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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197

문무왕릉 비문 뒷면 20행 분골경진 해석 비문 뒷면 20행 命凝眞貴道賤身欽味釋 葬以積薪 滅粉骨鯨津嗣王允恭因心孝友冈」 국편위는 20행을 다음과 번역했다: …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 도(道)는 귀하게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 경진(鯨津)에 뼈가루를 날리셨네. 대를 이은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효성과 우애가 … 이러한 국편위의 잘못된 번역 해석에 대해서 나는 아래에서 자세한 설명으로 국편위 해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命凝眞 凝眞 액체나 기체 같은 것이 엉기고, 엉겨 붙어 고체(固體)로 되다의 뜻 응고(凝固)되다, 응결(凝結)되다라는 뜻의 낱말이다. 이 엉겨 붙다의 뜻을 가진 凝(응)자는 명령을 엄정 바르게 하다-使教令嚴整는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역경 화풍정에 “象.. 2021. 11. 13.
문무대왕릉비 비문뒷면 제11행-19행 해석 11행 □□□□□□□□□□□□□□而開沼髣髴濠梁延錦石以 開沼 《廣雅》에서 “沼 池也”라고 주해하고 있다. 연못 沼(소)는 안압지처럼 연못 池(지)을 말한다. 咸池함지 龍池용지 神池신지 靈沼영소와 같은 말이다. 손자병법에서 비유를 들고 있는 金城湯池(금성탕지)의 말처럼 누구도 뚫고 들어 올 수 없는 견고한 철벽 철통 방어벽의 성채를 말한다. 금성탕지의 성어 뜻에 대해서 한지 괴통전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邊地之城 必將嬰城固守 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 이에 대해 안사고는 “金以喻堅 湯喻沸熱不可近”라고 주해했다. 이와 같이 물이 펄펄 끓고 있는 탕처럼 沸水(비수)가 콸콸 흘러서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견고한 성채를 말한다. 인-자애롭다는 것은 아이의 때묻은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것이요, 의롭다하는 것은 맑.. 2021. 11. 13.
문무왕릉비 비문뒷면 5행-10행 번역 해석 5행 □□□□□□□□□□□□□□□□□燒葬卽以其月十日大 燒葬 화소장 燒葬소장은 불탈 燒소, 연소하다의 뜻이니, 火葬 화장으로 장례식을 치루는 것을 말한다. 력도원의 수경주水經注에 “有一道人命過燒葬 燒之數千束樵 故坐火中”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燒葬소장은 평소 고인이 쓰던 물건을 불태우는 것-焚燒送葬物 분소송장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화장식 장례는 순임금부터, 도공의 신 범려와 서시가 그러했듯이 서주의 도교적 종교 장례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기원전 21세기 이전의 오랜 역사에 걸친 장례식이었다. 당연히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례식 방법이다. 삼국사기에서 문무왕 유언을 전하면서 “依西國之式 以火燒葬”이라고 기술했는데, 이에 대한 국편위는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라고 번역하고.. 2021. 11. 12.
송원대에 나타난 九九消寒圖 구구소한도 형식 송원대에 나타난 九九消寒圖 구구소한도 형식 삼국사기의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吳王北山之墳 詎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之名 昔日萬機之英 終成一封之土의 구절의 문장 형식을 살펴보자. 이 구절 45자는 구구소한도 형식으로 분석된다. 九九消寒圖구구소한도(寫九, 數九)는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 시작되었던 문장 형식과 풍속이기에 당나라 시대의 문무왕의 유조문 형식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문무왕릉 비문에 쓰여졌을 만가시의 형식은 5자 5자 형식의 보허사의 문장 형태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유조문 45자 문장을 9자 9자 형식에 맞추어 띄어쓰기를 해 보면 다음과 같이 배열된다. 삼국사기 원문 구절 구구소한도 형식 배열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吳王北山之墳 詎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장재의 칠애시 문무왕릉비 비문에서의 만가시, 장재의 칠애시, 망국지음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산과 골짜기도 변하고 인간세상도 변한다-삼국사기의 문무왕 유조문과 칠애시 관련성 삼국사기에서 문무왕의 유조라고 소개한 구절인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吳王北山之墳 詎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之名 昔日萬機之英 終成一封之土 樵牧歌其上 狐兎穴其旁” 이 구절의 표현은 인생무상을 노래한 장재의 七哀詩칠애시를 참조한 표현인 것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다음의 칠애시의 구절을 보라. 北芒何壘壘 高陵有四五 借問誰家墳 皆雲漢世主 … 季世喪亂起 賊盜如豺虎 毀壤過一抔 便房啟幽戶 珠柙離玉體 珍寶見剽虜 … 蹊徑登童豎 狐兔窟其中 … 昔為萬乘君 今為丘中土 感彼雍門言 悽愴哀今古. 삼국사기의 유조문과 장재의 칠애시를 서로 비교해 보면 삼국사기 유조문의 昔日萬機..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1행-4행 원문 해석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원문 해석 1행 ▨▨▨▨▨▨▨▨▨▨▨▨▨▨▨▨▨▨丸山有紀功之將以」 “▨▨▨丸山有紀功之將以”은 ‘높은 산에 공적 기념비를 새길만한 큰 무공을 남긴 장군’라는 뜻이다. 명산대천에 공적비를 새기는 의미에 대해서 진시황제의 순수비 그리고 북한산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의 내용을 참조하라. 丸山有紀功之將 丸山(환산)은 험하고 높은 산이라는 뜻이고, 丘山(구산)과 같은 말이다. “丸山阻順”(환산조순)의 구절이 당고종 건릉비 술성기에 나온다. 丸山有紀功之將(환산유기공지장)은 환산에다 공적을 기록할 정도의 높은 공을 쌓은 사람 그 장군 장수 將(장)이라는 뜻이다.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공적을 세워 놓았던 진시황제의 순수비, 진흥왕 순수비 같은 성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산유기공은 丘山之功(구산지공).. 2021. 11. 12.
인류의 지식 체계과 전승의 문제 인류의 지식 체계과 전승의 문제[1] [1] 감포 앞바다 바위를 문무왕릉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가? “문무왕릉비”이라고 분명하게 쓰인 비문의 명문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무슨 저의로 역사에도 없는 감포 앞바다 바위를 두고서 혹세무민하며 문무왕해중릉으로 비정하고자 한단 말인가? 삼국사기에서 “羣臣以遺言 葬東海口大石上”이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라. 그러면 삼국사기에 기재된 내용은 믿고 문무왕릉의 비문 내용은 부정한단 말인가? 문무왕릉의 비문이 존재하는데 왜 그것을 부정한단 말인가? 그런 태도와 자세는 천번만번 부당하다. 그건 인류의 지식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망발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판결을 잘못하면 재심이라는 절차가 있다. 하물며 역사..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해석 표 요약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해석 표 요약 1행 丸山有紀功之將 높은 산을 쌓고도 남을 만큼의 큰 공을 세운 장수, 以 - -以(功於神佑國統觀之分定而享不訾之譽) (국가를 지켜내고 나라를 통일한 神佑國統신우국통의 헤아릴 수 없이 높은 그의 공적은 분명히 정해서 마땅히 후세들에게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2행 □□□直- (長驅進)直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九合一匡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나라를 통일했다. 東征西□- 東征西(伐)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3행 - (歲次辛巳) (신사년 서기681년) (至御女)宮前 寢 (황도12궁 중 6번째인) 어녀궁(御女宮)에 이르는 계절 7월 처서에 병영 막사에서 국왕이 갑자기 서거하셨다. 時年五十六 이 때 향년 56세이었..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국편위의 번역 오류 지적 표 문무왕릉비 비문 국편위의 번역 오류 지적 표 행 비문원문 국편위 번역 국편위 오류 지적 비문 뒷 면 1 ▨▨▨▨▨丸山有紀功之將以」 환산(丸山)에 공(功)을 기(紀)한 장수가 있어 … 국편위는 환산의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 丸山(환산)은 ‘높은 산’의 뜻이고, 높은 산에 공적비를 새길만큼 큰 업적을 남긴 장군 2 直九合一匡東征西」 곧바로9주를 일광(一匡)하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 一匡九合은 새로이 나라를 세웠다는 建立霸業 뜻이다 3 ▨宮前寢時年五十六」 궁 앞채에서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는 56세였다.… 五十六」歲 前寢(전침)은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다는 의미의 正寢(정침), 壽終正寢(수종정침)이 아니라, 의외의 사고사로 서거했다는 의미이다. 4 牧哥其上狐兔穴其傍」 땔나무군이나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 2021. 11. 12.
문무왕릉비문 국편위 번역과 추홍희 번역 비교 표 정리 문무왕릉비문 국편위 번역과 추홍희 번역 비교 표 정리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추홍희 번역 …환산(丸山)에 공(功)을 기(紀)한 장수가 있어 … 높은 산에 기념비를 새길만큼 큰 무공 공훈을 남긴 장군 以(功於神佑國統觀之分定而享不訾之譽) (강토를 지켜내고 전국을 통일한 神佑國統신우국통의 헤아릴 수 없이 높은 문무왕의 큰 공적을 분명히 적어서 마땅히 후세들에게 전한다) …곧바로9주를 일광(一匡)하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분열된 국가를 통일했다.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 궁 앞채에서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는 56세였다.… 신사년 서기681년 해가 御女宮어녀궁에 이르는 계절 7월 처서에 병영 막사에서 문무대왕이 .. 2021. 11. 1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표 정리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추홍희 번역 표 정리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추홍희 번역 丸山有紀功之將 以(功於神佑國統 觀之分定而 享不訾之譽) 높은 산에 기념비를 새길만큼 큰 무공 공훈을 남긴 장군 (강토를 지켜내고 전국을 통일한 神佑國統신우국통의 헤아릴 수 없이 높은 문무왕의 큰 공적을 분명히 적어서 마땅히 후세들에게 전한다) (長驅進)直 九合一匡 東征西(伐)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분열된 국가를 통일했다.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歲次辛巳) (營)宮前寢 時年五十六 신사년 서기681년 해가 御女宮(어녀궁)에 이르는 계절 7월 처서에 병영 막사에서 문무대왕이 서거하셨다. 이 때 향년 56세이었다. (童)牧哥其上 狐兔穴其傍. [1] 목동의 애가가.. 2021. 11. 12.
왜 한국의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하는가? 들어가기 서문 왜 한국의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하는가?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지적 토대 그 기반 자체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학계 내부에선 아직까지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Why? 왜 그럴까? 대체로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속도가 느리다. Why? 오래 전에 정립된 자기 자신들의 이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기존의 이론과 모델과 시각으로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일어난다고 해도 자기들의 이론/모델/시각을 수정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 그 이유는 학자들이 적용하고 있는 이론과 모델은 도구(tools)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도반공 목수들이 쓰는 콤파스나 잣대처럼 자신들이 쓰는데 평생 익숙해진 도구와 연장을 결코.. 2021. 11. 12.
책 주요 내용 요약 책 주요 내용 요약 1. 국사편찬위원회의 문무왕릉비 비문 번역에 대해 통렬하게 정면 비판하고 새롭고 올바른 해석 제시 문무왕릉비는 682년에 건립되었는데, 1796년 경주에서 문무왕릉비 비문 파편이 발견되기 전까지 역사상 실종되었다. 문무왕릉비 파편이 발견된지 약 220년 후 그리고 문무왕릉비가 건립된지 1338년이 지난 후인 2020년 오늘에서야 저자의 “문무대왕릉비 비문 연구” 책으로 문무왕릉비 비문 내용에 대한 정확한 번역과 해석이 밝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잘못된 번역과 해석이 게재된 국사 교과서의 내용 서술은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저자는 문무왕릉비 비문의 내용을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리하여 국사편찬위원회가 잘못 번역하고 잘못 해석한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지적하고 통렬하게 .. 2021. 11. 12.
문무대왕릉 비문 연구-제2권-비문후면-곡신불사 영광불멸 차례 ⚜⚜⚜ 문무대왕릉 비문 연구-제2권-비문후면- 곡신불사 영광불멸 추홍희 2020 저자 소개 추홍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졸업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로스쿨 졸업 (JD)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법학석사 졸업 (LLM) COL 사법연수원 수료 (GDLP)-호주 변호사 KATUSA, LG 투자증권, Clyde & Co 호주법무법인 오스틴하워드 변호사 세계법제연구원 이사(현) VKN 국회 방송 자문위원(현) “인수합병 M&A 업무 한국시장 도입에 관한 연구” “행복 국가를 정치하라” (“The Politics of Happiness”) 번역서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바틀비 스토리)” “누가 최후의 심판자인가? 미국과 독일의 충돌.. 2021. 11. 12.
18장 투후제천지윤 갈마무리 한국인은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적혀 있는대로 “秺侯祭天之胤”(투후제천지윤)이다. 한국인의 선조 “투후”(秺侯)는 누구인가? 이 담대한 의문에 대한 역사적인 해답을 추구한 것이 이 책의 발간 의도이고 그 주된 내용이다. 역사의 오리진(Origin) 스토리는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기가 미지의 힘든 영역으로 남아 있다. 로마제국의 흥망사는 잘 알려진 역사서이지만 그 로마 제국의 건설한 사람들의 원래 오리진 스토리는 누구도 정확하게 분석해내지 못했다. 아이네이드라는 서사시로 언급은 했지만 역사로 입증되지는 못했다. 왜 오리진 스토리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미스터리와 미완의 영역인가? 이 책은 “秺侯”(투후)는 “金日磾”(김일제)가 아니라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이라는 역사적 결론을 이끌어내고 이를 입증하는 역사.. 2021. 10. 27.
7. 문무왕릉비문의 투후는 상구성 (秺侯 商丘成) 7. 투후는 상구성이다 한서 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 투후 상구성 1. 투후 상구성 (秺侯 商丘成) 商丘成(상구성)이 秺侯(투후)에 봉해진 기사는 한서 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에 나타난다. 以大鴻臚擊衛太子 力戰 亡它意 侯 二千一百二十戶 대홍려 상구성은 반란을 일으킨 위태자 일당을 추격 역전분투하여 일망타도한 공로로 제후 작위를 수여받았고 제음현이 그 봉읍지로써 봉읍호수는 2천2백2십 호에 달한다. 시호성명 제후 봉작을 받게 된 구체적 공적 내용과 봉읍의 호수 봉작을 작위받은 시기 봉읍지 투후 상구성 (秺侯 商丘成) 대홍려 상구성은 반란을 일으킨 위태자 일당을 추격 역전분투하여 일망타도한 공로로 제후 작위를 수여받았고 제음현이 그 봉읍지로써 봉읍호수는 2천2백2십 호에 달한다. 정화 2년 (BC 91).. 2021. 10. 24.
12장 무고지화 무고지화 무고(巫蠱)의 뜻 무고(巫蠱)는 무술사(巫師)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저주와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蠱(고)의 한자 고어체는 인데 글자모양처럼 벌레 먹은 것 즉 고독무술(蠱毒巫術, poisonous magic)을 의미한다. 증거를 날조하여 무고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헐뜯는 무고(巫蠱)는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서의 “吊 戾園 于 湖邑 諒遭世之巫蠱”(조려원어호읍 량조세지무고) 구절 표현처럼 BC 91년에 일어난 무고지화 여태자 반란 사건을 가르키기도 하다. 반악의 서정부 무고지화 구절 반악 서정부 구절 문선 이선 주 弔戾園於湖邑 諒遭世之巫蠱 探隱伏於難明 委讒賊之趙虜 加顯戮於儲貳 絕肌膚而不顧 作歸來之悲臺 徒望思其何補 〈漢書曰:戾太子據與江充有隙。會巫蠱事起,充遂至太子宮,掘得桐木人。太.. 2021. 10. 24.
8.1.2. 서정부 단락 단어 해석 서정부 단락 단어 해석 반악의 서정부 원문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단어 해석 懷夫 蕭 曹 魏 邴 之相 辛 李 衛 霍 之將 銜使 則 蘇 屬國 震遠 則 張 博望 教敷而彝倫敘 兵舉而皇威暢 臨危而智勇奮 投命而高節亮 暨乎 秺侯 之忠孝淳深 陸賈 之優游宴喜 長卿 淵 云 之文 子長 政 駿 之史 趙 張 三王 之尹京 定國 釋之 之聽理 汲長孺 之正直 鄭當時 之推士 終童 山東 之英妙 賈生 洛陽 之才子 飛翠緌 拖鳴玉 以出入禁門者 衆矣 或 被髮左袵 奮迅泥滓 或 從容傅會 望表知里 或 著顯績而嬰時戮 懷=緬懷=追想 과거 사적을 회상해 보면 相=良相 銜使=銜君奉命出使 屬國=전속국(귀화한 이민족 자치구) 震驚=震驚遠方各國 博望=博望侯 教敷=實行教化百姓 彝倫敘=倫常走上正軌 兵舉=出征作戰 皇威暢=皇帝 威信 顯赫 臨危=身處危險境地 投命=舍棄性命 .. 2021. 10. 18.
8.1.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해설 5.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 투후에 관련된 구절이 등장하는데 그 문단은 다음과 같고, 이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반악의 서정부에서의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당나라 이선의 주해가 틀렸음을 입증해 내는 과정과 그 근거를 정확하게 반박하고 서정부의 원문의 내용을 올바로 해석하고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서정부 투후 부분 한문 원문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懷夫蕭曹魏邴之相辛李衛霍之將銜使則蘇屬國震遠則張博望教敷而彞倫序兵舉而皇威暢臨危而致勇奮投命而高節亮暨乎秺侯之忠孝淳深陸賈之優游宴喜長卿淵雲之文子長政駿之史趙張三王之尹京定國釋之之聽理汲長儒之正直鄭當時之推士終童山東之英妙賈生洛陽之才子飛翠緌拖鳴玉以出入禁門者眾矣或.. 2021. 10. 18.
8.2.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당나라 이선이 투후를 김일제로 주해한 것은 잘못되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피발좌임 분신니재(被髮左袵奮迅泥滓)”은 이민족이 다스리는 오랑캐 땅에 잡혀 들어가 치욕을 받고 그것을 딛고 일어선 소무와 장건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나라 이선은 “피발좌임 분신니재”를 ‘이민족 출신’으로 해석하여 서북쪽 오랑캐 땅을 지배하는 흉노족 이민족 북방민족 출신으로서 한나라에 귀순한 김일제로 인식하고 그와같이 주해를 달았다. 하지만 한족이 이민족 땅으로 들어가 구금되고 다시 금의환향한 사람과 원래 이민족 출신이 한나라로 귀순해 온 것은 그 출신 배경이 서로 상이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둘다 이민족 땅에서 들어온 것은 동일한 점이지만 동쪽의 동이족 출신인.. 2021. 10. 18.
14. 투후는 ?侯 (투후)인가? 투후는 ?侯 (투후)인가? ?侯 (투후/타후) 金日磾(금일제) 북송(宋) 때 977-984년 사이에 편찬된 사서 太平御覽(태평어람)의 관직(職官部) 시중(侍中) 편에서 金日磾(금일제)를 ?侯(투후)로 봉했다는 삼보고사의 기사를 인용해 놓고 있다: 《三輔故事》曰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삼보고사 왈 금일제 자 옹숙 봉 투후 유 충근지절 칠엽시중).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금일제의 본명 이외의 흔히 부른 이름 자는 옹숙이었고 ?侯(투후)의 봉작을 받았다. 그는 충성심이 깊고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근무한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고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피는 궁정내시라는 높은 관직을 지냈다. 시중(侍中) 시중(侍中)은 진(秦)나라 때부터 설치한 관직이름으로 왕의 곁을 따르며 왕이 먹.. 2021. 10. 18.
15. 문무왕릉비 비문 해석 5행 秺侯 祭天之胤 투후 제천지윤 5행 秺侯 祭天之胤 투후 제천지윤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국편위 번역: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 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추홍희 해석: (우리 신라 사람들은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올라가서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 창성한 왕업을 화관지후에게 이어받게 하고, (불의 임금님-화후는 요임금인데, 제곡 고신씨는) 요임금님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방정하고 드높은 구조물들을 건설하며 사방으로 반듯하게 뻗어 나갔다. 조상으로부터 복록을 이어받을.. 2021. 10. 18.
2. 나는 어떻게 비밀을 풀었는가? 들어가기 서문 책을 펴내면서 이 책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에 대한 역사 교과서, 대학 참고서, 학계 연구서의 서술 내용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새롭게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다. 이 책은 문무왕릉비 비문 내용을 새롭고 정확하게 해석하고, 지금까지의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위”로 표기)가 문무왕릉비 비문을 번역하고 해석한 그 글과 내용을 정면으로 통박한다. 또 문무왕릉비의 정확한 해석을 통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저지른 역사 조작을 만천하에 밝혀내, 오천년 한국사의 비밀의 문을 열어낼 황금열쇠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학문의 전당에 들어선 대학생은 물론이고 교육자, 역사가, 박물관, 예술관 담당자, 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교수와 교사에게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 2021. 10. 18.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구절의 의미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구절의 의미 “Just because you can’t see it doesn’t mean it’s not there.”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다- 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也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고, 쓸모없이 버려지고 만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도 이와 같으리라. 비록 평화의 시기라기는 해도 화랑의 국가에 대한 충성과 담대한 용기가 알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늘의 별은 낮에는 해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온 하늘에 흩어져 총총히 빛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생각해 보라.” “雖有嘉肴,弗食,不知其旨也;雖有至道,弗學,不知其善也.. 2021. 10. 17.
13장 투후 김일제 秺侯 金日磾 12. 투후 김일제 1. 사기 년표 《史記•年表》 투후 김일제 秺侯 金日磾 사기 년표에 다음과 같은 김일제를 투후로 봉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後元元年 二月己巳,光祿大夫霍光為大將軍 博陸侯 都尉金日磾為車騎將軍 秺侯 太僕安陽侯上官舛為大將軍 후원원년 이월 기사일 광록대부 곽광을 대장군에 임명하고 박륙후에 봉하고, 도위김일제를 거기장군에 임명하고 투후에 봉하며, 태복 안양후 상관천을 대장군에 임명함. 2. 한서 서전하(敘傳下) “秺侯狄孥”(투후적노) 해석 한서 서전하(敘傳下)에 “秺侯狄孥 虔恭忠信 奕世載德 貤于子孫”(투후적노 건공충신 혁세재덕 이우자손): 투후는 적(敵)의 자식으로, 성실하고 정성을 다해 충성을 바치고 믿음을 지켰고. 누대에 걸쳐 대대로 덕을 쌓고 자손 대대로 이어졌다. 반고의 편제에 따라서 여.. 2021. 10. 17.
11장 삼국지 위서 한기(韓暨)(150년대-238년)번역 三國志 魏書二十四, 韓崔高孫王傳 삼국지 위서 한기(韓暨)(150년대-238년)번역 韓暨字公至,南陽堵陽人也。楚國先賢傳曰:暨,韓王信之後。祖術,河東太守。父純,南郡太守。同縣豪右陳茂,譖暨父兄,畿至大辟。暨陽不以為言,庸賃積資,陰結死士,遂追呼尋禽茂,以首祭父墓,由是顯名。舉孝廉,司空辟,皆不就。 한기(韓暨)는 자가 공지(公至)이고 남양군(南陽郡) 도양현 사람이다. 초국선현전에 이르길 한기는 한왕신(韓王信)의 후예이다. 할아버지 한술(韓術)은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었고, 아버지 한순(韓純)은 남군태수가 되었다. 같은 현의 큰 호족세력 진무(陳茂)가 한기의 부친과 형을 헐뜯고 중상 모함하여 이들은 사형을 당했다. 한기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금을 주고 고용하여 자금을 축적하여 죽음을 각오한 자객들을 남몰래 모아서.. 2021. 10. 17.
10장 한왕신 10장 한왕신 太史公曰:韓信、盧綰非素積德累善之世,徼一時權變,以詐力成功,遭漢初定,故得列地,南面稱孤。內見疑彊大,外倚蠻貊以為援,是以日疏自危,事窮智困,卒赴匈奴,豈不哀哉! 陳豨,梁人,其少時數稱慕魏公子;及將軍守邊,招致賓客而下士,名聲過實。周昌疑之,疵瑕頗起,懼禍及身,邪人進說,遂陷無道。於戲悲夫!夫計之生孰成敗於人也深矣! 【索隱述贊】韓襄遺孽,始從漢中。剖符南面,徙邑北通。穨當歸國,龍雒有功。盧綰親愛,群臣莫同。舊燕是王,東胡計窮。 태사공 사마천 저자의 의견: “한왕(韓王) 한신(韓信)과 연왕(燕王) 노관(盧綰)은 본래 조상 대대로 공덕을 쌓고 베푼 집안이 아니며, 한때의 임기응변식 요행과 사술로 공을 이루고, 한(漢)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그 시기를 타서 개국공신이 되어 봉지를 받고 제후국의 왕조를 열었다. 안으로는 강대하다.. 2021. 10. 17.
6장 백제 흑치준 묘지명 투후(秺侯)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6장 백제 흑치준 묘지명 투후秺侯는 누구 백제 유민 흑치준 묘지명(706년)의 투후(秺侯)는 누구를 가르키는가? 묘지명(大唐故右金吾衛守翊府中郞將上柱國黑齒府君墓誌銘幷序)에 나타난 “秺侯入仕 西戎孤□(臣/家)” 투후입사 서융고신의 해석 1. 당나라 백제 흑치준 묘지명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소재 당나라 신룡(神龍)이년(706년)의 백제 유민 흑치준(黑齒俊) 묘지명(大唐故右金吾衛守翊府中郞將上柱國黑齒府君墓誌銘幷序)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타난다. 於維后唐 求賢以理 頹當 秺侯入仕 西戎孤□ 東夷之子 求如不及 片善斯紀 其一. 이에 대한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於維后唐, 求賢以理, 頹當, 秺侯入仕. 西戎孤□, 東夷之子, 求如不及, 片善斯紀. 其一 “아아, 堯 임금은 현명한 .. 2021. 10. 17.
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란 없다. 만약 있다면 인간 삶의 모든 면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가 있을 뿐이다. 여러 역사 중의 하나가 정치권력의 역사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의 역사로써 승격되어 있는 것이다.”[1] 이 인용된 내용의 견해가 서술된 칼 포퍼의 책에서 그가 많은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주듯이, 역사서는 실제 일어난 사건 대신 이념에 따라 구성하거나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건을 선택하여 쓰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왜 문학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포퍼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왜 권력의 역사만 선택되.. 2021. 10. 17.
4.하버드대 로스쿨이 80년역사의 학교 심벌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 敎(교)의 의미 인간 사회의 부족과 잘못은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여지껏 그토록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가? 한쪽에서는 많아서 넘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부족해서 굶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사람들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즉 문제해결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공정한 기회 마저 박탈당하고 상실된 사회로 변해 버렸지 않는가? 교육은 받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양자의 존재가 필수이기에 교육에는 큰 돈이 들어간다. 교육은 도로 건설처럼 돈과 시간이 크게 들어가는 국가의 기간 인프라이고 돈과 시간이 없으면.. 2021.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