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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월스트리트변호사 스토리

필경사 바틀비 스토리-II

by 추홍희블로그 2022. 9. 19.

진저넛,”“너는 또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리 작은 지지표[1]라도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서 내가 물었다. 

 

변호사님, 제 생각에 그는 약간 미친[2] 사람 같아요.”[3] 진저넛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지,” 칸막이 쪽을 향해 내가 말했다. “즉시 나와서 네 의무를 수행하라.”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매우 난처해져서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또다시 처리해야 될 업무로 인해서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이번에도 이 딜레마에 대한 처리를 나중에 한가한 시간이 날 때까지 미루기로 결정했다. 약간 힘이 부치기도했지만, 우리는 바틀비없이 문서 검토작업을 해냈다.  터키가 한 두장 넘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은 통상적인 관례에 크게 벗어난다는 의견을 정중하게 내비치기도 하였고, 니퍼즈는 신경과민성 소화불량으로 인해서, 의자에서 몸을 홱 비틀어대고 이따금씩 이를 갈면서 칸막이 뒤의 고집불통의 바보멍청이에게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이건 여담인데 그(니퍼즈)로서는, 수고비를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해주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는 중에 바틀비는 자신의 은둔처에 틀어 박혀 앉아, 자신에게 떨어지는 특이한 업무를 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에는 눈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필경사가또 하나의 장문의 문서 작업에 몰두한 지 며칠이 지나갔다.  지난 번의 놀랄만한 행동 때문에 나는 그의 행동거지를 면밀히 주시하게 되었다.  내가 살펴보니 그는 식사하러 밖을 나가지도 않았다.  아예 외출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사실로는 그가 내 사무실을 벗어난 모습을 결코 본 적이 정말로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구석에서 지키고 있는 영원한 보초였다.  그렇지만 오전, 열한시경에, 내 자리에 앉아서는 보이지 않는 동작으로 그쪽으로 조용하게 신호를 보내면 진저넛이 바틀비의 칸막이 입구 쪽으로 다가 간다는 것을 나는 알아챘다.  그런 다음 이 소년은 몇 펜스를 쨍그랑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가, 생강 케이크를 한 웅큼 갖고 다시 들어와 바틀비의 은신처에 전달하고수고비조로 빵두 조각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생강빵만 먹고 사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는 제대로 된 식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채식주의자임에 틀림없을텐데,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채소조차도 전혀 먹지 않고, 오로지 생강빵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러자 내 머리 속은 오로지 생강빵만 먹고 사는 사람의 체질에 변화를 주는 확실한 효과에 관련된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이 생강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생강빵의 특이한 몸체를 이루는 구성요소 중 하나로써 생강이 들어가고 또한 향긋한 맛을 그윽하게 풍기는 성분으로써 생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4] 그러면 여기에서 생강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얼큰하고 상큼한것. 바틀비가 얼큰하고 상큼한가?[5]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생강은 바틀비에게 어떤 효과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생강이 얼큰하지도 상큼하지도 않는 것을 골랐을 것 같다.[6]

 

수동적 저항만큼 성실한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  만약 그런 저항의 대상자가 몰인정하지 않은 성격이고, 또 저항하는 사람의 수동성이 완전 무해할 경우, 저항의 대상자가 기분이 좋을 때에는, 그의 결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명되는 것에 대해 그의 마음속으로는 동정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확히 그런 식으로, 나는 바틀비와 그의 행동거지를 이해했다.  불쌍한 친구!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7]  그가 오만방자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에게서 나타나는 기행들이 그의 본의에서 나온 것이 아님은 그의 태도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된다.  그는 내게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와 좋게 지낼 수 있다.  만일 내가 그를 내쫓는다면 아마도 그는 좀 너그럽지 못한 고용주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이며, 어쩌면 비참하게 쫓겨나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  확실해. 여기서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달콤한 자기확신에 빠져들 수 있다.  바틀비와 사이좋게 지내고, 그의 특이한 반항심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것은 내게 무슨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다, 다른 한편으론 궁극적으로 내 양심[8]의 한 조각을 내 영혼에 비축하는 것이다.[9] 그러나 이런 기분이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바틀비의 수동성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나는 새로운 적대관계로 그에 맞섬으로써 그에게서 내 자신속에 불같이 일고 있는 불만에 상응하는 무언가성난 불만을 촉발시키고 싶은 묘한 충동감을 느꼈다.  그러나 사실은 차라리 윈저 비누[10] 조각을 손마디로 쳐서 불을 지피려고 하는 편이 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나는 사악한 충동감에[11] 사로 잡혔고, 이어서 다음과 같은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그 문서 필사 일이 모두 끝나면, 내가 너와 함께 비교 검토할 테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  설마 그런 고집불통의 변덕을 마냥 부리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가까운 접문을 밀어 제치고 터키와 니퍼즈를 돌아보며 흥분된 모습으로 고함치듯 외쳤다. 

 

그가 두 번째나 자기 문서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터키, 너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

 

이 시간 때는 오후였다는 것을 상기해야 된다.  터키는 벗겨진 머리엔 땀이 흠뻑 솟고, 양손은 낚시줄 던지듯 서류더미에 파묻고, 몸은 놋쇠 보일러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터키가 으르렁댔다.  내 생각 같아서는 당장 그의 칸막이 너머로 쳐들어가, 두 눈이 멍들도록 두들겨 패줄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고선, 터키는 벌떡 일어나 양팔을 휘두르며 권투 시합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려고 막 뛰어 갈려는 찰나, 오후 시간에 터키의 호전성을 경솔하게 잘못 자극한 결과라는 것을 급히 깨닫고서, 내가 그를 붙들었다.

 

터키, 자리에 앉아.” 내가 말했다. “앉고 나서 니퍼즈가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봐.  니퍼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바틀비를 즉시 해고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을까?”

 

죄송하지만, 그건 변호사님이 결정할 일입니다, 변호사님.  나는 그의 행동이 꽤 유별나며, 또 터키와 나랑 비교해 보면, 정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지나가는 일시적인 변덕일 수도 있고요.”

 

아하,” 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면 이상하게도 네 생각이 변했구만.  이제는 그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모두 맥주 탓이겠죠.”  터키가 소리를 높였다.  유순함은 맥주의 영향이지요.  오늘 니퍼즈와 함께 식사를 했거든요.  변호사님도 내가 얼마나 점잖은지 알 수 있겠죠.  내가 가서 그의 두 눈이 멍들도록 두들겨 패줄까요?”

 

너 지금 바틀비를 두고 하는 말 같은데. 그건 안돼.  터키, 오늘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며 다음과 같이 재차 확인했다: “정식으로 요청하니[12], 주먹을 거두어라.”

 

나는 문을 닫고, 다시 바틀비에게로 다가갔다.  나는 내 자신의 운명을 재촉하고 싶은 유혹을 한층 더 느꼈다.  내가 다시 반항의 대상이 되기를 애타게 바랐던 것이다.  바틀비가 사무실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전저넛이 지금 밖에 나가고 없다.  네가 대신 잠깐 우체국에 갔다 와, 그렇게 할 수 있지?  (우체국은 걸어서 3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거기 가서 나한테 온 우편물이 와있는지 확인해 주기 바란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가 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난 안하고 싶어요.[13]

 

나는 비틀거리며 내 책상으로 돌아왔고, 책상에 앉아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내게 숨어 있던 완강함이 되살아났다.

 

이 말라빠지고 땡전 한푼 없는 꼬맹이[14] 같은 내 종업원에게 주인인 내가 굴욕스럽게 퇴짜를 맞는 또다른 방법은 없을까?[15]  완전히 합리적인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을 더 추가해야 그가 틀림없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할까?[16][17]

 

바틀비!”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더욱 큰 소리로 불렀다.

 

묵묵부답이었다.

 

바틀비,”이번에는 내가 고함치듯 불렀다.

 

귀신은 마술적주문을 외워야 [18] 등장하듯, 세번의 소환 끝에비로소 바틀비가 자신의 은둔처 입구에 나타났다.

 

옆방에 가서 니퍼즈한테 내가 부른다고 말해줘.”

 

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그는 공손하고 차분하게 대답하고는 그냥 사뿐히 사라졌다.

 

그래 아주 잘했어, 바틀비,” 나는 아주 침착하고 매우 엄정한목소리로 내리깔고 나지막이 말하며, 당장이라도 어떤 끔찍한 보복 조치를취하겠다는 번복할 수 없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비쳤다.  그 순간에는 실제로 내가 그런 식의 어떤 조치를 취할 생각이 반쯤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무엇보다, 오늘은 심적 부담감과 당혹감으로 고통을 많이 겪었으니, 이만 모자 쓰고 바로 퇴근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 모든 일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어느 새 내 사무실에서 확정된 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바틀비라는 이름의 창백한 모습의 한 젊은 필경사가 내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갖게 되었다는 것.  그는 시중의 요율대로 한 장(100단어) 4센트의 돈을 받고 내가 일감을 주면 문서 필사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필사한 사본을 검토하는 작업에서는 항상 면제받고, 그 의무는 철저함이 말할 것도 없이, 더 뛰어나다는 칭찬 한 마디로, 터키와 니퍼즈에게 전가된다는 것.  게다가, 이 바틀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건 심부름이란 일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결코 맡아 하지 않는다는 것. 설령 그런 일을 맡아 달라고그에게 간청을 하더라도, 그는 그것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는 것-이걸 달리 표현하면,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한다는 것-을 거의가 다 알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바틀비와의 화해가 눈에 띄게 이루어졌다.  그의 착실함, 전혀 방탕하지 않은 점, 부단한 근면성 (그가 칸막이 뒤에서 선 채로 공상에 빠지고 싶어하는 그 때를 제외하고), 높은 침착성,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태도 이러한 장점들로 인해서 그는 사무실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그 중에 으뜸가는 것은 바로 이것-바틀비는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제일 먼저 와 있고, 하루 온 종일 그 자리를 지키며, 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정직성에 각별한 신뢰감을 가졌다.[19]  내게 매우 중요한 서류들도 그에게 맡기면 지극히 안전하다고 느꼈다.  물론 때로는 아무리 해도, 내가 그에게 간헐적으로 무심코 화를 내는 것까지는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사무실에 머물면서 바틀비가 누리는 암묵적인 약속 사항[20]이라고 볼 수 있는, 그 기이한 행태, 특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면제사항들을 항상 명심하고 있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급한 용무를 신속히 처리하려는 열망에서, 무심코 짧고, 급한 어조로, 바틀비를 소환[21]하기도 했는데, 예컨대, 빨간 끈[22]으로 어떤 서류들을하나로 묶을 때 첫번째 끈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달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랬다.  그러면 당연하다는듯이, 칸막이 뒤에서, “나는 그걸 안하고 싶어요,”라는 뻔한 대답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그러면, 인간 본성중의 하나이고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적 약점[23]을 지닌 한 인간인 이상, 그렇게 삐뚤어진 것[24]- 그런 비합리성에 대해 어찌 언짢아 하며 호통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당하는 이런 종류의 거절이 매번 누적됨에 따라 부주의로 인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실수를 내가 다시 반복할 개연성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은,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찬 법원 근처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대다수 법조인들의 관례에 따라, 내 사무실문 열쇠도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 사무실을 매일 먼지 털고 바닥 치우고 매주 걸레로 바닥을 닦아 청소하는 다락방 아주머니가 갖고 있었다.  또 하나는 편의상 터키가 갖고 있었다.  세번째 것은 가끔 내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네번째 것은 누가 갖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려, 트리니티 교회[25]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 도착하니, 설교 시간보다 조금 일러서 잠깐 내 사무실에나 들렀다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열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자물쇠에 꽂아 넣으니, 열쇠가 안쪽에서 끼워놓은 뭔가에 걸려 들어가지가 않았다.  깜짝 놀라서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황당하게도 안쪽에서 열쇠가 돌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 야윈 얼굴모습을 내게 들이밀면서, 문을 반쯤 정도 열고 붙잡은 채, 위는 셔츠 차림에다, 아래는 요상하게 헤진 아침 속옷 차림의, 바틀비 유령[26]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미안하게 됐지만, 지금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한창 하는 중이기 때문에, 따라서 당장은 내가 들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간단히 한두 마디 말을 그가 덧붙였는데, 아마도 내가 근처의 구역을 두세 번 걸어 돌아보는 것이 나을 테고, 그 때쯤이면 자기가 하던 일을 끝낼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내 변호사 사무실을 점유하고 있으면서, 곧 쓰러질 듯 야위었고 신사같이 태연하되, 침착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이는 바틀비의 전혀 얘기치 못한 등장에 정말 묘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나는 바로 내 사무실문 앞에서 황급히 도망치듯 나와버릴 수 밖에 없었고, 그가 바라는 대로 했다.  그러나 이 황당한 필경사의 차분하고 뻔뻔스런 대범함에 무모한 반항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격정이 치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를 무장해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예전에 있던 남자다운 박력마저 앗아가 버린 것은 바로 놀라울 정도의 그의 유순함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용한 종업원에게서 오히려 지시를 받고, 더욱이 자기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는 그렇게 어이없는 일을 당할 때도 태연한 사람이라면, 바로 그러는 동안, 남자다움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틀비가 셔츠 차림에다 또 헤기진 옷을 입은 상태로 일요일 아침에 내 사무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나는 좌불안석이되었다. 뭔가 그릇된 일을 저질렀을까?  그건 분명 아닐테지.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이불가능한 거고.  바틀비가 부도덕한 사람이라고는 한 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가 거기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필사를?  그것도 분명히 아니야.  그가 무슨 기이한 행동을 보이든 간에, 바틀비는 정말 바르고 단정한 사람이었어.  그는 거의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책상에 앉아 있을 사람이 결코 아닐 꺼다. 더욱이, 오늘은 일요일인데, 무슨 세속적인 일 때문에 이날 지켜야 하는 전통적인 예법을 위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바틀비에게는 아예 꺼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2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끝없는 호기심으로 넘쳤고, 그러다가 마침내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무런 막힘 없이 열쇠를 꽂아 넣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틀비는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사무실 안을 쭉 둘러보고, 칸막이 뒤쪽까지 들여다보았으나, 그가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그 자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기간은 분명하지 않지만 바틀비가 내 사무실에서 먹고, 입고, 잤으며,[28] 그것도 접시, 거울, 침대도 없이 그렇게 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낡아빠진 소파의 쿠션있는 자리에는 살짝, 드러누운 형태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책상 아래에는 둘둘 말아놓은 담요 한장이치워져 있었고, 텅빈 난로의 받침대 아래에는 검은 구두약 통과 구두솔이 놓여 있고, 의자 위에는 비누와 더러운 타월 하나가 들어있는 양철 대야가 놓여 있고, 신문지 속에는 생강빵 부스러기와 치즈 한 조각이 싸여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바틀비가 이곳을 거처로 삼아, 독신자 숙소로 혼자 이용해 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29]  그러자 즉각 다음과 같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정말 비참한 외로움과 고독함이 여기서 드러나는 구나!  그의 곤궁함도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의 고독은 얼마나 더 끔찍한가!  생각해 보라.  월 스트리트는 일요일이면, 폐허가 된 고대 도시 페트라[30]처럼 인적도 없이 텅 빈다.  평일 밤도 텅 빈 그 자체다.  이 건물 역시 평일 낮에는 일과 사람들로 법석대다가, 밤이 되면 적막함만이 메아리 칠 뿐이며, 일요일은 내내 쥐 죽은 듯 쓸쓸하다.  그런데 바틀비는 여기에 거처를 트고, 한 때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바로 그곳이 적막함만으로 가득 찬 광경을 홀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순진해서 당한 마리우스[31]가 카르타고[32]의 폐허 속에서 시름에 잠긴 모습 같다고나 할까!

 

난생 처음으로 나의 마음은 가슴이 찔리듯 참을 수 없는 격한 슬픔의 감정에 휩싸였다.  이제껏 나는 아름다운 슬픔밖에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다같은 인간이라는 형제애를 느끼면서 나는 슬픈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길이 없다.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  아마 나나 바틀비나 다같은 아담의 자손이어서가 아닐까!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화려한 나들이옷으로 차려 입고, 미시시피시 강 같이 넓은 브로드웨이 거리를 백조가 미끄러지듯 유유히 나아가는,[33]그 화사한 비단옷[34]과 생기발랄한 얼굴들을 기억했다.  나는, 그들을 윤기없이 창백한 필경사와 대조해 보고, 내 스스로 자문해 봤다.  행복은 빛을 불러들이기에 사람들은 세상이 밝다고 여기는 반면, 불행은 저 멀리 숨어 있기에 사람들은 불행이 없다고 여길 뿐이 아닌가!  이런 슬픈 공상들은-분명 병들고 어리석은 두뇌가 낳은 키메라[35]같은- 바틀비의 특이한 행동과 관련된 좀더 특별한 다른 생각들로 이어졌다.  어떤 이상한 것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 필경사의 창백한 형체는, 낯선 사람들이 무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떨리는 수의에 덮인 채 입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문득 자물쇠에 여는 쪽으로 열쇠가 꽂혀 있는, 바틀비의 닫혀진 책상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내가 무슨 나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비정하게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책상은 내 소유물이고, 거기에 들어있는 내용물 또한 내 것이므로, 나는 대담하게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여겼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서류들도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었다.  서류 정리용 분류함은 깊이 들어가 있어서 내가 서류철들을 꺼내고, 깊숙한 곳까지 더듬어 보았다.  바로 거기에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그걸 끄집어 냈다.  그것은 오래된 밴대나[36] 비단 손수건으로써, 무겁고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매듭을 풀어 보니, 그건 푼돈을 모아 놓은 저축은행 저금통이었다.[37]

 

그동안 내가 이 사람에게서 발견한 그 모든 알 수 없는 수수께끼들이 막 떠올랐다.  내 기억에 그는 대답할 때 빼고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고, 때로는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상당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독서하는- 아니 신문이라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오랜 시간 동안 칸막이 뒤쪽의 희미한 창가에 서서, 벽돌로 막혀진 벽[38]을 쳐다보곤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내 분명한 기억으론 그가 무슨 카페나 식당을 찾아간 적이 없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서 알 수 있듯이 터키처럼 맥주를 마신다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처럼, 커피나 차를 마신 적도 없었다.  내가 알만한 어떤 특별한 곳에도, 간 적이 없다.  사실 지금의 이 경우 외에는 산책 한번 나간 적도 없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이 세계 어디에라도 사는 친척이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토록 야위고 창백하지만 자신의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스스로 꺼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기억으론 그에게는 어떤 창백함의 무의식적인 분출- 내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희미한 귀족적 도도함이랄까, 아니, 그것보다 준엄한 과묵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아무튼 그런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정말로 그런 분위기에 눌려서 나는 그의 특이한 행동들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가 오랫동안 쭉 전혀 꼼짝도 않는 것으로 봐서 내가 알아차릴 수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칸막이 뒤에 선 채 막혀진 벽을 응시하며 공상에 빠져 있을 것이 분명할 텐데도, 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미미한 일 하나 그에게 부탁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또 그것을 그가 내 사무실을 자신의 지속적인 거처이자 사는 집으로 삼고 있었다는 조금 전에 발견한 사실과 결합하면서, 그리고 그의 병적인 우울증까지 빠뜨리지 않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다시 말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두루 살펴 보자, 내가 조금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겠다는 느낌이 스며 들기 시작했다.  내게 드는 첫 번째 감정은 순수한 우울함과 진실한 연민이라는 바로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나 내 상상 속에서, 바틀비의 절망적인 고독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에 비례하여 바로 그 똑같은 우울함이 두려움으로 겹치고, 바로 그 똑 같은 연민이 혐오감으로 겹쳐지는 것이었다.  비참함을 생각하거나 또는 직접 보게 될 때 어느 일정한 정도까지는 우리들에게서 최고도의 애정[39]이 우러나올 수 있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 과연 이 말이 진실일 뿐만 아니라, 너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어김없이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이기심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과도한 기질적 질환[40]은 어떻게 치유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연민의 정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연민의 정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인식을 마침내 갖게 되면, 영혼은 연민을 버릴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날 아침 내가 목격한 것에 의해 그 필경사가 타고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납득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을 위해서는 자선[41]을 베풀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받는 고통은 육신 때문이 아니다.  고통스러움을 겪는 것은 그의 영혼이다.  내 구호의 손길이 그의 영혼 속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42]

 

나는 그날 아침 트리니티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자 하였던 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찌됐든, 내가 직접 목격한 이상 나는 당분간 교회에 나갈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바틀비를 어떻게 해야 될 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고심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강구하기로 결론 내렸다.  다음날 아침, 그에게 그의 이력과 기타 사항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차분하게 해 던져 보는데, 만약 그가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분명하게 또는 마지못해 거절한다면 (내 생각에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다), 그럴 경우 얼마가 되건 내가 그에게 지급해야 할 그간의 급료에다 20달러 짜리 지폐 한 장을 더 얹어 주면서, 이제 그의 근무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나는 말할 것이다.[43]  하지만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그렇게 하겠으며, 특히 그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거기가 어디가 되었건 간에, 그의 여비를 내가 기꺼이 부담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고향 집에 돌아간 후, 언제라도 무슨 도움이 필요할 경우가 생긴다면, 내게 편지 한 통 보내주고 그러면 틀림없이 내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음 날 오전 시간이었다.

 

바틀비,” 가림막 뒤에 있는 그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이번에도 계속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이리 와.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네게 간단히 이야기나 할까 해서 그래.”

 

이 말을 듣고 그는 아무런 소리 없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틀비, 네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말해주겠니?”[44]

 

나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네 신상에 대해 말해주겠나?”

 

나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게 말해야 되는 것을 거부할 무슨 적절한 사유가 있다면 그걸 말해 보겠나?  나는 네한테 친근감을 느끼는데.”[45]

 

그는 내가 말하는 동안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가 앉은 자리 바로 뒤, 내 머리 위로 15센티미터쯤 떨어져 놓여 있는 키케로[46] 흉상에 계속 눈길[47]을 맞추고 거길 쳐다보고 있었다.[48]

 

바틀비, 네 답변을 듣고 싶은데 말해 보게나?”  그가 답변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여유 시간을 주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가 말했다.  내가 그의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그의 얼굴 표정은 내내 변하지 않았고, 다만 그 창백하고 힘없는 입술이 살짝 떨렸을 뿐이었다.

 

지금은 내가 어떤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며 그가 말하고서는 다시 그의 은둔처로 물러갔다.[49]

 

내가 고백하건대, 내게 조금 약한 면이 있어서긴 하지만 이번 경우에 나타난 그의 태도가 거슬렸다.[50]  그의 태도 속에는 무시하거나 모독하려는 감정이 숨어 있는 듯 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내게서 받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우와 관용을 고려해 보면, 그의 삐뚤어짐은 배은망덕한 짓으로 보였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내가 어찌해야 될 지에 대해서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그의 행동에 굴욕감을 느꼈고, 그를 해고하기로 이미 결론내고 사무실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무언가 미신적인 것이 내 심장을 두들기고, 내 목적을 실행하지 못하게 막아서고, 만약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이 사람에게 내가 감히 쓰라린 말 한 마디라도 꺼낸다면 나는 천하에 몹쓸 사람이라고 비난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그의 칸막이 뒤쪽으로 내 의자를 친근하게 끌여다 앉으면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바틀비, 그렇다면 네 이력을 밝히는 것은 괘념치 말게나.  하지만 친구로서, 부탁하건대, 가능한 한 이 사무실의 관례를 따라주길 바라네.  내일이나 모레쯤 서류 검토하는 것을 돕겠다고 지금 말해 줘.  간단히 말해서, 하루 이틀 지나면 네가 좀 합리적인 사람[51]이 될 거라고 지금 말해 달라는 거야.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봐, 바틀비.”

 

지금은 좀 합리적으로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죽어가는 시체 같은 그에게서 나온 답변이었다.

 

바로 그때 접문이 열리더니 니퍼즈가 다가왔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심한 소화불량 탓에 유별나게 밤잠을 설친 것이 역력했다.  그가 바틀비의 그 최종적인 말을 엿듣게 된 것이다.

 

하고 싶지 않다?, 니퍼즈가 이를 갈듯이 말했다.  내가 변호사님이라면, 그가 하고 싶다는 말을 하게 만들 텐데요.” 그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그가 하고 싶다는 말을 하게 만들 텐데요.  난 그가 선호하는 것을 주겠어요, 저 고집불통의 당나귀 같은 사람에게는!  변호사님, 이번에 그가 안 하고 싶다고 말한 건, 대체 뭔가요?”

 

바틀비는 손발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미스터 니퍼즈,” 내가 말했다.  넌 당분간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싶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에 나는 이 선호하다(prefer)”라는 단어를 딱히 적절하지 않은 온갖 경우에도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52] 사용하는 습관이 붙게 되었다.  내가 그 필경사와 접촉하게 되면서 내 사고 방식이 이미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몸이 오싹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어떤 탈선의 징후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들자 나는 뭔가 즉결 조치[53]를 재빨리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니퍼즈가 매우 화내고 삐친 표정으로 나가자, 터키가 밝고 공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그가 말했다.  어제 여기 바틀비에 대해서, 내가 생각해봤는데요, 만약 그가 매일 시원한 에일 맥주[54] 1리터 정도를 마시고 싶어하기만 하면, 그가 고쳐질 수 있으며,[55] 그리하여 필사 검증하는 자신의 일에 끼어들게 될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너 역시 그 단어를 쓰는군,” 내가 약간 흥분하여 말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무슨 단어 말씀입니까?” 하고 터키가 물으면서, 칸막이 뒤의 좁아터진 공간으로 공손하게 밀고 들어왔고, 그 바람에 나는 그 속기사와 거의 부딪힐 뻔했다. “무슨 단어 말씀입니까, 변호사님?”

 

나는 여기에 내 혼자 있고 싶습니다,”[56][57] 바틀비가 자신의 사적 공간이 혼잡해진 것에 화가 난 듯 말했다.

 

터키, 저것이 그 단어다,” 내가 말했다. “저것이 바로 그것이다.”

 

, 선호하다 라는 그 단어?  , 그렇죠.  정말 이상한 단어입니다.  나 자신은 그것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님, 말씀 드렸듯이, 만약 그가 그걸 정말 원하기만 한다면.“

 

터키,” 내가 그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넌 제발 그만두게나.”

 

, 물론이죠, 변호사님.  변호사님이 내가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원한다면요.”

 

터키가 물러나가 위해 접문을 열었을 때, 니퍼즈가 자기 책상에서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내가 어떤 문서를 푸른 색 종이와 하얀 색 종이 가운데 어느 쪽에다 필사했으면 싶은지 물었다.[58]  그는 하고 싶다(prefer)’라는 그 단어를 조금도 짓굳은 억양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59]  이 단어가 그의 혀에서 무심결에 자동적으로 튀어 나온 것이 분명했다.  나 자신과 부하 직원들의 머리는 아닐지라도, 말을 이미 상당 정도 변질시킨, 이 미친 사람을 확실히 제거해버려야겠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즉시 해고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다.

 

다음날 바틀비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면벽 공상[60]에 잠긴 채 그냥 창가에 서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왜 필사를 하지 않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어떻게 지금 그만둔다는 거지?  그만 두면 무슨 일을 하려고?”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필사를 안 한다고?”

 

이제 그만입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뭐야?”

 

내가 말해 주지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건가요?”  그가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나는 단호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흐리멍텅해져 있었다.  즉시 내게 떠오른 생각은, 그가 나와 함께 일을 시작한 처음 몇 주 동안 희미한 창가[61]에 앉아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게 필사를 해대더니만 시력이 일시적으로 손상되고 말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었다.[62][63]

 

딱한 모습에 내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에게 뭔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한동안 필사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오히려 잘되었다고 넌지시 말하면서, 나는 그에게 이 기회에 야외로 나가 건강에 좋은 운동을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이런 충고는 통하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며칠 후, 다른 직원들도 없는데다, 다급한 편지를 부쳐야 할 일로 급히 서둘러대던 나는, 바틀비가 다른 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다가, 평소보다는 고분고분해져서, 급한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다녀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딱 거절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다녀와야 했다.

 

여러 날이 그냥 지나갔다.  바틀비의 눈이 좀 나아졌는지 아닌지는 나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외관상으로는 눈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눈이 나아졌는지를 묻자 그가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았다.  어찌됐든 그는 더 이상 필사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마침내 그가 나의 다그침에 대한 답변으로써 필사 일을 영원히 그만두었음을 내게 통보해 주었다.

 

뭐라고!” 내가 소리질렀다.  네 눈이 완치되면-전에 없이 좋아지는-그 때도 필사를 하지 않을 텐가?”

 

난 필사 일을 포기한 겁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그가 슬그머니 나갔다.

 

그는 여는 때처럼 내 사무실의 붙박이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니-그게 가능하다면-그는 예전보다 더한 붙박이가 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왜 거기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는 이제 내게는 목걸이로도 쓸모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짊어지기에도 고통스런 부담만 주는 연자맷돌[64][65]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측은하게 여겼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 걱정을 하였다고 내가 말하면, 그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겠지만, 그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다.[66][67]  그가 친척이나 친구 이름을 하나라도 내게 말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당장 편지를 써서 이 가련한 친구를 어디 가깝고 편한 요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 외로운, 이 넓은 우주에서도 완전히 홀로된 듯했다.  대서양 한 가운데 떠 있는 난파선의 한 조각같이.  결국에는, 내 업무와 연관되어 있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서 다른 모든 고려사항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인격적으로 최선을 다해, 나는 바틀비에게 6일 내에 무조건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다른 거처를 구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가 직접 나서서 이사 갈 채비를 하고 즉각 착수하면, 다른 거처를 정해 나가는 데에 내가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내가 다음 말을 덧붙였다.  바틀비, 그리고 네가 마지막으로 내 사무실을 떠날 때, 비상금도 없이 나가게 하지는 않도록 배려하겠네.  이 시간부터 6[68] 이내라는 것을, 명심하게.”

 

그 기간이 만료되어, 내가 칸막이 뒤를 살짝 들여다보니, 이런! 바틀비가 거기 있었다. 

 

나는 코트 단추를 다 잠그고, 자세를 가다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다 됐다.  네가 이 사무실을 그만 떠나야 한다.  네가 딱하긴 하지만.  여기 돈 있어.  아무튼 넌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여전히 내게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꼭 떠나가야 한다.”

 

그는 대답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이제껏 나는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질박하다 싶을 정도로 높은 정직성에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소한 일에는 매우 경솔한 측면이 있는데, 내 부주의로 바닥에 떨어진 6페니 1실링[69][70] 짜리를 그가 주어서 내게 돌려준 적이 자주 있었다.[71]  그렇기에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은 비범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72]

 

바틀비,” 내가 말했다.  내가 너한테 지불해야 할 남은 일삯이 12달러인데 여기 이렇게 32달러를 내놓을께.[73]  차액 20달러[74]는 네 것이 되는 거다.  이것그냥 받도록 하게나?” 그리고선 내가 그에게 지폐를 건넸다.

 

그러나 그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돈을 여기에다 놓아 두기로 하지.”라고 말하고, 돈을 책상 위에 놓고 문진으로 눌러두었다.  그리고선 나는 모자와 지팡이를 가져 들고 입구로 나가다가살며시 돌아서며 이렇게 덧붙였다. “바틀비, 이 사무실에서 너개인 물건을 꺼낸 다음, 네가 사무실 문을 확실히 잠그도록 하게나- 그땐 너이외엔 모두가 퇴근했을 시간이니까-그리고 미안하지만, 열쇠는 문 앞의 깔개 밑에 살짝 넣어두게나, 그러면 내가 아침에 그걸 찾을 수 있을테야.  내가 다시는 널 보지 못하겠지.  그러니 안녕, 잘 가게.  이제부터 너의 새로운 거처에서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편지로 내게 꼭 통지해 주게나.[75]바틀비, 안녕, 그리고 행운을 비네.”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폐허가 된 사원의 마지막 남은 기둥처럼, 그는 그가 아니라면 텅 비었을 방의 한 복판에 아무 말없이 고독하게 그대로 서 있었다.

 

생각에 잠겨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동안, 내 속의 허영심이 내 동정심을 누그러뜨리고 올라왔다.  바틀비를 제거하는 나의 고수다운 처리 솜씨에 대해 내 스스로 생각해도 무척 대견스럽다고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걸 고수답다[76]고 표현하는데, 객관적인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여길 것이다.  내 일처리 방식의 장점이라면 잡음이 없이 평화롭게 처리해 내는 것이리라.  야비하게 협박을 한다든지, 일종의 허세를 부린다든지, 성질 부리며 겁박한다든지 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 또한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홱홱거리며, 바틀비에게 거지같은 개인 소지품을 싸가지고 당장 나가라며 격한 명령을 쏘아대는 일도 결코 없었다.  이와 비슷한 일조차도 없었.  바틀비에게 큰 소리로 떠나라고 명령하지도 않았고-하수라면 아마 그랬을 테지만-나는 그가 떠날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당연시하고[77] 그리고 그러한 가정[78] 위에 내가 해야 할 말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추가하였다.  내 일처리 방식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그것에 더욱 매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깨어나자마자, 나는 의심이 들었다.- 이건 아무래도 내가 잠자는 사이에 허영심의 기운이 빠져버린 탓이었다.  사람이 가장 차분하고 가장 현명해지는 시간은, 아침에 막 깨어난 직후 그때이다.  내 일처리 방식은 변함없이 현명해 보였으나,- 그건 단지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실무적으로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까다로운 문제였다.  바틀비가 떠날 것이라고 미리 가정[79]하는 것은 참으로 절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그러한 가정은 단지 나의 가정일 뿐이고, 바틀비의 가정은 전혀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그가 나를 떠날 것이라고 내가 가정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고 싶으냐 아니냐의 문제였다.[80]  그는 가정보다 선호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다.[81]

 

아침 식사를 한 후에, 내 가정이 맞을 지 아니면 틀릴 지에 대한 확률을 따져 보면서, 나는 시내로 걸어갔다.  한 순간에는 내 예측이 참담한 실패로 판명될 것 같은 즉 바틀비가 평소대로 사무실에 건재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그의 의자가 틀림없이 비어 있을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내 생각은 수시로 바뀌었다.  브로드웨이와 커날 스트리트가 만나는 길모퉁이에서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서서 상당히 흥분한 상태로 매우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하지 않을 거라는 데에 나는 내기를 걸겠소.” 내가 지나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지 않을 거라고?-그래 좋군!” 그럼 돈을 거시오.”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돈을 꺼내려고 본능적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가 오늘이 선거일[82]이라는 것이 기억났다.[83][84]  내가 엿들은 말은 바틀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단지 시장직에 출마한 어떤 후보가 당선되느냐 아니면 낙선하냐에 관한 것이었다.  내 마음이 긴장된 상태에서, 나는 말하자면, 브로드웨이에 모인 사람 모두가 나처럼 흥분해서, 나와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있는 줄로 혼자 상상한 것이다.  길거리의 소요 사태[85] 때문에 내 정신이 잠시 깜빡 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이걸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기며,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갔다.[86]

 

나는 의도적으로,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다.  현관 앞에 도착해서 잠시 동안 귀를 기울이고 서 있었다.  사방이 조용했다.  그는 당연히 떠났을 테지.  나는 문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옳거니, 내 일처리 방식이 훌륭하게 효과를 나타낸 거구나.  그가 정말 사라진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뭔가 우울한 기분이 함께 뒤섞여 일어났다.  내가 거둔 빛나는 성공에 괜시리 미안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틀비가 나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던 열쇠를 찾으려고 사무실 문 앞 깔개 아래로 손을 넣어 더듬다가, 실수로 내 무릎이 문짝에 부딪히는 바람에 마치 사람을 부르는 듯 노크 소리가 났고, 이에 대한 화답으로 사무실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내가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바로 바틀비였다. 

 

나는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그 때 나는 오래 전 버지니아 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구름 한 점 없는 어느 여름 날 오후에 번개에 맞아, 담뱃대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죽은 바로 그 남자처럼 한 순간 빳빳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은 아늑하고 열려진 자기집 창가에서 사망했는데, 그 꿈결 같은 아름다운 오후에 창 밖으로 몸을 구부린 상태 그대로인 채 있다가, 누군가가 건드리자 푹 쓰러졌다고 한다.[87]

 

아직 안 갔어!”  한참 만에 내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불가해한 필경사가 나를 지배하고 있고, 또한 내가 갖은 몸부림과 안달을 다해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불가사의한 권위에 이번에도 복종하면서,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길거리로 나왔고, 그러다 근처 구역을 걸어 돌면서, 이렇게 황당하게 전례없는 일을 당해서 이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지 궁리해 보았다. 내가 물리적인 완력을 행사해서 그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었고, 심한 욕을 해서 그를 몰아내는 방법도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으며, 경찰을 부르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발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게서 일말의 작은 승리라도 거두게 내버려 두는 것-이것 또한 생각할 계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아니,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면, 내가 이 문제에서 예측가정할 수 있는 것이 더는 없을까?[88] 그래, 이전에 내가 미래를 내다보며 바틀비가 떠날 거라고 가정했듯이, 이제 과거를 돌아보며 그가 이미 떠났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가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면, 황급히 사무실에 뛰어들어가 바틀비가 마치 공기인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는 척하면서,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일견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가정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바틀비가 버텨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89]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계획이 성공할지는 좀 미심쩍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를 상대로 원점에서 철저히 재검토하기로 다짐했다.

 

바틀비,” 내가 사무실로 들어서며, 차분하면서도 준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심히 불쾌하다.  바틀비, 내 마음이 아프단 말이다.  난 그래도 널 좋게 보았는데.  난 네가 신사다운 됨됨이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미묘한 곤경에 처해 있어도 약간의 암시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정의 원칙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러나 내가 기만당한 느낌이야.”  내가 진정 놀란 표정으로, 내가 전날 저녁에 놓아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돈을 가리키면서, 다음 말을 덧붙였다. “아니, 넌 아직 그 돈에 손도 대지 않았구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를 떠날 테야, 아니면 안 떠날 테야?”  내가 여기서 불끈 화를 내며, 그에게 바싹 다가서며 다그쳤다.

 

난 변호사님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가 이라는 그 단어에 부드러운 강세를 넣으며 대답했다.

 

네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여기 머물겠다는 거냐? 임대료라도 내냐?  내 세금이라도 부담하냐?  아니면 이 빌딩이 네것인가?”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젠 필사할 준비가 되어 있고 지금 필사를 하겠니?  눈은 다 회복됐냐? 오늘 오전에 간단한 문서 하나를 필사해 줄 수 있니?  아니면 몇 줄 정도 검토하는 걸 돕겠니?  아니면 우체국에 잠깐 다녀오겠어?  한 마디로, 네가 이 건물에서 떠나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그럴듯한 구실이 될 만한 어떤 일이라도 하겠니?”

 

그는 아무 말없이 자신의 은둔처[90]로 물러났다.

 

나는 그때 신경질적으로 화가 치민 상태이었으므로 당장 더 이상의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바틀비와 나 둘 밖에 없었다.  나는 비운에 간 아담스 그리고 이보다 더욱 불운한 [91] 콜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단둘이 있을 때 일어난 비극이 기억났다.[92] [93]  콜트가 아담스에 의해서 몹시 격분해진 상태에서, 경솔하게도 자신도 걷잡을 수 없게 더욱 흥분하는 바람에,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살인 행위-분명히 누구보다도 행위자 자신이 가장 후회했을 행위-로 치닫고 말았는지 콜트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94] [95]  종종 그 사건을 음미해 볼 때마다, 그런 말다툼이 공공의 길거리에서나, 또는 개인 집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사건의 결말처럼 그런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96]  건물 위층에 가족들이 주거하는 것을 내버려둠에 따라 매우 불결해진 건물에 외딴 사무실- 카펫도 깔리지 않은 사무실에, 그러니 먼지 날리는 것이 뻔할 테고, 외양은 남루하다 싶은-에 둘만 남아 있는 정황-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 비운의 콜트가 급성 공황발작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했음이 틀림없었을 것 같다.[97][98]

 

그러나 구약의 아담 시대부터 있어온 인간의 원초적인 분노 감정이 내게도 치밀어 올라 바틀비를 해치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나는 그 원초적 분노라는 놈과 맞서 싸우고 그 놈을 내동댕이쳐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글쎄다.  나는 그저 신성한 강제명령-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99]는 신약의 말씀을 상기했을 뿐이다.  그렇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아담의 자손인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이었다.[100]  사랑의 본질에 대한 고차원적인 해석들은 차치하고서라도,[101] 자선은 불확실성이 따르는 미래의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결정을 할 때에는 낙관주의보다 비관주의에 따라야 하고 또 미리 조심하고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인 삶의 지혜의 원칙[102]보수성의 원칙[103]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뛰어난 안전장치가 된다.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또한 노여움 때문에, 또한 증오 때문에, 또한 이기심 때문에, 또한 영적으로 교만한 마음 때문에 살인죄를 저질러왔다.[104]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극악무도한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고상한 동기[105]를 찾을 수 없다면, 단순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든 인간은,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은 사랑과 박애정신을 바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답을 찾아야 할 당면 현안에 대해서, 나는 그 필경사의 행동을 호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에 대한 나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불쌍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야! 하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으니, 그가 제 마음대로 행동해도 너무 개의치 말자.

 

나는 또한 바로 일에 매달리려고 애썼고, 이러면서 동시에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힘썼다.  나는 오전 시간 중 바틀비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자기 형편에 잘 맞는 때에 자신의 은둔처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정해진 행진대열에 참여하리라는 상상을 애써 해보았다.[106]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열두시 반이 되자, 터키가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며, 잉크병을 뒤엎고, 여느 때처럼 큰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니퍼즈는 차츰차츰 조용해지고 정중해졌다.  진저넛은 점심대용으로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바틀비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막힌 벽을 바라보며 깊은 공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런 것을 누가 믿어줄까?  내가 이것을 인정해야만 할까?[107]  그날 오후 내가 그에게 더 이상 말 한 마디도 않고서 내 사무실에서 나왔다는 이것 말이다.

 

이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고, 그 사이에 한가한 틈을 이용해서, “에드워즈의 자유 의지에 관한 고찰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 관한 고찰이란 책을 틈틈이 들여다 보았다.[108]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러한 책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109]  내가 어쩌다 이 필경사를 만나서 겪은 이런 고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모두 예정되어 있었으며, 바틀비는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에 따른 어떤 신비한 목적- 따라서 나 같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일개 미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이지만-을 띠고 내게 배치되었을 거라는 이론이 설득력있게 조금씩 와닿기 시작했다.[110]  바틀비, 칸막이 뒤 거기에 그대로 있어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더 이상 널 박해하지 않으련다.  넌 이런 낡은 의자들 중 하나처럼 해도 안끼치고 시끄럽게 굴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만큼 내가 그렇게 사적인 느낌이 든 적이 없다.[111]  마침내 나는 이것을 보고, 이것을 느끼는 거다.  바로 내 삶의 예정된 목적을 이제 꿰뚫어보게 된 것 바로 이것 말이다.  나는 만족해.  다른 사람들은 좀더 고상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바틀비, 이 세상에서 나의 임무는 네가 머물러 있고 싶은 대로 그 필요한 기간 동안 네게 사무실 방 한 칸을 제공하는 것이다.’

 

만약 내 사무실 방을 드나드는 법조계 친구들이 내가 청하지도 않은 혹독한 비평을 마구 해대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지혜롭고 성스런 정신 구조를 계속 유지했을 것이라고 나 자신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투쟁하다 보면 마침내 좀더 관대한 사람들이 내린 최상의 결정마저 고갈되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다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통제불가능한 바틀비의 기이한 면모에 놀라서, 그에 대해 조금 거친 말을 내뱉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변호사가 업무상 필요해서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그 필경사 혼자 밖에 없음을 알고, 그에게서 내가 현재 어디 있는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했는데, 바틀비는 그가 불쑥 꺼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 한가운데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를 잠시 지켜보고 난 뒤, 그 변호사는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 위치를 모른 채, 사무실을 그냥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또 언젠가 중재가 진행 중이라서, 사무실이 여러 변호사와 증인들로 붐비고 업무가 급하게 돌아갈 때, 거기에 참석하여 그 중재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법조계 인사가 바틀비에게는 아무런 맡은 일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의 (이 법조계 인사의) 사무실에 달려가서 그가 말한 어떤 서류를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단다.[112][113]  이에 대해, 바틀비는 차분하게 거절하면서 이전과 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대로 있었으리라.  그러면 그 변호사는 눈이 휘둥그래 해져 한참 째려 보다가, 대신 내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내가 직업상 알고 지내는 사람들 모두를 통해서 나도 알게 된 것은, 내 사무실에 두고 있는 그 이상한 존재를 놓고서, 호기심 어린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큰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걱정 가운데는 그가 혹시나 질기게도 명이긴 사람처럼 오래 산다든가, 그가 내 사무실을 계속 점유하고 있다든가, 내 권위를 부정한다든가, 내 방문객을 당혹스럽게 한다든가, 내 직업적 명성에 먹칠을 한다든가, 사무실 전체가 우울한 분위기로 물들게 한다든가, 마지막 남은 저축으로 목숨을 연명해가면서 (그는 하루에 5센트밖에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 어쩌면 나보다 오래 살게 되고, 그리하여 영속적 점유권[114]을 근거로 내 사무실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라든가 하는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이런 모든 불길한 예견들로 인해 내 마음이 더욱 더 혼란해 지고, 또 내 친구들이 내 방의 귀신 같은 존재에 대해 듣기 거북한 말들을 시도 때도 없이 계속 해댐에 따라, 내 속에서 거대한 변화가 형성되었다.  나는 내게 잠재된 능력까지 모두 동원하여서, 이 참을 수 없는 몽달귀신 같은 존재를 영원히 떨쳐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이 목적에 맞는 복잡한 계획을 궁리해 내기 전에, 나는 먼저 바틀비에게 영원히 떠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유를 간단하게 제시하였다.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는 그런 이유에 대해 그가 세심하고 성숙한 자세로 심사숙고해 보라고 일렀다.  그러나 그는 삼일간 심사숙고를 거듭한 뒤, 자신의 원래 결정이 이전과 동일하게 변함없음을 내게 통지해 주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그대로 계속 내게 머물러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코트의 마지막 단추까지 채우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인가?  마치 귀신과도 같은, 이 사람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양심[115]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를 네게서 떨쳐 내 버려라.  그래요, 내가 그렇게 해야 되겠지요.  떠나 보내버려라.  그래요, 그는 떠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방법은요?  당신이라도 그 불쌍하고, 야위고, 활기 없는 인간을, 차마 밀쳐내지는 못할 텐데요?  당신이라도 그렇게 힘없는 생명을 문밖으로 밀쳐내지는 못할 텐데요?  당신이라도 그런 잔인함으로 자신의 불명예를 가져오려고 하지 않을 텐데요?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저는 그가 여기서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고, 그런 다음에 그의 유해를 벽 속에 묻어주는 편을 택하겠습니다.[116][117]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이 직접 어르고 달랜다 해도, 그는 꼼짝도 않을 텐데요.  그는 당신의 책상에 당신의 문진으로 눌러 놓은 뇌물마저도 그대로 남겨둔 사람입니다.[118]  결론적으로, 그가 당신을 꼭 붙잡고 싶어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119]

 

그렇다면 뭔가 중대하고, 뭔가 예외적인 조치를 취하라.  뭐라고요!  그렇다고 경찰서 순경을 시켜서 그의 멱살을 잡아 끌어오게 하고, 그 죄없는 사람을 얼굴이 창백하다는 이유로 형사범을 가두는 감옥[120]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할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게끔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겁니까?[121]  부랑자? 그는 부랑자가 아니더냐?  뭐라고요!  그는 몸 하나 꼼짝하는 것도 거부하는데, 그가 어떻게 부랑자나, 길거리의 떠돌이에, 해당되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그를 부랑자로 취급하려는 이유는 그가 부랑자는 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네요.[122]  그건 너무 터무니 없습니다.  생계를 유지해 나갈만한 자산이 있다는 재산 증명이 뚜렷하게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그에게 그건 그렇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것이야말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 최소한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 바로 그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그가 날 떠나려고 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를 떠날 수밖에 없어.  내가 내 사무실을 바꾸는 거야.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리하여 만약 새 사무실에서도 그를 발견할 시 그때는 불법침입자[123]로 법원에다 소송을 개시하겠다는 뜻을, 그에게 정식으로 통고하는 거야.

 

이러한 나의 방침에 따라서, 다음날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직접 말했다.“이 사무실이 시청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들고.  공기도 안 좋고.  간단히 말해서, 다음 주에 내 사무실을 옮길텐데, 이제 더 이상 네가 하는 일을 필요로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이런 말을 지금 하는 이유는 네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보라는 뜻이지.”[124]

 

그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고, 그 외의 다른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정해진 이삿날에 나는 짐수레와 인부들을 구해서, 내 사무실로 들어 갔고, 가구가 조금 밖에 없어서 몇 시간 이내에 모든 짐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 내내, 그 필경사는 칸막이 뒤에 서 있었고, 나는 칸막이를 맨 나중에 옮기라고 지시했다.  칸막이가 철거되고, 그것이 마치 거대한 2절판 책처럼 접히고 나자,[125] 아무 것도 없는 빈 방에는 꼼짝도 않는 그 혼자만 남게 되었다.  내가 입구에 서서 잠시 그를 지켜보는 동안, 내 속에서 무엇인지 모르게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돈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126]그런데 그런데-막상 들어가니까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라왔다.[127]

 

바틀비, 잘 있게나.  나는 이만 가네.  잘 있게나.  어찌됐든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약소하지만 이것 받게나.” 라고 말하면서 뭔가를 그의 손에 슬쩍 쥐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런데도, 나는 -이런 말 하기는 조금 이상하지만- 내가 그토록 떨쳐버리기를 갈망했던 그였음에도 막상 내 손을 억지로라도 떼어낼 때 밀려오는 큰 아픔을 느꼈다.

 

나는 새로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면서, 하루 이틀간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일했고, 복도의 지나가는 발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다가 내 방으로 돌아올 때면, 열쇠를 꽂기 전에 문지방에 잠깐 멈춰 서서, 조심성 있게 주의를 살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바틀비는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낯선 사람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찾아와 내가 최근까지 월 스트리트 00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사람이 맞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으로 스쳤고, 나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신사양반,” 나중에 변호사로 밝혀진 그 낯선 사람이 말했다.  신사양반 당신이 거기 남겨둔 그 사람은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오.  그 사람은 어떠한 필사도 거절하고, 어떠한 일도 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만 할 뿐이고, 그 건물에서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신사양반, 내가 보기에도 매우 딱하군요.”  나는 차분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떨면서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당신이 언급한 그 사람은 나하고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소- 내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일가친척 관계도 아니거니와 내 수하의 도제도 아니란 말이오.”

 

왜 우리끼리 이래야 된다 말이오.  제발, 그 사람이 누군지나 말해 주겠오?”[128]

 

내가 신사양반 당신한테 그걸 알려줄 형편이 전혀 못되오.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고요.  이전에 내가 그를 필경사로 고용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그가 내 밑에서 일을 그만 둔 지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처리하겠소, 좋은 하루 되세요, 신사양반.”

 

며칠이 지나갔으나, 나에겐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곳에 들러서 불쌍한 바틀비가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픈 자선의 충동이 일어남을 종종 느꼈지만, 뭔지 모르는 어떤 소심함 같은 것으로 인해서 그걸 실행하지는 못했다.

 

또 한 주가 지나도 내게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쯤은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이 끝났겠지 하는 생각이 마침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몇몇 사람들이 신경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로 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오는 바로 저 사람이야.  그가 이제 나타나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소리쳤다.  그 사람이 누군지 보니 이전에 혼자서 나를 방문했던 그 변호사이었다.

 

신사양반, 당신이 그를 즉시 데려가도록 하시오.”  그들 가운데 뚱뚱한 사람이 내게 다가오며 외쳤는데, 그는 월 스트리트 00 번지의 건물 주인임을 내가 알고 있었다.  여기 신사양반들, 이들 내 건물의 세입자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답니다.” 하고 그 변호사를 가리키며 건물 주인이 말했다.  미스터 비 (B***)라는 사람이 그를 사무실에서 쫓아냈더니, 그는 이제 건물 곳곳에 출몰하여, 낮에는 계단 난간에 앉아 있다가, 밤에는 건물 현관에서 잠을 잔답니다.[129]  모든 사람이 염려하고 있어요.  고객들이 사무실을 떠나고 있고요.  시위 군중이 몰려들지도 모를 위험도 있다 하고요.  당신이 뭔가 어떤 조치를 취해주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것도 지체 없이 즉시.”

 

이렇게 빗발치는 성화에 나는 대경실색하여, 뒤로 주춤 물러 났고, 그리고선 내 새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안에서 잠가 버리고 싶었다.  바틀비가 어느 누구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듯이- 나하고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반복해서 강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그와 어떤 연관이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마지막 사람이라며, 내게 책임을 지우며 심하게 몰아 부쳤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없었다. 더욱이 (그곳 현장에 참가한 어떤 사람이 어렴풋이나마 위협했듯이) 신문지상에 노출될 것이 두려웠던[130] 나는 그 문제를 재차 숙고했고, 그리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상세하게 말했다.  만약 그 변호사가 내게 그의(그 변호사의) 변호사 방에서 그 필경사와 비밀 유지 조건으로 둘만의 면담을 갖도록 주선해준다면, 그날 오후 그들이 불평한 그 골칫거리를[131] 그들이 제거해 내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내 오래 다녔던 예전의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니, 바틀비가 거기 계단 난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바틀비,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난간에 앉아 있어요.”  그가 부드럽게 답변했다.

 

나는 몸짓으로 그를 그 변호사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그러자 그 변호사는 우리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나갔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네가 사무실에서 해고된 이후 건물 현관을 계속 점유함으로써, 너가 나한테 크나큰 시련을 안겨 준 원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는 거지?”



[1] 당시에도 선거에서 부정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또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할 수 있는 투표권(Suffrage)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비록 미국에서 여성참정권(Women's suffrage) 부여는 뉴질랜드나 호주 같은 나라에 비해서 훨씬 뒤늦은 1920년에야 이뤄졌지만 1850년대 당시 뉴욕에서는 이미 여성 참정권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다.  Lucy Stone 1850년 여성참정권 운동단체를 조직하였고 1852년에는 뉴욕에서 집회가 열렸다.

[2] 뉴욕에서 1834년 구빈법 Poor Law이 새로이 개정된 후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 부랑자 등을 강제로 구금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3] 루니(Loony, luny)미쳤다는 의미로써 크게 실성한 사람을 지칭한다.  한편 산업혁명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모임 단체 버밍햄 보름달 모임(The Lunar Society of Birmingham)”이 있었는데 당시 지배기득권계층이었던 국교와 카톨릭은 이들을 미친 사람들(미치광이를 영어로 “Lunatic”이라고 불렀다)로 규정하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 1장 프리스틀리는 누구인가를 참조하라.

[4]생강 빵과 비슷한 의미로 한국에서는 마늘 빵이 있다.  한국인에게 마늘 garlic은 거의 필수적인 양념으로 쓰이는 반면 서양인은 마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양인의 음식 문화에서 생강 ginger은 매우 유용하게 필수적으로 쓰이는 양념 소재이다.

[5] 고추 맛 hot, peppery톡 쏘는매콤하다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말로 얼큰하다는 말에 가깝다.  Spicy는 좋은 향기smell, odor, aroma가 김이 피어 오르듯 묻어 나오는 향긋한상태를 나타낸다.  상큼하다는 우리말 표현이 적당한 것 같다.  Spicy의 단어 뜻에는 (영국의 유명한 걸밴드 그룹 “Spicy Girl” 이름이 암시하듯) “섹시하다”, “감칠 맛 나다는 성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6] 요즈음 TV에서 요리 맛코너 (요리사(chef)가 요리솜씨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등) 인터넷 SNS상에서 인기 있는 테마는 먹방”(고급음식점, 맛있는 요리, 좋은 음식을 먹는 사진이나 이야기를 주로 올리는 경향)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는 음식은 생존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욕망과 탐욕(desire and avarice)”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분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7] 해악(Mischief).  화자는 여기서 강제력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써 “타인에 대한 해악”의 기준을 들고 있다.  “타인에 대한 해악”에 대한 설명을 JS Mill의 “자유론”에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원칙]은 인류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어느 한 개인의 행동의 자유에 대해 정당하게 간섭을 할 때 요구되는 유일한 명분은 자기 보호라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에게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정당하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타인에게 가해지는 해악을 방지하는 것이다.  That principle is, that the sole end for which mankind are warranted, individually or collectively, in interfering with the liberty of action of any of their number, is self-protection. That the only purpose for which power can be rightfully exercised over any member of a civilized community, against his will, is to prevent harm to others.”

[8] 형평법 법원을 양심의 법정이라 부른다.  양심의, 양심에 의한, 양심을 위한 법정이 형평법 법원의 기조일 것이다.  형평법 법원에서의 최고 기준은 양심 conscience이다.  법과 정의는 재판관의 양심이 살아 있을 때 지탱된다.  양심은 법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형평법 법원의 판사 출신으로서 화자인 변호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가 양심일 것이다.  형평법의 알파요 오메가가 양심이다.  아담 스미스(대륙법 법체계를 유지한 스코틀란드 출신으로써 형평법 체계에 익숙하였다)는 양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양심은 우리 행위의 위대한 재판관이자 공정한 관찰자 impartial spectator, 가슴속의 거주자 the inhabitant of the breast, 이성, 원칙 등의 개념으로 표현하였다.  우리 속담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형평법의 양심이 바로 그와 같은 개념이다.

[9]켈트족의 전설에 따르면,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의 한 조각이 다른 사물 속에 숨어 있다가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 다시 발견된다고 한다.  즉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숨어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잃어버린 영혼이 되돌려지는 것으로 이것은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0] 윈저 비누 Windsor soap는 거품이 풍부하고 향기가 그윽한 명품 비누로 알려져 있다.  영국 왕실의 별장인 윈저 성이 있는 윈저 숲 Woods of Windsor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비누라고 한다.  비누는 마루바닥을 닦아내는 것처럼 더러움을 추방하는 기능을 한다.

[11]사악한 충동감(evil impulse)”.  창세기 8:21의 구절의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는 원죄 개념이 상기된다.

[12] 원문의 “pray”는 소송장 등에 쓰이는 법률용어로써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정식으로 진실로 요구한다는 강한 뜻을 가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도하다(pray)”는 어느 정도 사적인 뉘앙스가 있는(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실한 말  “please”이런 말 등을 쓰면 오히려 말하는 상대방을 무시하려는 힘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것 같은데, 사실 “pray”는 이렇게 어필 appeal 하다”, “plead” 단어와 같이정식의”“진실로라는 공적 (말의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측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강한 뜻이다.  (기도도 개인의 마음속에 머무르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상대방(=하나님)에게 말한다는 측면에서 공적인 의미를 가진다.)

[13] 선호하다 prefer는 자신이 어떤 것 중에서 선택을 한다면 “~~을 하고 싶다는 선택적 판단을 뜻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즉 명령과 강요의 상황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내리는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다.  하지만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는 제한적이라고 본다. 

[14]꼬맹이는 원문의 wight”-wight 는 싸움 잘 하는 용맹한 소년을 이른다.  법관이 법정에서 쓰는 가발을 “wig”라고 부른다.  Wig의 어원은 싸움 battle”의 의미를 가졌다.  결투할 때 모자를 쓰는 것과 같은 의미로써 즉 법정싸움은 어느 한 쪽이 이기면 상대방은 죽는 사생결단의 장이므로 정식 재판정에서 판사 변호사가 가발을 쓰는 전통은 결투의 상징성이 들어 있다.

[15]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자유방임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의 고용 계약의 자유(the employment at will rule)”, “해고 자유의 원칙(presumption of terminability at will)”을 암시한다.

[16] 주인과 하인의 관계(master and servant relation)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맺어진 관계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고용주와 피고용인(employer-employee)”의 고용 계약 관계를 말한다.  하인 worker이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조건은정직이고 정당한(honest and lawful)” 명령일 경우에 한해서다.  주인과 하인 사이라고 해도 정당하지 못한 명령이라면 하인이 거부할 수 있었다.  합리성은 인식(recognition)의 문제이고 해석의 영역에 속한다.  한편1847년에는 유명한 노예폐지론자인 다글라스 Frederick Douglass가 잡지 “The North Star”을 창간하는 등 당시에 노예폐지론은 시대정신으로 높아가고 있었다.  (남북전쟁이 1861-1865일어났다.)

[17] 동의 Consent는 합리성에 기반을 둔다.  사람은 자기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이 자신에게 분배되지 않을 때나 모욕감을 느낄 때 반발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무인정권 시기에서 하극상이 흔히 나타났다.

[18] 악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도 베드로가 하루 밤에 3번이나 부정하였고. 확실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3번 확인해야 한다는 삼세번 원칙(three times rules)”이 거론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에도 속칭 삼세번원칙이 흔히 등장한다.  악령 소설 등을 보면 대개 악령은 한 번 불러서는 즉시 나오지 않는다.  수리수리마수리”“Abracadabra” 사례와 같이 주술은 같은 것을 여러 번 반복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진실과 창의성은 반복을 싫어한다.

[19] 변호사 사무실 근무 직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직성(honesty)이다.  정직성을 기반으로 신뢰 관계(confidence)가 형성된다.

[20] 여기에서 변호사와 직원의 고용계약은 구두로 맺어진 계약이지 문서상의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님을 상기하라.  구두상 고용 계약을 맺었기에 만약 분쟁이 일어나면 형평법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assumpsit”소송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문서상 고용 계약을 맺었다면 보통법 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영미법은 대륙법과는 달리 구두상 계약 (단기 임차권 계약의 사례)이라고 해도 물권법상의 (채권법상의 보호법익과 구별되는) 보호 법익이 창출될 수 있다. 

[21] 소환(summon)의 형식은 형평법 법원의 특징에 해당하였다.  보통법 법원은 대물소송(in rem)”인 반면 형평법 소송의 효과는 대인소송(in personam)”인 경우가 많으므로 형평법 법원은 직접 당사자를 법정으로 소환하게 된다.  서로 체계가 다른 법원 (예컨대 일상생활에 관계된 사건을 다루는 주법원과 연방차원의 공공 문제를 다루는 연방법원에서 쓰는 특정 법률 용어(court jargon)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존재한다.  만약 소환에 불응할 경우 형사법적 제재가 따르는 경우의 소환을 서브피나(subpoena)라고 부른다. 

[22] 영국 정부기관, 법원, 변호사사무실에서 중요 서류를 빨간 끈 red tape”으로 동여매는 풍습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현재도 여러 다른 색깔들로 구별하여 서류를 정리하는 법조인의 사무실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정부 기관들이 어떤 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에서 판단을 즉시 내리지 않고 회피하거나, 다단계 의사 결정 과정을 돌려 거치게 하면서 판단을 교묘하게 늦추거나, 또는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비효율적인 관료 행정의 문제점이 나타남을 지적하는 용어로써 레드 테이프(red tape)”라는 말을 쓴다.

[23] infirmities는 병적 나약함, 인간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적 결함을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기 마련이며, 창조된 사람인 이상 완전한 인간은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24] 삐뚤어짐(perverseness)은 단정함(straightness)과 반대된다.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경우 즉 바른 견해를 견지한 경우를 straight 라고 표현한다.  한편 속어로 동성애자(gay) 등 삐뚤어진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을 “pervert”라고 표현하고, 그렇지 않고 성적으로 바른 사람을 “straight”라고 표현한다.

[25] 월 스트리트 Trinity Church”(트리니티 교회) 1846년에 세워진 영국 성공회 Anglican Church 소속 교회이었고, 남북전쟁 후 미국 성공회 Episcopal Church of America를 결성하였다. https://www.trinitywallstreet.org/.  개신교단인 성공회의 예배나 전례 등은 다른 개신교단에 비해 카톨릭에 가깝다.  예배에서 공동기도서 (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사용하는 등 교회 통합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교회 통합 운동은 성공회 교회 건축 양식을 고딕 양식으로 추구한 방향에서도 잘 나타났다.

[26]바틀비 유령 (the apparition of Bartleby)”은 변호사가 맞부딪힌 사람이 바틀비인지 아니면 바틀비하고 똑같이 닮은 바틀비 유령인지 모를 정도로 놀란 상태를 말해준다.  바틀비가 일요일 오전 시간에 교회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나와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기에 바틀비가 유령처럼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바틀비하고 꼭 빼닮은 바틀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강한 의미 전달 효과를 가져온다.

[27] 일요일 휴무 법률 (일요일에 가게 문을 닫게 하거나 또는 술 판매를 금지하는 법 포함)을 미국에서 “Blue laws”라고 속칭한다.  일요일 강제 휴무법은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아직까지도 시행 준수되고 있다.  Blue laws 1676년 영국에서 제정된 일요일 휴무 법을 이어받은 것이다.  일요일 모두가 쉬게 된 것은 blue law 때문인데 이 법의 원래 취지는 일요일에는 교회 예배를 보라는 것에 있었다.

[28] 인간 생활의 필수적 3 요소를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먹을 것 eat의 순서가 입고 자는 것에 앞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5).

[29] 개인 사유지가 아닌 공공의 어떤 장소를 무단 점유하고 생활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를 Squatting (물권법 용어로는 adverse possession)이라 한다- 그 자체로써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의 식민지국가들은 점유 시효 취득의 법리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 왔다.  바틀비가 점유한 빌딩 사무실 공간은 일반주거지역이 아니므로 건물 점유 사실만으로는 범죄행위에 해당되지 않았을 것이며 다만 건축물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의 대상은 될 수 있었다.

[30] 사막 가운데 한 때 번창했다가 폐허가 된 고대 유적 도시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버건은 페트라 유적을 1845년 옥스포드대 수상작인 그의 시 “Petra”에서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 (A rose-red city - half as old as time!)” 라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31] 로마 제국의 여러 정복 전쟁을 통해서 승승장구하였던 마리우스 Marius는 노년에 들어 판단을 그르치고 새로 부상한 정치 군인들에게 패배를 당해 해외로 망명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마리우스는 아프리카 카르타고까지 쫓기며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을 겪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 마리우스-그의 누더기를 걸친 모습을 그린 미국 화가 Vanderlyn(1775 –1852)의 그림이 있. 

[32] 카르타고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는 지중해 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근접해 있고 로마 제국의 등장 이전까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던 대도시였다.  노예를 기반으로 한 농업 그리고 지중해 상권을 장악해서 해상무역으로 크게 흥했던 도시였으나 로마의 침공을 받은 3차 포에니 전쟁 (BC 149-BC 146)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카르타고의 전멸에 관한 설명을 곁들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전멸 정책을 주장한 키케로의 입장에 반대한 스키피오의 견해를 지지하였는데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프리스틀리의 견해에 연결된다.  이와 같은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근래 들어 1차 대전 종전 후 패전국 독일에게 물린 전쟁배상금의 가혹성을 비판한 케인즈의 입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실적인 사고방식은 적을 전멸하기 보다는 교화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3] 법원의 연초 시무식에는 고위 법관과 변호사들이 화려한 법복을 차려 입고 참석하는데, 시무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광경을 보면 이와 같이 묘사된다.

[34] 그날이 일요일이라면 비단옷(silks)은 화사하게 비단옷을 차려 입은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갈 때 입는 법복은 비단(silk)으로 만들어진 옷인데 이에 연유하여 존경 받는 변호사들을 “silks”라고 속칭한다. 

[35] 서로 다른 동물이 교합하여 보기 흉하게 태어난 이상한 잡종 괴수를 키메라라고 불렀다.  서로 다른 조직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될 때 우려되는 문제점을 키메라 같은 괴물이 출현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의미는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혼합되기 어려운 점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36] 무늬가 들어 있고 밝은 색깔의 스카프 크기의 큰 손수건.  밴대나(Bandanna) 손수건은 오늘날 길거리 데모 시위군중(이슬람의 시위 군중 군사독재정권에 항의 시위)이 돌을 던질 때 얼굴 가리개로 쓰는 모습-“복면 시위모습에서 볼 수 있다. 밴대나 (포르투갈어)는 해적이 머리에 두른 두건을 말한다.  오늘날 대개 해적 영화를 보면 해적은 머리에 빨간 색의 밴대나 손수건을 동여맨 모습(해골 모습의 해적깃발과 함께)으로 등장한다.  (동양 역사에선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홍건적의 난을 기억하라).  손수건은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일 수 있는 무기로도 작동하였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밴대나 수건의 표현은 갱단 소유나 훔친 물건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암시한다.  그런데 매듭을 풀고 보니 저금통장이었다.  사람들의 의심은 종종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화자인 변호사가 가졌던 전제나 가정들 중 많은 부분들이 바틀비와의 겪은 사건을 통해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37] 저축 은행(Savings bank)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저축은행은 이전에는 신용금고로 불렀다) 주로 서민들의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38] 창은 인식의 틀을 상징하고 또한 세제 법률과 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재산세를 굴뚝의 숫자로, 벽돌 두께로, 창문 수로 매기는 굴뚝세, 벽돌세, 창문세 등이 존재했다.

[39]에드워즈의 설명에 의하면 정서(affections)는 사람들이 인식(understanding)의 수준을 넘어서, 어떤 대상에 대해 감정을 느끼고, 관심을 보이고, 좋아하고 하는 그런 성향이나 이끌림(inclination), 선호 의지(will), 마음(heart)이다.  , 아담 스미스, 프리스틀리 등의 경험철학자들에게 감정에 대한 개념은 공유된다.

[40]기질적 질환(organic ill)”.  1850년대 당시에 사람이 불치병 (incurable disease)에 걸렸다면 의사의 처방에 의해 존엄사도 가능하다고 본 일부의 의견이 나타났다.  하지만 영미인의 필연주의 경험론 철학에서는 우주질서는 인간 사회의 완전과 발전을 향한 인간의 노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다.  자연은 무궁무진한 것이고 인간 사회 또한 무한한 발전을 해나간다는 철학적 기초에서 희망의 끈은 포기되지 않는다.

[41] Alms은 의연금, 구호성금을 내는 것을 뜻한다.  alms house는 사설 구호단체가 오갈데 없는 빈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구빈원을 지칭한다.  공공단체가 운영하는 수용자 시설을 “poorhouse”라고 불렀다.

[42] 대륙국가에서는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고가 우위에 있다.  그리하여 프로이트 등의 정신분석학의 관념론이 성행한 것 같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변화는 영혼의 구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프리스틀리, 아담 스미스 등 영국의 경험론자의 사고는 인간의 보다 좋은 삶이 물질적인 풍요 그 이상의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좋은 삶의 추구는 최소한 물질적인 풍요가 밑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경험론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밖으로 나타나는 행위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대륙국가의 사고와 차이가 난다.

[43] 퇴직금은 severance pay.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자유 방임주의가 팽배하였던 당시 고용 계약의 자유 (the employment at will rule)”, “해고 자유의 원칙(presumption of terminability at will)”을 보여준다.

[44] 당시 1850년 노동법 개정으로 도망친 노예들을 원주인에게 돌려보내는 노예추국법(Fugitive Slave Ac 1850)이 시행되었다.

[45] 구약성경의 에스더는 자신의 출신과 배경을 비밀에 부치고 살아 남아서 절멸의 다급한 순간에 처한 유대민족을 구해내는 임무를 완수하였다..

[46] Cicero (BC 106-BC 43) 유명한 로마 시대의 변호사.  키케로에 대해서 화자인 변호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시 로마의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키케로가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에 대해 재판 없이 처형하고 반란을 진압한 사례에 비추어, 자신도 주인에게 반기를 든 직원인 바틀비를 지체없이 즉시 해고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모든 법과 절차를 다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까지를 보여준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47] 영미인의 대화 문화에서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말하는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 보지 않는 사람은 죄지은 guilty 감정이 있다거나 또는 관심이 없다는 표시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태도는 조심해야 될 것 같다.  이런 태도를 보이면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  반면 동양인은 (특히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 대화 중에 시선을 상대방에게 똑바로 맞추지 못하는 태도를 나타내는데 이는 동양인의 진노외 추궁과 죄의식의 문화에서 나오기 보다는 공손함의 문화에서 나오는 것 같다.

[48] 대륙법 국가에선 진노의 하나님의 개념이 우월하여 처벌과 추궁의 관점이 강조되는 반면 영미국에서는 사랑의 하나님의 개념이 우월하다.  따라서 영미국의 학교 교육에서 처벌의 관점보다는 보상의 관점이 앞선다.  프리스틀리의 교육 철학에서 강조되듯이, 잘못을 처벌하는 심판하는 하나님의 개념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설령 잘못을 했더라도 실수나 잘못을 고백하면 용서해주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이 강조되므로 영미국의 학교 교육에서 처벌의 시스템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은 처벌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스스로 밝히려는 태도를 보이기 어렵다.  영미국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시스템에 기반하므로 스스로 밝히는 것을 장려하고 자진 신고제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또 중요한 차이점 하나는 모든 정보 제공의 의무 (full disclosure)” 개념이다.  대륙법 국가에서는 국가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빈약한 반면 영미법은 정부에게도 솔직한 정보 제공의 의무를 부담시키므로 설령 정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일지라도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륙법 국가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처벌을 피하고자 함구로 일관하거나 더 나아가 있는 사실도 덮어버리고 그 흔적을 지워버리며 증거 인멸까지 시도하는 2차적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흔히 일어난다.  반면 영미법은 잘못을 고치는 것에 강조점을 두는 사랑의 하나님의 개념이 우월하여, 정보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공개하는 자진 신고 의무 (duty of candour)” 제도 즉 설령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먼저’‘솔직하게(candid)’‘공개해야(being open)’ 한다는 원칙이 법문화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솔직한 자진신고(candour), 완전 정보 제공, 투명성 등의 개념에 대해서 영미법과 대륙법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49] 구약성경에서 에스더가 자신의 출신 신분을 왕이 물어보는 대로 순진하게 밝혔다면 왕비가 될 수가 없었을 테고, 따라서 유대민족을 멸망의 순간에서 구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카르타고 사람들은 로마 제국이 전쟁을 회피하려면 모든 무기를 자진해서 갖다 버리라는 요구에 순진하게 넘어가서 전쟁을 회피하기는커녕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던 사실-그와 같은 순진한 바보의 역사적 사건을 상기하면 만약 바틀비가 당시에 도망친 노예의 처지이었다면 그가 자신의 정보를 밝힌 순간 원래 주인한테 되넘겨져야 할 운명이었을 것이다.  일본어 馬鹿正直”(바카 쇼지키, stupidly honest)를 참고하라.

[50] 바틀비의 대답 (증언) 내용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증인에 대한 변호사의 질문 방식이나 기술이 약해서 그가 원했던 답을 이끌어내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51] 산업사회가 발전하면서 각종의 산업 재해 사고가 크고 많이 일어나자 합리적인 사람의 행동 기준에 대한 설정 요구가 드높아졌다.  법학에서 합리적인 인간(reasonable person)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35년이고 법에서 합리적인 인간의 개념이 처음으로 제시된 케이스는 영국의 1837Vaughan v. Menlove 사건이었다.  산업 사회로 발전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부주의해서 생긴 사고라도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에게 고의성이 없으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발전되면서 크고 작은 각종의 사고가 빈발하면서 시각이 달라졌다.  대규모 공장 노동자 인력이 필요하였는데 이들은 많은 경험이 요구되는 일도 아니고 따라서 모든 노동자는 거의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산업사회가 크게 발전하자 개인의 특이성은 어느 정도 선에서 희생되어야 하는 생각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대규모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새로운 산업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업 사회로의 급격한 발전은 합리적 인간에 대한 개념이 정립 (개인의 특이성이 희생되고 평균인이 요구됨) 될 것을 요구하였다.  홈즈는 보통법에서 말했다: “For society to function, "a certain average of conduct, a sacrifice of individual peculiarities going beyond a certain point, is necessary to the general welfare."

[52]무심결에(involuntarily)”의 뜻은 사람의 자유 의지에 상관없이 즉 의도가 개입될 여지도 없는 사이에 무심결에 자동적으로 일어난 행동을 말한다.  인간의 자유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의 책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3] Summary action은 증인의 소환 없이 문서 증거에만 의존해서 즉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약식 재판의 한 종류를 말한다.

[54] 맥주(Beer)는 발효 방법에 따라 크게 두 종류(애일 Ale, 라거 Lager)가 있는데 에일(Ale) 맥주는 주로 영국산이고, 라거(Lager) 맥주는 독일산이다.  Ale 맥주는 진저넛, 오후 차 마시는 휴식시간(tea time) 등의 표현과 같이 영국 출신의 민족성을 엿볼 수 있는 음식 관련 어휘이다.  에일(ale)astor, ester 발효 향 ale, astor, ester 이렇게 발음, 향기, 맛이 서로 연결되고 있는 표현이다.  이민자들 사이에 자신의 출신국가를 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맥주를 택하는지 선호도에 따라서 대략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가름해 볼 수 있다.  개인의 선호도는 문화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55] 영미 경험론의 입장은 사람은 개과천선(mending)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실수와 잘못을 고칠 수가 있다는 교육의 기능면에서 희망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56]혼자 있을 권리(right to be alone)” 즉 프라이버시(privacy)는 인간 본성의 하나로 이해되고 오늘날은 헌법적 기본권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57]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정부의 불간섭 정책 즉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는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leave alone”, “allow to be”의 정책이었다. 

[58] 빨간색은 보통법, 푸른 색은 형평법 법원을 뜻했다.  영미국에선 전통적으로 정치 정당의 색깔을 진보는 빨간색, 보수당은 푸른 색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색깔로써 지지 정당과 사상과 신조를 구분한 것이다. 

[59] 말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 문제에서 말하는 사람의 지위, 입고 있는 옷의 색깔, 복장의 형태, 말의 억양, 어조, 성조, 뉘앙스 등의 보조사항으로 인해서 의미의 차이가 날 수 있다.  

[60] 한편 면벽공상(dead-wall reveries)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역사상 위대한 선구자들은 일정기간 동안 침잠하며 다른 연구자들의 이론을 곱씹은 뒤 반박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61] 미국에서 가스등이 가정집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1816년이었다.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때는 1879년이었고, 백열전구의 발명 이전의 조명은 석유 램프나 희미한 가스등을 사용하였다.  촛불은 값이 비싸서 높아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촛대를 훔치는 장면을 상기하라) 부자들이 누리는 혜택이었다.

[62] 대규모의 거대 공장이 출현하고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산업 혁명이 진행되는 가운데 열악한 노동자의 근무 환경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영국에서 하루 10시간 근무 법 (the Ten Hour Act)등을 내용으로 하는 1847공장법이 새로이 제정되었고, 1850년대 이후 계속적으로 개정되었다.  그만큼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개선 문제는 시대적인 요구사항이었다.

[63] “밤에서 태어나 밤에 사라질 눈이니 / 우리가 눈을 통해 보지 않을 때 / 영혼의 빛은 광채 속에 잠든다. // 어둠에 드리운 가여운 영혼에게 / 신은 현현하고 신이 곧 빛이 되나 / 빛의 영역을 사는 영혼에겐 /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 중에서.

[64] 블레이크의 '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 “the mills of God”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8장을 참조하라.

[65] 연자 맷돌(millstone) 뜻은 성경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태 18:6-7).  연자맷돌의 비유는 고의적으로 타인에게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의 비유에서와 같이 의도의 중요성과 근본적인 악의 존재를 인정한다.

[66] 원문 “I speak less than truth when I say that, on his own account, he occasioned me uneasiness.”“on his own account” 문장에서 “on (someone's) account”의 뜻을 가진 강조의 의미로 해석하여, “그를 위해서만 걱정이 되었다고 내가 말하면 그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겠지만 (왜냐하면 사람인 이상 어떻게 남을 내 자신의 몸보다 더 걱정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가 잘못되면 내 자신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에 내 자신을 위해서도 그가 걱정이 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은 경험론의 철학에서 나온다.  내가 동정심을 보이는 행위가 그 사람을 위해서일 뿐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보면 내 자신을 위해서도 유용하다는 것이다. 

[67] 화자인 변호사가 너의 새로운 거처에서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편지로 내게 꼭 통지해 주게나. If hereafter in your new place of abode I can be of any service to you, do not fail to advise me by letter.”라고 정중하게 이별의 말을 건네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사업상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질 때 쓰는 상투적인 말이다.  어떤 일로 내가 필요하다면 즉 내가 해줄 수 있는 일 service이 생기면 네게 연락 주세요- 이런 뜻이다. “on his own account”라는 표현은 자기 명의로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on (one's) own account:  For oneself; by oneself: He wants to work on his own account.”변호사가 맡긴 일감을 바틀비 자신이 단독으로 수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수고비를 받은 관계 즉 단독사업자의 지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바틀비는 자신을 변호사의 명령과 지시에 따르는 직원이 아니고 개인사업자라고 이해했기 때문에 변호사가 시키는 잔심부름은 절대로 응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독립사업자와 종업원의 차이는 법적으로 차이가 있다.  바틀비의 경우를 오늘날의 사정으로 말하면, 회사내 하청업자라는 것과 같다.  하청업자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써 일감이 있으면 쓰고 일의 수요가 없으면 언제든지 관계가 청산된다.  하지만 화자인 변호사가 말하듯이 변호사와 바틀비의 업무 관계는 완전하게 구분되는 하청업자가 아니고 또 변호사의 지시와 통제를 받는 관계이므로 바틀비가 독립적으로 일을 한 것on his own account’이라고 말하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런 관계 때문에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이러한 변호사의 설명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바틀비가 종업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립적인 개인사업자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있어서- 즉 바틀비가 일을 시켜도 지시에 따르지 않고 또 그렇다고 그의 손에 일을 온전히 맡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는 마음이 불편했다는 뜻이다.  변호사는 직원이 잘못을 해도 변호사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되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68] 오늘날은 주5일 근무제로 바뀌었으므로, “영업일 기준으로 5일 이내로표현을 쓸 것 같다.  이 말의 뜻은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제외하고 5일이 지난 때를 말한다.

[69] Sixpence(6d) 16세기 중엽 종교개혁시기에 처음 주조된 이후 1971년까지 유통된 동전을 지칭한다.

[70] 페니, 실링은 영국의 화폐 단위이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스페인의 페소 등 외국 화폐가 1857년까지 법정화폐로 동시에 쓰였다.(12 pence to the shilling, with 20 shillings to the pound).

[71] 미국의 화폐 제도는 1900년 금본위제 Gold Standard Act가 시행될 때까지 금과 은의 이중 화폐 제도 Bimetallism가 시행되었다. 

[72] 바틀비가 떨어진 동전을 주어다 변호사에게 되돌려 준 적이 많았는데 따라서 그가 20달러를 후하게 퇴직금으로 더 보태준다고 해서 그것이 뭐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의 일이란 주고 받는 give-and-take 관계에 있고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사람은 작은 일로 신용을 얻으면 더 큰 일에도 신용을 얻게 된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 같다.  정직하게 작은 동전을 주어다 되돌려 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즉 그렇게 돈에 대해서 정직한 사람이었음을 볼 때 20달러를 주어도 손도 대지 않고 돈에 대해 큰 욕심을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는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또다른 해석은 그가 과거에 적선을 했으므로 보상을 받는다는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73] 당시 1850년 금 1온스 당 대략 32$ 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33년 금본위제 시행 당시 정부 고시가 금 1온스당 $35/oz 이었다.

[74] 1849 Gold Coinage Act, 20달러 금화 (double eagle) 발행.

[75]If hereafter … I can be of any service to you, do not fail to advise me by letter.”- 지금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그곳에서도 내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내게 연락하라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오늘날에도 If I can be of any service to you, please do not hesitate to contact me.” 고객에게 쓰는 상투적인 문구에 해당한다.  영미인들은 헤어지더라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고, 비즈니스 관계상 자연스러운 것 같다.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동양인이나 영미인이나 다같이 사람의 인맥 즉 연결망 network을 중요시하는 것은 맞지만 영미인의 결합 association에 대한 사고는 우리나라의 연고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76]Masterly I call it”,“고수답다고 표현하는데, 그가 형평법 법원의 판사 “Master”를 지낸 사실을 상기하라. 

[77] “Assumed”-이 뜻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럴 거라고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죽으면 죽으리라”, ”당연히 물가가 오를 것으로 여겨진다등의 표현에서처럼 가정(assumption)하는 것은 문서로 계약을 하지 않아도 당연한 계약으로 인정되어 계약 위반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을 하려면 우선 계약이 먼저 존재해야 함을 증명해야 되는데 보통법원(common law)에서는 그런 계약 문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이 막혀 있었다.  그런데 대장장이한테 가서 생활도구를 만들어 달라든가, 나룻배 사공에게 강을 건너게 부탁한다든가, 이런 사례가 많듯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살아가면서 거의 문서 계약 없이 말로써 계약을 하고 살아간다.  만약 계약 문서가 없으면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억울한 경우가 자주 생겨난 바 이런 경우의 소송은 형평법원에서 맡아주었는데 이러한 소송을 ‘assumpsit(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라고 불렀다. 

[78] 가정(assumption)은 가설(hypothesis)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추론이나 이론의 기초로 이용되는 것을 뜻한다.  법에서 토대, 기초, 기본 원리(foundation, fundamental principle)와 통하는 개념이다.

[79] 보험 분야는 “prediction estimate risk(예상 리스크)”이론이 발달되었는데, 인간 사회의 미래 예측은 과거의 일어난 사례들을 충실하게 모집하는 작업에 의존한다.

[80] 계약 위반에 의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의 종류에는, Assumpsit, Debt, Covenant가 있었다.  Assumpsit 소송에서, 대장장이 등의 전문가들은 고객과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자신의 사정에 따라서 일의 착수 시기를 결정하지, 고객이 지정할 성격이 아닌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경우 이들 전문가들은 일의 지연에 대해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변호사의 경우 소송에 착수하지 않았다면 착수금만 돌려주면 되지 그 이외 손해배상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Assumpsit 소송의 본질에서 알 수 있는 철학적 함의 하나는 상대방의 생각은 자신의 가정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81]preferences than assumptions”, 평균인, 합리성, 불법행위책임론에 대한 설명은 III8장을 참조하라.

[82]선거(election)’의 의미는 정치적 대표자를 뽑는 공적 영역에서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선택(election)’의 효과는 중요하다.  ‘election’은 법률 용어로는 선택(choice)’의 뜻을 갖고 있는데, election은 형평법에서뿐만 아니라 보통법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고 계약법에서도 어느 것을 선택(election)’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보통법에서의 election은 형평법과는 달리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은 선택할 수 없고 그에 따라 권리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선택권의 행사는 매우 중요하다.

[83]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물건을 팔았는데 잔금을 받지 못한 경우, 계약을 취소하면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가 없다.  그런데 취소와 무효의 법률효과는 다르다.  계약이 무효이면 소유권이 매도자에게 되돌아오고 그 당연한 결과로 물건값은 그대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취소하게 되면 법률관계가 달라지고, 잔금만큼 물건으로 되받거나, 아니면 손해배상을 소구할 수 있다.  손해배상 소송을 선택하게 되면 이 때부터는 자기 물건이라고 되가져갈 수가 없고 만약 가져갈 경우 도둑으로 취급 받을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선택한 그 때부턴 물건의 소유권이 매수인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순간의 선택으로 법률 관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륙법에서는 물건값을 다 받지 못해서 손해배상을 추구하더라도 동시에 물건을 되가져갈 수도 있다.  대륙법에서는 상계의 개념이 우월하기 때문에 잔금을 다 받지 못한 경우에는 그와 동시에 권리를 추구할 수 있다.  예컨대 물건 판매대금 중 잔금이 밀려 있으면 물건을 다시 강제로 찾아오고 다시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상계가 원칙적으로 허용되므로 소유권으로 인한 불법 여부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미법에서는 상계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해결의 관점 또한 크게 달라진다.)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 국가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식의 일석이조의 개념우월한 것 같다.  하지만 꿩 먹고 나면 알은 먹을 수 없다 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는 결론은 자명하고, 이같이 상호 배타적인 성질의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누릴 수 없음(trade-off 관계에 있다)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중요성이라는 개념이 강조되지 못한 우리나라의 법문화인 것 같다.  따라서 자유의지의 문제에서도 토마스 페인의 자유 아니면 죽음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통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trade-off 관계선택에 대한 개념은 정확히 이해되어야 하고 또 강조되어야 한다.

[84] ‘trade-off 관계선택에 대한 개념은 대학교경제학교과서(“맨큐의 경제학”, “새뮤엘슨의 경제학”)에서 경제학의 기초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영미법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권리 자체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영미인들이 정치적 선거에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자유 의지의 철학적 인식뿐만 아니라, ‘선택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를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통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요즈음 미국에서 투표율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는 영미인이 아닌 이민자들이 크게 늘어난 사실에 있기도 하다.

[85] 1849년 아스토르 길 거리에서 10,000명 이상의 군중이 모인 소요 사태가 발생하여 1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1850년 재단사의 쟁의가 발생하였고, 1851년 철도노동자의 파업 사태가 일어났고, 1852년 인쇄공 노조가 결성되었다.

[86]very thankful that the uproar of the street screened my momentary absent-mindedness”-이 문장에서 “screen”의 뜻은 은폐의 의미가 아니라 마치 의사가 전염병이 걸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때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 줄 때의 스크린 의미를 말한다.  의사의 체크, 스크린은 환자가 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확인해주는 행동을 가르키는데 이는 좋은 의미를 갖는다.  스크린은 은폐를 의미할 때는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의사가 진단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똑같은 사건에서도 수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의미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87] 산업혁명의 급격한 진행으로 삽이나 파이프 라인 등의 쇠붙이에 번개가 닿아 사고사를 당한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영국에서 사망 확인서에 사망원인(cause of death)으로써 번개(lightning)에 의한 사고사가 처음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때는 1852년이었다.  당시 산업 재해 사고가 크게 늘어나 보험 약관의 해석 문제로 법적 분쟁이 증가하였다.  화재 보험 약관에 따라 “화재에 의해서(by fire)” 사고가 발생하였는지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보험금 지급 분쟁이 많이 일어났다.  화재 보험 약관에 대한 법률 해석에 대해서 III8장을 참조하라.

[88] 구제 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면 가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전제나 가정은 어떤 결론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제로부터 결론을 잘못 도출하는 논리적 오류-난 세퀴터(non sequitur)-를 범하는 경우 즉 전제와는 전혀 무관한 결론을 꺼낸다든가 또는 원인과 결과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무리한 연관을 이끌어 낼 때는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가 없다.

[89] 그런 식으로 가정의 원칙(doctrine of assumptions)’을 적용하면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바틀비가 분명히 앉아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그가 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황당한 결론이 도출되고 만다.  법인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데 법은 법인을 사람인양 똑 같은 것으로 가정하고 의제 (legal fiction)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의 원리는 불합리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난 세퀴타의 오류처럼 말이다.  화자인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밀린 임금을 정산해서 주고 거기에다 20달러를 더 보태주면 거금에 해당하니 그가 냉큼 받을 줄로 가정했고 그에 따라 돈을 주었는데 바틀비는 그 돈에 손도 안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자 자신의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이면 다 통할 줄로 알고 가정했는데 그건 자신의 주관적인 확신에 따른 가정일 뿐 상대방의 가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90] Hermitage, retreat은 은신처, 은둔처, 요양원, 수용소, 보호소, 수도원으로 상호 대체될 수 있는 말인데 이들 단어들을 좀더 세분한다면 자신의 자유 의지의 존재 여부에 따라서 이 말들이 나타내는 상황과 의미를 구별할 수 있다.

[91] 콜트는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끝냈기 때문에 더욱 불운한 사람으로 말한 것 같다.  즉 사고사로 죽은 아담스보다 자살을 택한 콜트가 더욱 비운했다고 보는 것으로 자살의 정당성을 배격한다. 

[92] 아담스는 인쇄업자 즉 언론계에 종사하였고, 콜트는 사업가이었다.  사건당사자들의 배경으로 살인 사건은 장안의 큰 화제거리였다.  주요신문들도 크게 취급했다.  콜트의 형은 총기제조 사업가로 부자이어서 유능한 변호사들로 변론단을 구성하고 과실치사, 정당 방위, 정신이상에 무죄 등으로 정상 참작의 변론을 펼쳤다.  하지만 배심원에 의해서 살인죄로 평결 났고 사형이 선고되었다.

[93] 범죄자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범죄 의도가 입증되어야 한다.  형법상 가장 기초적인 구성요건은 범죄 행위와 범죄의사가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 즉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위법 행위(guilty act)’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범죄 행위가 일어났을 때 범죄 의사 즉 범행을 일으킬 마음의 상태가 존재 (guilty mind)’했음을 동시에 입증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검찰은 피고인이 범죄를 충분히 일으킬만한 범죄 동기와 범행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혀내야 할 임무가 있다.

[94] 당시 신문 기사와 여론은 콜트의 살인사건을 백만장자의 도덕파탄에 의한 파렴치범으로 몰고 갔다.  화자인 변호사는 그러한 여론 재판의 인식과는 달리 the murder as a "misfortunate accident(우발적인 사고)"라고 여기고, 피고인 콜트에 약간의 동정을 보이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III10장 글을 참조하라.

[95]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항변 기준 믹노텐 원칙(M'Naghten rule)에 대한 설명 III10장 글을 참조하라.  정신이상의 무죄 판단은 판사의 재량적 판단 discretion 영역에 속한다.  판사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살인범으로 사형이 선고될 수 있고, 아니면 무기징역으로 목숨을 건질 수도 있다.  법은 때로는 사회의 선호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  배심원단 평결도 결국은 그 당시 공동체의 선호도에 따른 것이 아닌가?

[96] 완전히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사적 공간인 에서 또는 완전하게 공적 공간인 길거리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였다면 그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화자의 추측이다.  즉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화자의 의견인데 현대 사회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서로 연접되어 있지만 그 연관관계와 접점이 불분명하고 혼합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Wall(사적 공간)+Street(공적 공간)의 월 스트리트의 의미에 대해서 III8장의 설명을 참조하라.

[97] “domestic associations” 이 표현은 가정도 각자 독립된 한 사람과 다른 또 한 사람이 서로 결합된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동양적인 부부일심동체라든가 대리인의 모형이 아니라 가정도 각자 독립된 두 별개의 인격체가 서로 독립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결합체의 구조로써 인식한다.

[98] 화자인 변호사가 범인에게 동정하는 시각을 가진 이유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환경에 구속 받아 자신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믹노텐 룰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불법성을 분간해 내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인식 능력이 결핍된 경우 즉 이러한 경우는 이성적 판단 능력이 상실되었고 또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자제할 수 없는 정신적 충동 상태’(Irresistible Impulse)가 일어날 수 있는데 그러한 정신적 질환의 결과 사람의 자유 의사에 의한 결정 능력이 상실된 경우에는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책임론을 수긍하였기 때문이리라.

[99]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even as I have loved you, that you also love one another.” (요한복음 13:34).

[100] 황금률(Golden Rule), 상호주의(reciprocity) 윤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 3장을 참조하라.

[101] 사랑(charity)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선에 대한 해석 III5-6장을 참조하라.

[102] 자선은 세상 지혜 원칙 wise principle”에 따라서도 행하는 것이 옳다.  세상 지혜의 원칙은 십계명 같은 절대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지혜의 말씀을 모아놓은 잠언이나 격언 정도에 해당하는 유용한 삶의 원칙이다.  칸트의 철학으로는 가언명령에 해당된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3장을 참조하라.

[103] “신중의 원칙또는보수성(Prudence)의 원칙에 대해서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61편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보수성의 원칙은 변호사가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5장을 참조하라. 

[104] 7대 악(Seven deadly sins): ①색욕(Lust) ②식탐(Gluttony) ③탐욕(Greed) ④나태(Sloth) ⑤분노(Wrath) ⑥시기(Envy) ⑦교만(Pride).

[105] 동기(motive) to induce a certain action(어떤 행동을 낳은 원천)을 말한다.  III8장 설명을 참조하라. 

[106] 인간이 공동체 사회를 이룬 법적 기초는 동의 consent에서 나온다.  홉스, 존 로크, 사회계약론자, 존 롤즈 정의론을 참조하라.

[107] 사람이 충격적 사건을 접할 때 나타나는 태도에 대해 Kübler-Ross5단계 이론은 ① 부정과 고립(denial and isolation) ② 분노(anger) ③ 타협(bargaining) ④ 우울(depression) ⑤ 수용(acceptance) 5단계 stages로나타난다.

[108] 여기서 “Edwards on the Will,” and “Priestley on Necessity.”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중인유법 Double Allusion이 쓰였다.  따라서 자유 의지에 관한 에드워즈의 생각 무엇인지와 필연주의 상황결정론에 관한 프리스틀리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나단 에드워즈 (1703-53) 미국의 신학자로 자유 의지에 관한 저서를, 프리스틀리 (1733-1804)는 영국의 신학자로 필연주의 철학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다.

[109]필연성(necessity)’이란 어떤 결정(determination)’을 내릴 때 반드시 꼭 필요한(necessary)’ 것을 이르는 개념이다.  결정은 인간의 자유 의지(free will)’의 개념과 연결된다.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의 입장은 모든 인간은 완전한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데 이 자유 의지의 행사는 외부적인 속박이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필연주의 철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II 1장을 참조하라. 

[110] 근대 사회는 각자의 동의(consent)에 기초하므로 설득(persuasion)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111] 갈릴레오는 상대성의 운동 역학과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뉴튼의 작용-반작용의 법칙 (“모든 작용에 대하여, 그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으로 이어졌다.  수학의 황금비를 보면 자연은 연접한 상대방이 존재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황금비를 이루는 피보나치의 수열을 보라.  수열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이 수열은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하는데 서로 이웃하는 두 수의 합을 구하면 바로 다음 항이 되는 수열이다.  피보나치 수열은 황금비를 만들어낸다.  2/1 3/2 5/3 8/5…을 계속 계산하면 1.618…이란 황금비에 수렴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항상 조건에 대한 최적의 해를 찾아내고 그것에 따라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physical reality itself is mathematical.”  “Two pairs of opposite attitudes toward the problem of explaining the effectiveness of mathematics.”

[112] 중재 재판은 당사자들과의 합의에 의해서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열린다.  영미법 국가에서 변호사 사무실은 (증인의 진술을 취하거나 또는 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 법정 참석과도 같은 효력을 갖는 등) 법정의 역할을 대신 수행할 수 있다. 

[113] 중재 제도는 영국에서 출현하였고, 영국인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미국에서 최초는 초대 대통령 워싱톤의 유언에 나타나는데 워싱톤은 상속 분쟁 시 법원이 아니라 대신 중재를 이용해서 분쟁을 해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최초의 중재 조항 arbitration clause이 들어간 사례는 1829년 문서에 보인다. (The Journeymen Cabinet-Makers from Philadelphia).

[114] 인간의역사 초기에는 인간이 자연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가진 자가 임자라는 생각이 지배하였다.  미국의 토착민인 인디언 또한 그런 법사고를 가졌으나 미국에 이주해 들어온 유럽 정복자들은 소유권과 점유권의 구분 개념이 명확했다.  신탁법에서 죽은 사람이 영구히 물권적 재산권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영구 구속 금지 원칙(rule against perpetuities)”을 두고 있다. 물권법에서영속적 점유권(perpetual occupancy)”의 개념은 인디언에게 있어서는 보통법의완전한 소유권(fee simple title)”과 같은 의미이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정복되기 이전에 살고 있던 토착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은 부족 단위의 공동 소유의 개념이었으므로 소유권과 점유권의 분리 개념은 불필요하였다.  하지만소유권을 행사하는 데 점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10분의 9에 해당한다. (Possession is nine tenths of the law.)”는 법격언이 말해주듯이우선 현실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복자와 토착 원주민 인디언과의 관계는 조약이나 계약법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토지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인디언에 대한 정복 전쟁을 통한 무력으로 해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디언의영속적 점유권은 소수의 제한적인 경우로 한정되어 인정되었다.

[115] 형평법에서 요구되는 처리 기준의 핵심이 양심, 정의, 자연법, 천상의 명령이다.  전례도 없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그런 난감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 최후의 준거 기준은 오로지 이와 같은 단어들의 통칭인 양심이다.  어려운 케이스를 만나면 오로지 양심에 따라서 분쟁을 처리해야 되는데 이 때 양심이 내게 명령하는 것은 무엇인가?

[116]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래서 자신은 죽어서라도 여기서 뼈를 묻겠다고 하는 인디언의 심정을 상기해 보자.  미국 정부군과 인디언 사이의 마지막 전투는 1890년이었다.  "내 여기 머물지 않고 / 내 일어나 넘어 가리리 /내 심장을 피비린내 나는 운디드니 그곳에 묻어주오I shall not be here / I shall rise and pass /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베넷의 시 "American Names" (1931) 구절 중에서.

[117] 전쟁터에서 병사가 전사하면 전사자의 유해를 그의 고향으로 운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디언 정복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유해를 죽은 자리에 그대로 묻는 이유는 시체를 운반할 관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해를 벽 속에 묻어주는 편을 택한 것은 자유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사자가 장례를 치를 수 있을만한 유산이 없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거기 벽 속에 묻을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을 암시한다.

[118] 유럽 정복자들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으려고 인디언을 서부로 내몰면서 갖은 수단을 써가며 어르고 달랬다.  그래도 인디언에게 통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인디언을 정복하고 몰살하는 정책을 폈다.  내 뼈를 여기 이 언덕에 묻겠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 투쟁을 택한 인디언의 역사가 상기된다.  물론 이 글 속에서 인디언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속적 점유권 perpetual occupancy”과 관련하여 그리고 (로마 시대 카틸리나의 경우처럼 인디언이 자살적 전멸이라는 최후의 항전을 택하게 되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충분하게 연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119] 이 단락의 독백 부분은 양심의 법정 (형평법 법원)”에서 양심에 따라서 내리는 천상의 명령을 의인화하여 양심과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불쌍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이 때 양심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인가?

[120] 중대범죄는 보통법원의 관할이었다.  형평법 법원에서 부랑자 여부를 판결하고 또 노예 도망자를 감옥에 가둘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지만 얼마 못 가서 폐지되었다.  부랑자를 형사중범죄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영미국의 판례법 국가에서 사법부와 행정부는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의해서 엄격히 구분된다. 

[121] 당시 형평법 법원이 부랑자에 대한 강제 수용 여부를 결정하였다.  별도로 전담 판사가 있었다.

[122] 부랑자에 해당하는 요건을 정한 법률규정에 모호성이 있었고 따라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위험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파산자라고 해도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할만한 최소한의 수단(means of support)이 있음이 입증되면 강제 수용소(the poorhouse)에 수용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123] 불법침입자(trespasser)에 대한 소송(불법행위법은 민사법정에서 다룬다-대륙법국가처럼 검찰에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영미법은 보통 법원에 정식 소를 제기해야 한다)은 보통법에 따라 보통법원에 제기한다.  “The law”, “common law”, “law and equity” 이런 단어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보통법에 따른 소송은 그 결과를 비교적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법은 법원칙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예측가능하다.  반면 형평법은 판사의 재량적인 사항이 많고 항변사유가 보다 폭넓게 인정되어 예측가능성이 줄어든다.  화자인 변호사의 판단으로는 현재 사무실에서의 바틀비와의 법적 관계는 보통법의 관할 사항이 아니라 형평법의 관할 사항으로 여겼던 것 같다.  (물론 뉴욕에서는 1848년에 보통법원과 형평법원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겠지만 법의 실질적 내용적으로는 현재까지도 구분적 의미가 존재한다.). 

[124] 회사의 구조 조정으로 인한 해고는 정당한 해고 사유에 속하고, 통상적으로 사전 통지 절차를 밟는다.

[125] 우리들이 흔히사업을 접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 말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가 folded”이다. 

[126] “put one's hand in one's pocket: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3장을 참조하라.

[127]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and—and my heart in my mouth.” “my heart in my mouth”목이 잠기다”, “목이 메이다뜻의 영어 관용구에 해당한다.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 To be extremely frightened or anxious.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 Fig. to feel strongly emotional about someone or something.”  자세한 설명은 I3장을 참조하라.

[128]In mercys name, who is he?-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on earth""in God's name"은 의미가 비슷하므로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굽니까?” 이렇게 해석해도 무난하다.  하지만 "in God's name"의 말은 좀더 유감스러움을 표현한다고 보면, 강조점이 “what”이 아니라 “why”에 주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따라서 왜 바보같이 우리 둘이(변호사 이인) 서로 실랑이를 벌어야 한단 말이요! 내가 법적으로 추궁하지는 않을 테니 인간적으로 제발 그 사람 이름이라도 알려줄 순 없겠소?’뭐 이런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in God's name!”은 마태복음 9:13 구절에 나오듯이 “In the name of mercy give!”하고 같은 뜻이다.  솔로몬의 명판결로 유명한 성경의 일화 (열왕기 상 3:16-28),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엄마들의 다툼을 보자.  그 사건의 입장과는 반대로 여기서의 두 변호사는 바틀비를 서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서로 미루는 상황이다.

[129] 그가 노숙자, 부랑자, 걸식자의 법률 요건에 해당됨을 의미한다.

[130] 법원은 최후의 권력자이고,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그 이면을 파헤치는 4에 해당한다. 법원은 언론에 의해 감시 견제되는 이러한 관계에서 법조인은 언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언론(여론)은 다수이고 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그에 대해서 미리 예측을 하기가 어렵고 또 통제를 하기 힘든 대상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131]nuisance”는 골칫거리, 골칫덩어리로써 그런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 불법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Nuisance에는 공장폐수 사례 같은 공공 침해(public nuisance)가 있고 사유지 침범 사례 같은 사적 침해(private nuisanc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