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간 통합 연구의 필요성
최근 통섭(通攝, 統攝)이라는 말 또한 흔히 쓰인다. 폭넓은 상식과 깊은 전문성이라는 말은 사람의 두뇌의 제한성을 인정한다면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성격을 갖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전문가의 함정’이라는 개념에 수긍하기도 한다. 한편 자기 분야의 전문 영역에서 깊은 전문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폭넓은 상식과 다양한 추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사마천은 임소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通古今之變成一家之言”(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고금의 변화를 두루 살피고 통달하여서 자신만의 독특한 저술을 완성해 냈다는 뜻이다. 사마천 이후 2천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과거와 당대 뿐만아니라 동서양과 나라안과 국제적인 상황까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즉 東西古今中外 (동서고금중외)까지 두루 탐구하여야 할 필요성이 크다. 통합적인 탐구의 자세와 종합적 성찰이 요구된다. 동서고금중외를 두루 살피는 자세는 다양성과 새로운 관점을 배양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소요유’의 가치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학제간 통합 연구 방법과 자세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이런 종합적 목표의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을 통합, 융합, 통섭 등의 단어로 흔히 표현한다. 휴얼 Whewell이 1840년 “consilience”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기존의 잘 알려진 concordance 합치coherence 일관성, convergence 통합이라는 단어 대신 잊혀진 단어인 “consilience”가 오히려 희귀하여 그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전 preservation’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제간 통합 연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1]
그동안 한국사를 조사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국의 문학 작품에까지 확장하거나 동원하려는 시도 또는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가져온 경우는 드물었다고 보여진다. 조사연구하고 그 결과를 얻는 데 있어서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그리고 진서와 당서와 자치통감 등의 기존 사서의 범위를 넘어서, 반악과 장재와 유신과 양형과 이백의 시부 등 즉 지금까지 중국의 문학 작품으로 분류된 자료들을 사료 가치로 의존하고 동원하고 해석함으로써 한국사가 그동안 풀지 못했던 핵심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었다. 저자의 책은 새로운 조사연구 방법론의 적용에 따른 결과이고 혜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란 없다. 있다면 인간 삶의 모든 면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가 있을 뿐이다. 여러 역사 중의 하나가 정치권력의 역사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의 역사라고 승격되어 있는 것이다.”[2] 이 인용된 견해를 피력한 칼 포퍼의 책에서 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듯이, 역사서는 실제 일어난 사건 대신 이념에 따라 구성하거나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건을 선택하여 쓰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왜 문학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포퍼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왜 권력의 역사만 선택되었고, 예를 들어,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 하나는 권력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문학은 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들은 권력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권력숭배는 사람들의 우상 숭배 중 가장 나쁜 것에 속하는 것으로 사람을 노예로 가두었던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권력 숭배는 두려움에서 나오는데 이 두려움의 감정이란 심한 증오나 반감과 같은 것이다. 정치권력이 ‘역사’의 핵심으로 만들어진 세번째 이유는 권력을 가진 정치가들이 숭배받기를 원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강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장군이나 독재자들의 검열감독을 받으며 역사를 썼다.”[4]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끔 강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쓰여진 역사를 진실된 역사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문학의 영역까지 확장할 필요성이 크다. 그 이유는 첫째 호머의 일리아드가 말해주듯 문학은 역사서 보다 앞서 등장했고, 두번째는 저변에 남아 있는 문학작품을 통해 사라진 역사 자료를 보충할 수 있고,[5] 무엇보다 역사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학도의 필독서로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의 책에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라고 말했다.”[6] 과거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 인생관 세계관 등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7] 이러한 역지사지의 자세를 통하지 않고서 단지 현재의 사고로 재단하고자 한다면 진실된 역사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과서의 역사서에서는 말해주지 않는 수많은 사실의 발견과 재해석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무수히 널려 있는 문학 작품 속을 헤매고 있으면 마치 금광을 캐는 듯한 수많은 보물들이 발견되곤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물론이거니와 굴원 장형 반악 유신 양형 이백 등의 문학 작품 속에서 한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실을 내가 발견할 수 있게 된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한국사 연구에서의 사료의 빈곤함의 문제를 타개하고 그 부족함을 어느 정도 메꿔줄 수 있는 자료의 영역이 중국의 고고학 문학과 예술 작품들이고 그 속을 헤집고 찾아 들어가면 한국사의 궁금증을 해갈하는데 단비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염황[8]의 자손으로서 중국문학은 중원만이 아니라 우리문학 속에 자리잡자고 있는 내연(외포가 아닌)으로 이해해야함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포함 관계로 수식화하면 요즈음의 “동북공정”의 반대 개념이 될 것 같다. 주나라 시대의 이전인 상나라 하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이족이 중원을 차지하고 중심국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학에 한정하여 한국사를 연구하려는 태도는 역사에 올바른 이해를 키우기 어려울 것이다. 문화적 소산인 언어 영역은 물론 문학 사학 철학의 융합의 관점을 키워야 하고 또 첨성대를 이해하려면 건축학이나 토목공학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고 또 첨성대 이해에 필수적인 주비산경 등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이나 천체물리학의 지식을 필요로 함을 나는 느꼈다.
혁명의 시기
“국화와 칼”의 저자 베네딕트는 일본인은 혁명을 할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파악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쫓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설명했듯이, 불란서 대혁명이 입증했듯이, 혁명은 대의를 쫓는 사람들이 성취해 낸다는 혁명 공식으로 본다면 베네딕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 베네딕트의 견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인은 착취와 부정의에 대해 반항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혁명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짜여진 그들 세계의 조직을 파괴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들은 혁명적인 사람이 아니다.”
(“The Japanese, viewing their world in this way, can stage revolts against exploitation and injustice without ever becoming revolutionists. They do not offer to tear the fabric of their world in pieces.” 베네딕트, “국화와 칼”, at 303.)
베네딕트의 견해는 요즈음의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의 요즈음의 정치세태를 보면 과연 혁명을 할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언제 변혁의 칼을 들고 나서는가?
그 때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에서 잘 표현했듯이, 세상이 무척 어지러울 때이다. "무릇 계도가 통하지 않으면, 진실과는 거리가 생기는 불순한 시대 상황이 오고, 이타심이 줄어들며, 서로 아비가 되려고 다투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하늘의 부름을 받은 제왕(帝王)이 분연히 일어서서,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자기 수양을 하게 만들어, 모든 백성의 불안을 잠재운다."
“夫純風不扇 則世道乖眞 ?*化不敷 則耶爲交競 是以帝王建号 莫不修己 以安百姓然”. 부순풍불선 즉세도괴 덕화부부 즉야위교경 시이제왕건호 막불수기 이안백성연. (*德化)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과 마운령 비문의 구절대로, 서로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려고 혈투를 벌이며 서로 다투는 지금 세상이지 않는가? 적폐가 쌓이고 쌓여 시민은 소외되고 배제되어 부의 양극화가 극심하고 과정도 결과도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정한 불행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불평등과 불공정과 거짓이 판치는 세계를 어떻게 평정해야 할 것인가?
진흥왕 순수비 비문 해석에 대해서는 저자의 책 “진흥왕 순수비 비문: 새로운 해석”을 참조하라.
명심보감과 성경-개인적 의미
내가 가진 것은 아버지께서 물려 주신 “명심보감”과 어머니께서 남겨 주신 “성경” 밖에 없다. 내가 가진 것은 이것 둘이 전부이다. 따라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 이상을 결코 넘지 못한다.
외람되게도 "요즈음 저는 표현력은 크게 모자라지만 예로부터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총망라하여 그 중 간략하게 고증하고, 시작과 결말을 종합 정리하여, 사람의 성공과 실패와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적 법칙을 고찰하고자 했습니다. 우주만물의 법칙과 사람의 운명에 있어서의 그 관계를 연구하고, 동서고금의 변화의 역사를 살펴서, 최고의 권위가 있는 책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9]
“역사란 위인전에 불과하다”는 카알라일의 견해가 있는데, 이는 유신의 “애강남부”에서의 “사생계활 영광규연”이라는 결론이 그것을 미리 시사해 주었다. 뉴튼과 아인슈타인의 우주천체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우주만물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우리들의 삶은 하늘이 돌고 도는 것같이 돌고 도는 것, 따라서 칼뱅의 구원예정설, 영국의 경험주의 필연주의의 사고체계처럼 우리 삶은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신은 말했다: “天道回旋 生民預焉 … 死生契闊 … 靈光巍然!”
밤하늘의 별자리가 돌고 돌듯이 우리들의 삶 또한 예정되어 있고 돌고 돌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비행기가 선회하듯이. 삶과 죽음이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이 안개속을 헤매일 때처럼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하늘에는 신비한 광채가 빛나고 선조들이 남긴 덕택으로 우리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또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위대한 성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처럼 분명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사과나무와 지혜의 열매
사과 그림 하나로 유럽의 화단을 놀랍게 변화시킨 세잔느, 사과나무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 빌헬름텔의 화살로 사과 맞추기 게임, 아담과 이브의 사과는 인류의 발전을 이룬 인간본성의 영광(靈光)이다. 그래서 영광은 영원히 빛난다. 靈光巋然! 무덤이 우뚝 선 모양을 띠고 있는데 그러하기에 영원하게 남아 있다. 뉴튼의 선언처럼, 거인의 어깨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시걸의 갈매기는 그렇게 높은 하늘을 난다. 비록 우리 부모님 세대가 세상의 부귀영화와 절연되었을지는 모르나 우리 후손들이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임은 영광靈光을 보듯 분명하다. 인간의 세대를 넘어 전하는 인간 정신의 오묘함은 그 영원의 불빛은 언제까지나 간직되고 끝까지 살아 남으리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그것이다. 나의 작업은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끝내 살아남아 부모의 유언을 따라 인류의 위대한 정신의 힘을 남겨준 사마천, 영광외연(靈光巍然)을 증거한 유신을 통해 인류의 영원불멸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 그 복원의 작업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과 국가의 흥망성쇠에 관한 법칙에 대해서 사마천이 이미 이천년 전에 잘 고찰해 두었고, 따라서 나는 사마천 이후 2천년의 시간적 간격을 메우고, 은상과 한무제와 사마천과 상구성과 반악과 유신과 당태종과 문무왕과 양나라와 신라와 첨성대의 관계를 규명해 내는 연구를 통해서, 가설과 그에 따른 입증을 세우는 과학적인 방법에 따라 사마천을 한국사 속에서 재발견하는 큰 작업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창자가 뒤틀린 적이 하루에 아홉 번도 넘고 근심스런 마음이 하루에도 수백번 일어나, 집에 홀로 있으면 정신이 몽롱하여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았으며, 집밖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당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려내려 베옷적삼을 흥건히 적시고 맙니다.”[10] [11]
새로운 창의적인 작품은 미칠 지경에 이르러야 나온다는 견해가 있다. 창작의 고통은 니이체의 삶과 그의 고백록에 잘 나와 있기도 한데, 고대 그리스의 관점을 찾아가 보면, 창조적 작업에는 마음이 미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소스가 두 가지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하나는 신적 개입이요, 다른 하나는 악마의 개입으로 나타난다고 구분했다. 그런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도착하여 첫 추수감사절의 예배를 올린 것은 신적인 개입과 악마적인 개입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종교적 박해가 없었다면 미국의 역사가 쓰여질 수 없었을 것임으로 악마의 쓰임새가 없지 않았다는 말이다. 80대 20법칙의 사회이고 또 10퍼센트 나쁜 사과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새 삶은 도전이라기보다 응전에 달려 있다. 새로움을 발견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앙드레 지드가 말하길 새로운 땅은 긴 항해 끝에 보인다고 했다. 멀고 먼 항해의 여정을 경험하지 않고서 어찌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을까? 칠흙같은 야밤을 건너는 공포와 두려움을 통과하지 않고서 어찌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의 연구의 결과물 이 책이 문학서라면 내 평생 위고와 세익스피어와 멜빌을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본 내게 시라노의 눈물과 크리스탱의 피가 베어 나오는 지를 물을 것이고, 역사서라면 토인비와 베버의 어깨 너머로 바다와 산과 강을 쳐다본 내게 몽테뉴와 파스칼이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며, 만약 법률서라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사모한 내게 번역이란 텍스트 언어 사람 사이의 연결불능의 간극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말한 카도조의 법과 문학 이론을 전할 것이며, 정치사회학이라면 뒤르켐과 베버의 사회적 사실을 통해 종교와 문화의 심층을 아울려 보게 만들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시대의 고난을 짊어지고 생사를 결정한 사람, 폐부에 간직한 진실의 말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글을 남긴 반악과 유신과 사마천과 양운의 글을 만분지일만큼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내일 죽는다고 해서 내게 무슨 여한이 남아 있을 수 있을텐가?
연구 성과 사회 공헌도
삼국사기 문무왕전에서 문무왕의 유조라고 소개한 전문의 전체 글자수는 350자인데, 이 가운데 238여 글자가 당태종 유조문을 그대로 베끼고 도용하고 차용하고 표절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연구 결과는 삼국사기 문무왕 유조문에 나오는 “自犯冒風霜 遂成痼疾 憂勞政敎 更結沉疴” 구절은 당태종 유조문의 “自櫛風沐雨 遂成弭沴 憂勞庶政 更起沈屙”을 표절하고, 삼국사기의 “運往名存 古今一揆 奄歸大夜 何有恨焉” 구절은 당태종유조문의 “道存物往 人理同歸 掩乎元泉 夫亦何恨矣” 구절을 표절했다는 것 등을 서술하는 단 몇 줄의 문장의 글로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세상에 밝히는 작업은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료의 기록이 한문이기 때문에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한글 번역이 필요했다. 당태종 유조는 한글로 번역된 적이 없는 황무지 같은 연구 환경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내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이중삼중의 고난한 작업이 수행되어야 했다. 자치통감은 물론 사기 한서 진서 당서를 읽고 살펴야 했다. 영어 번역의 사기를 읽었다. 문무왕릉의 비문 해석과 문무왕의 삼국통일의 역사 부분을 올바로 인식하는 영역은 2천년 아닌 반만년 한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혁명 같은 거대하고 지난한 작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문무왕의 역사 부분은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왜곡과 오류의 이중삼중의 철책으로 둘러쳐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물이 가져다 줄 사회 공헌도는 무엇일까?
연구 공헌도에 관해서는 트래시의 논문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 기준에 따라 설명해 볼 수 있다.[12] 트래시는 연구 논문의 요건을 8가지 요소로 열거하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연구의 공헌도 측정 기준을 나의 연구 결과물에 적용하여 그것을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식의 확충을 가져다 주는가? 추가적인 연구를 가져올 수 있는가? 기존의 잘못된 멍에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학문의 방법론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주는 혜택을 주는 연구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논쟁과 혼돈된 부분을 종결시킬 수 있고, 지금까지 묻혀져 있던 부분을 꺼내서 새롭게 조명하거나 깊은 의미를 찾아냈는가? 기존의 이론을 새로운 시각이나 맥락에서 재검토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최소한 이론적 기여도가 있다고 평가된다.
이 책의 연구 결과는 중대한 새로운 발견이 결부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심층 연구를 자극할 수 있는 공헌도를 안겨줄 수 있다. 이 책은 당태종 유조문 등을 처음으로 한글 번역을 하여 제공하고 또 이를 통해 삼국사기의 조작 가능성을 최초로 입증 증거로써 밝혀냄으로써 교육계 학계와 연구계의 추가적인 연구 시도를 크게 자극할 것이다. 문무왕릉 비문의 투후제천지윤에 대한 해석, 신라의 개국 시조와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의 관계, 애강남부와 문무왕릉 비문 내용의 관련성, 첨성대의 비밀을 밝히는 등 이러한 한국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지금까지 밝혀내지 못했던 사실에 대한 획기적 발견과 새로운 해석을 발표하고 있으므로 이는 한국사의 인식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는 발견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마치 새로운 금광을 발견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연구 영역을 열어 줄 수 있다. 관련 정부 부처 담당자, 학계 연구계 교육계는 물론 일반인의 참여를 크게 자극할 만한 충분한 해석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물이 실용적인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이 책은 그동안 오랜 역사 과정에서 쌓인 식민사학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므로 최소한 역사교과서의 편향성을 곧 해결해 내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문 원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높였다. 역사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시각의 대전환과 통찰력을 얻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 그동안 지배하였던 식민사학의 적폐를 청산하고 자주독립과 정치적 자아의식을 고취 함양시켜 나갈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은 탁상공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실천적 역할을 담당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사리분별력을 길러주고 인간의 도덕적 판단과 착한 본성을 발현하고 실행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도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언과 소통-향후3년내 어떻게 변화될까?
제언과 소통
이 책을 통해서 제기하는 도전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존의 통용되는 역사와 학설이 편견과 선입관을 넘지 못한 잘못이 있음에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을 업고 학교의 교과서나 대학의 연구서에 버젓이 역사로 설명되어 온 바 이런 배경에는 식민지사학, 문화제국주의, 후기식민주의, 신자유주의, post-truth시대[13] 등의 여러 분석적 도구로 설명되어지는 학벌 파벌 재벌 전관예우 정치계 교육계 문화계 출판계 경제계 종친 종단 이러한 수없이 열거될 정도의 문제들과 각계 각층의 조직적 이해관계가 겹겹이 얽히고 섞여 있다. 수십년 아니 수백년 동안 누적되어 적폐로 쌓이고 쌓여 있는 학교 교과서와 학계와 연구계의 기득권 구조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 스며들어 있는 복합적 관계를 고려하면 나의 책에서 제기하는 연구 의제들이 의미 있다고 해서 그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까다로운 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기 위해선 학교와 대학 그리고 각 연구 기관들 간의 협업이 필요하고 또 국회와 정치인,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와 문화재청 등 문화 관련 정부 부처, 언론사를 비롯한 모든 이해당사자는 물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요구된다. 224년 아니 1340년 아니 이천년 아니 오천년 그동안 묻히고 묻힌 근본적인 문제에 속하므로 이에 대한 단순한 연구와 분석만으로 잘못된 역사의 적폐를 청산하고 그 진실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렇게 가볍게 인식하지 않는다.[14] 하지만 인류의 영원한 유산에 대한 문제이고 지식의 전승과 전인류적 진실과 역사에 대한 가장 기초적이자 궁극적인 문제제기와 해결을 찾고 있는 역사중의 역사 핵심 중의 핵심적인 문제이므로 어떠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실을 회복할 것으로 믿지 않을 수 없다. 학문과 진실 추구의 문제이므로 진보냐 보수이냐의 이념이나 당파성을 떠나서 객관성과 학문성에 대한 기본적 기준을 확보하여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매우 두텁게 막혀 있을지 몰라도 헤게모니는 열려진 개념이기도 하다. 나는 위의 연구 의제와 과제를 처음 제기한 긴 여정을 시작한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역사학계는 물론이거니와 국문학 중문학 등 관련되고 인접한 다양한 학문 제분야를 통틀어 통합적으로 연구해야 할 의제와 과제가 무궁무진하고 지천으로 쌓이고 널려 있다. 따라서 이 모든 연구 과제들을 검토하고 관련 법령을 수정하고 그리하여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교과서나 대학 교재의 기술된 잘못을 내용을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학문과 진실 추구는 국가의 가장 큰 의무와 책임에 해당한다. 이는 국가 안보와 국가 경제의 문제이고 국민 건전성과 국민 소득 향상의 문제와 직결된다. 단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현재와 미래의 절실한 부분이다. 따라서 관련자나 관심있는 모든 개인과 단체들과 다같이 학문적 욕구 충족과 국민적 필요와 정치적 담론 형성을 위하여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적극 기대한다.
향후3년내 어떻게 변화될까?
담대한 예측
한국사의 혁명은 불가피하다. 이 책의 연구 결과에 따라 앞으로 한국사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에 대해서 거대하고 혁명적 변혁이 물결처럼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으로 예측하고 싶다. 개인적 분노가 공적 분노로 폭발하는 것도 순간적인 일이며, 민란도 혁명도 한 순간 우연한 계기로 폭발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 예측의 영역은 어느 누구도 쉽게 해낼 수 없다. 다만 내가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모든 혁명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혁명은 불가능하게 보인다.”[15]
단초와 요원의 불길
‘내 하나가 공고한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는가?’-하고 주저하거나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물 한 방울이 모여서 큰 바위를 뚫는다는 사실 순자의 권학편에 나오는 積土成山積水成淵(적토성산적수성연)의 교훈을 기억하라. 이런 측면에서 나는 로자 파크스의 역사적 측면을 잠깐 여담으로 여기에 적고 싶다. 한 사람의 용감한 행동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고 새역사를 쓸 수 있다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당시 흑백인종 격리 법률에 따라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위협을 거부하여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당시 인종격리법령에 따르면 파크스는 공공버스안의 백인만에게만 허용되는 자리에 앉아 있어서 백인이 타면 그 자리를 양보하고 흑인 해당 구석으로 밀려나야 했었다. 버스 운전사가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세요”라고 위협했지만 파크스는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결국 백인 경찰관 두 명이 버스에 올라와 강제로 밀어내자 파크스는 “왜 이렇게 우리를 밀쳐 내는 것이요?”라고 말하며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의 반응은, “그건 내가 알 바 없고 단지 법은 법이니까 그래서 당신을 체포합니다.”[16] 파크스는 곧바로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이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버스 안타기 운동을 촉발시키고 흑인 인권 향상 저항 운동이 촉진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파크스는 움추려 들기 보다는 자신의 삶의 결과를 사회와 국가의 공적 미래로 연결시키는 확신하에 담대한 행동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한 미천한 개인이 정의롭지 못한 부당한 법에 항의해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대항한 사건은 한갖 사소하고 무의미한 별건으로 치부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하나의 사건-event이건 account이건-의 행동은 인종분리 정책 폐지라는 역사상 큰 의미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는 이념의 발현에 따르지 않고 사소한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과 연결되어 하나의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다.[17] 인종차별의 무시무시한 법에 대해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운동의 일환으로 일으킨 한 사람의 순간적인 조용하지만 용감한 행동 하나가 후에 바위에 계란던지기 같았던 불의한 세상의 거대한 벽을 허무는 큰 계기로 작동한 것이다. 불평등한 인종 차별에 반대하여 저항 운동이 격렬하게 펼쳐졌던 미국의 50-60년대 정치적 흐름을 다시 상기해 보라. 평범했던 그녀의 삶 속에서 하나의 작은 행동이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로자 파크스가 2005년 사망하자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이자 흑인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의회 의사당에 안장되었는데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가장 작은 행동에 불과했던 한 순간의 움직임으로 로자 파크스는 미국이 변화하고 세계가 변화하는데 일조했다”고 추모사를 올렸다.[18]
역사의 혼과 역사 발전론
역사 정신의 발현[19]의 헤겔의 담대한 결론에 영국의 경험주의자나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제3의 길의 존재를 인정하는 칼 포퍼 같은 사람들은 헤겔 류의 역사 발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르크스 부류의 대륙의 공산주의자들이 헤겔의 역사 발전을 왜곡하여 선동하여서 문제이긴 하지만 독일사람들 같이 그 똑똑한 머리를 가진 우수한 민족의 사람들이 역사에 혼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역사의 혼이 있다고 그것을 믿는다고 해서 좌파공산주의자들의 역사공식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우려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방 민족들이 세계를 힘으로 휩쓴 중세 시대에 인류 문명의 발전이 오히려 쇠퇴하고 말았다는 것을 보면 그것에 분명히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한반도의 경우가 극명한 사례를 제공한다. 찬란한 동이족의 상나라 한반도의 진국과 찬란한 신라 시대가 무너진 후 중세 암흑기의 고려시대에 들어서 북방민족의 금나라와 원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한민족의 찬란한 황금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보라. 제곡씨의 목씨 세력 이씨 조선이 부활하면서 중흥의 시대를 열어 찬란한 세종대왕의 시대를 구가하다가 수양대군의 군사쿠데타로 인해서 민족중흥의 열매를 따먹기도 전에 고꾸라지더니 결국 임진왜란을 맞고 병자호란을 당해 청나라의 식민지로 다시 삼백년을 살면서 신음하다가 자주독립은 커녕 일제의 식민지로 굴러 떨어지면서 민족중흥의 도약의 찬스를 잃고 말았다는 역사의 신음의 돌아보라. 하지만 우리민족은 반드시 중흥하게 되어 있다. 역사의 혼이 있다면? 아니 그것과는 별개로 한민족은 반드시 부흥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개입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간 조건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를 쫓는 자들은 몽고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환향녀로 끌려가 호로들의 개밥이 되고 그 호로자식들이 된 신음의 역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북녘을 쫓는 자들이 그저 어느날 하늘에서 그냥 떨어져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중흥과 그것을 위한 국가의 멍든 병을 치유하는 방책 또한 분명히 나오지 않는가?
[1] Jacob, J., “Interdisciplinary trends in higher education”, Palgrave Communications (2015), https://www.nature.com/articles/palcomms20151.; Jones, C., "Interdisciplinary Approach - Advantages, Disadvantages, and the Future Benefits of Interdisciplinary Studies," ESSAI: Vol. 7, Article 26 (2009). http://dc.cod.edu/essai/vol7/iss1/26.; Nissani, M., “Ten Cheers for Interdisciplinarity: The Case for Interdisciplinary Knowledge and Research”, The Social Science Journal 34(2) (1997), 201-216.
[2]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제25장 “역사의 의미”, “They speak about a history of mankind, but what they mean, and what they have learned about in school, is the history of political power. There is no history of mankind, there are only many histories of all kinds of aspects of human life. And one of these is the history of political power. This is elevated into the history of the world.”
[3] “We must make abstractions, we must neglect, select.”
[4] “But why has just the history of power been selected, and not, for example, that of poetry? There are several reasons. One is that power affects us all, and poetry only a few. Another is that men are inclined to worship power. But there can be no doubt that the worship of power is one of the worst kinds of human idolatries, a relic of the time of the cage, of human servitude. The worship of power is born of fear, an emotion which is rightly despised. A third reason why power politics has been made the core of ' history ' is that those in power wanted to be worshipped and could enforce their wishes. Many historians wrote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generals and the dictators.”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 책은 2013년 프린스턴대학출판부에서 증보판이 나왔다. 책 257쪽, 제25장 “역사의 의미”, 쪽수 인용은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Complete: Volumes II” 런던 1945년 판본이다.
[5] “History is art because it studies people’s experiences, thinking, thoughts, ideas, and beliefs which are subjective in nature, deals with human nature and creativity, requires creative thinking and empathetic understanding of the past people’s thought. It communicates research findings in the form of (a) imaginative writing which involves creativity on the part of the historian and (b) story telling. The historian’s views, opinions and understanding are embedded in historical knowledge. History involves argument and interpretation and there are different ways of making arguments about the past. For these reasons, historical knowledge is very tentative, subject to revision and modification or a complete change. Because history is not repeatable, it is difficult to prove and validate one’s historical understanding. Since historical sources are fragmented, those data bits need to be tied and connected through imagination in order to fill in the gaps in history.”
[6]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Carr, E. H., “What is history?”, Penguin Books, London, 1990, 55쪽.
[7] “History is a subject which is framed extensively by language.” 언어는 문화적 소산이다. “Languages are human creations.”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특성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소쉬르 Saussure (1857-1913)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적인 약속 규칙으로 정의한다. 내가 말하는 언어를 남들이 알아듣게 하려면 문법이라는 사회적 약속과 규칙에 따라야 한다. 소쉬르는 언어를 기호들의 체계 system로써 파악했다. 법 또한 문화적 산물이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설명하는 해설서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Language is no longer regarded as peripheral to our grasp of the world we live in, but as central to it. Words are not mere vocal labels or communicational adjuncts superimposed upon an already given order of things. They are collective products of social interaction, essential instruments through which human beings constitute and articulate their world.”
다음의 월 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보자. 사람의 언어 사용은 사람들의 생각, 감정, 신념에 영향을 준다. http://www.wsj.com/articles/SB10001424052748703467304575383131592767868.
[8] 염제와 황제, 즉 중화민족의 최고의 선조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 개념은 오늘날에는 중국과 중국을 둘러싼 사방 주변 소국 소수민족간의 구분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국가를 형성한 한민족은 국가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중국 이민의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고, 그것을 부정하기에 앞서 동이족의 역사로서 그러므로 중원의 중심국가로써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이민자로서의 한민족은 염황의 자손이고 염황은 역사적 신화 myths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 historical past에 속한다.
[9] 사마천, 보임소경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略考其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紀”.
[10] 사마천, 보임소경서, “是以腸一日而九迴 居則忽忽若有所亡 出則不知其所往 每念斯恥 汗未嘗不發背沾衣也”.
[11] 사마천과 양운과 반악과 유신과 당태종과 문무왕과 추근과 황현과 죽음, 사기 열전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고찰한 것은 물론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 헨리 맥켄지의 소설 “The Man of Feeling”, 멜빌의 소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푸코의 감옥의 역사와 생체권력, 엘리 위젤의 증언 등 특히 죽음에 관한 수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이제는 마치 죽음의 전문가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유언과 신탁 업무를 주로 맡는 형평법 법원의 법관이나 변호사는 죽은 사람의 일을 다루는 일 즉 ‘죽음의 전문가’에 해당할 지 모른다. 나 또한 모멘토 모리 Memento mori의 뜻을 새겼다. 뒤돌아 보아라! 당신도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Look behind you! Remember that you are but a man! 따라서 만약 나의 연구 결과물에 있어서 어떤 거짓이 결부되었거나 또는 결정적으로 큰 오류가 있어서 세상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면 그것은 나의 부모님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어서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부끄러움으로 어찌 사마천과 반악과 유신과 문무왕의 혼을 대할 수가 있겠는가?
[12] Tracy, S., “Qualitative quality: eight ‘big-tent’ criteria for excellent qualitative research”, Qualitative inquiry, 16, (2010) at 837-851.
[13] Rand 연구소, “진실의 쇠퇴: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사실과 분석의 역할 감소에 대한 기초 연구” (요약본).
[14] 1796년 문무왕릉 비문의 파편이 당시 경주부윤 홍양호洪良浩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耳溪集 권16 참조, 문무왕릉 비는 서거 1주년인 682년 칠월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무왕릉 비문에서 신라의 개국 시조를 밝히고 있고 또 첨성대의 관련성 그리고 신라 이전의 상나라까지 거슬려 올라가는 한민족의 시원과 내력에 관한 기록이 확인된다.
[15] 영어 표현은, “In retrospect, all revolutions seem inevitable. Beforehand, all revolutions seem impossible.”
[16] “Why do you push us around? / and his answer: I don't know but / the law is the law and you / are under arrest.” 이 부분은 리타 도브의 시 “The Enactment” 법률의 한 문단의 일부를 번역 인용한다.
[17] 카오스 이론으로 꼭 끄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람시의 헤게모니 작동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헤게모니 이론은 꼭 닫혀진 구조만이 아니라 변화를 이끌어내는 열려진 구조로 작동될 수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지배계급이 대중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지배 질서를 지속 유지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준다. 헤게모니는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대중들의 동의와 순응을 통한 통제를 위해서 교묘하게 언어나 제도기관을 이용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화하거나 끊임없는 조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대중들은 불평등하고 억압을 받고 있는 기존의 지배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편 체제 내부가 취약한 곳에서 대중은 돌발적으로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 (식민지에서의 항거가 그 예) 무력과 억압적인 통치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은 교육과 문화적인 헤게모니 과정을 통해 지배 질서를 대중들이 암묵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소프트 전략을 취한다. 푸코가 밝힌 대로, 학교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적 기관이고 지배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사람들은 지배권력에 순응하지 하지 않으면 지배적 질서 체제에 편입될 기회가 박탈되고 만다. 예를 들어서 의사, 변호사, 기술사 등 전문직업군은 전문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으면 전문가로써의 직업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전문가로써 직업을 가지려는 젊은이들에게 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대학의 교수들이지, 전통적인 정치 권력 개념으로써 장관이나 의원들이 아니다. 학교 선생들은 미래 세대의 순응 구조를 길러내고 유지해가려는 지배권력에 봉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18] 뉴스기사에 인용된 오바마 대통령의 말, “In a single moment, with the simplest of gestures, she helped change America and change the world.” , <The New York Times> A Southall, 27/02/2013.
[19] “History is the process whereby the spirit discovers itself and its own concept.”, “Philosophy of History” 부분,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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