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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문무왕릉비문-투후 제천지윤-한국의기원원

문무왕릉 비문 뒷면 20행 분골경진 해석

by 추홍희블로그 2021. 11. 13.

비문 뒷면 20

 

 命凝眞貴道賤身欽味釋 葬以積薪        滅粉骨鯨津嗣王允恭因心孝友

국편위는 20행을 다음과 번역했다: …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 ()는 귀하게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경진(鯨津)에 뼈가루를 날리셨네. 대를 이은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효성과 우애가  이러한 국편위의 잘못된 번역 해석에 대해서 나는 아래에서 자세한 설명으로 국편위 해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命凝眞

凝眞

액체나 기체 같은 것이 엉기고, 엉겨 붙어 고체(固體) 되다의 뜻 응고(凝固)되다, 응결(凝結)되다라는 뜻의 낱말이다.  이 엉겨 붙다의 뜻을 가진 ()자는 명령을 엄정 바르게 하다-使教令嚴整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역경 화풍정에象曰 木上有火 君子以正位凝命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왕필의 주는凝者 嚴整之貌也凝命者 以成教命之嚴也”으로 풀이하고, () 이루다-성의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象曰 木上有火 君子以正位凝命- 나무 위에 불이 있는 것이 정-솥의 모양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자리를 바르게 하여 천명을 완수한다. 布嚴凝之命(포엄응지명), 종교를 통해 본다면, 하나님의 가르침 그것을 엄정하고 바르게 했다는 뜻이니, 카톨릭에서의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뜻에 가깝게 그런 의미로 새겨볼 수 있다. 

자의嚴寒(엄한) 뜻으로 嚴凝(엄응)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嚴命(엄명) 있는데, 엄명은 아버지의 명령-父親 命令이라는 뜻이다. 엄명이 여기의 결자 부분을 메꿀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분골쇄신한 아버지 김춘추 태종 무열왕이 미처 다하지 못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해내라는 것 그것이 엄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여기에서 유언을 받들다라는 의미가 분명하게 읽힌다. 따라서 “□命凝眞의 결자 부분의 글자를嚴命凝眞”(엄명응진)으로 메꿀 수 있는데, 이 구절의 뜻은아버지의 엄한 분부-엄명-유훈을 진실로 이루었도다’.

 

국편위는  命凝眞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주어 동사 목적어 부사 쓰임새의 문법능 무시한 잘못된 번역에 해당한다. 

우리들의 동양화 미술 이론을 논할 때 진경 산수화라는 장르를 흔히 꺼내는데 이 때의 진경은 한자로 眞境진경 즉 도교 절애 있는 곳, 선경(仙境) 의미하는 말이다. 채근담에서 風括浪靜中 見人生之眞境표현이 나타나는데, 여기의 진경은 삶의 진정한 경계를 의미한다.  유신의 보허사에 등장하는 凝眞天地表 絕想寂寥前구절에서의 凝眞(응진)경이 큰 산의 벼랑 끝 절벽에 위치한 암자 그 앞에 펼쳐지는 무애의 절경을 의미한다. 

 

貴道賤身 

 

貴道賤身(귀도천신) 문무왕릉 비문에 나타나는 표현이다. 貴道-도를 중시해서 賤身-몸까지를 바쳤다고 말했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귀도천신과 도의 개념정의에 대해 잠깐 소개하기로 한다. 

 

귀는 귀하게 여기다 즉 중시重視하다의 뜻이고, 종교적 의미에서의 도교 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도 도리道理 말하니, 重道중도, 敬道경도와 같은 말이다.  貴道귀도는 중도, 경도의 의미 따라서 그가 배운 바를 尊重존중해서 그대로 실천했다는 뜻이 된다.  천신賤身 자기 몸을 지칭하는 겸양의 표현이다.  따라서 천신은 獻身헌신하다 희생하다는 뜻이 포함된다.  따라서 貴道賤身귀도천신은 도리를 중시하고-重道, 그 가르침을 높게 받들고자-경도敬道,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구나!-賤身 이와 같이 해석된다.

좀더 부연하면, 사람의 목숨에도 귀천이 있는가?  命有貴賤 명유귀천. 만약 있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까? 貴賤相懸 귀천상현. 그래서인가, 선왕인 부모님의 엄명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도리를 다하는 것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 몸까지 기꺼이 던져 바쳤던 말인가? 사기 진세가에 나오는天子無戲言 言則史書之을 상기해 보자. 성인은 말이 곧 법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고, 말이 곧 생명이니 자기가 한 말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것, 언행일치의 본보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여기서 도()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그런 당연한도리(道理)’라는 그 정도의 의미로만 해석될까? ()는 일반적인 의미로써 학술이나 종교적 사상 체계를 말하는데, 이런 뜻으로 우리들이 흔히 쓰는 도학(道學), 수도(修道)한다는 말이 있다. 철학 사상가로써의 도가(道家)라는 표현을 하는데 여기에는 노자, 장자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종교적으로는 도교()라고 지칭한다. 유교에서 공자를 시조로 모시고, 도교는 노자를 시조로 모신다.  도교는 노자의 철학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에서 보여지는 태세신앙은 도교 신앙에 속한다. 문무왕릉 비문의 귀도천신 이 구절 또한 도교와의 종교적 연관성 없이는 설명되기 힘들다.  장례식은 종교 문화와 가장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데, 종교는 인간의 사후 문제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貴道(귀도)는 도교의 종교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태종 이세민의 유조에 들어 있는 구절인 道存物往(도존물왕)에서의 도 의미와 같은 맥락의 뜻을 갖고 있다.

 

道儒佛 도유불

 

625년 당나라 건국 시조 고조는 유불도 이 3교간에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하고 도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고조는 당나라를 건국하면서 教之首 道居首 도교를 으뜸 순서로 올려 놓고, 노자를 시조로 모시고 숭상하며 노자 사당을 건립하였다. “道先 儒次 佛末도교 제일, 유교 차선, 불교 말석으로 말하며 도유불 종교간 지위와 순서를 명확하게 정한 당고조 이연의 종교 정책은, 도교파의 지원으로 현무지변에서 승리하고 후계자로 올라 선 당태종의 국정철학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天子下詔曰 教孔教 此土元基 教後興 宜崇客禮 今可 老先 次孔 末後釋宗 이 구절의 조문과 같이, “老先 次孔 末釋”(노선 차공 말석)으로 정하며 도유불의 종교적 지위 순서를 명확히 정한 당고조의 하조문 내용은 당 서명사 승 도의가 편찬한集古今佛道論衡”(집고금불도논형) 高祖幸國學當集三教問僧道是佛師事 실려 있다.  주성명의 책(周誠明, “唐人生命思想之多元探討”, 元華文創股份有限公司, 2017, 399)에서는 이 이외의 다른 소스까지 소개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신라는 불교가 상대적으로 후대에 전해졌는데 그 이유는 도교의 영향이 워낙 크게 유지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원효의 부석사 점거 일화 등으로 판단한다면 당시 종교간의 논쟁이 심각하게 일어났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 사서는 먼 후대인 12세기와 13세기 말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기사를 액면대로 따를 수 없는 사정이 존재한다.  또 신채호가조선일천년래제일대사건로 규정한 유불선간의 종교 이념 전쟁 또한 12세기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참고하라.

 

노자도덕경 제1장에 나타난 ()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치종교철학적 개념을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문무왕릉 비문에서 貴道(귀도)-도를 중시해서 賤身(천신)-몸까지를 바쳤다고 말했는데, ()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요한복음 14장이 증거하듯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는 곧 예수 그 자신을 가르킨다. 영어 Way, Truth, Life, 이러한 말에 도가 해당한다. 그런데 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답시고 개념을 지어 정의를 내리는 순간 도에 대한 개념정의는 꼬이고 얽혀버릴지 모른다. 도라고 말하면 우리들이 초등학교 어린 시절에 배운도덕”이라는 교과서가 상기되고, 그리하여바른생활같은 아이들 교과서에 아무런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개념 정의를 시도하고자 할 위험이 크다. 노자가 말한 도, 도교의 도는,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도리라거나 또는도덕책이나바른 생활교과서로는 설명이 불가한 개념이다. 어떻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도덕 책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우주의 빅뱅이론이나 DNA 구조론을 어찌 바른생활 책으로 설명할 것이며, 사람들의 생활에서 직접 나타나야 알 수 있는 그 사람다움의 도리를 어찌 바른생활 책이나 대학 윤리학 교과서에서의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편 도가 무엇인지를 꼭 끄집어내서 말하기는 힘들더라도 도가 무엇인지를 탐구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도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설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노자 도덕경 제1장은 선언하고 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노자도덕경을 번역하고 해석하고 설명했다.

 

도덕경 제1장의 구절은 보자.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이 한문 구절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잘난 듯 번역해 왔다. 하지만 그것들에 아직까지 빈틈이 발견된다.

 

도가 무엇인지 말로 설명이 가능하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무엇이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이름 지어 즉 개념 정의하여 설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개념 정의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도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정해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말이 나오기 이전에 세상 우주만물이 생겨났다.  하지만 말이 있고부터 우주만물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졌다. 언어학 이론이 있겠지만 진리 인식에 있어서 말이 모태일 지 모른다. 따라서 진리를 개념 정의하고자 하는 욕심을 갖지 않으면 심오한 진리를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지만 진리에 대해서 무엇이다라고 단언을 내리는 순간 즉 그 무엇이다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실타래가 얼키고 설켜 버리고 꼬이고 만다는 것을 느낄 지 모른다. 이 심오한 진리-, 엉켜 붙어버린 실타래-, 이 둘은 사실 서로 같은 점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나 방법론이 서로 다른 것에 불과하다. 이 둘이 심오하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다. 우주천체만물의 진리가 심오하고 깊은 것처럼 그것을 찾아낸 진리의 설명 또한 심오하고 깊은 내용이지 않는가. 이런 진리탐구의 방법(선험론과 후술론)이 바로 심오한 진리들을 찾아내는 진리발견의 입문인 것이다. 

 

우주만물에 대한 진리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다만 인간들이 그것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니 이 둘은 원래 같은 것이 아닌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하기 이전부터 상대성 원리는 우주만물 가운데 존재했던 것이고 또 그 양자물리학 공식 E=MC*2는 아인슈타인의 발견 이전이나 발견 이후에나 똑같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라고 이름 붙이고 그것을 발표하기 이전이나 그 이후에나 다같이 심오한 진리이고 아인슈타인의 정리 공식 그것 또한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요한복음은 선언하였는데, 사실 사람은 우주만물이 생기고 나서 즉 빅뱅이 이뤄지고 난 후 말씀이 생겨났으므로, 노자의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설명대로, 사람들이 말로 무엇을 설명하기 이전에 이미 우주가 존재했었고, 그 우주만물을 이해하고 찾아내기 위하여 말을 만들어내면서 그렇게 사람들이 인식을 확장할 수 있었고, 또 그런 말을 계속 만들어 내면서 우주만물에 대한 진리가 끝없이 생산되어 온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이전에도 우주만물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다만 아인슈타인이나 뉴튼처럼 새로운 진리를발견함에 따라서 인간의 지혜는 그에 따라 더욱 발전해왔다. 말이 없으면 어떻게 인간의 지혜가 축적되고 교류될 수 있었겠는가? 말은 有名 萬物之母 즉 우주만물의 모태임이 분명하다. 우리들을 소통하게 만드는 말이 없으면 우주만물이나 그에 대한 진리의 존재와 축적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지 않는가? 말이 도 것이다.

문무왕은 자기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진 사람이었고 또 그와 같이 그가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해 낸 사람이었다는 측면에서 귀도천신의 본보기임은 분명하다.

 

 

欽味釋() 葬以積薪

欽味釋 
국편위는 고의로 마멸된 의 결자 부분 欽味釋 에 대해서 欽味釋典으로 메꾸어서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로 번역하였는데 현재까지 이런 번역이 마치 정설인냥 굳혀져 있다. 하지만 이런 번역과 해석은 크게 잘못되었다. 나는 국편위의 이런 번역에 대해 큰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다.

왕이 祭天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선조 제사를 함께 올리는 先祖配祭 配天(배천)이라고 하는데, 이는 尊祖”(존조)의 의미이다. 한서 교사지하에 王者尊其考 欲以配天 緣考之意 欲尊祖 推而上之 遂及始祖 是以 周公 郊祀 后稷 以配天구절이 나온다. 

尊崇王室(존숭왕실)의 표현과 같이 존경하고 숭상하는 의미의 尊崇존숭이라는 말이 있다. 무측천의 표현에 “尊父之敬雖週구절이 있다. 

금서룡이 欽味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메꾸었는데 한국사학계는 그대로 이어받아서 쓰고 있다. 하지만 공자의 제사를 모신다는 뜻으로 전()글자가 원래의 비문 구절의 글자였음이 보인다.

釋奠: 古代在學校設置酒食以奠祭先聖先師的一種典禮 出征執有罪  反釋奠于學  以訊馘告” (禮記‧王制).
欽味釋奠”(흠미석전) 즉 공자를 존경하여 공자가 죽을 때처럼 간단한 추모 비용을 동백나무잎에다 종이 지폐를 키워서 오늘날은 그것을 국화 한 송이로 대체한 것이다. 공자가 학생들에게서 학비는 비교적 많이 받았지만 죽고 난 후에는 자신의 장례 추모비는 동백꽃 하나로 족했다는 의미이다.  한신이 어머니 묘를 크게 만든 것 그런 것이 아니라 공자는 한신의 후장이 아니라 간단한 비용으로써 추모 받는 것을 대신한 것이다. 따라서, “欽味釋 의 결자 부분을 국편위가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메꾼 것은 순전한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에 대한 어떤 논리적이거나 학문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불교가 공인된 이후 불교가 국교로 지정된 고려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불교의 교리에 따라서 화장식으로 장례식으로 치룬다고 여겨서인지흠미장이적신이라는 구절 사이에 단순하게釋典(석전)”이란 말을 집어 넣었던 것 같다.  국편위는 欽味釋  葬以積薪부분을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라고 번역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해석은 어떤 학문적인 증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이런 국편위 번역은 크게 잘못되었다.  釋典”(석전)이란 佛經(불경)을 뜻한다. 하지만 문무왕이 불교에 귀의했다거나 불경을 가까이 했다는 기록은 없다.

문무왕 시대는 당나라에서 국교가 도교인 것과 마찬가지로 도교가 그 절정을 구가하던 시대였음을 상기하라. 무엇보다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자체에서 歸道賤身”(귀도천신)이라는 표현이 분명하게 적혀있다는 역사적 팩트를 상기하라.

 

 

서수획린과 절필지운

분명한 궐문은 분명하게 궐문으로 두어야 훗날 다른 사람들이 해석을 구하는 방법이나 그 길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혼자만의 주장을 마치 옳은 것 인양 억지로 내세우는 세태는 비판받고 지적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한 예로 비문 판독자 동국대 황수영 같은 사학자는 불교 도그마와 편견과 왜곡 정도가 강하게 나타나 그 논문의 진실성이 의심된다.  비록 공자 시대가 지나면 겸손함과 신중성을 찾아보기 힘든 세태가 지배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문장 중에서 이해가 안되는 글자나 빠진 글자가 있는 궐문闕文 궐문으로 남겨 두는 것이 보다 옳을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  나는 그래도 사관이 탈루된 글자나 이해가 안가는 글자가 있으면 빼놓고 공란으로 남겨두는 것을 보았고, 말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타게 하였는데, 지금에는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진 것 같으네!”

葬以積薪장이적신欽味흠미의 뜻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화장식으로 장례를 치룬 것은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 일찍이 도교에서 행해지던 장례풍습이었다.  후대에 이르러 국가에서 금지하자 사라지게 되었다.  요즈음 영국 같은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루는 경우가 대세인데 영국은 불교 국가가 아니고 기독교 국가임을 보라.  일본은 화장식으로 장례를 치루는 나라로 가장 대표적인데 일본인들이 거의 모두가 불교신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여담이니까 깊이 들이 가서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지만, 일본에서 최초의 화장식은 707년 문무천황 文武天皇 화장식이 그 시초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볼 때 문무왕의 화장식 전례가 일본에 전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欽味釋 葬以積薪       

欽味흠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欽敬玩味(흠경완미)의 줄임말이다. 欽敬(흠경)은 흠복하다 경복(敬服)하다 흠모하다 경모하다 欽佩尊敬(흠패존경)의 뜻이다.[1]  玩味 뜻을 잘 생각해 보고, 깊이 새겨 보다, 음미하다의細細地體會其中意味 ponder의 뜻이다.  미술품이나 화초들을 가꾸며 취미를 감상하다는 뜻으로 玩味(완미)를 쓴다. 

그와 같이 어떤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는 뜻이다. 

欽味(흠미)가 쓰인 예문을 찾아보면 위서(魏書) 조유(趙柔)전의柔爲之注解 咸得理衷 爲當時俊僧所欽味焉 구절이 발견된다. 欽味(흠미)를 사전에서 살펴보면, 欽敬玩味(흠경완미) 즉 영어로 admire의 뜻, 존경한다는 뜻이다. 옛날에 권위있는 사람들은 허리띠 패를 착용했는데, 그래서 권위 있고 존경받는 것을 欽佩敬重(흠패경중), 欽佩尊敬(흠패존경), 欽佩(흠패), 欽敬(흠경)이라고 말했다. 

釋滯 석체

우리들이 곰곰이 생각해 본다는 경우는 것은 어떤 무언가가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을 경우일 것이다. 목에 무언가가 걸쳐서 넘어가지 않고 소화가 안되는 경우 체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뭔가 막혀 있는 것을 풀어내어 의문을 해소하는 것을 辯疑惑釋凝滯(변의혹해석응체)라고 말한다. 깊은 의문을 푸는 것을 决疑釋滞(결의석체)라고 말한다. 갈홍(葛洪)抱樸子‧釋滯(포박자석체)편을 참조해 보자. 釋滯(석체)라는 단어의 뜻은 解疑釋滯(해의석체) 解決 難疑 問題 어떤 풀리지 않고 꽉 막힌 문제를 해결해 내다의 뜻이다. 解釋難疑 뜻인 釋疑(석의)와 비슷한 뜻이다. 진서(晉書)형법지의法欲必奉 故令主者守文 理有窮塞 故使大臣釋滯예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이적신의 내용이 전혀 풀리지 않는 내용의 문제인가?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유신이 표현하듯 그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 환군산인데 그는 사람의 정신과 몸의 관계를 땔나무와 불의 관계로 비유해서 설명해 냈고, 또 불교에서 신불멸론과 신멸론 사이에서 3세기경부터 열띤 논쟁이 일어났음을 참조해 보고 또 영광전부와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언급한영광불멸의 문제는 익히 이론적으로 설명이 잘 되어 있었던 영역에 해당한다.

() 글자는 -해의 解說(해설)의 뜻 즉 말로써 풀이하다 注釋(주석)하다는 의미의 낱말이다. ()은 석방하다의 낱말에서 알다시피 놓아주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釋手(석수)는 손을 놓다-放手, 不釋(부석)은 놓지를 못하다 애도를 멈추지 못하다 letting go를 못하다 不能忘掉 뜻이다. 초사 哀郢(애영)絓結而不解兮 思蹇產而不釋 마음의 울적함 풀리지 않고 생각은 막혀 잊지를 못하네”의 구절이 이와 같은 뜻이다. 

() 글자는 석가를 뜻하니 석가모니를 釋氏(석씨)라고도 쓴다. 하지만 문무왕릉비문의 내용에서 불교의 개념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비문에서 貴道賤身”(귀도천신)했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썼지 않았는가? ‘()의 가르침을 높이 귀하게 여겼고 자신의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라고 바로 앞 구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무슨 근거로 국편위는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이와 같이 얼토당토않게 번역해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석전(釋典)이 아니라 석전(釋奠)

석전(釋典)이 아니라 석전(釋奠)이다. 즉 부처의 석전이 공자의 경전의 가르침이고 그런 공자에 대한 추모제를 의미하는 석전(釋奠)이란 말이다.

국편위는 欽味釋典으로 메꾸어서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로 번역하였는데, 현재까지 이런 번역이 마치 정설인냥 굳혀져 있다. 하지만 이런 번역과 해석은 크게 잘못되었다. 나는 국편위의 이런 번역에 대해 큰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반박한다.

금서룡이 欽味釋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메꾸었는데 한국사학계는 그대로 이어받아서 쓰고 있다. 하지만 석전과 같은 뜻인 공자의 제사를 모신다는 뜻으로 석전()자가 원래의 비문 구절의 글자였을 것이다. “欽味釋奠”(흠미석전) 즉 공자를 존경하여 공자가 죽을 때처럼 간단한 추모 비용을 동백나무잎에다 종이 지폐를 끼워 넣어서 예의를 표한 것 즉 오늘날은 그것을 국화 한 송이로 대체한 것이다. 공자가 죽고 난 후 자신의 장례 추모비는 동백꽃 하나로 족했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한신의 후장이 아니라 간단한 비용으로써 추모 받는 것을 대신한 것이다. 공자는 후장이 아니라 소박한 소장을 원했고 이 소장은 불교식 화장이 아니라 땅에다 묻는 유교식 토장을 말한다.

 

귀도천신 바로 앞구절은 命凝眞구절인데 이 결자부분은嚴命凝眞”(엄명응진)으로 메꾸어 본다면아버지의 엄명을 정말로 이루어냈도다!’의 뜻으로 번역해석된다. 嚴命凝眞 貴道賤身의 뜻은 달리 말하면 生盡其孝 死盡其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표현을 번역하면, ‘살아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다했고 죽어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완수했네’.

釋之

 여기서欽味釋 에 들어갈 내용의 말은葬以積薪과 그 후 결자부분의       의 내용을 곰곰이 잘 생각해본다는 의미의 말이 연결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런 뜻의 글자가 바로 지시대명사 연결사 지이다. 영어의 which, that의 기능의 이다.  이런 역할 쓰임새의 예문을 시경의 구절에서 찾아 보자. 

乃寢乃興 乃占我夢 吉夢維何 維熊維羆 維虺維蛇 大人占之 維熊維羆 男子之祥 維虺維蛇 女子之祥” (시경, 小雅 斯干).

잠자고 일어나 / 지난 밤 내 꿈을 점쳐보니 / 좋은 꿈 길몽이긴 한데 그게 무슨 뜻인지? / 흑곰, 대웅이 나온 꿈이었네. / 살무사와 뱀이 나온 꿈이었네. / 어르신께 점쳐달라고 하니 / 흑곰, 대웅은 / 사내아이 태어날 징조이고 / 살무사, 뱀 꿈은 / 딸아이 태어날 징조일세.

여기의大人占之”(대인점지) 표현이 그것이다.  간 밤에 꾼 꿈 그게 무슨 뜻인지 해몽하는 것을占之”(점지)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현대 정신분석 심리학 프로이드의꿈의 해석을 보라. 모든 학문의 본령이자 입문이자 결론은 사물 현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 영어로 interpretation이지 않는가? 연구논문 서치엔진을 찾아보면,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연구 논문 제목에 “interpretation” 단어가 들어간 제목이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釋之占之하고 같은 뜻이므로, 시경 사간의대인점지 유웅유비의 문장구조와 비문의흠미석지 장이적신의 문장 구조는 동렬구조이다.

따라서 釋之로 연결하면欽味釋之가 되어欽味釋之 葬以積薪”(흠미석지장이적신)의 구절로 메꾸어진다. 여기서 ()은 풀이하다, 해석하다의 의미이지, 불경을 뜻하는 釋典”(석전)의 뜻이 아니다. ‘장이적신이라는 그 뜻을 곰곰이 되새겨 생각하고 풀이해 보니라는 의미가 된다. ‘나뭇단을 쌓고 불태워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루었다는 문무왕의 장례식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薪盡火傳 靈光不滅의 뜻이 있지 않는가?  薪盡火傳”(신진화전)땔나무의 형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형체와는 다르게 다른 나무에 옮겨 붙어 불씨를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고, 이 말은 불이 그렇게 계속 이어지듯이 우리 사람들도 비록 몸은 없어 사라진다고 해도 정신과 마음은 다음 세대에게 계속 이어진다는 것, 또 불과 같이 사람의 정신 또한 영원하다는 뜻의靈光不滅”(영광불멸)의 뜻과 상통한다. “靈光不滅”(영광불멸)의 의미 그 의미를 아닌가?  ! 참으로 문무대왕답도다!’ 

정도자의신불멸론 

釋之”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담긴 또 다른 예문 하나인 정도자의신불멸론중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보자.

有斯難也 形神有源 為子循本而釋之 夫火因薪則有火 無薪則無火 薪雖所以生火 而非火之本 火本自在 因薪為用耳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火本至陽 為火極 故薪是火所寄 非其本也 神形相資 亦猶此矣 相資相因 生塗所由耳 安在有形則神存 無形則神盡 其本惚恍不可言矣 為吾子廣其類以明之 當薪之在水則火盡 出水則火生 一薪未改 而火前期 神不賴形又如茲矣 神不待形 可以悟乎”. (鄭道子, 神不滅論, 弘明集券五).

여기서釋之’(석지)라는 말 대신에 그것과 똑같은 의미의 다른 말을 쓴다면釋文이 적절할 것 같다.  釋文’(석문)經典釋文”(경전석문)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문자의 독음(讀音)과 뜻을 해석하다, 고문자(古文字)를 고증하여 그 잣구의 의미를 해석하다, 주석하다, 영어로 말하면 어노테이션(annotation)의 뜻이다. 그러므로장이적신의 의미를 곰곰이 해석해 보니, “신진화전”, “영광불멸이라는 뜻이 있지 않는가?  대대손손 영원히 남을 위대한 문무대왕이시여! 당신은 경진씨-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이어받은 왕답게 정말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구나! 

神不滅論(신불멸론) 대논쟁

왜 불교에서 形神生滅論”(형신생멸론) 대논쟁이 벌어졌는가? 불교는 우리의 전통 종교가 아니라 인도 힌두교에서 파생되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전래된 외래종교였다. 사마담의 논육가요지에 불교의 요지는 들어 있지 않다. 대개 변혁의 시기에 외래종교가 유입된다. 조선말기에 기독교가 유입된 것을 상기하라. 단순도식화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한계를 수긍하고서 도식적으로 단순하게 말하면, 도교는 유신론, 유교는 무신론, 불교는 이 둘을 결합하고 통합을 시도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 그 지파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삼국사기에 짧은 최치원의 분석 문장을 참조하라. 그런데 궁극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종교적 믿음이 과연 통합이 될 수 있겠는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후손들로 자처하는 조상이 같다고 하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도가 상통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7세기 이후 진행된 기독교와 이슬람 대립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종교는 바둑의 흑백의 문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o, x 이지, 둘 다를 함께 어우를 수 있는 육면체 주사위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분야이고, 따라서 사람의 죽음은 오로지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터스가 말한 것 같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굴 수는 없는 법이고, 한 번 흘러간 물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流水不歸(유수불귀). 두 번의 죽음은 없는 법이라면, 어떻게 죽음을 통합할 수 있겠는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한편 공자의 유교는 요즈음의 표현으로 말하면 휴머니즘, 인간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교는 유일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교 또한 조상에 대한 제사는 지낸다는 측면에서 최소한 정령의 존재는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정도자의 신불멸론과 환군산자의 新論形神(신론형신론)을 참조하라. 환군산자는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기 이전의 사람이다.

薪盡火傳

薪盡火傳(신진화전)은 장자(莊子)養生主(양생주)에 나오는 柴雖燒盡 火種仍可留傳 구절의 설명대로 땔나무는 불이 다 타고나면 사라지지만 불은 영원히 전해진다는 뜻에서 불굴의 정신이 이어지는 인류의 전통,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영원한 인류의 지식 승계와 전통의 뜻을 함의하고 있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을 사전에 찾아보면 薪火相傳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薪火(신화)는 횃불, 우리 어릴 적 소나무 방울에 불씨가 남아 옮겨 붙는 관솔불, torch, 火炬(화거), 불을 뜻한다. 불씨는 다른 장작 나무가 다 타고나서도 그 장작나무 형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형체와는 다르게 다른 나무에 옮겨붙어 불씨를 이어간다.  그래서 불씨는 대대상전(代代 相傳) 대대로 전해진다-代代流傳(대대유전). 사람은 몸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자손과 후손을 통해서 상속되는데, 나무가 불을 이어가듯이 계속 살아 남는다는 비유인 것이다. 여기서 불에 타는 나무는 사람의 몸 형체이요, 불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비유된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의 출처는 指窮于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문장이 나오는 장자의 양생주이다. 火傳 불씨가 꺼지고 나도 다시 살아 나 이어지듯이 어떤 물건의 물질이나 정신의 정수가 대대로 이어진다-代代流傳(대대유전)의 뜻이다. 화전(火傳)은 양나라 왕승유의 예주묘지명의 구절에도 나타난다, “思魯連之辭賞 慕田疇之高蹈 而火傳川逝 長途已迫”.  여기의 川逝(천서)는 강물이 흐르듯, 세월이 흘러도의 뜻이다. 그러므로 指窮于爲薪火傳也不知其盡也 번역은, “불씨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기름을 붓고 땔감을 태우면 기름이 다 타더라도 불은 차례대로 옮겨져서 그 끝이 없이 계속 타오른다.” 사전에서의 영어 해석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As one piece of fuel is consumed, the flame passes to another.”

여기서 () 글자를 기름 지방 뜻의 ()를 가르키는 말이라고 의역하는 것이 장자의 구절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하는 측면이 있어서 이와 같이 해석했는데, () 글자는 손가락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고대에서는와 같은 의미를 가졌다. 그러므로 취지라는 말처럼 意義(의의)目的(목적)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점에 입각하여 장자의 구절은 땔나무가 다 타고나서도 불씨는 계속 이어진다는 결론을 알기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爲薪(위신)은 여기서 () 글자는 () 글자의 의미 즉 取柴薪(취시진)의 의미이므로, 窮於爲薪(궁어위신)은 땔나무가 다 타고 나더라도, 화전(火傳)은 대대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땔나무는 다 타버리고 난다 해도 불 자체는 그 땔나무가 있는 한 계속 옮겨 가는 거니, 어느 누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다-不知其盡也. 땔나무가 다 연소되더라도 다시 땔나무를 갖다 대면 불은 옮겨 붙는다.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다시 타듯이 사람의 삶 또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땔나무와 불과의 관계를 비유해서 우리 인류의 삶에서 비록 우리 몸뚱아리는 유한하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인간 정신은 면면이 이어진다는 대대상전의 의미를 설명한 말로 이해된다.

 

 

穀神不死

곡신불사는 온천명에 등장한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의 의미는 穀神不死(곡신불사)의 뜻과 그 맥을 같이한다. 곡신불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간략히 설명한다. 

노자 도덕경의 “谷神不死 是謂玄牝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구절이 있는데,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있다.  곡신불사를 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있는 계곡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영원불멸의 계곡의 정신이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경우 등 해석 나름대로 의미가 통한다. 노자는 현빈지문이라고 말한 것은 김용옥이 해석하는대로 아이를 낳는 여자의 가물한 그곳을 가르키든, 아니면 태산 입구에 있는 천문을 말하든, 예수가 적절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 말이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해석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노자가 말한 본질적인여성성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말이다. 어찌됐든 영생불사의 그곳이 있다면 물과 불이 서로 만나는 지점 즉 확 트인 분기점이 그곳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우리 속담에빙탄불상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노자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그 말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곡신불사를 그러한 영원불멸의 정신이 있다는 정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면, 천문이나 계곡이나 여성의 검은 그곳이나 그 같은수동성이 신비스런 생명력을 이어가는 요체라고 보는 것이다. ‘요철과 같은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모습으로 모든 기구가 만들어 있음을 볼 때 이 세상은 절구와 절구통같이 어느 한 쪽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힘을 합쳐서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해서 내려찍는 절구보다 그것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절구통이 더 중요하다고 보더라도 절구통의 존재는 절구가 없으면 또한 의미가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면이 즉 밑에서 받쳐 주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전쟁 전략론으로 말하면, 공격보다는 수비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며, 겉으로 드러나기는 쉽지 않지만 승리에 꼭 필요한 것은 여성적인 자기 희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밑받친다는 의미에서 자기 희생적인 뜻이 강조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러한 우주만물이 움직이고 작동하는 기본적인 음양의 원리원칙을 기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자의 곡신불사(谷神不死)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한 것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The immortal spirit of valley (vast and void) is like a magical uterus (a place for reproduction) . The door into the magical uterus is like the seed of heaven and earth (the universe). The seed seems to pass on and on, it can never be used up.

이 세상을 이어가는 영원한 하나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높은 곳 또는 깊숙한 곳 또는 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과 같은 것인데, 이를 남녀간의 성질로 보면, 남성적인 공격성보다 여성적인 수동성이라고 본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보고서 항상 겸손의 자세를 강조하고 또 모든 것을 포용하는 관용의 정신을 강조한다.  노자가 강조한 여성적 가치 페미니즘의 가치를 국가통치 정치철학으로 전면에 내세운 나라는 중국의 당나라이었다.  모란꽃은 여성을 상징하는 꽃이다. 당나라는 모란꽃을 국가의 통치철학을 대표하는 국화로써 채택했다.

왜 모란이 여성을 상징하는 꽃일까? 모란의 꽃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자주빛 꽃잎 속을 들여다 보면 노란 색의 꽃술이 둥글게 모여 있는 모습을 띠는데 마치 여성의 생식기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모란은 탐스런 큰 꽃잎이 피기 전에 마치 남자의 생식기 불알 탱자같이 생긴 머금은 씨앗이 줄기 위에 매달려 있고 그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숙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씨앗의 모습은 확 터지는 알갱이 단과 같음으로 이를 따서 모란꽃을 한자로
牧丹(목단)이라고 표현한다. 모란은 양귀비꽃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이러한 모습에서 목을 치다즉 사람이 희생당하는 의미가 유래하였다. (오늘날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데 그 꽃의 상징적 의미는 어버이가 아이를 키워내는 자기 희생 정신을 기르는 것에 있다.) 오늘날 양귀비꽃을 전쟁 희생자를 기르는 현충일에 이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양귀비꽃은 이렇게 희생자의 넋을 기르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잘난 체 하는 사람을 못봐주는 세태를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으로 표현하고 있다. 목단 꽃의 모습은 씨앗을 터뜨려서 큰 꽃 잎을 피우는 자기 희생의 정신을 상징하는 꽃이 된다.  여성의 생식기를자궁이라고 말하는데 자식을 낳은 그곳을 의미한다. 과거 왕조 시대에서 태자가 거처하는 왕궁의 장소를 자궁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한자 자는 자주빛 ()를 써서 자궁이라고 한 것이다. 태자는 장차 국왕이 될 신분이므로 아이를 낳은 여자의 자궁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자주빛은 이렇게 고귀한 신분의 탄생을 상징하는 색깔이므로 왕궁에서 태자가 거처하는 태실 이름으로 쓰였고, 모란은 탐스런 자주빛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꽃이다.  모란은 이렇게 그 꽃모양이 여성적인 여성적 가치를 크게 강조한 노자의 정치 철학을 채택했던 당나라에서 국화로써 위치를 점했던 것이다.

 

貴道賤身 欽味釋軀/欽味釋縛/欽味釋奠 葬以積薪

위에서 설명한대로, 釋滯(석체), 釋之(석지), 釋文(석문), 釋縛(석박), (석전), 薪盡火傳(신진화전), 葬以積薪(장이적신), 神不滅論(신불멸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貴道賤身 欽味釋奠 葬以積薪에서의 결자 부분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欽味釋奠(흠미석전) 또는 欽味釋軀(흠미석구)의 표현이 도출된다. 장례식을 치룰 때 영구를 극히 존중하고 마지막 예를 다해 표하는 그 모습을 상상하라. 천천히 운구를 옮기면서 최고의 예를 표하지 않는가?  그 때 존경하는 고인이 평소 행동과 남긴 말씀을 되새겨지지 않는가? 欽味(흠미)한다는 뜻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고인의 몸이 담긴 운구를 석방해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을 지펴 화장식을 치루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표현으로써 釋軀(석구)가 어울린다. 釋軀(석구)와 같은 뜻의 단어로 捐軀(연구)가 있다. 捐軀(연구)는 국가와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생명까지를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 즉 舍棄身軀(사기신구), 爲國捐軀(위국연구)를 뜻한다. 欽味釋軀 葬以積薪(흠미석구 장이적신)은 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기 위해서 쌓은 나무 위에 관을 옮기고 화소장을 치루는 그 구체적인 장면 그리고 그에 대한 비유적인 의미를 말해준다. 

 

解釋(해석), 注釋(주석)하다의 뜻에서와 같이 해설하다의 뜻이 있고, 冰釋(빙석) 즉 얼음이 녹다는 뜻에서와 같이 解除(해제), 消散(소산)의 뜻이 있고, 범인을 保釋(보석) 허가하고 釋放(석방)하다에서와 같이 사면(赦免)하다, 놓아주다의 뜻이 있고, 춘추좌전의 諸侯釋位 以間王政”(제후석위 이간왕정)-제후들이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왕정(王政)을 간섭하였다-구절의 뜻에서와 같이 放棄(방기)하다, 버리다, 舍去(사거)-놓고 가버리다의 뜻이 있고, 한서에서 자주 나오는 釋服”(석복) 즉 옷을 벗는다-탈상하다-(해탈)의 뜻이 있다. 

釋軀(석구)몸을 버리다는 뜻이 되므로 석구는 捐軀(연구)라는 단어의 뜻과 같다. ()은 재단기금에 재산을 기부 출연하다의 뜻과 같이 자기의 귀중한 재화를 기꺼이 포기하고 희사하는 것을 뜻하는 낱말이다.  捐軀(연구)는 국가와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생명까지를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舍棄身軀(사기신구), 爲國捐軀(위국연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앞서의 문장에 나오는 귀도천신과 비슷한 뜻이다. 

결론적으로 欽味釋軀(흠미석구)국가를 위해 몸을 던진 문무왕의 희생 정신과 그의 유지를 받들고 그 깊은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면서의 뜻이 된다.

정림사 평백제비에서의捐軀殉國之志” (연구순국지지)의 구절이 바로 欽味釋軀(흠미석구)의 뜻을 모방한 표현이 된다.

欽味釋  葬以積薪은 국편위의 번역대로의 欽味釋典 葬以積薪흠미석전 장이적신의 문장이 아님은 이제 명백해졌다. 국편위는 釋典이라는 글자로 메꾸워서欽味釋典”(흠미석전)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당태종의 비문에서와 같이 부처가 아니라, 釋奠(석전)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의미할 것이다.

貴道賤身 欽味釋奠(귀도천신 흠미석전) & 欽味釋縛 葬以積薪(흠미석박 장이적신)

비문 뒷면 20행의欽味釋葬以積薪(흠미석장이적신) 부분을欽味釋典 葬以積薪으로 해석해온 지금까지의 한국사학계의 결론을 적극적으로 반박하여, 나는 欽味釋부분을 欽味釋縛(흠미석박)으로 또는 欽味釋奠(흠미석전)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欽味釋葬以積薪”(흠미석장이적신)의 결자 부분을欽味釋典 葬以積薪이 아니라 欽味釋縛 葬以積薪(흠미석박 장이적신)으로 해석할 때 보다 완벽한 의미가 통한다.

釋縛焚櫬(석박분친)은 중국어 성어 사전 등 거의 모든 사전에 적혀있는 한자성어이고 한자 옥편 사전에 설명이 들어 있는 글자이다. 중국의 역사서에도 그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 성어이기도 하다.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해석한 최초의 사람이 일제시대 식민사학을 개창한 경정제대 교수금서룡이었다. 그의 육필원고를 보면 금서룡은 欽味釋결자부분을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창작하고 끼워 넣었다. 欽味釋典(흠미석전) 불경을 흠미해서 나뭇단을 쌓아올리고 화장을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貴道賤身 欽味釋奠(귀도천신 흠미석전) 즉 귀도천신의 공자를 흠미해서 장이적신했다는 의미가 문무대왕의 죽음에 맞는 내용이 된다. 흠미석전은 춘추좌전의 역사서 기록-昭公四年: 成王克許 許僖公如是 王親釋其縛 受其璧 焚其櫬-을 토대로 해석된다. 문무대왕은 삼국을 통일한 선구자이고 전쟁포로의 속박된 삶을 풀어준 성현이었다.

欽味釋  葬以積薪부분을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라고 번역한 국편위의 해석은 단어와 어구와 구절과 문장과 전체 비문과의 의미 연결상 전혀 맞지 않고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만약 欽味釋典(흠미석전)이라면 비문의 글자를 고의적으로 마멸시키는 비문에 대한 테러행위를 감행했을 이유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비문 해석을 시도함에 있어서 마멸된 글자 한 글자를 메꾸더라도 그 글이 나타내는 단어와 구절과 문장과 전체 비문 내용과 연결지어서 부분과 전체적 의미가 서로 온전하게 연결되어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공자의 서수획린의 의미를 각자 나름대로 해석한다고 해도 춘추의 역사와 공자의 삶 전체를 통해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고, 문무대왕릉비 비문 원문이 마멸 훼손되고 사라진 이후의 欽味釋 문장은 그 정확한 글자가 이미 사라진 이상 절필지운으로 여겨져야 한다. “欽味釋 欽味釋典”(흠미석전)이라고 해석한 금서룡과 그 아류들이 저지른 잘못은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靈光不滅 영광불멸

영광전靈光殿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에 세워진 사당인데, 한경제의 비 정희가 낳은 자식인 노공왕 유여(?-BC 128)가 이곳의 제후로 있던 시절에 중건했다.  경제와 정희 사이에 낳은 자식의 후손으로는 유명한 삼국지 시대 촉한을 세운 유비 황제가 있다.  유방의 아들인 한문제와 한경제는 한무제의 어머니 두태후처럼 도교를 신봉하고 도교의 정치철학으로 한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다진 현왕이었다.  왕연수가 영광전부 魯靈光殿賦에서 다른 궁전들은 전란으로 인해 황폐화되었는데 오로지 영광전만이 살아 남은 이유를 서술했고, 여기에 皆見隳坏 而靈光巋然獨存 개견휴배 이영광규연독존 표현이 있다.  隳坏휴배는 毀壞훼괴, 廢棄폐기의 뜻이고, 巋然규연은 홀로 우뚝 선 모양을 뜻하고, 靈光영광은 영광전의 이름 이외에 다른 뜻이 있는데, 신비한 광채, 왕이나 성현의 덕택, 인간의 선한 본성, 碩果僅存석과근존 즉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큰 열매 그리고 이에 비유적인 의미로 오래 남아 전하는 위대한 사람의 뜻이 있다.  靈光영광의 靈氣(영기) 즉 살아 있는 정기(精氣)를 내뿜는 것의 의미와 통한다.  瞟眇以響像 若鬼神之仿佛 (홀표묘이향상 약귀신지방불) 표현이 나오는데, 그렇게 신기하게 쌓은 사당의 의미가 구름 속에 숨은 달처럼 희미해서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고 또 마치 죽은 사람처럼 금방 귀신이라고 나올 것 같은 그렇게 숨어 있는 그 무언가에 홀린 듯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숱한 전란 속에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 남지 않았을까? 

또 영광전부 마지막 연에서그 모습 정말 신기하지만 전각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窮奇極妙 棟宇已來 未之有兮 표현이 나온다.  만약 화려한 전각들로 채웠으면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갈홍(葛洪)의 포박자 君道(군도)鑒章華之召災 悟阿房之速禍경계 글이 있고, 진자앙은 昔日 章華宴 荊王樂荒淫이라고 탄핵했는데, 역사를 통해 보면 그런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왜 영광전만이 홀로 살아 남았겠는가?  그 명당 묘지에서 오묘한 광채의 빛이 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광(靈光) 말이다. 영광전부에 蔥翠紫蔚 礧碨朅瑋 含光晷兮구절이 있다. ()文貌禮文儀節(예문의절)의 뜻이고, 이는 순자의 예론에 나오는 忠信愛敬之至矣 禮節文貌之盛矣 구절이 이 뜻이다. (뢰락)은 곽박의 산해경주에서 大石(대석)이라고 풀이했고, 朅瑋(걸위)珍琦, 光晷(광귀)日光(일광)의 뜻이다.  따라서 이 총취자울 뢰락걸위 함광귀혜 구절의 뜻은, ‘푸르른 들판에 우뚝 솟은 저 촘촘히 돌로 쌓은 대의 모습 정말 진기하구나, 햇빛을 품고 있음이여.’

왕연수는 영광전부에서 숱한 전란 속에서 홀로 살아 남은 영광전처럼 한나라 황실이 영원무궁하기를 기원했다.  神之營之 瑞我漢室 永不朽兮 신이시여, 보살피소서! 상서로운 우리 한나라 황실이 영원무궁토록!  그런데 왕연수의 영광전부가 나오게 된 배경이 한나라의 멸망 시기가 가까이 왔음을 예언해 준 것인지는 몰라도 한나라는 이 영광전부가 나온 지 (왕연수는 165년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 60년도 안되어서 조조의 위나라에 나라를 넘기고 말았다.  천의인가? 인사인가?

유신은 불후의 작품 애강남부에서 영광전부의 靈光巋然獨存 구절을 따와서 靈光巍然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이 표현은 자신의 나라 양나라가 망하고 타국에 억류된 자신의 인생역정 속에서도 석탑같이 후세들에게 영원히 남아 전할 장엄한 인류 역사의 의미를 담아둔 말이었다.  왕연수의 巋然(규연)이나 유신의 巍然(외연)이나저 높이라는 高大(고대)의 뜻으로 같은 의미의 단어이다. 

유신의 삶은 비록 자신의 조상들처럼 전란의 풍진 속에 여러 곳을 옮겨야 했던 부평초 같은 삶이었다.  삼협의 방랑시인 詩聖(시성) 두보가 유신의 삶에 대해 庾信平生最蕭瑟 暮年詩賦動江關이라고 노래했다.  유신평생 최소슬 모년시부 동강관, 유신은 평생을 스산한 가을바람처럼 매우 쓸쓸한 삶을 보냈지만 그가 만년에 쓴 시와 글은 유유히 흐르는 양자강마저 울릴 정도이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삼협댐이 있는 곳 초사를 통해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굴원[2]과 송옥과 두보가 있는 형주 강릉의 그 곳, 청산은 의구하고 거대한 양자강의 강물은 구비구비 동쪽으로 유유히 흐르는데 부딪쳐 부서지는 큰 강물결에 씻겨 갔는지 옛 영웅들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네, 滾滾長江東逝水浪花淘盡英雄(곤곤장강동서수랑화도진영웅). 

하지만 유신은 비록 자신의 후손들이 세상 부귀영화와 절연되고 또다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도 영광(靈光) 즉 위대한 인물-꼭 유신의 가문 중의 큰 인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은 계속 전해지리라.  여기서 영광은 큰 업적을 나타낸 큰 인물이라는 뜻 이외에 우리의 감정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인류의 마음 속에 면면히 살아 전해져 온 고귀한 정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영광 그 영원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끝까지 계속 살아 남을 것이라는 역사와 민족과 인류의 존속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칭한다.  그런 굳센 마음은 사마천이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끝내 살아남아 부친의 유언을 완수해 내고 불후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그의 위대한 정신의 힘과 같다.  여기서 영광(靈光)이라는 의미는, 사람은 형체와 정신 즉 몸뚱아리와 마음 body and soul이라고 볼 때, 비록 몸은 사라져도 그 마음과 정신이라는 신비스럽고 신령스러운 빛나는 광채, 영원한 별빛과 빛나는 인간의 선한 본성은 계속 살아 남아 전해질 것이라는 그 영원불멸성을 말해 준다. 

또 우리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DNA같이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영광(靈光)이 존재하리라는 믿음이 있는데,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에서 살펴본다면 영광은 조상과 성현(聖賢)들이 전해준 덕택(德澤) 음덕을 뜻한다.  애강남부의靈光(영광)은 홀로 높이 남아 있으리라는 표현에서 여기서 영광을 마지막잎새나 큰바위얼굴처럼 모든 산천초목이 변해도 끝내 변하지 않는 위대한 그것으로 해석한다면 물적으로는 화씨벽 수주보배나DNA같은 사리 엑기스가 되겠고 정신적으론 유심론 즉 사람의 몸은 죽어도 사람의 마음과 가슴과 정신과 혼백과 영혼은 영원히 살아 남으리라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믿음을 웅변하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영광(靈光)혼불과 같은 의미가 된다.

인간세상이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소크라테스 노자 석가 공맹 예수 같은 성인철현은 영원히 전하고 있지 않는가?  이같은 역사인식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나는 애강남부에서의 靈光巍然(영광외연) 구절을 문무왕릉 비문의 결자 부분을 메꾸어 주는 표현으로 도입하였다.  

문무대왕은 장례식을 화장식으로 치루어 비록 자신의 몸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토록 살아 남아서 우리들 우리민족 우리국가를 무궁토록 보호하리라.  문무왕의 후세들을 위한 고귀한 사랑과 위대한 역사정신은 자손만대에까지 전해질 것이다.  문무왕이 이룩한 삼국통일의 위대한 업적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비추는 햇빛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문무대왕의 위대한 통일정신은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등대불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Eternal Flame이 되어, 영원한 성화(聖火)로 타오르리라.

 

 

粉骨-粉骨碎身 분골쇄신

 

국편위가 滅粉骨鯨津부분의 결자된 부분의 글자들이 무슨 글자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또 문맥상 띄어쓰기 구조적 이해를 하지 않고서, “경진 鯨津 뼈가루를 날리셨네로 창작하고 번역한 것은 큰 오류을 범한 잘못이 있다.  하지만  不滅의 뜻을 가진 단어로써 이해된다.   不滅의 뜻을 가진 단어가 결자부분을 메꾸는데 문맥상 어울린다.  부분은 글자수를 4자 쓰기로 맞추어서 그렇게 4자 띄어쓰기 해서 문맥상 의미가 완전히 연결되어야 올바른 번역과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   滅粉骨鯨津에 연결되는 5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앞의   ” 4자 띄어쓰기로 문맥상 의미가 서로 연결된다.

여기서분골 粉骨분골쇄신 粉骨碎身의 약자의 의미이다.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희생한 높은 충성심과 용맹함을 보여준 경진씨를 이어받은 왕, 경진씨의 후계자로서 정말 믿음직스럽다는 칭송의 표현인 것이다.  장례식 또한 용감하게 관습에 없던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치루는 것 또 그에 관련된영광불멸의 의미를 깊이 새겨볼 때 정말 경진씨 태종 무열왕을 이어받은 왕으로서 진실로 공경스럽구나! 그렇게 느끼는 경의의 표현인 것이다.  여기서는 여담으로 타치만 하고 넘기지만 간단히 코멘트를 남긴다면, 일본에서 최초의 화장식은 707년 문무천황(文武天皇) 때가 그 시초라는 사실을 볼 때 문무왕의 화소장 장례가 일본에 전해진 것이 아닐까? 특히 문무천황이 백강전 전투에서 거의 전멸적 패배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라.

粉骨鯨津 嗣王允恭의 구절에서粉骨”(분골)粉骨碎身분골쇄신의 의미이니 분골(粉骨)粉骨碎身(분골쇄신)의 약자로 쓰였다. 분골(粉骨)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희생한 높은 충성심을 보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그 의미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편위는 얼토당토않게분골뼈가루를 날리셨네”-이렇게 엉터리로 번역한단 말인가?

粉骨”(분골)과 같은 의미로 쓰인 표현을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찾아보자. “忠臣解骨 君子吞聲, “荊山鵲飛而玉碎 隨岸蛇生而珠死”, “忠能死節”, “碎於長平之瓦이런 표현들이 나온다.” ‘장평의 기와처럼 부서졌네의 표현은 중정부장이 대통령을 저격한 10.26 궁정동 사태 때 사형당한 중정부장의 부하가 최후진술에서 남긴 말이기도 하다. 유신이 애강남부에서 쓴 단어 충신 해골解骨”, “玉碎”,  珠死 “, “瓦碎라는 단어들은 모두분골과 같은분골쇄신의 죽음이란 뜻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해 죽었다는 비유적 표현인 것이다. 유신의소원부에서不暴骨於龍門이라고 표현하며暴骨”(폭골)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또한 분골쇄신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분골, 폭골, 해골이란 말의 의미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글은 소통하기 위해서 쓰여진다. 글이란 문맥상에서 그 의미가 찾아지는 것이고. 소쉬르의 언어구조주의 등 언어이론 등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 않는가? 학문의 자유라고 해서 양심의 자유까지를 버리고 진리 탐구를 멈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 모르면 서로 토론을 통해서 그 틈을 메꿀 수가 있다. 노자도덕경 제4장의 의미가 그것이다. “하늘의 도는 매우 넓으니 어찌 크지 않겠는가? 대화와 연설의 말 속에 오묘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니, 이렇게 하여 모든 분쟁이나 어려움을 풀 수 있지 않을까!” “天道恢恢 豈不大哉 談言微中 亦可以解紛”(史記, 滑稽列傳序).

우리들은 죽었다는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기피하고 삼가하고 대신 완사적인 표현을 쓰는 것 아닌가?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쓴다. 사람은 오로지 단 한 번뿐인 죽음을 맞이하는데 어느 누가 죽음을 가볍게 여길 수가 있겠는가?

粉骨(분골)粉身碎骨의 준말 즉 목숨도 아끼지 않고 가벼이 여길 만큼 목숨 바쳐 헌신하다는 뜻-不惜生命이다. 남제서(南齊書) 왕승건(王僧虔)전에粉骨衛主 殊勛異績 已不能甄 常階舊途 復見侵抑구절이 보이고 자치통감 양무제 기사 중臣寧堪粉骨 報命讎門”이 나타나고, 또 소철의 편지 중에洗心改過 粉骨報效의 표현이 나타나는데 모두 이와 같은 뜻이지, ‘뼈가루를 날린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은 밀가루로 되듯이 분쇄(粉碎)하다의 뜻이니, 粉身碎骨(분신쇄골) 분골쇄신(粉骨碎身)은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깨어지도록 노력하다 또는 그와 같이 목숨을 걸고 있는 충성을 다한다는 獻身(헌신)을 비유하는 의미가 있다. 

삼국사기에 기재된 문무왕 671 726일 기사[3] 가운데, 粉身碎骨 望盡驅馳之用 肝腦塗原 仰報萬分之一구절이 나온다. 분신쇄골 망진구치지용 간뇌도원 앙보만분지일: 몸이 부스러지고 뼈가 잘게 부셔져도 모두 부리시는데 쓰임이 되기를 바랐으며, 간과 뇌를 들판에 발라서라도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고자 하였습니다” (번역문은 국편위).

肝腦塗原 肝腦涂地(간뇌도지)와 같은 말으로써 아까운 죽음 惨死(참사)를 말한다. 간과 뇌 즉 해골이 들판에 너덜려져 있다는 뜻으로 사기 유경전에 나오는 문장인데, 죽음을 불사하며 희생을 감내하는 것을 말한다. 낱말 뜻 그대로 몸이 부스러지고 뼈가 잘게 부셔져도 좋다는 정도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다지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粉身碎骨(분신쇄골)의 뜻과 같은 말이다. 粉身碎骨 望盡驅馳之用 肝腦塗原 仰報萬分之一, 분골쇄신-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깨어지도록 그렇게 목숨 걸고 충성을 다하고, 구치지용-있는 힘을 다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쓰여진 임무를 다하고, 간뇌도원-목 말라 간과 뇌가 들판에 내버려질 정도가 되어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만분의 하나라도 갚고자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미로 번역되는 이 구절을 국편위는 어떻게 번역했는가? 국편위의 번역문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분골쇄신하여 구치(驅馳)의 쓰임을 다하고자 하며 간뇌도원(肝腦塗原)하여 만분의 하나라도 갚고자 하는 것이다.”

 

粉骨鯨津 嗣王允恭

粉骨鯨津 嗣王允恭의 구절을 번역한다면분골쇄신한 경진씨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진실로 믿을 만하고 공경에 받기에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왜 이렇게 믿음과 공경에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는가? 그건 장이적신과 그 어떤 것-신진화전 영광불멸-의 깊은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문무대왕이 바로 그것에 어울리는 케이스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아 정말 그렇구나!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는 평가가 아니겠는가? 문무대왕 비록 그의 몸은 갔지만 그의 위대한 정신은 영원토록 이어질 것이라는 마땅한 선언인 것이다.

하늘의 도는 매우 넓으니 어찌 크지 않겠는가? 대화와 연설의 말 속에 오묘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니, 이렇게 하여 모든 분쟁이나 어려움을 풀 수 있지 않을까! “天道恢恢 豈不大哉 談言微中 亦可以解紛”(史記, 滑稽列傳序).

금은 모래밭 속에 함께 섞여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세상에서 날카로움을 감추고 얽힌 실타래는 풀어가며 서로 화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삶의 태도는 화광동진(和光同塵), 노자도덕경 제4장의解紛”(해분)의 의미를 깨우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粉骨鯨津

粉骨鯨津(분골경진)의 표현은 문무왕의 아버지 김춘추는 전쟁에서 기꺼이 몸바쳐 희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분골쇄신의 경진씨를 이어받은 왕-사왕(嗣王)으로서 문무왕은 允恭(윤공)하다 즉 진실로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다.

鯨津(경진)은 유신 애강남부에서의大則有鯨有鯢 小則為梟為獍(대즉유경유예 소즉위효위경) 구절의 의미를 참조하고, 고래 ()은 바닷물고기 중 가장 큰 물고기의 최고인 황제 물고기임을 볼 때 큰 고래  大鯨(대경)으로 바꾸어서 표현할 수 있다. (개경)은 대경(大鯨)을 뜻하는 말이다. 당 유우석의 답조가에 “介鯨得性方逍遙 仰鼻噓吸揚朱翹의 표현이 나오는데 개경은 대경과 같은 뜻이다. 또 동해상 큰 파도를 東海鯨波(동해경파)로 칭하는 것을 볼 때 ()은 큰 대자하고 같은 뜻으로 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7세기 후반 일본의 내전 당사자들인 大津皇子 大海人皇子 등 이러한 성씨 이름에 나오는 大海人(대해인)이나 大津(대진)의 문자 뜻이 큰 바다를 건너는 나루터 漢津(한진) 큰 나루터 鯨津(경진)의 의미하고 서로 통한다. 大津(대진)鯨津(경진)이 서로 같은 의미를 가진 말임을 볼 때 신라 문무왕이 일본 왜국을 점령하고 통치하였다는 감추어진 역사가 곧 현실로 들추어 날 것이다.

여기의 “粉骨鯨津(분골경진)鯨津(경진)은 비문 앞면 3행의鯨津氏”(경진씨)를 지칭하는 사람이름에 해당한다.  

비문앞면 3행에서는鯨津氏”(경진씨)라고 호칭하며 ()라는 경칭을 붙였는데 비문뒷면 명 부분 이 구절에서는 ()”가 생략되었다. 그 이유는 명의 4자 글자 수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故孔氏之訓可資釋氏라는 구절에서처럼 공자 석가를 공씨 석씨로 쓸 수 있다. 

 

한편 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에 꼭 씨자의 경칭을 붙여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자의 신불멸론의 문장에서수인씨를 씨자를 생략해서수인으로 쓰고 있는 것처럼 가능하면 줄여서 써도 의미가 확연하게 통하는 경우 줄여서 쓴다.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燧人氏(수인씨)는 인류 최초로 불을 발명하였다는 인류의 조상으로 혹자는 삼황의 위치에 놓고 추앙되는 그런 신격화된 인물에 속하는데, 때론燧人”(수인)으로 쓰고 있음을 참조하라.  幼學瓊林에서는 유소씨 수인씨 복희씨 성인 모두를 씨를 빼고 쓰고 있음이 발견된다. “有巢構木為巢 而民知居處 燧人鑽木取火 而民知飲食. 한비자의 다음 예문에서도 씨를 빼고 줄여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有聖人作 鑽燧取火 以化腥躁 而民悦之 使王天下 號之曰燧人氏”. (한비자, 五蠹).

이와 같이 이해하면 비문뒷면 명 부분에서의 鯨津(경진)은 비문앞면 3행의鯨津氏”(경진씨)를 지칭하는 인명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粉骨鯨津(분골경진)분골쇄신의 경진씨이라고 해석된다. 여기의 鯨津(경진)은 문무왕의 선왕인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하는 인명의 의미인 것이다. 

粉骨(분골)粉身碎骨(분신쇄골)의 준말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목숨을 돌보지 않고 기꺼이 국가를 위해서 충성과 헌신을 다한 경진씨-태종무열왕 김춘추이와 같이 번역된다. 그러므로 粉骨鯨津”(분골경진)경진(鯨津)에 뼈가루를 날리셨네”-이와같이 번역한 국편위의 해석은 크게 잘못된 번역임이 바로 확인된다. 

 

嗣王允恭 

()繼承(계승)의 뜻이고, 后嗣(후사)라고 말하면 자손(子孫)를 뜻한다. 嗣王(사왕)은 선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선왕의 후계자 왕-繼位之王 뜻한다. 공영달의 소에云嗣王某 言此王繼嗣前王而立也으로 설명하고 있듯이, 새로이 건국한 왕이 아니라 전왕의 지위를 승계받은 왕-繼承王位 말한다. 嗣子(사자)에 관한 묘지명의 일반적인 표현이嗚乎哀哉 某月 葬於某原 嗣子某官이런 양식으로 표현되는데 사람은 죽어도 자기를 이어받는 후손이 있기에 인류 문명은 영원이 이어가지 않는가?

상서 요전에允恭克讓”, 공자가어의 治天下之位 猶允恭以持之 克讓以接下”, 한서 서전하(敘傳下)太宗穆穆 允恭玄默”, 위지 견초전에曹公 允恭明哲 翼戴天子등의 예문이 보인다. 克讓(극양)은 자신을 억제하고 남에게 잘 양보하다 能謙讓 뜻이다.  玄默(현묵)清靜無為, 無事 뜻으로 설명된다. 앞서의 윤무윤문의 뜻에서와 같이 신실(信實)하다, 마땅하다 公平得當 뜻이고 믿을 ()으로 풀이되고, ()恭敬하다 공손하다 정중하다의 뜻이니, 允恭 信實(신실)하고 공경(肅敬)스럽다 마땅하다 恭勤(공근)의 뜻으로 해석된다. 

嗣王允恭(사왕윤경)의 뜻은, 粉骨鯨津(분골경진)-분골쇄신한 경진씨-선왕인 태종무열왕(先王金春秋)을 지칭함-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신실하고 공경스럽다.

 

因心孝友

因心(인심)은 모전에서 ()()으로 풀이하고 있고, 인심은 인애지심이 깊은 것 親善仁愛之心(친선인애지심)을 뜻한다. 仁愛(인애)는 사람이 어질고 자애롭다는 뜻이다. 구당서에 當履運而承天 因心而追往 此先王之明訓 聖人之茂典也구절이 나온다. 

孝友(효우)는 우리들이 흔히 쓰는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다는 말의 한자 표현이다. 부모를 잘 모시고 받드는 것-事父母孝順, 그리고 형제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우애가 깊은 것-兄弟友愛 우리의 전통적 윤리관이었다. 모전에善父母為孝 善兄弟為友의 구절, 당나라 한유가 쓴 묘지명에以聰明孝友為父母所偏愛(이총명효우위부모소편애)의 구절이 보인다. 

 문무왕이 태종무열왕의 후계자로서 그 왕위를 이어받을 왕으로서 정말 믿음직스럽고 마땅히 공경받을 만하다는 말을 바로 앞의 구절에서 표현했는데, 인심효우(因心孝友), 그런 국왕다운 국왕으로서의 문무왕의 사람됨과 그 근본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를 파고 들어가 본다면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기 때문이라는 그 이유를 말한 표현이다.

孝友(효우)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다는 말의 한자 표현이다. 부모를 잘 모시고 받드는 것을 事父母孝順(사부모효순)이라고 말하고, 형제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우애가 깊은 것을 兄弟友愛(형제우애)라고 말하는데, 이 모토가 우리의 전통적 윤리관이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의 열매를 맺었던 전쟁시대의 영웅이었다. 전쟁은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를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가는 특수한 시간적 공간적 의미를 가진다. 전장터에 나서면 누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아무도 몰랐다. 중세의 흑사병 전염병이 휩쓸 때처럼 말이다. 한편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죽음은 부활의 의미를 새기게 만든다. 재회와 부활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온다. 견우와 직녀의 재회의 만남이 부활과 미륵 신앙으로 직결되는 이유가 죽음과 삶의 동전의 양면 야누스적인 성격에서 나온다. 재회의 기쁨은 실재한다. 영국여왕의 연설[4]이 말해주듯, 재회의 믿음이 있기에 삶의 의미를 찾으며 따라서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삶의 투쟁과 삶의 희망이 솟아난다.

因心孝友    

허흥식은 21행 마지막  이 글자를”()의 글자로 판독하였는데, 유희해를 비롯한 다수의 판독자는() 글자로 판독하였다. ()글자는 산등성이 산마루의 山岡(산강)을 뜻하는 글자이다. 반면 (), 没有, 없다는 뜻의 글자이다. 

()은 고대에는 그물 어망(魚網)을 뜻하는”자와 같은 뜻으로 쓰였고, ()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허흥식의 판독을 따라서 () 글자로 판독하고, 그러면 우리들이 흔히 글의 마지막에 축복을 기원하는 마무리 표현으로써망극호천이나만수무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흔함을 볼 때 이런 罔極(망극)의 뜻이 여기에 적절한 표현으로 추측할 수 있다. 罔極(망극)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사기 태사공자서에受命于穆 澤流罔極”- 황제의 은택(恩澤)은 끝없이-罔極 흐르고 있다는 표현이 있고, 한서 동중서전의朕獲承至尊休德 傳之亡窮 而施之罔極의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에 대한 안사고 주는罔亦無也 盡也으로써 망극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망극이란 말은 자식이 부모에 대한 끝없는 애사곡 父母(부모) 無窮哀思(무궁애사)를 표현하는 말이다.  송나라 왕우칭의 묘갈명에豈惜一言 不慰罔極之心乎이 표현이 있다. 한편 망극은 옳지 않다는 不正(부정)의 뜻도 있는데 이 사례는 가의의 조굴원부(吊屈原賦)遭世罔極兮 乃殞厥身”-굴원은 무도한 세상 부정한 세상을 만나 끝내 스스로 몸을 던져 운명했으니- 표현이 있다. 

망친에 대한 애도의 표현을 담은 시경 蓼莪(료아)편에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父兮生我 母兮鞠我欲報之德 昊天罔極.” ()은 키워주신 양육(養育)을 뜻한다. 이 구절의 의미는, ‘아버지 날 낳아주시고 어머니 날 길러 주셨네.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도리가 저 높푸른 하늘에 끝없이 넘쳐 흐르리.’ 

또 망극(罔極)의 뜻이 이와 같으므로 因心孝友   “의 결자부분은, 송사 악지(樂志)에 나오는孝思罔極 丕佑無疆의 구절의 의미대로, “罔極丕佑으로 메꾸고 볼 수 있다.  

여기의 孝思(효사)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한없다는 효경부모, 효친지사(孝親之思)를 뜻하는 말이고, 丕佑비우는 크게 도와 주소서의 뜻이다. 그러므로 罔極丕佑(망극비우)저 끝없는 하늘처럼 영원토록 후손들을 보살펴 주소서.’

하지만 유희애의 판독대로, “因心孝友   “의 결자부분의 으로 글자 판독은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金甌甌 永保)鴻名

 

문무왕이 태종무열왕의 왕위를 물려받고 위대한 영웅이 된 이유가 바로 因心孝友에 있다고 비문 찬자는 결론을 짓고 있다. 영웅적 인물인 문무대왕을 후손 만대가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자자손손 유전되어-流傳下去, 문무대왕의 큰 이름이 자손만대에까지, 높은 산의 바위처럼, 남산위의 소나무처럼, 영원히 알려지리라-永不磨滅, 이렇게 선언하고 또 그것을 부탁하는 문장으로써 결자부분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因心(인심)親善仁愛之心(친선인애지심)의 뜻 즉 仁愛(인애)와 같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씨를 뜻하고, 孝友(효우)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다는 뜻 즉 부모를 잘 모시고 받드는 것과 형제 사이에 서로 우애가 깊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유희애의 판독대로 因心孝友   이 보다 적절한 판독으로 보인다. 

은 풍수지리학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 지맥의 ()를 뜻한다. 물길을 찾을 때 용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백두대간()에 수많은 지맥이 분파되는데 수많은 산등성이에서 평지로 내려오는 물길에 支龍(지룡)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산맥의 지파의 의미는 인간사회에서의 의미로는 자손이 번창해서 성경의 아브라함의 축복대로 지구의 끝까지 자손이 뻗어나가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많은 가지가 뻗어나가서 영웅적 인물 문무왕을 모든 세상이 알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 문장으로 이해된다.
 

통일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영웅적 인물 문무왕의 이름이 무궁토록 전해진다는 것은 국가가 존속되어야 하는 조건을 담보한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국가가 계속 안정되고 계속 번창해 나가기를 기원하는 말인 金甌라는 단어를 생각해 낼 수 있다. 

()는 작은 컵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金甌(금구)金屬酒器 뜻하는 단어이고 또 비유적인 의미로는 국토, 國土完整(국토안정)의 뜻이 있는 단어이다. 남사 朱異(주이)전에 양무제가 한 말 我國家猶若金甌 無一傷缺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여기의 금구는 국토가 견고 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금강석이 나오는 높고 깊은 산처럼 국가가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믿음을 전하고 있는 말이다. 甌甌永固(구구영고)는 컵이 줄줄이 늘어선 모양처럼 영원하다는 뜻이다. 묘지 속에 금구를 넣어둔 것은 구구영고의 믿음과 소망의 뜻이 들어 있다.

뽀족이 솟은 탑처럼 높은 산을 ()이라고 말한다.  저 하늘높이 우뚝 솟은 바윗돌처럼 영원하여라의 뜻을 지닌 표현이 담겼다고 새긴다면 /()玉葉/(甌甌)의 글자 표현을 쓸 수 있다.

 

비문 20행 번역 정리

이상과 같이 비문 20행의 구절 표현 내용을 살펴본 바, 20행의 구절은 4자 띄어쓰기 구조로 비문을 재정리하고 이 행의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嚴命凝眞 貴道賤身 欽味釋縛 葬以積薪 (薪盡火傳) 穀神不死 靈光不滅[5] 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아버지의 엄한 분부-엄명을 진실로 이루었네.

도를 중하게 여기고,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 뜻을 존경하고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며 불을 태워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루었네

나무는 타고 나서 재가 되어도 불은 다시 타오르듯이 인간의 정신은 자자손손 면면히 이어간다네.

신진화전처럼 곡신불사처럼 인간의 정신은 꺼지 않고 영원하다네.

목숨을 돌보지 않고 기꺼이 몸바쳐 충성을 다한 분골쇄신의 경진씨-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정말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네.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던 까닭이리라.

(저 높은 산의 우뚝 솟은 바위처럼 영원무궁토록 문무왕의 그 큰 이름이 자손만대까지 전해지소서!)

 

이 구절을 4자 띄어쓰기 구조로 끊어서 번역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命凝眞 아버지의 엄한 분부-엄명-유훈을 진실로 이루었도다
貴道賤身 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 가르침을 높게 받들어,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구나!
欽味釋() 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 뜻을 존경하고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며
葬以積薪 나뭇단을 쌓고 불을 태워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루었네
(薪盡火傳)
(穀神不死)
땔나무가 불타고 나서 그 형체가 사라진다 해도 불은 다른 나무에 옮겨 붙어 불씨를 계속 이어가듯이, 사람의 정신과 전통은 다음 세대에게 영원히 전해진다. 씨앗은 다시 되살아나니 영원하다네
(靈光不) (비록 몸은 사라진다고 해도) 신비스럽게 빛나는 정신과 마음은 꺼지지 않고 대대손손 영원히 이어지리라!
고귀한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뛰어난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으리라!
粉骨鯨津 목숨을 돌보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몸바쳐 헌신하고 충성을 다한 분골쇄신의 경진씨(태종무열왕 김춘추)
嗣王允恭 그 선왕 경진씨(태종무열왕)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정말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도다!
因心孝友 그 까닭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기 때문이리라
(金甌甌 (金玉葉甌甌 永保)鴻名 與天長兮地久 사랑과 형제애는 황금처럼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닳지 않고 단단하니, 자손만대까지, 문무대왕 그 큰 이름 영원히 빛나리라!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와 한없이 오래된 지구와 같이!

 

 

비문의 명 부분은 원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餘下拜之碣迺爲銘曰 o o  o

▨▨侍星精▨▨▨▨▨▨▨▨▨▨▨▨▨▨▨▨▨

▨▨▨域千枝延照三山表色盛德遙傳

   ▨▨道德像棲梧▨▨▨▨▨▨▨▨▨▨▨▨▨▨

▨▨▨▨允武允文多才多藝憂入呑蛭尊

   ▨▨九伐親命三軍▨▨▨▨▨▨▨▨▨▨▨▨▨▨▨▨ 威恩赫奕茫茫沮穢聿來充役蠢
   ▨▨欽風丹甑屢出黃鎭空▨▨▨▨▨▨▨▨▨▨▨ ▨雄赤烏呈灾黃熊表崇俄隨風燭忽
   ▨▨命凝眞貴道賤身欽味釋葬以積薪▨▨▨▨▨▨ ▨滅粉骨鯨津嗣王允恭因心孝友
   鴻名與天長兮地久   o o o oo o o o o o o o o

위 명 부분을 4자 띄어쓰기로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星精▨▨ ▨▨▨▨ ▨▨▨▨ ▨▨▨▨ ▨▨▨▨ ▨▨▨ 千枝延照 三山表色 盛德遙傳
   ▨ ▨道德像 棲梧▨▨ ▨▨▨▨ ▨▨▨▨ ▨▨▨▨ ▨▨▨▨ 允武允文 多才多藝 憂入呑蛭
    ▨▨九伐 親命三軍 ▨▨▨▨ ▨▨▨▨ ▨▨▨▨ ▨▨▨▨ 威恩赫奕 茫茫沮穢 聿來充役
    ▨▨欽風 丹甑屢出 鎭空 ▨▨▨▨ ▨▨▨▨ ▨▨▨ 呈灾 黃熊表 俄隨風燭
   命凝眞 貴道賤身 欽味釋葬以積薪 ▨▨▨▨ ▨▨▨ 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鴻名 與天長兮地久  ooo o o o o o o o o o

 

위의 4자 띄어쓰기를 결자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星精                               千枝延照 三山表色 盛德遙傳

 道德 棲梧  
            
允武允文 多才多藝 憂入呑蛭

      九伐 親命三軍                        威恩赫奕 茫茫沮穢 聿來充役

      欽風 丹甑屢出 鎭空
      
    赤鳥呈灾 黃熊表 俄隨風燭

     命凝眞 貴道賤身 欽味釋 
葬以積薪          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 □□鴻名 與天長兮地久



[1] 이백의 명당부에 欽明흠명이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한글 주해를 참조하라,  欽明(흠명): 공경하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살핀다.  [] 《상서요전》에 “공경한 마음으로 살피고 지혜와 덕을 가졌다.”라고 했는데, 공안국전에 “‘흠’은 공경한다는 뜻이다.”라고 했고, 정현이 말하길, “공경하고 아끼는 것을 ‘흠’이라고 하고, 사방을 비추어 살피는 것을 ‘명’이라고 한다.”라고 했다.(書⋅堯典: 欽明文思.孔安國傳: , 敬也.鄭玄云: 敬事節用謂之欽, 照臨四方謂之明.)”, 예추이화, “李白 譯註” (서울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문학박사 학위논문), (2018), 102.

[2] 굴원의 초사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문학과 역사와 우주천체물리학의 결합적 측면을 생각해 보라.  또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Big History” 프로젝트를 생각해 보라.

[3] 三國史記 卷第七 新羅本紀 第七 文武王下十一年.

[4] “We will be with our friends again. We will be with our families again. We will meet again.” 2020년 코로나 전염병 사태를 맞이하여 극복의 의지와 희망을 피력한 연설문 중.

[5] 薪盡火傳 靈光不滅, 땔나무의 형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불은 다른 나무에 옮겨 붙어 불씨를 계속 이어가 꺼지지 않고 영원히 전해지듯이, 비록 몸은 사라진다고 해도, 신비스럽게 빛나는 정신과 마음은 꺼지지 않고 대대손손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