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란 없다. 만약 있다면 인간 삶의 모든 면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가 있을 뿐이다. 여러 역사 중의 하나가 정치권력의 역사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의 역사로써 승격되어 있는 것이다.”[1] 이 인용된 내용의 견해가 서술된 칼 포퍼의 책에서 그가 많은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주듯이, 역사서는 실제 일어난 사건 대신 이념에 따라 구성하거나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건을 선택하여 쓰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왜 문학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포퍼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왜 권력의 역사만 선택되었고, 예를 들어,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 하나는 권력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문학은 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들은 권력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권력숭배는 사람들의 우상 숭배 중 가장 나쁜 것에 속하는 것으로 사람을 노예로 가두었던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권력 숭배는 두려움에서 나오는데 이 두려움의 감정이란 심한 증오나 반감과 같은 것이다. 정치권력이 ‘역사’의 핵심으로 만들어진 세번째 이유는 권력을 가진 정치가들이 숭배받기를 원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강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장군이나 독재자들의 검열감독을 받으며 역사를 썼다.”[3]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끔 강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쓰여진 역사를 진실된 역사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문학의 영역까지 확장할 필요성이 크다. 그 이유는 첫째 호머의 일리아드가 말해주듯 문학은 역사서 보다 앞서 등장했고, 두번째는 저변에 남아 있는 문학작품을 통해 사라진 역사 자료를 보충할 수 있고,[4] 무엇보다 역사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학도의 필독서로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의 책에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라고 말했다.”[5] 과거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 인생관 세계관 등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6] 이러한 역지사지의 자세를 통하지 않고서 단지 현재의 사고로 재단하고자 한다면 진실된 역사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과서의 역사서에서는 말해주지 않는 수많은 사실의 발견과 재해석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무수히 널려 있는 문학 작품 속을 헤매고 있으면 마치 금광을 캐는 듯한 수많은 보물들이 발견되곤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물론이거니와 굴원 장형 반악 유신 양형 이백 등의 문학 작품 속에서 한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실을 내가 발견할 수 있게 된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한국사 연구에서의 사료의 빈곤함의 문제를 타개하고 그 부족함을 어느 정도 메꿔줄 수 있는 자료의 영역이 중국의 고고학 문학과 예술 작품들이고 그 속을 헤집고 찾아 들어가면 한국사의 궁금증을 해갈하는데 단비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염황”[7]의 자손으로서 중국문학은 중원만이 아니라 우리문학 속에 자리잡자고 있는 내연(외포가 아닌)으로 이해해야 함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포함 관계로 수식화하면 요즈음의 “동북공정”의 반대 개념이 될 것 같다. 주나라 시대의 이전인 상나라 하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이족이 중원을 차지하고 중심국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학에 한정하여 한국사를 연구하려는 태도는 역사에 올바른 이해를 키우기 어려울 것이다. 문화적 소산인 언어 영역은 물론 문학 사학 철학의 융합의 관점을 키워야 하고 또 첨성대를 이해하려면 건축학이나 토목공학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고 또 첨성대 이해에 필수적인 주비산경 등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이나 천체물리학의 지식을 필요로 함을 나는 느꼈다.
혁명의 시기
“국화와 칼”의 저자 베네딕트는 일본인은 혁명을 할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파악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쫓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설명했듯이, 불란서 대혁명이 입증했듯이, 혁명은 대의를 쫓는 사람들이 성취해 낸다는 혁명 공식으로 본다면 나도 베네딕트의 의견에 동의하고 싶다. 그 베네딕트의 견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인은 착취와 부정의에 대해 반항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혁명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짜여진 그들 세계의 조직을 파괴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들은 혁명적인 사람이 아니다.” (“The Japanese, viewing their world in this way, can stage revolts against exploitation and injustice without ever becoming revolutionists. They do not offer to tear the fabric of their world in pieces.” 베네딕트, “국화와 칼”, at 303.)
언제 변혁의 칼을 들고 나서는가? 그 때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에서 잘 표현했듯이, 세상이 무척 어지러울 때이다. "무릇 계도가 통하지 않으면, 진실과는 거리가 생기는 불순한 시대 상황이 오고, 이타심이 줄어들며, 서로 아비가 되려고 다투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하늘의 부름을 받은 제왕(帝王)이 분연히 일어서서,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자기 수양을 하게 만들어, 모든 백성의 불안을 잠재운다."
“夫純風不扇 則世道乖眞 ?*化不敷 則耶爲交競 是以帝王建号 莫不修己 以安百姓然”. 부순풍불선 즉세도괴진 덕화부부 즉야위교경 시이제왕건호 막불수기 이안백성연. (*德化)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과 마운령 비문의 구절대로, 서로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려고 혈투를 벌이며 서로 다투는 지금 세상이지 않는가? 적폐가 쌓이고 쌓여 시민은 소외되고 배제되어 부의 양극화가 극심하고 과정도 결과도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정한 불행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불평등과 불공정과 거짓이 판치는 세계를 어떻게 평정할 것인가?
진흥왕 순수비 비문 해석에 대해서는 저자의 책 “진흥왕 순수비 비문: 새로운 해석”을 참조하라.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다-삶의 의미
위대한 성인들은 그들의 삶의 목적은 분명했고 그 자신들의 뜻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어찌 잘못된 일이겠는가?[8]
뛰어난 의사는 병든 사람이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를 바로 알 수 있고, 훌륭한 임금은 계획한 일의 성공과 실패를 미리 알아낸다, "良醫知病人之死生 聖主明於成敗之事"(양의지병인지사생 성주명어성패지사),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三).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패냐 성공이냐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타율적 입장의 공자의 시각과, ‘나는 해낼 수 있다’ 캔-두-정신(can-do-spirit)과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개척 정신, 긍정적 입장인 노자의 시각과는 실제적으로 그 차이가 존재한다.
사마천 이후 2천년의 역사가 흐른 뒤, 외람되게도 저자는 옛부터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총망라하여 그 중 간략하게 고증하고 시작과 결말을 종합 정리하여 사람의 성공과 실패와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적 법칙을 고찰했다.[9] 우주만물의 법칙과 국가와 사람의 운명의 관계를 연구하고 동서고금중외 변화의 역사를 살펴서 최고의 권위가 있는 책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런 측면에서 문무왕릉비 비문 내용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로 요청된다. 문무왕릉비에는 오천년 한국 역사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역사적 진실이 무궁하게 담겨져있는 한국사의 수주화씨벽 보배이다.
이 책은 사라진 성배를 찾아서 생빽쥐빼리의 어린왕자가 갈릴레오의 죽대롱으로 밤마다 화목토금 부열성을 여행하면서 단기필마로 가화 구루마를 타고 추노성지 목석진을 나서 유유히 흐르는 장강[10] 적벽과 삼협의 물살을 타고 진백촉한의 자취를 돌아 백이의 양산과 사마천의 한성과 유자산의 금릉을 배회하고 두백국 회남에 해당화 핀 청와의 토총과 조조 서문표의 눈물방울을 낙랑해로 쏟아내며 모인이 백경을 타고 소요유의 모험에서 얻은 하늘나라 엄부자모로부터의 선물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가짜 역사를 거짓으로 꾸며 낸 "화랑세기" 등 조작된들이 현재 시중에 버젓이 떠돌아 다니면서 거짓과 혼란을 부추기는 말세의 혼탁을 일거에 쓸어 버리고자, 이순신 장군의 맹서문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삼척장검을 들고 하늘 앞에 맹세하니 강산도 감동하여 색깔을 바꾸는도다"의 결기를 담았다.
천지만엽은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다. 큰 나무는 여러 가지와 여러 나뭇잎을 달고 있다. 수많은 가지지만 모두 한 줄기에서 나온다. 무릇 도(道)란 계획관리 경영이고 순서와 계통이 있다. 하나를 깨우치면 온 세상을 얻게 되고 그런 득도는 수천 가지와 수만 나뭇잎을 무성하게 낳는 큰 나무와 같다. 하나의 원자에서 수 만가지 수소폭탄이 폭발하지 않는가? 이 말은 회남자의 숙진훈에 나온다. “夫道有經紀條貫 得一之道 連千枝萬葉”. 이 구절을 조금 더 인용하면, “夫道有經紀條貫 得一之道 連千枝萬葉 是故貴有以行令 賤有以忘卑 貧有以樂業 困有以處危 夫大寒至 霜雪降 然後知松柏之茂也”.
條貫(조관)은 條理(조리), 系統(계통), 질서를 뜻하고, 經紀(경기)는 계획, 관리, 경영하다의 뜻, 行令(행령)은 명령하다의 뜻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당시에 알았더라면!”
"If only I knew then what I know now, I'd have done things differently."
우리들은 이런 한탄과 후회를 얼마나 자주 했던가? 우리는 단지 뒤돌아 지나서야만이 진실을 알게 되는 “후회적 존재”가 아닐까? 과거를 통해서 알 수 없는 미래를 열어가는 인간사의 처절함에 무지가 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장백단-죄없는 타인을 무고하면 안된다
불로장생의 단약을 만들어 승천했다는 선인 중에 잘 알려진 장백단이 있다. 그 장백단은 고기를 매우 즐겨 먹었는데, 어느 날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가 구미가 당기면 그가 즐겨먹는 고기를 감춰두었던 옥상 위에 올라가서 가지고 내려올 정도였다. 어느 날 그가 밥을 먹는데 평소 먹던 고기가 보이지 않자 자기집 하인이 훔쳐 먹었다는 생각이 냉큼 들어 그 하인을 불러다 욕을 하고 때리고 말았는데, 그만 그녀는 얼굴색이 창백해지면서 높은 나무에 올라가 비단줄로 목을 매어 자살해 버렸단다. 하지만 그 후에 장백단이 옥상 나무기둥 위로 직접 올라가 보니 썩은 고기가 거기에 있질 않는가! 아! 그만 비명이 지를 정도로 충격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비로소 착각하고 자기 아랫 사람을 오해하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그 하인은 억울하게 목숨까지 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그는 한없는 후회와 한스러움이 걷잡을 없이 교차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 때 이 순간에 홀연히 어떤 깨달음이 들게 되는데, 이 속세의 모든 인연을 정말로 끊어버리고, 목숨을 다해 수양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그는 이 때 그가 다짐한 생각을 담은 시 한편을 남겼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소송 판결문을 쓰는 일을 해온 지
어언 40년 되었네.
그간의 내 직업을 통해서 느낀 점은
이 세상엔 시시비비 건이 수만가지라,
한 집이 배부르고 등 따시면,
다른 천 집이 원망하고,
50년을 쌓아 올린 명성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허물은 그 두 배로 넘나든다네.
그래서 나는 자주빛 비단옷을 벗어 던지고
훈장도 버리고,
단지 짚신과 나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마음 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네.
이런 내게 누가 불로장생하고
영원한 행복이 있는 그 곳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구름은 청산 위에 떠 있고,
달은 하늘 위에 떠 있도다!
刀筆隨身四十年 是非非是萬千千
一家溫飽千家怨 半世功名百世衍
紫綬金章今已矣 芒鞋竹杖經悠然
有人問我蓬萊路 雲在青山月在天
장백단은 그가 터득한 도를 80수 글로 집약할 능력을 가졌고 그래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수련수도는 세상살이 속에서 온갖 고통과 난관을 통해 겪어야 하고, 어려운 세상을 구제할 만큼 높은 덕을 쌓아야 비로소 보통사람의 생각을 죽일 수 있고, 또 그리하여 하늘의 도를 터득할 수 있으며, 그렇게 수신제가를 완성한 후에, 세상의 귀한 초인을 만나 가르침을 전수받고, 영원불멸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초절정 알맹이 하나를 후세에게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제 아무리 수련한들, 이 세상을 구할 진리 하나를 찾기가 쉽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손가?
우리는 언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최악과 최선이 공존한다. 인간은 ‘상황이 닥치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다. 명제에 대해서 BC 430년 디오니소스 축제 때 처음 공연된,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 “외디푸스 왕”으로 한 번 알아보자.
“외디푸스”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발이 부르튼 사람”을 뜻한다. 외디푸스 왕은 왜 발이 부르텄을까? Why? 외디푸스 왕은 원래 ‘이민자’이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닌 사람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닐까 싶다.
위험에 처해있는 조국을 건져낸 그는 조국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왕의 지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외디푸스 왕은 조국이 직면한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에서 스핑크스가 질문한 문제를 풀어 내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한편 외디푸스 왕는 결점 또한 많은 인간이었다. 외디푸스 왕은 충동적이고 화를 바로 내는 단점이 있었다. 동구 밖 길을 가로막고 비껴주지 않는 노인을 보고 화가 나서 바로 죽여버릴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는 인간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게 되는 점 하나는 ‘알면 닥친다’는 것 즉 역으로 말하면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 외디푸스 왕의 어머니이자 그의 아내인 조카스타는 그들의 과거사를 아는 순간 자살을 하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 기억이 없으면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술 마시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처벌을 할 수 없지 않는가?) 외디푸스 왕은 목을 매고 죽은 ‘저카스타’의 옷에 달린 브로우치로 자기 눈을 찔러 버린다.
자기 운명을 알지 못했다는 후회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아니면 근친상간이라는 점을 깨닫고 벗어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고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외디푸스왕은 두 눈이 먼 심봉사가 어린 딸 ‘심청’이를 키운 것처럼, 부모에게 닥친 재앙을 모르는 두 딸 이스메네와 안티고네를 함께 데리고 먼 이국 땅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외디푸스왕처럼, 이민을 가는 목적은 기억에서 해방하고자 함이다. 인간에게 새로움의 삶이란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기약되지 않는 제약조건이 있다. 구구절절하게 사랑했던 소년 소녀가 사귀다 애절히 헤어지면 그동안 간직했던 사진과 편지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지 않았던가? 그것을 생각해 보라.
공맹의 말인가? 인간에게는 수오지심이 있다. 스티븐 핑거의 주장인가? 말이 있기 이전에 기억이 있었다. 승리의 기쁨도 수치심도 기억에서 나온다.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서 42.195km의 마라톤 들판을 달려온 연유도, 햄릿의 고뇌도 모두가 ‘기억’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작은 잘못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서 콘트롤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영역 밖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은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가진 것을 한 순간에 잃어 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잘못으로 가득한 죄인이다. 갈대만큼 약한 존재다. 인간은 약점으로 가득차 있고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예언자 지혜로운 사람은 눈이 멀었고 바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전하는 대로 한무제고 고용한 심령의 치유자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프로이트가 말하듯이, 인간의 삶 자체가 비극인지도 모른다.
“외디푸스 왕”의 마지막 부분 합창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 동포들이여, 외디푸스왕을 보아라.
그는 뛰어난 머리로 그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내었고
왕의 자리에 올라 세상 최고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의 위대함을 바라보며 어느 누군들 선망을 품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제 칠흑의 밤바다 같은 공포가 그를 삼켜버렸다.
이제 우리가 지켜보며 마지막 날을 기다릴 뿐이니.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죽어서 마침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 “외디푸스 왕”에서 말하고 하는 것은 무슨 내용일까? 나는 이렇게 보고 싶다. “식자우환”이라는 말처럼 인간은 알면 알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 인간에게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It's better not to know.)”
“검증되지 않은 삶은 의미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가지는 사람은 동시에 괴로움도 간직한다. 대의(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은 몹시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상기하라.
외디푸스왕이 자신이 입양아라는 "과거의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에게 그렇게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기억(memory)의 문제이다. 우리 삶은 기억하기 때문에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삶은 기억이기 때문에 때로는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건너면 비로소 ‘행복함을 찾을 수 있다’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스핑크스의 퀴즈
아침에는 4발로 걷고, 점심때는 두발로 걷고 저녁에는 3발로 걷는 짐승은 누구일까? 그 답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쉬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그 쉬운 답을 어느 누구도 풀지 못했던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다시피,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이나 성찰은 거의 불가능하고 어쩌면 모순적인 성격에 해당할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 분석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객관적이라는 말은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로지 그 수수께끼를 풀어낸 사람은 외디푸스뿐이었다. 외디푸스는 매우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수수께끼에서 “걷는다”는 말이 들어 있다. “외디푸스”라는 말 자체에도 ‘걷는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외디푸스’라는 말의 그리스 어원을 보면 ‘외디푸스(Oedipus)’는 “부르튼 발”이라는 뜻이다. 외디푸스는 인간은 많이 걷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발(foot)은 그리스 라틴어 불어 영어로 모두가 ‘걷다 walk, travel’의 뜻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인생은 걷는 것, 길 위의 방랑자인 것이다. ‘김삿갓’이 방랑자인 것처럼, 외디푸스는 그런 방랑의 뜻이 들어 있다.
베에토벤처럼 "산책을 많이 하는 사람이 지혜롭다"는 말을 이해하겠는가? 인간은 걷는 존재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 한다. 기억이 쇠진할 때까지. 인간은 “발품”을 팔아가는 존재라는 것. 호머의 오딧세이에서도 주인공은 걷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고행을 마다하고 다시 먼 길을 돌아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영웅은 꼭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명제가 사실인 것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타국을 떠도는 이민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태초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적인 존재이다. 우리의 삶은 목적이 아니라 (길 위를 걷는) 과정인 것이다. 제프리 초서의 "순례자"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다.
우리는 잠시도 쉴 수가 없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다시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 한다. 인간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존재다. 어쨋든 "다람쥐 쳇바퀴(treadmill)를 도는 존재"다. 만보계를 차고서 돌고 도는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을 타고 세일즈의 죽음인 다람쥐 쳇바퀴 인생, 걷고 또 걷는 타박네의 인생이 바로 우리 삶이다.
아무리 지혜가 큰 사람이라도 해도, 살아 있는 동안,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 바로 그 개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진실을 찾는 사람에게는 고독하고 그러한 "신독"의 삶은 바로 고통의 삶을 수반하는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외디푸스 왕"에서 말하고자 하는 뜻은,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고통에서 해방되기 어렵다"라는 명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통은 실존의 법칙이 되고, 우리 살아 있음의 증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외디푸스 왕=발품발이=진실된 삶. 진실을 찾는 사람은 헤메인다=방황하는 존재=계속 걸어라=슬퍼할 겨를이 없다=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의 삶을 부딪혀라=카르페 디엠(Carpe Diem)=맨발의 이사도라=우리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인간은 알아도 문제요, 몰라도 고통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결혼해도 고통이요, 안해도 고통이다, 그렇다면 하는 것이 낫다)으로 말한다면, 알고 나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 보다 낫다.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로서 결자해지를 할 수 있는 존재다. 프로이드가 말한 외부충격적으로 진실을 깨닫는 존재일까? 엘리어트가 제시하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우리의 삶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Fare forward. 앞으로 나아가야만 축복을 받게 된다. 進興.
“진실은 거기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
死生契闊(사생계활)
가을은 복받은 최고의 계절이다. Why? 보라, 추수감사절이 언제 어디에 있는가를? 춘생 하장 추수 동장 (春生 夏長 秋收 冬藏)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 황제내경에 나오는 말이 자연질서의 법칙 하늘의 이치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가을의 본령 그 뜻을 가장 잘 표현한 최고의 시인은 반악이다. 반악의 “추흥부”를 읽고 감상해 보면 누구도 단정에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산길은 도로 주행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굽이굽이 돌고 돌아 가는 길 기복이 많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등산을 일본어로 “爬山”(하우)라고 말하는데, 여기의 파산-‘파’글자가 기어오르다, 파충류 ‘파’자이다.
대개 사람들이 힘들 때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가? 힘든 노동에 지칠 때 노동요를 부르듯이 말이다. 이런 대개의 사정을 잘 표술해 낸 유신의 구절 “窮者欲達其言 勞者須歌其事”(궁자욕달기언노자수가기사)이 생각난다.
사마천은 임소경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人情莫不貪生惡死 念父母顧妻子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이라는 말을 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부모를 생각하고 하고 처자를 돌보고자 하며 조금이라도 더 살고자 하지 기꺼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인지상정을 먼저 꺼내 말해 놓고 다만 인간적인 정을 뛰어넘어 의리에 죽고 사는 “직업적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 취해야 하는 과감한 행동을 담대히 밝혀 놓은 것이다. 이런 직업적 의무론의 구체적 사례는 소방관에서 나타난다. 화마의 현장에 갇힌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서 불길 속으로 뛰어 드는 소방관의 행동은 오로지 직업적 의무만으로 설명된다. 마찬가지로 사마천의 삶의 자세는 사관으로서의 역사와 진실 전달의 충실한 사명을 지켜내는 것에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호에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만들지 산자와 죽을자를 순간적으로 결정하는 최후의 선택을 결단해야 하는 선장의 행동은 오로지 선장으로서 요구되는 그의 직업적 의무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사람은 타고난 각자의 몫에 따라서 요구되는 삶이 결정되는데,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각자 가진 직업의 몫에 따라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이순신처럼 “사즉생”의 선택을 할 것인가는 인간적인 정리에 죽음의 회피 심리에 따른 일반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보다 큰 국가와 사회 차원의 순간적이고 의무적인 선택인 것이다. 허리춤에 찬 지갑을 훔친 좀도둑은 사형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은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장자의 절구절국(竊鉤竊國) 비유가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 통하는 우리 인간 사회의 고무줄 잣대의 비판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마천이 말한 “不得已”(부득이)한 사정이 인정되는 것이 바로 긴급피난, 정당방위, Necessity 이론이다.
최근에 2011년판 프랭클의 책 서문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는 삶의 의미를 직업적 소명에서뿐만 아니라 사랑 그리고 어려움에 직면해서 갖게 되는 용기에서도 찾아진다고 진단했다. 특수한 사람의 소명이든 일반 평범인에게서든 하나님께서 비범한 영웅적 삶을 드러낼 때는 누구든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조건은 히포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가 잘 논증해 놓았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의 생각 먹은 대로 일이 굴러가거나 성공되지 않을 때나 그런 한계에 부딪힐 때엔 애상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먼 여행을 한 번 가보라. 영국의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의 책에서 미국의 알팔라치 산맥의 160킬로 산림 종주 여행 이야기를 관심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이 번 100킬로 산속 여행길을 4박으로 다녀왔다. 사방 100마일 이내에 주막이나 인가나 사람이나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 문명 세계와는 전연 격리된 황야의 윌더니스 속을 걸었다. 그렇게 인간사회와는 멀리 떨어진 자연 속으로 머나먼 여행길을 가보라.
이 드넓은 자연 속에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자각하면서 비장미를 느낄 것이다. 마치 하늘 끝 별을 딸 것 같은 높고 가파른 산을 올라 보라. 공자는 등태산의 심정을 감개무량으로 표현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는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우리 보통사람들은 좌절감과 두려움과 애상감이 먼저 느껴지지 않던가?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면 신선처럼 거꾸로 하늘로 올라가는 착각을 느끼며 합일의 감정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저 높은 폭포수를 오를 수 없는 비애감이 함께 솟아 나기도 한다.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큰 강을 만날 때 그 때 강을 나무 그네를 타고서라도 넘을 수 없는 큰 강 앞에 직면했을 때 이룰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을 때 실패의 애수를 느낄 것이다.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의 그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가 있던가? 먼 여행길, 큰 산을 오른 것, 건널 수 없는 강을 직면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이런 경우에 찾아드는 슬픔과 애상 우수와 서운한 마음은 가누기 힘들 정도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애절한 분위기를 느낀다. 대중가요 가을엔 떠나지 말라는 최백호의 노래가 그것을 잘 표현한 것 같은데. 사람의 슬픈 감정은 초사가 원초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와같이 반악은 “추흥부”에서 초사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 憭慄兮若在遠行 登山臨水送將歸
슬프구나, 가을의 분위기는! 쓸쓸한 소슬바람이 불고, 그것에 나뭇잎이 흩어져 날리고 떨어짐을 보노라면, 우리들 또한 변하고 시들어감을 느낀다네. 이 외롭고 처량한 감정은 먼 여행길, 큰 산을 오를 때, 건널 수 없는 강을 직면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그런 비장하고 애잔하고 서운한 마음과 같이 가누기 힘들 것 같으니.
나를 키운 시작은 위고이었고 중년은 셰익스피어이었으며 내 장년은 멜빌이었다. 그간 날 단련시키고 완성시킨 것은 반악과 유신의 글이었다. 사마천의 말대로, 사람은 대개 힘들면 부모님을 찾지 않는 사람이 없다. 공양전대로, 대저 사람들은 배고프면 밥달라고 타령하고, 노동할 때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유신의 窮者欲達其言(궁자욕달기언) 구절대로, 실패한 사람은 그것을 말로써 설명하고자 원한다. 인생의 극단적인 끝까지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밖으로 표현해 내고 싶은 일반적인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를 세상에 드러내어 성공한 사람들을 우리들은 성인이라고 부른다. 실패에서 느낀 비분강개함을 역사적 기록으로 풀어낸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 손자 등의 성인 공식을 사마천은 열거하고 설명해 놓았다.
뉴튼 아인슈타인 빅뱅이론으로도 밝혀지지 않았는가? “물급필반”인데, 삶의 마지막 극단적인 끝지점까지 가보지 못하고서야 어찌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수 것인가? 이런 조건은 노자 도덕경에 이미 단언되어 있다. 최신의 이론으로 치자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살아 남은 빅토르 프랭클의 삶의 의미론일 것이다. 누구든지 죽음에 처해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황이 된다. 마태복음 19장 예수님의 말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자기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이 선언을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다시 확인해 읽었다. 담대한 고백 어거스틴의 이 조건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다시 확인했다. 로마에서 아씨시의 교회를 찾아갈 때의 그 뜨거운 여름날을 난 아직도 열정적으로 감격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처럼 선명하게.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자기 가진 모든 재산을 다 나눠주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탈리아의 르네쌍스가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성인들처럼 내 스스로의 결단으로써 내가 하이데거의 개념인 끔찍한 내팽개쳐짐 내던져짐(Geworfenheit) 의 상황에 처이고 그 순간 진실을 발견했다고는 말하기 힘들 지 모르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던져지고 동아줄마저 벗어 놓고 하나님의 손안으로 떨어질 때 그동안 찾았고 구했던 보배가 손에 쥐어짐이 느껴졌다. 따라서 이것은 나의 운명이고 필연이고 역사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찌 곤궁할 때 저술한 공자의 춘추에 비견할 수가 있겠으며, 죽음을 시사여귀로 여기고 목숨을 버린 굴원 같은 충신의 이소부에 가깝겠으며, 눈이 어두워진 후에야 국어를 편찬한 좌구명을 따를 수가 있겠고, 다리가 잘린 후에야 쓴 손자병법만큼 체계적일 수 있겠고, 한비자나 삼경만큼 회자될 수 있겠는가? 다만 사마천과 양온이 남긴 두 통의 편지를 끝내 흠모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고자 할 따름이다.
하늘은 영원한 침묵을 이어간다. 영원한 우리 삶에서 죽고 사는 것은 영원한 바다에 끝없이 밀려왔다 쓸려가는 밀물과 썰물 같은 것, 유신이 시경의 구절을 인용한 바대로, “生死契闊”(생사계활) 즉 삶과 죽음은 서로 떨어져 분리된 관계가 아니라 어디가 앞뒤인지 알 수 없는 혼돈된 카오스 상태이므로, 죽음 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 살다가 죽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관계이다. 파도는 맞물려 돌아간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우리는 분명히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우리들의 부모는 또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삶과 죽음의 관계는 이렇게 불가분 맞물려 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하늘은 영원히 침묵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순례자처럼 끝없는 우주 여행을 할 뿐!
굴원이 ‘하늘에 묻는다’가 아니라 “천문”이라고 표현한 것 같이 “死生契闊不可問天”(사생계활불가문천)이기에, 내가 앞서간 조상들에게 감히 여쭈어 볼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제 아무리 생사의 간격이 큰 현재의 나와 과거의 선조들간의 시간적 틈이라고 해도 과거는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로 지금 함께 같이 살아 있는 대상이 아닌가? ‘화복이 함께 숨어 있다’는 우리의 전통적 인생관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이란 것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면 미래의 내 후손에게 나의 삶을 답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누구에게 물어야 할 의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 내려야 할 실존적 문제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신앞에 선 단독자로서 내 스스로 내려야 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적 고뇌 즉자적 자세에 해당한다. 뱃사람 김춘추가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항해의 두려움을 떨쳤듯이 윤동주와 오스카 와일드의 밤하늘의 별이 그렇듯이 말이다. 고갱의 물음처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다면 말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팩트간의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 즉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라고 말한 카아, 스미스, 흄의 역사의 개념에 따라 봐도 그렇지 않는가?
사과 그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할 거라는 세잔느의 장담이나 제임스 성경 번역의 학자들이 몰고 온 숨겨진 세계 변혁이나 비밀에 닫혀진 코페르니쿠스의 일화 같은 것은 차치하고서,
“꽃은 해마다 피고지고 같은 모습인데, 사람은 해마다 다른 모습일세”.[11]
만약 자설과 문무왕이 보면 만시지탄, 간적과 선덕왕 이세민과 무측천이 보면 염화미소 대견해할 것이며, 막스 베버 토인비 헤겔, 장형과 갈릴레오, 사마천과 양운, 반악과 유신, 유백온과 장백단, 안평대군과 이율곡과 정지상과 추사와 조동탁이 내 미천한 글을 읽고 박수쳐 주면 그저 감사할 뿐이고 아니 비웃고말면 그건 못난 비재 나의 전적인 책임일 것이다.
[1]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제25장 “역사의 의미”, “They speak about a history of mankind, but what they mean, and what they have learned about in school, is the history of political power. There is no history of mankind, there are only many histories of all kinds of aspects of human life. And one of these is the history of political power. This is elevated into the history of the world.”
[2] “We must make abstractions, we must neglect, select.”
[3] “But why has just the history of power been selected, and not, for example, that of poetry? There are several reasons. One is that power affects us all, and poetry only a few. Another is that men are inclined to worship power. But there can be no doubt that the worship of power is one of the worst kinds of human idolatries, a relic of the time of the cage, of human servitude. The worship of power is born of fear, an emotion which is rightly despised. A third reason why power politics has been made the core of ' history ' is that those in power wanted to be worshipped and could enforce their wishes. Many historians wrote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generals and the dictators.”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 책은 2013년 프린스턴대학출판부에서 증보판이 나왔다. 책 257쪽, 제25장 “역사의 의미”, 쪽수 인용은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Complete: Volumes II” 런던 1945년 판본이다.
[4] “History is art because it studies people’s experiences, thinking, thoughts, ideas, and beliefs which are subjective in nature, deals with human nature and creativity, requires creative thinking and empathetic understanding of the past people’s thought. It communicates research findings in the form of (a) imaginative writing which involves creativity on the part of the historian and (b) story telling. The historian’s views, opinions and understanding are embedded in historical knowledge. History involves argument and interpretation and there are different ways of making arguments about the past. For these reasons, historical knowledge is very tentative, subject to revision and modification or a complete change. Because history is not repeatable, it is difficult to prove and validate one’s historical understanding. Since historical sources are fragmented, those data bits need to be tied and connected through imagination in order to fill in the gaps in history.”
[5]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Carr, E. H., “What is history?”, Penguin Books, London, 1990, 55쪽.
[6] “History is a subject which is framed extensively by language.” 언어는 문화적 소산이다. “Languages are human creations.”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특성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소쉬르 Saussure (1857-1913)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적인 약속 규칙으로 정의한다. 내가 말하는 언어를 남들이 알아듣게 하려면 문법이라는 사회적 약속과 규칙에 따라야 한다. 소쉬르는 언어를 기호들의 체계 system로써 파악했다. 법 또한 문화적 산물이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설명하는 해설서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Language is no longer regarded as peripheral to our grasp of the world we live in, but as central to it. Words are not mere vocal labels or communicational adjuncts superimposed upon an already given order of things. They are collective products of social interaction, essential instruments through which human beings constitute and articulate their world.”
다음의 월 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보자. 사람의 언어 사용은 사람들의 생각, 감정, 신념에 영향을 준다. http://www.wsj.com/articles/SB10001424052748703467304575383131592767868.
[7] 염제와 황제, 즉 중화민족의 최고의 선조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 개념은 오늘날에는 중국과 중국을 둘러싼 사방 주변 소국 소수민족간의 구분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국가를 형성한 한민족은 국가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중국 이민의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고, 그것을 부정하기에 앞서 동이족의 역사로서 그러므로 중원의 중심국가로써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이민자로서의 한민족은 염황의 자손이고 염황은 역사적 신화(myths)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historical past)에 속한다.
[8] 사기, 자객열전(刺客列傳), 然其立意較然 不欺其志 名垂後世 豈妄也哉 (연기입의교연 불기기지 명수후세 개망야재).
[9] 사마천, 보임소경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略考其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紀”.
[10] "滾滾長江東逝水 浪花淘盡英雄" (곤곤장강동서수 랑화도진영웅), 청산은 의구하고 거대한 양자강의 강물은 구비구비 동쪽으로 유유히 흐르는데 부딪쳐 부서지는 큰 강물결에 씻겨 갔는지 옛 영웅들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네, 楊愼의 "臨江仙 滚滚長江東逝水” (임강선 곤곤장강도서수).
[11]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연년세세 화상사 세세년년 인부동) 이 구절의 의미는 “꽃은 해마다 피고지고 같은 모습인데, 사람은 해마다 (늙거나 죽어서) 다른 모습일세”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봄 비 그친 강 언덕 위에는 초록 새싹이 활짝 피어나는 정지상의 시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 …별루년년첨록파(別淚年年添綠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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