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분의 표현을 빌어서 나도 퇴출의 변을 조리 있게 전달하고 싶고
망국인 님 처럼 주어 동사 목적격 소유격 관계대명사 제대로 동원하여
조리 있게 설명하며 잘도 쓰고 싶으나
배운 것이라고는 엄부슬하 문일지십만이 허용되고
한 마디 하면 두 마디 건너 뛰는
우수반 20:80 출신이라 우물안 한계가 농심라면 만큼이나 느끼해져
타오르는 바람 따라 일어서고 바람 따라 먼저 눕는 이름 없는
이 불초 소생 한 억새풀이
산굼부리에도 새평원에도 을숙도에도 섬진강에도 드러 눕지 못하고
그저 불같은 욕정 따라 발정난 암캐 마냥
맨 몸으로 쏘씨기 불로 타오르는 불초로 뒹글었던 한토마를
이제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자진 퇴출함을 맹서합니다.
컴만 off 하면 되는 세상에서 헤어짐의 수인사를 한다는 것이 우습고
애초부터 어떤 만남도 없었던 공간에서 무슨 헤어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제가 여기를 떠난다고 말하고 떠난 때가 2번이고 이제 사나이 3번일 터인데
대통령도 연임을 하는 판이어서 2번 까지는 가능하지만
3번은 돌아오지 않는 강을 넘는다는 말이 되겠지요.
돌아 오지 못할 다리가 자유의 다리라면 다시 돌아 올 테고
망각의 강이라면 마릴린 먼로 처럼 기억의 한 쪽으로 사라지겠지요.
님이 얘기한 최인훈의 광장 소설도 있고 하는데
625 동란 후 이남도 아니고 이북도 아닌 제 3세계를 택한 인민군포로 중에
인도를 거쳐서 브라질에 정착하여 의사가 된 사람이
한국말을 거의 다 잊어 먹고 독신으로 사는 모습이 mbc에도 방영되었다고 합니다.
나도 내 가족이 없었다면 그처럼 한국말을 잊고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한국인의 뿌리를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은 없으나
현재까지 한국의 거짓이 판치고
포용성이 없는 이데올로기 싸움판만 있다는 자체가 싫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그러나 나에겐 너무나 많은 과거가 나의 기억을 붙잡고 있었고
내가 잊혀지고자 하는 것은 더욱 더 떠나가지 않았음을 알았죠.
차차 처다 보지 않는 습성과 잊고 버리는 기술을 배워 가면서도
내 조국에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한 편의 그리움은
더욱 생치기로 남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 새벽기도 하시는 것처럼
(내가 기여한 일은 없으나) 내 조국이 잘 되기만 빌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저 바람과 세월에 내버려 두는 허허실실 무관심의 지혜를 터득하였던 중
인터넷 신기술이 어느 날 갑자기 회오리 바람으로 일어 났지요.
내 자식에게 걸 수 잇는 가장 큰 희망이 노벨상 수상이고
…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올라
...
평소에는 주간지 월간지 정도만 보다가
뭐 10년이면 별로 긴 세월이 아닐 수도 있지만
강물이 흐르고 흘러 강산이 변한 시간에
써보지 못한 한글을 쓰는 즐거움으로 토론마당을 뛰어 들었고
그런 나의 어설픈 참여는
이제 기웃 거린지 1년에서 마이너스 2달이 되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기쁨으로
오래 간만에 한국말을 한국어로 표현한 그 즐거움으로
첫 키스의 날카로운 추억처럼
남녀가 혀를 서로 맞물려 뒹구는 그런 접물레의 기대로 노니면서
나도 생로병사와 5욕7정이 있는 인간인지라
그간 기쁨과 슬픔을 토로하기도 했고 때
론 아픔과 분노를 토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카로운 기대가 있었기에 내게 돈이 대는 사람에게는 소홀히 하면서도
여기 이 마당에서 제에게 성실하게 진정으로 대한 분들의 글에는
최소한의 답장은 다들 해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나와서 배운 사람 배웠다는 사람에게는 민들레 처럼 달라 붙어 본 내가
처음에는 어중이 떠중이가 내게 말을 걸어와도
다들 있는 그대로 대해 드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배운 사람들에게 보내 본 저의 물음에 대해서 답은
별로 기대 만큼 받아 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뭐 실망했다 안타깝타 하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에 무슨 목적으로 왜 글을 쓰느냐고 할 때
타임 지 에세이를 카피하면서
나의 생각을 표현한 적이 있는 데
그 때 어느 분이 "놀기 위해서" 라고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누구나 놀기 위해서 여기 오는데
제가 뭐라고 여기서도 도덕 찾고 의미 찾고 하면서
너와나는 변치 말자고 댕기 풀며 맹세한 내가 잘못이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그저 놀았던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아쉬울 것도 없지요.
한국책은 다 버리고 온 내가 여기서 잊혀진 시도 음악도 들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보면서 박인환 윤동주 시를 보면서
수구초심을 아직은 느낄 여유가 아닌 나인데
그 흔한 돌팔매질 하나 던저 보지 못한 저이지만
과거의 기억이 덜컹 덜컹 솟아 나더군요.
신라 고승 솔거가 황룡사인가에 그린 소나무 그림에
나는 새가 진짜인 줄 알고 앉으려다 그만 떨어졌다는 옛날 얘기를 보면
솔거가 그림을 진짜로 잘 그린 것이 아니라 나는 새가 4지선다형 교육 때문에
분별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로 맨 땅에 헤딩한 나는 새가 잘못이라고 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 보는 제가
내 그저 놀고 가면 되는 마당에
내가 왜 몇 시간만이라도
내가 진짜로 내 앞에서 진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집착했는지 모릅니다.
아마 제가 마음이 괴로운 데 마땅한 여가 취미를 챙기지 못해서 이겠지요.
주위에서
자기는 군대도 안간 사람이 을 빨갱이로 모는 것을 직접 보고
망한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 치는 것을 직접 보고
모럴 헤저드가 가는 곳 마다 심각하고
.........
그런 한국인데
그런 곳에서 용캐도 살고 있는 나의 부모형제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나의 부모형제를 향한 그리움의 눈물이 아닌
산천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는데
오직 변하지 못한 내를 한탄스러워 하는 나의 자괴감이었습니다.
왜 나는 아직도 사람을 믿고 속고 살고 있을까?하면서
내 자신을 다시 채찍질 하고 또 해 보지요.
그리고자 하는 붓의 그림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고
보고자 하는 글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더욱 더 한 여님의 글은 내 맹서대로 꼭 찾아서 읽어 봤습니다.
아마도 남녀 상열지사의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리라 여기는
그런 남자의 도둑놈 심정이라고 하여도 좋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내 마누라가 이런 나의 글을 보면 내가 죽일 놈이 되겠지요.
감히 자기 여편네 놔 두고
엄연한 지아비 있는 남의 여자를 감히 훔쳐 보다니 하면서 말이죠.
쳐다 보는 것만으로 간음이 되는데 말이죠.
그러나 세상을 이분법으로 본다면 하나 아니면 둘 아닌가 하면서 위로 하지요.
남자 아니면 여자. on or off. 보수 아니면 진보.
하지만 난 아무리 얼굴이 보이지 않고 손목 잡은 적이 없다 하더라도
여기서 어떠한 여자에게라도 치마를 두르고 나온 어떠한 사람에게도
내가 조폭 따라지 같이 행동한 글은 없다고 봅니다.
이것을 나의 나이와 위치라고 우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기 저기 게시판이란 곳이
진실을 분간하길 어려운 정도로 난장판으로 흐른 것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나의 반골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얼굴 감쳐 진 곳에 자기 팬티도 내리지 못하는 정도로 엄숙한 곳이라면
오히려 제가 먼저 팬티바람에다 욕바가지에다 댄스 무당춤은
다 혼자 했을거라고도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이름으로 불러 본 분들에겐 저를 오해하고 있을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제가 부른 이름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아 온 날들처럼
내가 올린 글엔 큰 하자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저의 출신성분 배경부터 현재까지 처음에 밝히고 들어 온
처음엔 잘 몰라서 작전상 미숙을 범했는데
내가 쓴 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마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역사를 믿고 산다는 사람들처럼 남을 의식하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도 미래를 위해서 삽니다.
그런 미래는 나는 이미 죽어 있을 테고 내가 살아 있는 날 까지
나를 위해서 책임 지고 자신 있게 살아 갑니다.
남을 위해 살지 않고 내 자신을 위해 내 자신을 버리지 못합니다.
소생 본디 보고 들은 바 부족하나
배운 것 하나 있고 깨우친 것 하나 있어 백학유식으로 긴히 몇 말씀 올리고자
잡것이라 물리치지 아니하고 경청만 해 주신다면
백골이 난망하리라 드러 누운 임제 선상을 읊으며 권하고 또 권했건만
푸른 기와 밑 칼국시 집
파란 필드에 꽃힌
황색 지팡이에는
파리떼 모사꾼으로 가득한 세상에
못된 주뎅이만 함부로 놀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검은 숯에 검게 탄 날개 잃은 새일 뿐!
불러도 대답 없고 후회 해도 소용 없는
이름 없는 바다새가
메아리 없는 소리새 되었다가
이제 악소리도 없는 바람새로 사라집니다요.
연작이 노니는 곳에 세상 유한인줄 모르는 봉황이 올 리가 만무하고
참새 지저귀는 방앗간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독수리는 날지 않는 법
두견새 소쩍새 우는 툇마당에 바다 넓은 줄 모르는 알바트로스는 날지 않는 법
닭대가리가 군계일학이 될 수 없는 법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고
벱새가 황새 걸음마 할 수 없는 세상 이치를 거스릴 수는 없는 법
봄은 홍매화가 피는 세월의 흐름이건만
나의 메아리 처럼 으악새는 가을에 떠나야 제격인데
그래야 배웅이라도 받는 나의 먼길 여행일 터인데 이
봄날에 봄비에 젖어서 안개 낀 공원으로 사라지니
저격수라는 영화처럼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면서 자위합니다.
보이지 않는 나를 위해서 사랑과 미움을 보네 주신 모든 분들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설악산 운무-꿈에는 보일거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서로가 손에 손을 맞잡고
자유의 뱃노래를 부르는
내 조국 내 형제의
진실한 기쁨이 오늘 밤 내 꿈에는 보일거다.
미워도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싶어서 찾아 보아는 했지만 실패해서
다시 들어 보는 노래인데 별로 감흥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주제가라고 생각되어서
노래 하나 뛰웁니다.
이생명 다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영원히 그사람을 사랑해선 안될 사람
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번
아 아 안녕
지난날 아픈 가슴 오늘의 슬픔이여
여자의 숙명인가 운명의 장난인가
나만이 가야하는 그 사랑의 길이기에
울면서 돌아설 때 미워도 다시 한번
아 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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