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정말 그가 죽었구만요, 그렇죠?”
“왕과 대법관들과 함께잠들었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1][2]
* * * * * * * * [3]
이 이야기를 더 이상 계속 진행할 필요성은 거의 없을 성싶다. 불쌍한 바틀비의 매장과 관련된 짧은 토막은 누구나 능히 상상할 수 있는이야기이다.[4] 그러나 독자와 헤어지기 전에 내가 이런 말은 전하고 싶다. 이 짤막한 단편 소설을 읽고서 바틀비가 누구인지 그의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본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 그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길만큼 독자들이 흥미를 느꼈다면, 나 역시 그런 호기심에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나에게는 그런 의문을 파헤칠 권한이 없다는 해명의 말씀[5]을 미리 드리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그 필경사가 죽은 지 몇 개월이 지나서 귀동냥으로 들은 사소한 소문 하나를 밝혀도 될지는 모르겠다.[6] 그 소문의 근거가 어떤 것인지 내가 확인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그 소문이 얼마나 진실한지도 내가 지금으로썬 알아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출처가 모호한 이 소문이 아무리 가슴 아프다고 해도, 내게는 예기치 못한 관심을 어느 정도 불러 일으키지 않은 것은 아닌 만큼,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므로, 내가 이것을 아주 짤막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그 소문은 이렇다. 바틀비는 워싱턴에 있는 “수신자 불명 우편물 처리소”[7]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정권이 교체되자 갑자기 자신의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8] 이런 소문을 곰곰이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해내기 어려운 감정의 격랑에 휩싸이고 만다.[9] 수신자 불명 편지라니![10] [11] 그것은 죽은 사람과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천성적으로 또는 갑작스런 불운이 닥쳐 막막한 절망감에 빠져들게 된 한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 막막한 절망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수신자 불명 편지들을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다루면서 그것들을 분류해서 불태우는 일보다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12][13] 짐마차로 실어 날라야 할 만큼 대량의 수신자 불명 편지들이 매년 소각되고 있다. 간혹 거기 우체국 근무 직원이 접혀진 편지 속에서 반지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는데,[14] 그 반지가 끼워져야 할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어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선모금단체에다 가장 신속하게 은행권 지폐를 보내본 들, 정작 자선구호금으로 구제받아야 할 사람은, 먹을 음식이 없어 기아 상태에 있거나 굶어 죽는다. 때 늦은 사면을 단행하지만 사면 대상자는 절망해 가면서 이미 죽었고, 내일의 희망을 약속하지만 그 수신자는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난사고들에 그만 질려서 죽어간다. 삶의 임무를 띠고 나선, 이런 편지들이 죽음으로 질주한 것이다.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
(Ah, Bartleby! Ah, humanity!)[15] [16]
[1] “With kings and counsellors”은 구약성경 욥기의 구절을 우선 살펴보자. “With kings and counsellers of the earth, which built desolate places for themselves 지금은 폐허가 된 성읍이지만, 한때 그 성읍을 세우던 세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함께 잠들어 있을 텐데”(욥 3:14). 태어난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최고권력자이든 부자이든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도 죽음을 결코 피해 갈 수가 없다. 사람이 죽을 때는 지위고하 빈부 귀천의 차별이 없다. 사람은 죽음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톨스토이가 웅변하듯이, 최고권력자이든 부자이든 하층민이든 사람이 죽을 때는 모두가 무덤 한 뼘 공간에 묻힐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간단한 진리가 재확인된다. 죽음을 통해서 인간 평등을 실현한다는 죽음의 “the Great Leveler”의 개념이 이와 같다. 우리나라 판소리 회심곡 중 “백발가”에 나오는 표현과 의미가 상통한다: “빈객 삼천 맹산군도 죽으면 자취도 없고, 만고 영웅 진시황도 여산 추초에 잠들었고, 글 잘하는 이태백도, 천하 명장 초패왕도, 천하 명의 편작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2] 영어 원문에서 표현하는 “counsellors”는 영미국은 사법부 통치 국가이기 때문에 법관(King's Judges, King's Council)들이 국가 통치부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국왕과 대법관들 모두”가 어울리는 표현이다. 반면 대륙법 국가는 행정부 우위 국가이므로 “국왕과 대신고관들”, “왕과 고관백작과 함께”의 표현이 어울린다. 한편 형평법 폐지의 법원 개혁에 대한 의의를 음미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하늘의 별같이 높이 우러러 보던 존경 받는 대인물이 죽음을 맞이한 경우 “별이 떨어졌다”는 유퍼미즘을 쓰는데, 여기서 인간 역사에 있어서 흥망성쇠의 법칙이 연상된다. 한 때 법과 정의를 세웠던 지금까지 많은 왕과 대법관들도 모두 죽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은 법과 정의를 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왕과 대법관들은 그런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이런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이 문장 앞 뒤로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는 아스테리즘 * * * 기호는 상징적 의미를 보강해 주고 있다. 형평법 판사로 근무했던 화자인 변호사는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면서 그만 직장을 잃고 말았다. 그는 서두에서 법원 통합 개혁 조치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개혁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염려에서 나온 견해이었을 것이다. 한 때 법과 정의를 세웠던 국왕과 대법관들도 모두 잠들었다.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은 권세를 누렸던 형평볍 법원도 이제는 흥망성쇠의 역사 법칙 앞에 무릎을 끓고 말았다는 만시지탄의 정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 왜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될 수 밖에 없었는가? 형평 법원이 보통 법원으로 통합된 이유는 형평법원의 부패와 소송 지연이 극에 달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형평법원의 부패와 구조적인 문제점은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Bleak House)”(1852년 3월부터 1853년 9월까지 신문 연재)에서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3] 별표 아스테리스크(asterisk)는 아스테리즘, 아스토르, 에스더 단어들과 같이 별 star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aster에서 나온 말이다. 별이 ‘중요하다’는 뜻을 가진 어휘인 바와 같이, 아스테리스크 별표는 강조의 의미가 있다.
[4] Petra 사막의 동굴 도시는 카타콤부 즉 사람들이 살아가고 먹고 자는 생활공간이자 동시에 묘지이기도 했다. 투키디데스의 매장 관련 이야기, 밀로스 섬의 카타콤부, 페트라 카타콤부, 이렇게 매장에 대한 이야기가 연결된다. 동굴안의 카타콤부에서 사람들이 급히 죽어간 원인에는 전염병, 정치적 종교적 박해, 재해재난사고 등의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5] 말했다, 대답했다, 진술했다, 답변했다, 반박했다, 해명했다, 이런 단어는 상호교환적이고 또 한 단어로 통일해서 쓴다고 해서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 문맥 속에서 의미와 뜻이 더욱 분명해지거나 각각 달라질 수 있다. 해당 단어의 적재적소에 따라 의미가 확장되고 정확해진다.
[6] 금융 증권 언론 정치 권력 세계에서 루머(rumor) 정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모두가 인정한다. 루머와 정보의 생산과 유통 구조 그리고 숨어 있는 소문의 진원지와 배후세력의 의도와 진실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는 까닭은 정보는 돈이고 권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리라.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buy the rumor, sell the news)"- 잘 알려진 주식 투자 격언이다. 월 스트리트는 루머의 생산과 유통이 되는 루머 시장 그 자체라고 말해진다. 우리나라에도 “증권가 찌라시”란 말은 단순히 증권가에 한정된 비즈니스 용어 (jargon)나 은어가 아니라 정치 언론 권력세계의 상투어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래 되었다. 소문이 무성하고 소문에 의한 투기 거래가 성행하는 곳 또한 증권가이다. 소문이 없다면 증권가의 생명은 유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재료로 하는 차익거래의 존재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7] 미국에서 우체국은 1825년에 설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우체국 개설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인 1884년이었다. 전보 전화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편지가 의사 소통의 유일하고 주된 수단이었다. 구한말 한국인의 “우편” 제도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을 옮겨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84년 11월말 조선에 우편 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한국인은 편지를 주고 받는 열의만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아서, 수 미터가 넘는 장문의 편지 그것도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그런 편지를 서로 주고 받기는 하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급히 적어 보내는 관계로 돈 많은 양반은 하인을 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은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정부가 우편 배달의 일을 맡는다는 것 그것도 돈을 받고 한다는 것은 위엄 있는 왕실 조정을 비하시키는 일이라고 여기는 의견도 있었다. 신식 우편 제도는 얼마 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발행된 우표는 우체국 소인 한번 찍혀보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무용지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A Korean Coup d'Etat”, The Atlantic Monthly, Nov 1886, 599-618, at 604.)
[8] 잭슨 대통령 (1829-1837)은 동부 기득권층에 반발하여 공직은 “임기제 Term limits; rotation in office theory”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정치적자기 지지자들로 임명하는 엽관제(Spoils system) 인사 정책을 실시했다. 잭슨의 집권 1기에 연방공무원 중 20% 정도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9] 화자인 변호사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종신직인 법관의 직장을 잃었다는 점에서 정권 교체로 인해서 직장을 잃었던 바틀비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다.
[10] 편지는 수신자가 받을 것이라는 결과를 가정하고 쓴다. 그러므로 편지를 보낸 송신자보다 편지의 상대방 즉 수신자에게 도달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영미판례법은 우리나라의 공시 송달 제도와는 달리 수신자가 직접 수취했다는 사실을 송신자가 입증해야 한다. (Depew v. Wheelan 6 Blackf. 485 (1843)).
[11] “Dead Letter Office”는 “수신자 불명 우편물 처리소”. 소문자 “dead letter”의 의미는 법률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법률의 효력이 더 이상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현재 사형집행법률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사형 집행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런 상황) 즉 법률이“유명무실하다”는 뜻이다.
[12]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강에서의 삶”에서 “의사가 되고 나서 얻은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더 많지 않는가?”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영미국의 한 분야에 천착하는 전문가 시스템이 대륙법국가의 일반 관료 시스템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논자도 존재한다.
[13]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일터에서 해고당한 사람이라면 어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타고난 능력과 적성이 있으므로 적재적소가 필요하고, 전문가의 능력(competence)이 강조된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막막한 절망감(pallid hopelessness)”과 타고난 고독감을 가진 바틀비가 수신자 불명 편지를 다루는 일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자살할 이유를 딱히 찾아보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특성의 직업이 다른 사람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그의 타고난 운명(fate)이었는지도 모른다. 형평법 법원의 법관이나 변호사는 죽은 사람의 일을 다루는 일 즉 “죽음의 전문가”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와 바틀비는 서로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영미법은 전문가 시스템에 기반하는 반면 대륙법국가의 공무원 제도는 일반 관료 시스템(전문적인 한 부서에 머무를지 않고 순환보직형)에 의존한다.
[14] “Sometimes from out the folded paper the pale clerk takes a ring.” 이 문장에서 “the pale clerk”을 “얼굴이 창백한 직원”으로 번역한다면 그것은 오역으로 여겨진다. “pale”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jurisdiction of an authority, territory under an authority's jurisdiction”으로 설명한다. 참고로 “beyond the pale”는 “상궤를 벗어난”“용납될 수 없는” 뜻의 관용어다. “the pale clerk takes a ring”이 문장에서 사용된 “pale”은 부정관사 a 가 아닌 정관사가 붙여진 “the pale”이다. “창백한” 뜻이 아니라 “정당한 권한이 있는”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비싼 반지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연방정부 소속 우체국”에 정식 근무하는 직원 즉 수신자 불명 우편물을 수색 검사할 정당한 법적 권한이 있는 직원이 발견했다는 뜻이다. “Only the clerks of the Dead Letter Office had permission to open letters.”
[15] 아포스트로피(apostrophe) 수사적 표현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아포스트로피 수사적 표현은 거론된 사람(바틀비)은 이제 죽고 없다. 여기에 현재 없는 사람을 두고서 한 말을 쓸 때 사용된다. 아아, 비록 그는 갔지만, 인간의 삶은 죽고 나서 깨닫는 것! 만시지탄. 사람의 일은 항상 일이 지나고 나야 알 수 있다는 것. 모멘토 모리(Memento mori) “뒤돌아 보아라! 당신도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Look behind you! Remember that you are but a man!)"
[16] 죽음의 의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7장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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