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449

학제간 통합 연구의 필요성 학제간 통합 연구의 필요성 최근 통섭(通攝, 統攝)이라는 말 또한 흔히 쓰인다. 폭넓은 상식과 깊은 전문성이라는 말은 사람의 두뇌의 제한성을 인정한다면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성격을 갖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전문가의 함정’이라는 개념에 수긍하기도 한다. 한편 자기 분야의 전문 영역에서 깊은 전문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폭넓은 상식과 다양한 추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사마천은 임소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通古今之變成一家之言”(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고금의 변화를 두루 살피고 통달하여서 자신만의 독특한 저술을 완성해 냈다는 뜻이다. 사마천 이후 2천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과거와 당대 뿐만아니라 동서양과 나라안과 국제적인 상황까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즉 東西.. 2022. 1. 7.
유신의 장편 서사시 哀江南賦(애강남부) 유신(庾信)의 哀江南賦(애강남부) 유신의 장편 서사시 哀江南賦(애강남부) 가운데 楚歌非取樂之方 魯酒無忘憂之用 追爲此賦 聊以記言 不無危苦之辭 惟以悲哀爲主-이 (초가비취락지방 로주무앙우지용 추위차부 료이기언 부무위고지사 유이비애위주) 구절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楚歌非取樂之方-초가는 초사가 그렇듯이 슬픈 구석 애절한 노래를 말하니 ‘슬픈 노래를 불러도 울적한 마음을 달랠 길 없고’라는 뜻이 되겠다. 초가는 사기 고조본기에 적혀있듯이 항우의 역발산혜기개세 7언의 해하가, 한무제의 추풍사 등이 대표적이다. 편편황조 4언의 황조가 그리고 조선 개창의 이성계가 부른 대풍가 또한 형초인의 노래 초가에 속한다. 유방 항우 한무제 이성계 등의 무사들의 전승곡 같은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형초인의 노래 초사이기에 .. 2022. 1. 7.
19. 책 내용 요약 『위대한 한국 문무왕릉비 연구-비문 앞면』 책 주요 내용 요약 ①문무대왕릉비 비문앞면3행의 “鯨津氏”(경진씨)는 문무왕의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鯨津氏”(경진씨)가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반만년 한국사의 최대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다. ②비문뒷면20행에 나오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경진씨”라는 뜻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국편위의 해석대로의 “경진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라는 뜻이 아니다. “鯨津”(경진)은 지금까지 다수가 해석하는대로의, ‘어느 바닷가 포구’를 말하는 지명이 아니다. “鯨津”(경진)은 문무대왕릉비 비문앞면3행의 “鯨津氏”(경진씨)를 지칭한다. “嗣王允恭”(사왕윤공)의 의미대로 문무대왕이 태종무열.. 2022. 1. 3.
18장 갈마무리 18. 마무리 한국인은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적혀 있는대로 “秺侯祭天之胤”(투후제천지윤)이다. 한국인의 선조 “투후”(秺侯)는 누구인가? 이 담대한 의문에 대한 역사적인 해답을 추구한 것이 이 책의 발간 의도이고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은 “秺侯”(투후)는 金日磾(김일제)가 아니라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이라는 역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고 이를 입증하는 역사적 기록들을 한글로 번역해석하고 논했다. 투후 상구성임을 가장 결정적으로 증거하는 반악의 서정부에 나타난 “秺侯之忠孝淳深”(투후 지충효순심) 단락을 번역 해석하고 논했다. 당나라 이선의 문선 주해에서는 투후를 ‘김일제’로 해석했지만 추홍희는 투후는 ‘상구성’을 지칭한다고 주장하며 이선의 주해를 자세하게 반박하였다. 또 당나라 이선은 “被髮左袵奮迅泥滓”(피.. 2022. 1. 3.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다- 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也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을 알 수가 없고, 쓸모없이 버려지고 만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도 이와 같으리라. 비록 평화의 시기라기는 해도 무사의 국가에 대한 충성과 담대한 용기가 알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늘의 별은 낮에는 해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온 하늘에 흩어져 총총히 빛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생각해 보라.”[1] “雖有嘉肴,弗食,不知其旨也;雖有至道,弗學,不知其善也。是故,學然後知不足,教然後知困。知不足,然後能自反也;知困,然後能自強也。故曰:教學相長也。《兌命》曰:「學學半」其此之謂乎?”, 《禮記·學記》, 禮記卷十八. 이 “.. 2022. 1. 3.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비문 앞면 □□□□國新羅文武王陵之碑□□□及飱國學少卿臣金□□奉□敎撰 □□□□□□□□□□□□通三後兵殊□□□匡□配天統物畫野經圻積德□□匡時濟難應神□□□□□靈命□□□ □□□□□□□□□□□□派鯨津氏映三山之闕東拒開梧之境南鄰□桂之□□接黃龍駕朱蒙□□□□承白武仰□□ □□□□□□□□□□□□閒盡善其能名實兩濟德位兼隆地跨八夤勲超三□□巍蕩蕩不可得而稱者□□□□我新□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焉□□ 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大王思術深長風姿英拔量同江海威若雷霆□地□□□方卷蹟停烽罷候萬里澄氛克勤開□ □□□□□□□□□□□□□□當簡□之德內平外成光大之風邇安遠肅□功盛□□□於將來㬪粹凝貞.. 2022. 1. 3.
15. 비문앞면제5행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 비문앞면제5행 秺侯 祭天之胤 투후 제천지윤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국편위 번역: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 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추홍희 해석: (우리 신라 사람들은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올라가서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 창성한 왕업을 화관지후에게 이어받게 하고, (불의 임금님-화후는 요임금인데, 제곡 고신씨는) 요임금님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방정하고 드높은 구조물들을 건설하며 사방으로 반듯하게 뻗어 나갔다. 조상으로부터 복록을.. 2022. 1. 3.
투후는 ?侯 (투후)인가? 14. 투후는 ?侯 (투후)인가? 1. ?侯 (투후/타후) 金日磾(금일제) 북송(宋) 때 977-984년 사이에 편찬된 사서 太平御覽(태평어람)의 관직(職官部) 시중(侍中) 편에서 金日磾(금일제)를 ?侯(투후)로 봉했다는 삼보고사의 기사를 인용해 놓고 있다: 《三輔故事》曰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삼보고사 왈 금일제 자 옹숙 봉 투후 유 충근지절 칠엽시중). 金日磾字翁叔 封?侯 有忠勤之節 七葉侍中 금일제의 본명 이외의 흔히 부른 이름 자는 옹숙이었고 ?侯(투후)의 봉작을 받았다. 그는 충성심이 깊고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근무한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고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피는 궁정내시라는 높은 관직을 지냈다. 시중(侍中) 시중(侍中)은 진(秦)나라 때부터 설치한 관직이름으로 왕의 곁을 따.. 2022. 1. 1.
투후 김일제 투후 김일제 1. 사기 년표 《史記•年表》 투후 김일제 秺侯 金日磾 사기 년표에 다음과 같은 김일제를 투후로 봉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後元元年 二月己巳,光祿大夫霍光為大將軍 博陸侯 都尉金日磾為車騎將軍 秺侯 太僕安陽侯上官舛為大將軍 후원원년 이월 기사일 광록대부 곽광을 대장군에 임명하고 박륙후에 봉하고, 도위김일제를 거기장군에 임명하고 투후에 봉하며, 태복 안양후 상관천을 대장군에 임명함. 2. 한서 서전하(敘傳下) “秺侯狄孥”(투후적노) 해석 한서 서전하(敘傳下)에 “秺侯狄孥 虔恭忠信 奕世載德 貤于子孫”(투후적노 건공충신 혁세재덕 이우자손): 투후는 적(敵)의 자식으로, 성실하고 정성을 다해 충성을 바치고 믿음을 지켰고. 누대에 걸쳐 대대로 덕을 쌓고 자손 대대로 이어졌다. 반고의 편제에 따라서 여기의 투.. 2022. 1. 1.
12장 무고지화 무고지화 무고(巫蠱)의 뜻 무고(巫蠱)는 무술사(巫師)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저주와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蠱(고)의 한자 고어체는 인데 글자모양처럼 벌레 먹은 것 즉 고독무술(蠱毒巫術, poisonous magic)을 의미한다. 증거를 날조하여 무고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헐뜯는 무고(巫蠱)는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서의 “吊 戾園 于 湖邑 諒遭世之巫蠱”(조려원어호읍 량조세지무고) 구절 표현처럼 BC 91년에 일어난 무고지화 여태자 반란 사건을 가르키기도 하다. 반악의 서정부 무고지화 구절 반악 서정부 구절 문선 이선 주 弔戾園於湖邑 諒遭世之巫蠱 探隱伏於難明 委讒賊之趙虜 加顯戮於儲貳 絕肌膚而不顧 作歸來之悲臺 徒望思其何補 〈漢書曰:戾太子據與江充有隙。會巫蠱事起,充遂至太子宮,掘得桐木人。太.. 2022. 1. 1.
한기(韓暨) 번역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한기(韓暨)(150년대-238년)번역 韓暨字公至,南陽堵陽人也。楚國先賢傳曰:暨,韓王信之後。祖術,河東太守。父純,南郡太守。同縣豪右陳茂,譖暨父兄,畿至大辟。暨陽不以為言,庸賃積資,陰結死士,遂追呼尋禽茂,以首祭父墓,由是顯名。舉孝廉,司空辟,皆不就。 한기(韓暨)는 자가 공지(公至)이고 남양군(南陽郡) 도양현 사람이다. 초국선현전에 이르길 한기는 한왕신(韓王信)의 후예이다. 할아버지 한술(韓術)은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었고, 아버지 한순(韓純)은 남군태수가 되었다. 같은 현의 큰 호족세력 진무(陳茂)가 한기의 부친과 형을 헐뜯고 중상 모함하여 이들은 사형을 당했다. 한기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금을 주고 고용하여 자금을 축적하여 죽음을 각오한 자객들을 남몰래 모아서, 마침내 진무를.. 2022. 1. 1.
10장 한왕신(韓王) 한신(韓信) 10장 한왕신(韓王) 한신(韓信) 太史公曰:韓信、盧綰非素積德累善之世,徼一時權變,以詐力成功,遭漢初定,故得列地,南面稱孤。內見疑彊大,外倚蠻貊以為援,是以日疏自危,事窮智困,卒赴匈奴,豈不哀哉! 陳豨,梁人,其少時數稱慕魏公子;及將軍守邊,招致賓客而下士,名聲過實。周昌疑之,疵瑕頗起,懼禍及身,邪人進說,遂陷無道。於戲悲夫!夫計之生孰成敗於人也深矣! 【索隱述贊】韓襄遺孽,始從漢中。剖符南面,徙邑北通。穨當歸國,龍雒有功。盧綰親愛,群臣莫同。舊燕是王,東胡計窮。 태사공 사마천 저자의 의견: “한왕(韓王) 한신(韓信)과 연왕(燕王) 노관(盧綰)은 본래 조상 대대로 공덕을 쌓고 베푼 집안이 아니며, 한때의 임기응변식 요행과 사술로 공을 이루고, 한(漢)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그 시기를 타서 개국공신이 되어 봉지를 받고 제후국의 왕조를 열었다.. 2022. 1. 1.
투후 상구성(商丘成)은 누구인가? 9장투후 상구성 전기 투후 상구성(商丘成)은 누구인가? 상구성(商丘成)은 성은 상구(商丘) 이름은 성(成)이다. “열선전”에 상구자서(商丘子胥)라는 선인이 소개되어 있고, 상구는 복성이다. 상나라의 수도가 상구였다. 투성이 위치한 성무현이 이 근처이고 오늘날 산동성 하택(荷澤)시 부근이다. 상구성의 출생 연도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대홍려와 어사대부를 지낸 관직 경력과 무고의 난 때 한고조 묘지기를 지낸 전천추(?-BC 77)의 기록을 통해서 대략 추측해 보면 BC 2세기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한서 기록에 따르면 한문제(BC 202-BC 157) 묘지기 첨사로 재직 중 설화를 입어 BC 88년 황제에 대한 불경죄의 판결이 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구성은 한무제 때 조선시대로 치면 예조.. 2021. 12. 31.
8장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번역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번역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반악潘岳(247-300)의 “西征賦”(서정부)에 투후에 관련된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구절이 등장한다.[1] 반악의 서정부에서의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의 의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여 당나라 이선의 주해가 틀렸음을 입증해 내고 “秺侯”(투후)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밝혀낸다. 문무왕릉비 비문에 등장하는 “秺侯”(투후)는 “金日磾”(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임을 밝혀내어 그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한다. 1. “西征賦”(서정부) 秺侯(투후) 부분 단락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懷夫蕭曹魏邴之相辛李衛霍之將銜使則蘇屬國震遠則張博.. 2021. 12. 30.
7장 “文武王陵碑”(문무왕릉비)의 “秺侯”(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이다 “文武王陵碑”(문무왕릉비)의 “秺侯”(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商丘成”(상구성)이다 글 차례 들어가기 1. 한서 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 2. 漢書(한서) 劉屈氂(유굴리)전에 기재된 투후 상구성 기록 3. 한서 양창(楊敞) 양운(楊惲) 열전의 “副帝隸 秺侯御”(부제례 투후어) 해석 4. 자치통감 “商丘成力戰獲張光 封成為秺侯”. 5. 반악의 “西征賦”(서정부) “秺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과 투후 상구성,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1.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2. 서정부 단락 한글 번역 3. 서정부 거론 인물군 분류 4. 서정부 단락 단어 해석 5. 인물 분류 6. 서정부에서 투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 2021. 12. 30.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차례 1. 당나라 백제 흑치준 묘지명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2 흑치준(黑齒俊) 묘지명 추홍희 번역 3. 흑치준 묘지명 구절 국사편찬위원회 번역과 추홍희 번역 비교 4. 추홍희 번역 역주 5 흑치준 묘지명의 “투후”와 문무왕릉비 비문의 “투후”관계 백제 출신 당나라 흑치준 장군 묘지명(706년)의 “秺侯”(투후)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흑치준 묘지명(大唐故右金吾衛守翊府中郞將上柱國黑齒府君墓誌銘幷序)에 나타난 “秺侯入仕 西戎孤□(臣/家)” (투후입사 서융고신)의 해석 1. 당나라 백제 흑치준 묘지명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소재 당나라 신룡(神龍)이년(706년)의 백제 출신 당나라 장군 흑치준(黑齒.. 2021. 12. 30.
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5. 왜 역사학에서 정치 권력의 역사만이 주로 선택되었고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란 없다. 만약 있다면 인간 삶의 모든 면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가 있을 뿐이다. 여러 역사 중의 하나가 정치권력의 역사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의 역사로써 승격되어 있는 것이다.”[1] 이 인용된 내용의 견해가 서술된 칼 포퍼의 책에서 그가 많은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주듯이, 역사서는 실제 일어난 사건 대신 이념에 따라 구성하거나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건을 선택하여 쓰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왜 문학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포퍼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왜 권력의 역사만 .. 2021. 12. 30.
하버드대 로스쿨이 80년역사의 학교 심벌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 4. 敎(교)의 의미 인간 사회의 부족과 잘못은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여지껏 그토록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가? 한쪽에서는 많아서 넘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부족해서 굶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사람들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즉 문제해결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공정한 기회 마저 박탈당하고 상실된 사회로 변해 버렸지 않는가? 교육은 받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양자의 존재가 필수이기에 교육에는 큰 돈이 들어간다. 교육은 도로 건설처럼 돈과 시간이 크게 들어가는 국가의 기간 인프라이고 돈과 시간이 .. 2021. 12. 30.
투후제천지윤 3. 어떻게 임무를 달성해 낼 것인가? 1. 어떻게 임무를 달성해 낼 것인가? “忠臣藏”(충신장)은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진수를 나타내준다고 흔히 말하는데 충신장 47인 의사들이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47인 무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스스로 뜻을 세웠고 그 뜻을, 모든 난관을 뚫고 즉 최고권력에 맞서서까지 정해진 시간내에 한정된 자원으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해냈다는 것에 있다. 47인의 사무라이들이 영웅으로 칭송받은 까닭은 한정된 자원과 제한된 시간 가운데 전략적으로 움직여 목표를 실행해냈다는 그러한 전쟁 전략의 성공과 또 그것을 이끈 사람의 정신의 위대함에 깊은 공감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가 죽는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는 소크라테스의 삼단논법을 거들멱거릴 필요도 없이 장삼이사 초동목동도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 2021. 12. 30.
투후제천지윤 들어가기 서문 들어가기 서문 책을 펴내면서 이 책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에 대한 역사 교과서, 대학 참고서, 학계 연구서의 서술 내용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새롭게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다. 이 책은 문무왕릉비 비문 내용을 새롭고 정확하게 해석하고, 지금까지의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위”로 표기)가 문무왕릉비 비문을 번역하고 해석한 그 글과 내용을 정면으로 통박한다. 또 문무왕릉비의 정확한 해석을 통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저지른 역사 조작을 만천하에 밝혀내, 오천년 한국사의 비밀의 문을 열어낼 황금열쇠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학문의 전당에 들어선 대학생은 물론이고 교육자, 역사가, 박물관, 예술관 담당자, 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교수와 교사에게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 2021. 12. 30.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 목차 문무대왕 왕릉비문 속에 등장하는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을 “투후”를 “김일제”로 해석하여 “신라인은 흉노족의 후손”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이들 때문에 역사 교육의 혼란스러움이 극한 상황에 다다른 지경이다. 하지만 문무왕릉 비문 속의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은 “투후 김일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투후 상구성”을 지칭한다는 추홍희 저자의 올바른 비문 해석 논지가 이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문무대왕릉비문의 “투후 제천지윤”에서의 투후는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투후 상구성이라는 가장 새롭고 가장 진실한 역사분석적 주장이 창천이사황천당립의 욱욱한 기세로 온 천지를 뒤덮을 것이다. 한서 공신표(功臣表)와 한서 유굴리전에서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사기 년.. 2021.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