大舍臣韓訥儒奉 景辰 경진길일 건비입묘 426 후기 공자의 春秋(춘추)와 西狩獲麟(서수획린) 437 왜 공자도 진시황제도 한반도로 이민을 오고자 했을까? 김정희는 어떻게 기존의 황당무계한 설을 물리치고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냈는가? 456 참고문헌 459 일러두기 461 “역사혁명” 책 주요 내용 요약 466 후기 공자의 春秋(춘추)와 西狩獲麟(서수획린) 공자는 춘추로써 공자가 되었다. 춘추가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어찌 공자가 있을 수 있었을까? 춘추하면 공자요 공자하면 춘추다. 사마천의 공자세가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孔子曰 後世知丘者以春秋 而罪丘者亦以春秋: “후세에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또한 춘추 때문일 것이다.” 子曰 不怨天.. 2021. 11. 13.
문무대왕릉비 비문뒷면 21행-22행 해석 비문뒷면 21행 □□□□□□□□□□□□□鴻名與天長兮地久 岡(岡而久照) /岡金玉葉 永保)鴻名 與天長兮地久 사랑과 형제애를 황금처럼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닳지 않고 단단히 하여라 문무대왕 그 큰 이름 영원히 빛나리라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와 한없이 오래된 지구와 같이! 통일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영웅적 인물 문무왕의 이름이 무궁토록 전해진다는 것은 국가가 존속되어야 하는 조건을 담보한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국가가 계속 안정되고 계속 번창해 나가기를 기원하는 말인 “金甌”라는 단어를 생각해 낼 수 있다. 甌(구)는 작은 컵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金甌(금구)는 金屬酒器를 뜻하는 단어이고 또 비유적인 의미로는 국토, 國土完整 국토안정의 뜻이 있는 단어이다. 남사 朱異(주이)전에 양무제가 한 말 “我國家猶若金甌.. 2021. 11. 13.
문무왕릉 비문 뒷면 20행 분골경진 해석 비문 뒷면 20행 命凝眞貴道賤身欽味釋 葬以積薪 滅粉骨鯨津嗣王允恭因心孝友冈」 국편위는 20행을 다음과 번역했다: …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 도(道)는 귀하게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 경진(鯨津)에 뼈가루를 날리셨네. 대를 이은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효성과 우애가 … 이러한 국편위의 잘못된 번역 해석에 대해서 나는 아래에서 자세한 설명으로 국편위 해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命凝眞 凝眞 액체나 기체 같은 것이 엉기고, 엉겨 붙어 고체(固體)로 되다의 뜻 응고(凝固)되다, 응결(凝結)되다라는 뜻의 낱말이다. 이 엉겨 붙다의 뜻을 가진 凝(응)자는 명령을 엄정 바르게 하다-使教令嚴整는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역경 화풍정에 “象.. 2021. 11. 13.
문무대왕릉비 비문뒷면 제11행-19행 해석 11행 □□□□□□□□□□□□□□而開沼髣髴濠梁延錦石以 開沼 《廣雅》에서 “沼 池也”라고 주해하고 있다. 연못 沼(소)는 안압지처럼 연못 池(지)을 말한다. 咸池함지 龍池용지 神池신지 靈沼영소와 같은 말이다. 손자병법에서 비유를 들고 있는 金城湯池(금성탕지)의 말처럼 누구도 뚫고 들어 올 수 없는 견고한 철벽 철통 방어벽의 성채를 말한다. 금성탕지의 성어 뜻에 대해서 한지 괴통전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邊地之城 必將嬰城固守 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 이에 대해 안사고는 “金以喻堅 湯喻沸熱不可近”라고 주해했다. 이와 같이 물이 펄펄 끓고 있는 탕처럼 沸水(비수)가 콸콸 흘러서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견고한 성채를 말한다. 인-자애롭다는 것은 아이의 때묻은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것이요, 의롭다하는 것은 맑.. 2021. 11. 13.
문무왕릉비 비문뒷면 5행-10행 번역 해석 5행 □□□□□□□□□□□□□□□□□燒葬卽以其月十日大 燒葬 화소장 燒葬소장은 불탈 燒소, 연소하다의 뜻이니, 火葬 화장으로 장례식을 치루는 것을 말한다. 력도원의 수경주水經注에 “有一道人命過燒葬 燒之數千束樵 故坐火中”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燒葬소장은 평소 고인이 쓰던 물건을 불태우는 것-焚燒送葬物 분소송장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화장식 장례는 순임금부터, 도공의 신 범려와 서시가 그러했듯이 서주의 도교적 종교 장례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기원전 21세기 이전의 오랜 역사에 걸친 장례식이었다. 당연히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례식 방법이다. 삼국사기에서 문무왕 유언을 전하면서 “依西國之式 以火燒葬”이라고 기술했는데, 이에 대한 국편위는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라고 번역하고.. 2021. 11. 12.
송원대에 나타난 九九消寒圖 구구소한도 형식 송원대에 나타난 九九消寒圖 구구소한도 형식 삼국사기의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吳王北山之墳 詎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之名 昔日萬機之英 終成一封之土의 구절의 문장 형식을 살펴보자. 이 구절 45자는 구구소한도 형식으로 분석된다. 九九消寒圖구구소한도(寫九, 數九)는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 시작되었던 문장 형식과 풍속이기에 당나라 시대의 문무왕의 유조문 형식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문무왕릉 비문에 쓰여졌을 만가시의 형식은 5자 5자 형식의 보허사의 문장 형태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유조문 45자 문장을 9자 9자 형식에 맞추어 띄어쓰기를 해 보면 다음과 같이 배열된다. 삼국사기 원문 구절 구구소한도 형식 배열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吳王北山之墳 詎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장재의 칠애시 문무왕릉비 비문에서의 만가시, 장재의 칠애시, 망국지음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산과 골짜기도 변하고 인간세상도 변한다-삼국사기의 문무왕 유조문과 칠애시 관련성 삼국사기에서 문무왕의 유조라고 소개한 구절인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吳王北山之墳 詎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之名 昔日萬機之英 終成一封之土 樵牧歌其上 狐兎穴其旁” 이 구절의 표현은 인생무상을 노래한 장재의 七哀詩칠애시를 참조한 표현인 것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다음의 칠애시의 구절을 보라. 北芒何壘壘 高陵有四五 借問誰家墳 皆雲漢世主 … 季世喪亂起 賊盜如豺虎 毀壤過一抔 便房啟幽戶 珠柙離玉體 珍寶見剽虜 … 蹊徑登童豎 狐兔窟其中 … 昔為萬乘君 今為丘中土 感彼雍門言 悽愴哀今古. 삼국사기의 유조문과 장재의 칠애시를 서로 비교해 보면 삼국사기 유조문의 昔日萬機..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1행-4행 원문 해석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원문 해석 1행 ▨▨▨▨▨▨▨▨▨▨▨▨▨▨▨▨▨▨丸山有紀功之將以」 “▨▨▨丸山有紀功之將以”은 ‘높은 산에 공적 기념비를 새길만한 큰 무공을 남긴 장군’라는 뜻이다. 명산대천에 공적비를 새기는 의미에 대해서 진시황제의 순수비 그리고 북한산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의 내용을 참조하라. 丸山有紀功之將 丸山(환산)은 험하고 높은 산이라는 뜻이고, 丘山(구산)과 같은 말이다. “丸山阻順”(환산조순)의 구절이 당고종 건릉비 술성기에 나온다. 丸山有紀功之將(환산유기공지장)은 환산에다 공적을 기록할 정도의 높은 공을 쌓은 사람 그 장군 장수 將(장)이라는 뜻이다.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공적을 세워 놓았던 진시황제의 순수비, 진흥왕 순수비 같은 성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산유기공은 丘山之功(구산지공).. 2021. 11. 12.
인류의 지식 체계과 전승의 문제 인류의 지식 체계과 전승의 문제[1] [1] 감포 앞바다 바위를 문무왕릉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가? “문무왕릉비”이라고 분명하게 쓰인 비문의 명문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무슨 저의로 역사에도 없는 감포 앞바다 바위를 두고서 혹세무민하며 문무왕해중릉으로 비정하고자 한단 말인가? 삼국사기에서 “羣臣以遺言 葬東海口大石上”이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라. 그러면 삼국사기에 기재된 내용은 믿고 문무왕릉의 비문 내용은 부정한단 말인가? 문무왕릉의 비문이 존재하는데 왜 그것을 부정한단 말인가? 그런 태도와 자세는 천번만번 부당하다. 그건 인류의 지식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망발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판결을 잘못하면 재심이라는 절차가 있다. 하물며 역사..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해석 표 요약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해석 표 요약 1행 丸山有紀功之將 높은 산을 쌓고도 남을 만큼의 큰 공을 세운 장수, 以 - -以(功於神佑國統觀之分定而享不訾之譽) (국가를 지켜내고 나라를 통일한 神佑國統신우국통의 헤아릴 수 없이 높은 그의 공적은 분명히 정해서 마땅히 후세들에게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2행 □□□直- (長驅進)直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九合一匡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나라를 통일했다. 東征西□- 東征西(伐)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3행 - (歲次辛巳) (신사년 서기681년) (至御女)宮前 寢 (황도12궁 중 6번째인) 어녀궁(御女宮)에 이르는 계절 7월 처서에 병영 막사에서 국왕이 갑자기 서거하셨다. 時年五十六 이 때 향년 56세이었..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국편위의 번역 오류 지적 표 문무왕릉비 비문 국편위의 번역 오류 지적 표 행 비문원문 국편위 번역 국편위 오류 지적 비문 뒷 면 1 ▨▨▨▨▨丸山有紀功之將以」 환산(丸山)에 공(功)을 기(紀)한 장수가 있어 … 국편위는 환산의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 丸山(환산)은 ‘높은 산’의 뜻이고, 높은 산에 공적비를 새길만큼 큰 업적을 남긴 장군 2 直九合一匡東征西」 곧바로9주를 일광(一匡)하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 一匡九合은 새로이 나라를 세웠다는 建立霸業 뜻이다 3 ▨宮前寢時年五十六」 궁 앞채에서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는 56세였다.… 五十六」歲 前寢(전침)은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다는 의미의 正寢(정침), 壽終正寢(수종정침)이 아니라, 의외의 사고사로 서거했다는 의미이다. 4 牧哥其上狐兔穴其傍」 땔나무군이나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 2021. 11. 12.
문무왕릉비문 국편위 번역과 추홍희 번역 비교 표 정리 문무왕릉비문 국편위 번역과 추홍희 번역 비교 표 정리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추홍희 번역 …환산(丸山)에 공(功)을 기(紀)한 장수가 있어 … 높은 산에 기념비를 새길만큼 큰 무공 공훈을 남긴 장군 以(功於神佑國統觀之分定而享不訾之譽) (강토를 지켜내고 전국을 통일한 神佑國統신우국통의 헤아릴 수 없이 높은 문무왕의 큰 공적을 분명히 적어서 마땅히 후세들에게 전한다) …곧바로9주를 일광(一匡)하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분열된 국가를 통일했다.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 궁 앞채에서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는 56세였다.… 신사년 서기681년 해가 御女宮어녀궁에 이르는 계절 7월 처서에 병영 막사에서 문무대왕이 .. 2021.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