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1449

『역사 혁명』 책 주요 요약 『역사 혁명』 책 주요 요약 『역사 혁명: 문무대왕 유언 비밀 해제: 삼국사기는 이렇게 조작됐다』 이 책에서 밝혀내는 위 두 가지에 대한 진실은 고려시대 김부식 일당이 삼국사기를 쓰면서 역사 조작을 범했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로 쓰여지게 된다. 문무왕릉비 비문 내용에 대한 정확한 번역과 이해를 통하여 삼국사기가 기술하고 있는 부분과의 차이를 들추어내고 그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 삼국사기의 문무왕 유조문이 당태종의 유조문을 도용하였다는 조작과 표절의 범죄 행위라는 사실을 밝혀내면 그것은 삼국사기의 역사 조작의 범죄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증거 스모킹건 smoking gun가 된다. 삼국사기의 문무왕 기사에서 문무대왕의 유조라고 소개한 유조문 전문의 전체 글자수는 350자이다. ① 이 중.. 2022. 5. 24.
비문 뒷면 20행- 비문 뒷면 20행 命凝眞貴道賤身欽味釋 葬以積薪 滅粉骨鯨津嗣王允恭因心孝友冈」 국편위는 20행을 다음과 번역했다: …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 도(道)는 귀하게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 경진(鯨津)에 뼈가루를 날리셨네. 대를 이은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효성과 우애가 … 이러한 국편위의 잘못된 번역 해석에 대해서 나는 아래에서 자세한 설명으로 국편위 해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命凝眞 凝眞 액체나 기체 같은 것이 엉기고, 엉겨 붙어 고체(固體)로 되다의 뜻 응고(凝固)되다, 응결(凝結)되다라는 뜻의 낱말이다. 이 엉겨 붙다의 뜻을 가진 凝(응)자는 명령을 엄정 바르게 하다-使教令嚴整는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역경 화풍정에 “象.. 2022. 5. 24.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5행-제19행 5행 □□□□□□□□□□□□□□□□□燒葬卽以其月十日大 燒葬 화소장 燒葬(소장)은 불탈 燒소, 연소하다의 뜻이니, 火葬 화장으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 력도원의 수경주水經注에 “有一道人命過燒葬 燒之數千束樵 故坐火中”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燒葬(소장)은 평소 고인이 쓰던 물건을 불태우는 것-焚燒送葬物(분소송장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화장식 장례는 순임금, 도공의 신 범려와 서시가 그러했듯이 서주의 도교적 종교 장례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기원전 21세기 이전의 오랜 역사에 걸친 장례식이었다. 당연히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례식 방법이다. 삼국사기에서 문무왕 유언을 전하면서 “依西國之式 以火燒葬”이라고 기술했는데, 이에 대한 국편위는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라고 번.. 2022. 5. 24.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해석 II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해석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해석 1행 ▨▨▨▨▨▨▨▨▨▨▨▨▨▨▨▨▨▨丸山有紀功之將以」 “▨▨▨丸山有紀功之將以”은 ‘높은 산에 공적 기념비를 새길만한 큰 무공을 남긴 장군’라는 뜻이다. 명산대천에 공적비를 새기는 의미에 대해서 진시황제의 순수비 그리고 북한산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의 내용을 참조하라. 丸山有紀功之將 丸山(환산)은 험하고 높은 산이라는 뜻이고, 丘山(구산)과 같은 말이다. “丸山阻順”(환산조순)의 구절이 당고종 건릉비 술성기에 나온다. 丸山有紀功之將(환산유기공지장)은 환산에다 공적을 기록할 정도의 높은 공을 쌓은 사람 그 장군 장수 將(장)이라는 뜻이다.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공적을 세워 놓았던 진시황제의 순수비, 진흥왕 순수비 같은 성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산.. 2022. 5. 24.
인류의 지식 체계과 전승의 문제 인류의 지식 체계과 전승의 문제[1]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해석 1796년(정조 20년) 경주에서 문무왕릉비 비문 파편이 발견되었다. 문무왕릉비는 682년에 건립되었는데 그 이후 최근의 바미안 석굴이나 무측천 몰자비처럼 비문이 테러당하고 사라졌다. 그후 약 1천1백년이 지난 먼 훗날 기적과도 같이 다시 역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무왕릉비 파편이 발견된 후 추사 김정희가 1817년에 경주를 직접 답사하고 그 때 천왕사에서 문무왕릉 비문 하단 부분을 직접 수습했다고 밝혔다. 그 후 김정희가 비문의 탁본을 중국에 전해 유희애(劉喜海 1794-1852) 유희애가 수집 보관하다 1881년 발간된 “해동금석원” 책에 게재되었다. 이 東武劉氏著錄 “海東金石苑”이 일본의 와세다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2022. 5. 24.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해석 표 요약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해석 표 요약 1행 丸山有紀功之將 높은 산을 쌓고도 남을 만큼의 큰 공을 세운 장수, 以 - -以(功於神佑國統觀之分定而享不訾之譽) (국가를 지켜내고 나라를 통일한 神佑國統신우국통의 헤아릴 수 없이 높은 그의 공적은 분명히 정해서 마땅히 후세들에게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2행 □□□直- (長驅進)直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九合一匡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나라를 통일했다. 東征西□- 東征西(伐)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3행 - (歲次辛巳) (신사년 서기681년) 宮前 寢 병영 막사에서 국왕이 갑자기 서거하셨다. 時年五十六 이 때 향년 56세이었다. 4행 □□□□□□□□ (昔爲萬乘君 今爲南山土) 어제까지 만기철마를 달리던 .. 2022. 5. 24.
문무왕릉비 비문 국편위의 번역 오류 지적 표 문무왕릉비 비문 국편위의 번역 오류 지적 표 행 비문원문 국편위 번역 국편위 번역 오류 지적 비문 뒷 면 1 ▨▨▨▨▨丸山有紀功之將以」 환산(丸山)에 공(功)을 기(紀)한 장수가 있어 … 국편위는 환산의 의미를 설명해내지 못했다. 丸山(환산)은 ‘높은 산’의 뜻이고, 높은 산에 공적비를 새길만큼 큰 업적을 남긴 장군 2 直九合一匡東征西」 곧바로9주를 일광(一匡)하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 一匡九合은 새로이 나라를 세웠다는 건립패업建立霸業의 뜻이다 3 ▨宮前寢時年五十六」 궁 앞채에서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는 56세였다.… 五十六」歲 前寢(전침)은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다는 의미의 正寢(정침), 壽終正寢(수종정침)이 아니라, 의외의 사고사로 서거했다는 의미이다. 4 牧哥其上狐兔穴其傍」 땔나무군이나 목동.. 2022. 5. 24.
문무왕릉비 비문 판독문-유희애의 판독문 문무왕릉비 비문 판독문-유희애의 판독문 기초 1. 문무왕릉비 비문 판독 第一石) 비문파편 제1석 國新羅文武王陵之碑ooo及飱國學少卿臣金 通三後兵殊扌□□□配天統物畫野經圻積德 派鯨津氏映三山之闕東拒開梧之境南鄰□桂之 間盡善其能名實兩濟德位兼隆地跨八夤勲超三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馬 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 SHAPE \* MERGEFORMAT 大王思術深長風姿英拔量同江海威若雷霆□地 o?□之德內平外成光大之風邇安遠肅□功盛 o挹宀舍謙乃聖哲之奇容恩以撫人寬以御物o o□□□峯而疏幹契半千而涎命居得一以 o o o 恬□輔質情源湛湛呑納□□襟oooo oooo之訓姬室拜橋梓之oooo 비문 파편 제2석 奉o 敎撰 匡時濟難應神 靈命 接黃龍駕朱蒙 承白武仰o 巍蕩蕩不可得而稱者 我新o 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o 以對玉欄始蔭.. 2022. 5. 24.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표 정리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표 정리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추홍희 번역 丸山有紀功之將 以(功於神佑國統 觀之分定而 享不訾之譽) 높은 산에 기념비를 새길만큼 큰 무공 공훈을 남긴 장군 (강토를 지켜내고 전국을 통일한 神佑國統신우국통의 헤아릴 수 없이 높은 문무왕의 큰 공적을 분명히 적어서 마땅히 후세들에게 전한다) (長驅進)直 九合一匡 東征西(伐)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분열된 국가를 통일했다.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歲次辛巳) (營)宮前寢 時年五十六 신사년 서기681년 병영 막사에서 문무대왕이 갑자기 서거하셨다. 이 때 향년 56세이었다. (童)牧哥其上 狐兔穴其傍. [1] 목동의 애가가 그 위에 울려 퍼지니 여우와 토끼도 슬퍼.. 2022. 5. 24.
들어가기 서문 들어가기 서문 왜 한국의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하는가?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지적 토대 그 기반 자체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학계 내부에선 아직까지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Why? 왜 그럴까? 대체로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속도가 느리다. Why? 오래 전에 정립된 자기 자신들의 이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기존의 이론과 모델과 시각으로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일어난다고 해도 자기들의 이론/모델/시각을 수정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 그 이유는 학자들이 적용하고 있는 이론과 모델은 도구(tools)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도반공 목수들이 쓰는 콤파스나 잣대처럼 자신들이 쓰는데 평생 익숙해진 도구와 연장을 결코.. 2022. 5. 24.
이 책 주요 내용 요약 책 주요 내용 요약 1. 국사편찬위원회의 문무왕릉비 비문 번역에 대해 통렬하게 정면 비판하고 새롭고 올바른 해석 제시 문무왕릉비는 682년에 건립되었는데, 1796년 경주에서 문무왕릉비 비문 파편이 발견되기 전까지 역사상 실종되었다. 문무왕릉비 파편이 발견된지 약 220년 후 그리고 문무왕릉비가 건립된지 1338년이 지난 후인 2020년 오늘에서야 저자의 “문무대왕릉비 비문 연구” 책으로 문무왕릉비 비문 내용에 대한 정확한 번역과 해석이 밝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잘못된 번역과 해석이 게재된 국사 교과서의 내용 서술은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저자는 문무왕릉비 비문의 내용을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리하여 국사편찬위원회가 잘못 번역하고 잘못 해석한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지적하고 통렬하게 .. 2022. 5. 24.
역사 혁명: 문무대왕 유언 비밀 해제:삼국사기는 이렇게 조작됐다 역사 혁명: 문무대왕 유언 비밀 해제: 삼국사기는 이렇게 조작됐다 차례 ...................................................................................................... 편 장 절 조 항 내용 쪽 0. 일러두기 14 책을 발간하면서 18 삼국사기 문무왕 유조문의 당태종 유조문 표절 예시 I. 들어가기 34 1. 이 책의 주요 내용 요약 34 (1) 삼국사기 문무왕의 유조문은 당태종 유조문을 도용하고 표절한 것 (2) 심각하고 중대한 도용과 표절의 범죄행위가 미치는 영향과 범위 (3) 왜 여지껏 삼국사기 문무왕 유조문의 도용과 표절 사실이 밝혀지지 못했을까? a 식민지 사학과 주체 상실 -식민지 지배로 전락 & 역사 조작.. 2022. 1. 7.
학제간 통합 연구의 필요성 학제간 통합 연구의 필요성 최근 통섭(通攝, 統攝)이라는 말 또한 흔히 쓰인다. 폭넓은 상식과 깊은 전문성이라는 말은 사람의 두뇌의 제한성을 인정한다면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성격을 갖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전문가의 함정’이라는 개념에 수긍하기도 한다. 한편 자기 분야의 전문 영역에서 깊은 전문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폭넓은 상식과 다양한 추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사마천은 임소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通古今之變成一家之言”(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고금의 변화를 두루 살피고 통달하여서 자신만의 독특한 저술을 완성해 냈다는 뜻이다. 사마천 이후 2천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과거와 당대 뿐만아니라 동서양과 나라안과 국제적인 상황까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즉 東西.. 2022. 1. 7.
유신의 장편 서사시 哀江南賦(애강남부) 유신(庾信)의 哀江南賦(애강남부) 유신의 장편 서사시 哀江南賦(애강남부) 가운데 楚歌非取樂之方 魯酒無忘憂之用 追爲此賦 聊以記言 不無危苦之辭 惟以悲哀爲主-이 (초가비취락지방 로주무앙우지용 추위차부 료이기언 부무위고지사 유이비애위주) 구절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楚歌非取樂之方-초가는 초사가 그렇듯이 슬픈 구석 애절한 노래를 말하니 ‘슬픈 노래를 불러도 울적한 마음을 달랠 길 없고’라는 뜻이 되겠다. 초가는 사기 고조본기에 적혀있듯이 항우의 역발산혜기개세 7언의 해하가, 한무제의 추풍사 등이 대표적이다. 편편황조 4언의 황조가 그리고 조선 개창의 이성계가 부른 대풍가 또한 형초인의 노래 초가에 속한다. 유방 항우 한무제 이성계 등의 무사들의 전승곡 같은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형초인의 노래 초사이기에 .. 2022. 1. 7.
19. 책 내용 요약 『위대한 한국 문무왕릉비 연구-비문 앞면』 책 주요 내용 요약 ①문무대왕릉비 비문앞면3행의 “鯨津氏”(경진씨)는 문무왕의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鯨津氏”(경진씨)가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반만년 한국사의 최대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다. ②비문뒷면20행에 나오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경진씨”라는 뜻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국편위의 해석대로의 “경진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라는 뜻이 아니다. “鯨津”(경진)은 지금까지 다수가 해석하는대로의, ‘어느 바닷가 포구’를 말하는 지명이 아니다. “鯨津”(경진)은 문무대왕릉비 비문앞면3행의 “鯨津氏”(경진씨)를 지칭한다. “嗣王允恭”(사왕윤공)의 의미대로 문무대왕이 태종무열.. 2022. 1. 3.
18장 갈마무리 18. 마무리 한국인은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적혀 있는대로 “秺侯祭天之胤”(투후제천지윤)이다. 한국인의 선조 “투후”(秺侯)는 누구인가? 이 담대한 의문에 대한 역사적인 해답을 추구한 것이 이 책의 발간 의도이고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은 “秺侯”(투후)는 金日磾(김일제)가 아니라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이라는 역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고 이를 입증하는 역사적 기록들을 한글로 번역해석하고 논했다. 투후 상구성임을 가장 결정적으로 증거하는 반악의 서정부에 나타난 “秺侯之忠孝淳深”(투후 지충효순심) 단락을 번역 해석하고 논했다. 당나라 이선의 문선 주해에서는 투후를 ‘김일제’로 해석했지만 추홍희는 투후는 ‘상구성’을 지칭한다고 주장하며 이선의 주해를 자세하게 반박하였다. 또 당나라 이선은 “被髮左袵奮迅泥滓”(피.. 2022. 1. 3.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다- 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也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고, 쓸모없이 버려지고 만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도 이와 같으리라. 비록 평화의 시기라기는 해도 무사의 국가에 대한 충성과 담대한 용기가 알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늘의 별은 낮에는 해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온 하늘에 흩어져 총총히 빛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생각해 보라.”[1] “雖有嘉肴,弗食,不知其旨也;雖有至道,弗學,不知其善也。是故,學然後知不足,教然後知困。知不足,然後能自反也;知困,然後能自強也。故曰:教學相長也。《兌命》曰:「學學半」其此之謂乎?”, 《禮記·學記》, 禮記卷十八. 이 “.. 2022. 1. 3.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비문 앞면 □□□□國新羅文武王陵之碑□□□及飱國學少卿臣金□□奉□敎撰 □□□□□□□□□□□□通三後兵殊□□□匡□配天統物畫野經圻積德□□匡時濟難應神□□□□□靈命□□□ □□□□□□□□□□□□派鯨津氏映三山之闕東拒開梧之境南鄰□桂之□□接黃龍駕朱蒙□□□□承白武仰□□ □□□□□□□□□□□□閒盡善其能名實兩濟德位兼隆地跨八夤勲超三□□巍蕩蕩不可得而稱者□□□□我新□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焉□□ 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大王思術深長風姿英拔量同江海威若雷霆□地□□□方卷蹟停烽罷候萬里澄氛克勤開□ □□□□□□□□□□□□□□當簡□之德內平外成光大之風邇安遠肅□功盛□□□於將來㬪粹凝貞.. 2022. 1. 3.
15. 비문앞면제5행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 비문앞면제5행 秺侯 祭天之胤 투후 제천지윤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국편위 번역: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 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추홍희 해석: (우리 신라 사람들은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올라가서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 창성한 왕업을 화관지후에게 이어받게 하고, (불의 임금님-화후는 요임금인데, 제곡 고신씨는) 요임금님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방정하고 드높은 구조물들을 건설하며 사방으로 반듯하게 뻗어 나갔다. 조상으로부터 복록을.. 2022. 1. 3.
투후는 ?侯 (투후)인가? 14. 투후는 ?侯 (투후)인가? 1. ?侯 (투후/타후) 金日磾(금일제) 북송(宋) 때 977-984년 사이에 편찬된 사서 太平御覽(태평어람)의 관직(職官部) 시중(侍中) 편에서 金日磾(금일제)를 ?侯(투후)로 봉했다는 삼보고사의 기사를 인용해 놓고 있다: 《三輔故事》曰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삼보고사 왈 금일제 자 옹숙 봉 투후 유 충근지절 칠엽시중).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금일제의 본명 이외의 흔히 부른 이름 자는 옹숙이었고 ?侯(투후)의 봉작을 받았다. 그는 충성심이 깊고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근무한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고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피는 궁정내시라는 높은 관직을 지냈다. 시중(侍中) 시중(侍中)은 진(秦)나라 때부터 설치한 관직이름으로 왕의 곁을 따.. 2022. 1. 1.
투후 김일제 투후 김일제 1. 사기 년표 《史記•年表》 투후 김일제 秺侯 金日磾 사기 년표에 다음과 같은 김일제를 투후로 봉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後元元年 二月己巳,光祿大夫霍光為大將軍 博陸侯 都尉金日磾為車騎將軍 秺侯 太僕安陽侯上官舛為大將軍 후원원년 이월 기사일 광록대부 곽광을 대장군에 임명하고 박륙후에 봉하고, 도위김일제를 거기장군에 임명하고 투후에 봉하며, 태복 안양후 상관천을 대장군에 임명함. 2. 한서 서전하(敘傳下) “秺侯狄孥”(투후적노) 해석 한서 서전하(敘傳下)에 “秺侯狄孥 虔恭忠信 奕世載德 貤于子孫”(투후적노 건공충신 혁세재덕 이우자손): 투후는 적(敵)의 자식으로, 성실하고 정성을 다해 충성을 바치고 믿음을 지켰고. 누대에 걸쳐 대대로 덕을 쌓고 자손 대대로 이어졌다. 반고의 편제에 따라서 여기의 투.. 2022. 1. 1.
12장 무고지화 무고지화 무고(巫蠱)의 뜻 무고(巫蠱)는 무술사(巫師)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저주와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蠱(고)의 한자 고어체는 인데 글자모양처럼 벌레 먹은 것 즉 고독무술(蠱毒巫術, poisonous magic)을 의미한다. 증거를 날조하여 무고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헐뜯는 무고(巫蠱)는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서의 “吊 戾園 于 湖邑 諒遭世之巫蠱”(조려원어호읍 량조세지무고) 구절 표현처럼 BC 91년에 일어난 무고지화 여태자 반란 사건을 가르키기도 하다. 반악의 서정부 무고지화 구절 반악 서정부 구절 문선 이선 주 弔戾園於湖邑 諒遭世之巫蠱 探隱伏於難明 委讒賊之趙虜 加顯戮於儲貳 絕肌膚而不顧 作歸來之悲臺 徒望思其何補 〈漢書曰:戾太子據與江充有隙。會巫蠱事起,充遂至太子宮,掘得桐木人。太.. 2022. 1. 1.
한기(韓暨) 번역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한기(韓暨)(150년대-238년)번역 韓暨字公至,南陽堵陽人也。楚國先賢傳曰:暨,韓王信之後。祖術,河東太守。父純,南郡太守。同縣豪右陳茂,譖暨父兄,畿至大辟。暨陽不以為言,庸賃積資,陰結死士,遂追呼尋禽茂,以首祭父墓,由是顯名。舉孝廉,司空辟,皆不就。 한기(韓暨)는 자가 공지(公至)이고 남양군(南陽郡) 도양현 사람이다. 초국선현전에 이르길 한기는 한왕신(韓王信)의 후예이다. 할아버지 한술(韓術)은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었고, 아버지 한순(韓純)은 남군태수가 되었다. 같은 현의 큰 호족세력 진무(陳茂)가 한기의 부친과 형을 헐뜯고 중상 모함하여 이들은 사형을 당했다. 한기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금을 주고 고용하여 자금을 축적하여 죽음을 각오한 자객들을 남몰래 모아서, 마침내 진무를.. 2022. 1. 1.
10장 한왕신(韓王) 한신(韓信) 10장 한왕신(韓王) 한신(韓信) 太史公曰:韓信、盧綰非素積德累善之世,徼一時權變,以詐力成功,遭漢初定,故得列地,南面稱孤。內見疑彊大,外倚蠻貊以為援,是以日疏自危,事窮智困,卒赴匈奴,豈不哀哉! 陳豨,梁人,其少時數稱慕魏公子;及將軍守邊,招致賓客而下士,名聲過實。周昌疑之,疵瑕頗起,懼禍及身,邪人進說,遂陷無道。於戲悲夫!夫計之生孰成敗於人也深矣! 【索隱述贊】韓襄遺孽,始從漢中。剖符南面,徙邑北通。穨當歸國,龍雒有功。盧綰親愛,群臣莫同。舊燕是王,東胡計窮。 태사공 사마천 저자의 의견: “한왕(韓王) 한신(韓信)과 연왕(燕王) 노관(盧綰)은 본래 조상 대대로 공덕을 쌓고 베푼 집안이 아니며, 한때의 임기응변식 요행과 사술로 공을 이루고, 한(漢)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그 시기를 타서 개국공신이 되어 봉지를 받고 제후국의 왕조를 열었다.. 2022. 1. 1.
투후 상구성(商丘成)은 누구인가? 9장투후 상구성 전기 투후 상구성(商丘成)은 누구인가? 상구성(商丘成)은 성은 상구(商丘) 이름은 성(成)이다. “열선전”에 상구자서(商丘子胥)라는 선인이 소개되어 있고, 상구는 복성이다. 상나라의 수도가 상구였다. 투성이 위치한 성무현이 이 근처이고 오늘날 산동성 하택(荷澤)시 부근이다. 상구성의 출생 연도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대홍려와 어사대부를 지낸 관직 경력과 무고의 난 때 한고조 묘지기를 지낸 전천추(?-BC 77)의 기록을 통해서 대략 추측해 보면 BC 2세기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한서 기록에 따르면 한문제(BC 202-BC 157) 묘지기 첨사로 재직 중 설화를 입어 BC 88년 황제에 대한 불경죄의 판결이 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구성은 한무제 때 조선시대로 치면 예조.. 2021. 12. 31.
8장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번역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번역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반악潘岳(247-300)의 “西征賦”(서정부)에 투후에 관련된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구절이 등장한다.[1] 반악의 서정부에서의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의 의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여 당나라 이선의 주해가 틀렸음을 입증해 내고 “秺侯”(투후)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밝혀낸다. 문무왕릉비 비문에 등장하는 “秺侯”(투후)는 “金日磾”(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임을 밝혀내어 그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한다. 1. “西征賦”(서정부) 秺侯(투후) 부분 단락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懷夫蕭曹魏邴之相辛李衛霍之將銜使則蘇屬國震遠則張博.. 2021. 12. 30.
7장 “文武王陵碑”(문무왕릉비)의 “秺侯”(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이다 “文武王陵碑”(문무왕릉비)의 “秺侯”(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이다 글 차례 들어가기 1. 한서 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 2. 漢書(한서) 劉屈氂(유굴리)전에 기재된 투후 상구성 기록 3. 한서 양창(楊敞) 양운(楊惲) 열전의 “副帝隸 秺侯御”(부제례 투후어) 해석 4. 자치통감 “商丘成力戰獲張光 封成為秺侯”. 5. 반악의 “西征賦”(서정부)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과 투후 상구성,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1.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2. 서정부 단락 한글 번역 3. 서정부 거론 인물군 분류 4. 서정부 단락 단어 해석 5. 인물 분류 6.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 2021. 12. 30.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차례 1. 당나라 백제 흑치준 묘지명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2 흑치준(黑齒俊) 묘지명 추홍희 번역 3. 흑치준 묘지명 구절 국사편찬위원회 번역과 추홍희 번역 비교 4. 추홍희 번역 역주 5 흑치준 묘지명의 “투후”와 문무왕릉비 비문의 “투후”관계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흑치준 묘지명(大唐故右金吾衛守翊府中郞將上柱國黑齒府君墓誌銘幷序)에 나타난 “秺侯入仕 西戎孤□(臣/家)” (투후입사 서융고신)의 해석 1. 당나라 백제 흑치준 묘지명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소재 당나라 신룡(神龍)이년(706년)의 백제 출신 당나라 장군 흑치준(黑齒.. 2021. 12. 30.
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란 없다. 만약 있다면 인간 삶의 모든 면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가 있을 뿐이다. 여러 역사 중의 하나가 정치권력의 역사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의 역사로써 승격되어 있는 것이다.”[1] 이 인용된 내용의 견해가 서술된 칼 포퍼의 책에서 그가 많은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주듯이, 역사서는 실제 일어난 사건 대신 이념에 따라 구성하거나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건을 선택하여 쓰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왜 문학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포퍼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왜 권력의 역사만 .. 2021. 12. 30.
하버드대 로스쿨이 80년역사의 학교 심벌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 4. 敎(교)의 의미 인간 사회의 부족과 잘못은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여지껏 그토록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가? 한쪽에서는 많아서 넘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부족해서 굶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사람들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즉 문제해결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공정한 기회 마저 박탈당하고 상실된 사회로 변해 버렸지 않는가? 교육은 받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양자의 존재가 필수이기에 교육에는 큰 돈이 들어간다. 교육은 도로 건설처럼 돈과 시간이 크게 들어가는 국가의 기간 인프라이고 돈과 시간이 .. 2021.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