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 魏書二十四, 韓崔高孫王傳
삼국지 위서 한기(韓暨)(150년대-238년)번역
韓暨字公至,南陽堵陽人也。楚國先賢傳曰:暨,韓王信之後。祖術,河東太守。父純,南郡太守。同縣豪右陳茂,譖暨父兄,畿至大辟。暨陽不以為言,庸賃積資,陰結死士,遂追呼尋禽茂,以首祭父墓,由是顯名。舉孝廉,司空辟,皆不就。 |
한기(韓暨)는 자가 공지(公至)이고 남양군(南陽郡) 도양현 사람이다. 초국선현전에 이르길 한기는 한왕신(韓王信)의 후예이다. 할아버지 한술(韓術)은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었고, 아버지 한순(韓純)은 남군태수가 되었다. 같은 현의 큰 호족세력 진무(陳茂)가 한기의 부친과 형을 헐뜯고 중상 모함하여 이들은 사형을 당했다. 한기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금을 주고 고용하여 자금을 축적하여 죽음을 각오한 자객들을 남몰래 모아서, 마침내 진무를 잡아서 호통치고 그의 머리를 부친의 묘소 앞에 바치고 부형의 억울함을 풀었다. 이로써 한기의 이름이 세상에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한기는 효렴 벼슬에 천거되고 사공의 벼슬에 제수되었지만, 이런 벼슬에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
至公: 최고로 공정(公正)함, 極公正 豪右: 대부호(富豪) 세가대호(世家大戶) 譖: 헐뜯다 중상(中傷)하다 모함(誣陷)하다. 大辟: 사형 死士: 죽음도 불사하는 용감한 용사(勇士) 追呼: 다그쳐 고함치고 질책하다 不就: 임명을 고사하다, 不接受任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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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變名姓,隱居避亂魯陽山中。山民合黨,欲行寇掠。暨散家財以供牛酒,請其渠帥,為陳安危。山民化之,終不為害。避袁術命召,徙居山都之山。荊州牧劉表禮辟,遂遁逃,南居孱陵界,所在見敬愛,而表深恨之。暨懼,應命,除宜城長。 | 한기는 이름과 성을 바꾸고, 노양산 속으로 전란을 피해 은신해 들어갔다. 산속에 사는 백성들이 서로 힘을 합해 도당을 결성하고 약탈과 노략질을 자행하려고 했으나 한기는 자신의 가산을 모두 털고 팔아서 고기와 술을 제공하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기를 청해, 그들을 위한 안전과 위험이 무엇인지 그런 방법론을 전개하고 가르쳤다. 산민들은 한기의 교화에 감화되었고, 끝내 어떤 해를 끼치지 않았다. 원술(袁術)의 징발 벼슬을 피해 남양군 산도현의 산속으로 피난처를 다시 옮겼다. 형주목 유표(劉表)가 예로써 초빙하려고 해서, 이를 피해 남쪽의 형주 잔릉(孱陵)현 경계로 거처를 다시 옮겼다. 한기는 어느 곳에 이르든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유표는 한기가 자신의 초빙에 응하지 않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한기는 신중하게 고려한 후 초빙에 응하고 의성(宜城)현의 대표가 되었다. |
魯陽山: 하북성 동광(東光)현 渠帥: 수령(首領) 괴수(魁首) 安危: 평안(平安)과 위험(危險) 不顧個人安危;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다 徙居: 천거(遷居) 山都: 산도현, 유신의 고향인 신야(新野)군, 山都는 비비라고 말하고 비비는 원숭이족 중에서 가장 큰 원숭이를 지칭하니 고릴라에 가깝다. “산적”을 “마적”단으로도 부르는데, 山都는 일본어 발음으로는 “야마토”이다. 야마토 대화정권 야마토(大和) 말이다. 362년 칠지도를 만든 백제가 일본에 야마토 정권을 세웠는데 일본 원주민들 입장에선 산속의 무장 공비, 마적단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625 한국동란 때 북괴군이 지리산으로 숨어 들어가 무장공비가 되었듯이, 역사상 패하면 공비가 되고 승리하면 새로운 혁명정권이 수립된다. 새로운 칠지도 명문 해석에 대해서는 저자의 “칠지도 명문해석” 책을 참조하라. 應命: 종명(從命) 응부명령(應付命令) 除: 임명 관직(任命官職), 제수(除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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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祖平荊州,辟為丞相士曹屬。後選樂陵太守,徙監冶謁者。舊時冶,作馬排,蒲拜反。為排以吹炭。每一熟石用馬百匹;更作人排,又費功力;暨乃因長流為水排,計其利益,三倍於前。在職七年,器用充實。制書褒歎,就加司金都尉,班亞九卿。文帝踐阼,封宜城亭侯。黃初七年,遷太常,進封南鄉亭侯,邑二百戶。 | 위태조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자 한기를 불러서 승상 조조의 사조(士曹) 소속으로 임명했다. 후에 낙릉태수(樂陵太守)에 천거되었다가 감야알자(監冶謁者)로 전임되었다. 이전에 금속 도금작업을 할 시에는 말이 끄는 힘을 이용하는 마배(馬排) 동력 방식을 썼는데, 숯을 피워 증기를 이용했다. 광석을 한 번 달굴 때마다 수많은 말이 동원되었다. 사람들을 써서 하는 방식을 써보기도 했으나, 역시 많은 인력이 소모되었다. 이에 한기는 흐르는 물을 끌여 들어와 이용하는 수배(水排) 방식을 고안했는데, 이익을 계산해보니 이전 방식보다 세 배나 되었다. 한기가 감야알자직에 7년을 재직했고 그리하여 재간과 인재가 더욱 탄탄해지고 충실해졌다. 조조가 조서를 만들어 그를 포상하고 탄복 칭찬하였다. 이에 사금도위(司金都尉)로 취임하였고 이 지위는 구경(九卿) 다음이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한기는 의성정후(宜城亭侯)에 봉해졌다. 226년 국가의 예악과 제사 업무 등을 담당하는 태상(太常)으로 승진하였고 나아가 남향정후(南鄉亭侯)에 봉해졌으며 식읍은 2백 호이었다.。 |
水排: 수력 물레방아 이용 불을 지피는 야철 장치 踐阼: 즉위(即位) 등기(登基) 太常: 종묘 사직 예약 관장 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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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新都洛陽,制度未備,而宗廟主祏。皆在鄴都。暨奏請迎鄴四廟神主,建立洛陽廟,四時蒸嘗,親奉粢盛。崇明正禮,廢去淫祀,多所匡正。在官八年,以疾遜位。 | 당시는 수도를 막 낙양(洛陽)으로 옮겼으므로 제도가 아직 완비되지 않았고, 종묘의 위패를 모신 석실은 모두 업도(鄴都)에 있었다. 한기는 상주하여 업도에 있는 네 묘의 신주(神主)를 맞아들여 낙양에 묘를 세우고, 사계(四季)의 제사에는 화제가 직접 공물을 바치기를 청하였다. 그는 바른 의례를 추앙하여 밝히고, 음란한 제사를 없애고 바로잡은 것이 많았다. 관직에 몸 담은 지 8년째 되던 해에 질병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
춘추전에 말하길 종실의 사람에게 선조들의 사당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종석(宗祏)이란 종묘의 위패를 모신 종묘사직을 말한다. 宗祏: 신주를 모신 종묘 석실(宗廟石室) 石室: 종묘 신주 석함(石函), 석조묘실(石造墓室) 蒸嘗: 祭祀(제사), 秋冬二祭 粢盛: 제사 지낼 때 담는 제기의 곡물(谷物) 匡正: 改正(개정), 보좌(輔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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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初二年春,詔曰:「太中大夫韓暨,澡身浴德,志節高絜,年逾八十,守道彌固,可謂純篤,老而益劭者也。其以暨為司徒。」夏四月薨,遺令斂以時服,葬為土藏。諡曰恭侯。 | 경초 2년(238) 봄, 다음과 같은 조칙을 내렸다. 태중대부 한기는 몸과 덕을 수양하고 뜻과 절개가 고결하며, 나이가 여든이 넘었어도 바른 도리를 준수함이 더욱 굳으니 가히 순결하고 독실하며, 나이가 들수록 더욱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에 한기를 재정 담당 사도(司徒)에 임명한다. 한기는 여름철 음력 사월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평상복으로 염을 하고, 간단한 토장으로 하고 무덤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시호는 공후(恭侯)라고 했다. |
司徒: 재정 담당 호부상서(戶部尚書) 土藏: 흙으로 덮은 매장(埋葬) 무덤 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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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國先賢傳曰:暨臨終遺言曰:「夫俗奢者,示之以儉,儉則節之以禮。曆見前代送終過制,失之甚矣。若爾曹敬聽吾言,斂以時服,葬以土藏,穿畢便葬,送以瓦器,慎勿有增益。」 | 초국선현전에 이르면 한기는 유언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세속에 사치가 심하지만 검소하게 치뤄라 검소란 예를 다해 절제하고 검약하는 것을 말한다. 이전의 사례를 살펴보면 상장례에 법도를 초과하는 경우가 있고 잘못된 정도가 심했다. 너희들은 내말을 새겨듣거라. 평상복으로 시신을 렴하고, 토장을 하되 무덤의 크기는 관이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들고 미천한 사람을 통해 운구하고 부장품은 넣지 말라.” |
送終: 친척 상장례 過制: 초과 법도 규정 。 爾曹: 너희들 時服: 평상시 복장 穿: 묘혈(墓穴). 畢: 관 횡목 瓦器: 미천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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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上疏曰:「生有益於民,死猶不害於民。況臣備位台司,在職日淺,未能宣揚聖德以廣益黎庶。寢疾彌留,奄即幽冥。方今百姓農務,不宜勞役,乞不令洛陽吏民供設喪具。懼國典有常,使臣私原不得展從,謹冒以聞,惟蒙哀許。」 |
또 다른 상소문에 이르길: “살아서는 민중들에게 이익을 주더니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도다. 삼공의 벼슬을 지낸 기간이 일천하지만 서민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으로써 조정의 성덕을 널리 선양하고자 한다. 죽음의 병상에 누웠으니 이제 깊은 곳 유명세계로 들어간다. 지금은 농번기 철이니 사람들을 동원한 노역을 시켜서는 아니된다. 낙양의 관리와 서민들에게 상장례물을 진설하게 하지 말라. 나라에는 국가 전례규범이 있고 하니 사적인 인연을 따르지 말기 바란다.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 삼가 묵념으로, 슬픔을 표시하는 정도로 하라.” |
備位: 관리 자신에 대한 겸칭. 台司: 三公(삼공) 廣益: 증가 보탬 黎庶: 서민 민중 彌留: 임종(臨終) 奄: 覆蓋(복개), 홀연(忽然). 勞役: 강제노동 吏民: 관리와 서민 供設: 설치(設置) 喪具: 사후 장사 지낼 때 쓰이는 기물이나 무덤에 넣는 부장품. 國典: 국가의 전례(典禮)나 제도. 蒙: 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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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得表嗟歎,乃詔曰:「故司徒韓暨,積德履行,忠以立朝,至於黃發,直亮不虧。既登三事,望獲毗輔之助,如何奄忽,天命不永!曾參臨沒,易簀以禮;晏嬰尚儉,遣車降制。今司徒知命,遺言恤民,必欲崇約,可謂善始令終者也。其喪禮所設,皆如故事,勿有所闕。特賜溫明秘器,衣一稱,五時朝服,玉具劍佩。」 | 국왕이 소식을 듣고 탄식을 금치 못했고 이에 조칙을 내렸다: “고 사도 한기는 덕을 크게 쌓아 올렸고 실천한 사람으로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 흰머리 날리는 노년에 이르러도 정직신실하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일했다. 벼슬은 삼공의 지위에 올랐고 조정을 보좌하기를 다하다 갑자기 홀연히 떠났으니 운명은 때가 있다는 것인지! 죽음에 이르니 슬프지만 가는 자리를 예를 다해 마련토록 하고 절약 검소한 안영의 예처럼 수레를 보내 예를 표한다. 사도 한기는 가는 운명을 알고 서민을 살피고 돌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필히 검약하기를 높혔으니 가히 처음부터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낸 사람이로다. 전통전례에 따라 상례를 치루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 특별히 관재와 평시 조복 한벌과 옥으로 만든 보검과 수패를 하사하여 내려 보내노라.” |
履行: 실천하다 立朝: 관리에 임용되다 直亮: 정직신실(正直信實) 三事: 三公(삼공) 毗輔: 보조(輔助) 臨沒: 임종(臨終) 易簀: 更換寢席, 침대에 까는 돗자리를 바꾸다 晏嬰: (?-BC 500),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 검약을 실천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한 춘추시대 제국(齊國) 대부 知命: 천명 명운을 이해하다 恤民: 서민 백성들의 질고를 염려하다 善始令終: 선시선종(善始善終), 일을 시종 처음부터 끝까지 잘 완수해내다. 溫明: 장기(葬器) 秘器: 관재(棺材) 五時: 일년 사계 朝服: 군신간 조회시 입는 예복 玉具劍佩: 보검(寶劍)과 수패(垂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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