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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월스트리트변호사 스토리

필경사 바틀비 스토리-I

by 추홍희블로그 2022. 9. 19.

 

필경사 바틀비 스토리

 

 

 

 

 

일러두기

 

1.    이 책은 멜빌의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을 번역하고 주해한 책이다.  Herman Melville (1819–1891),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Vol.I. Nov 1853, 546–557; Vol.II. Dec 1853, 609–615, Putnam’s Monthly, New York, G. P. Putnam & Co.

 

2.    모든 각주와 주해는 역자가 추가한 것이다.

 

3.    단어의 강조 표시는 원문에서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이탤릭체의 사용은 낱말의 강조를 의미하는데 이 책의 한글번역에선 이탤릭체를 사용하는 대신 밑줄을 그어 표시했다.  자모음이 결합된 한글의 특성상 이탤릭체보다 밑줄 강조가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필경사 바틀비 스토리

 

 

 

나는 이제 장년에 접어든 사람이다.[1] 지난 삼십년간종사해온 내 전문직업[2]의 성격상 나는 재미나고 다소 특이한 집단의 사람들을 좀 특별하게 접해 왔다.  내가 알기로는 이들에 대해 다룬 글은 여지껏 없는 것 같은데 바로 법률-문서필경사 또는 스크리브너[3]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나는 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이들을 많이 알고 지내왔고, 따라서 내가 마음만 동한다면마음씨-좋은 양반들은 너털웃음을 짓거나, 다소 감상적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전개해 나갈 수가 있다.그러나 내가 보거나 들어서 알고있는 필경사 중에 가장 이상한 바틀비의 삶에 관한 몇몇 구절만 남기고다른 모든 필경사들에 관한 전기를 쓰는 일은 포기하고자 한다.  다른 필경사에 대해서라면 일생을 다루는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바틀비에 대해서는 그런 전기를 쓸 수가 없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충실하고 만족스러울 정도의 전기를 쓸만한 자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4]이는 문학에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작용할 것이다.  바틀비는 원본 자료 말고는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는 그런 존재 중의 하나인데 그에 대해서는 그런 원본자료가 매우 적다.  그와 관련해서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모호한 소문 하나를 제외하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바틀비를 경험한 충격적인 사실 그런 정도가[5]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내게 처음 모습을 보인 필경사 바틀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내 자신, 직원들, 내가 하는 일, 내 법률사무소, 전반적인 주위 환경에 대해 약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왜냐하면 그런 설명을 어느 정도 해놓는 것이 곧 등장할 주인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나는 젊었을 때부터, 그저 편안하고 쉽게 살아가는 삶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신념을 확고하게 줄곧 견지해 왔다.  그리하여, 나는 다들 알다시피 활력이 넘치고, 또 때론, 심지어 분격하기도 하는,긴장의 연속인 직업에 속하고 있긴 해도 그런 격렬함으로 인해서 나의 평화가깨뜨려지는 경우를 겪어보지 않았다.  나는 어려운 배심원 재판[6]을 맡거나, 대중의 찬사를 불러 일으킨 적이 없는 그런 야심없는 변호사 부류에 속하고, 더욱이 아늑한 휴양지[7]같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돈 많은 부자들의 채권, 담보증권, 부동산 매매 업무를 주로 맡으며 안정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는 나를 아주 안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최근 고인이 된 존 제이콥 아스토르[8]는 시적 정열 따위에는거의 관심도 없는 인물이지만 그는 내가 가진 제일 큰 장점이 신중함[9]이고, 그 둘째는 업무 체계성[10]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이말을 하는 것은 자랑하려고 하는 허영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할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 고 요한 야곱 아스토르 또한 나의 고객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이름을 즐겨 반복 사용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이름은 혀굴리기 좋은 둥근 홀소리 발음이어서, 금괴처럼 낭랑하게 울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는 고 요한 야곱 아스토르의 호의적인 의견에 내 자신 무감각하지 않다는 점을 거리낌없이 추가하고자 한다.[11][12]

 

내가 이 단편 소설에서 말하려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때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13]크게 늘어났다.  -요크 주에서 지금은 없어진[14] 예전의 그 좋은 형평법 법원[15]의 판사[16]자리가 내게 주어졌던 것이다.[17]  그 자리는 크게 힘든 업무도 아니었고 매우 만족스러울 정도로 급여도 좋은 자리였다.  내가 화를 내는 경우란 거의 없다. 불법행위와 중범죄에 대해 분개해 마지않는 그런 위험스런 행동은 내게서 더더욱 볼 수 없다.[18]하지만 여기서 내가 성급한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다면 새로운 뉴-욕 주헌법에 근거하여 형평법 법원의 판사직이 갑작스럽고 일거에 폐지된 것은 그건 너무 섣부른 행동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19]  또한 그 자리는 평생 동안 유지하는 종신직[20]이었는데 나는 불과 몇 년밖에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여담이다.[21]

 

내 사무실은 월스트리트 00번지의 2층에 있었다. 사무실의 왼쪽 끝에서는 건물 맨 꼭대기에서 마루바닥까지 관통하는 햇빛이 드는 널찍한 공간이 있고, 하얀 벽으로 마감된 내부가 보였다.[22] 이런 광경은 풍경화 화가에게 요구되는 생동감이 결여된 것 같고, 아니면 축처진 모습 같았다.  하지만 사무실 반대편에서 보이는 광경은 확연하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쪽 방향으로 내 사무실 창문[23]을 통해 보면 오래되어 거뭇해지고 늘 그늘진, 우뚝 솟은 벽돌담이 쭉 내려다 보였고, 그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 망원경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근시를 가진 구경꾼도 볼 수 있게끔, 유리창가에서 약 3미터 안까지벽이 바싹 붙어 있었다.  주변 건물들이 굉장히 높기도 하고, 또 사무실이 2층에 있는 관계로,옆 담벼락과 사무실 사이의 간격은 거대한 정사각형[24] 물탱크와 적잖이 닮았다.[25]

 

바틀비가 새로 들어 오기 직전까지, 내 사무실 직원은 법률문서필경사 두 명과, 장래가 촉망되는 한 소년을 사환으로 두고 있었다.  이들 순서대로, 터키, 니퍼즈, 진저넛의 이름을 가졌다.[26]이들 이름은 사업자 명부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지 모른다.  사실 직원 세명이 서로를 부르는, 별명으로, 각자의 외모나 성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터키는 키가 작고, 좀 뚱뚱하여 숨을 헐떡이는 영국인[27]이었는데, 나이는 내 또래, , 예순이 그리 멀지 않는 정도이었다.  그의 얼굴은 오전에는, 불그스름한 혈색이 좋다고, 보이는데, 일단, 12-그에게는 저녁시간[28]-를 지나면, 석탄을 가득 넣은 크리스마스 때 피우는 벽난로불처럼 확 타올랐고, 계속 빛을 내 타오르다, 만사가 그렇듯이,서서히 줄어들고, 오후 6시 무렵이 되면, 사그라졌다.  6시 이후에는 태양과 함께 절정에 이르는, 그 얼굴 주인을 내가 더 이상 보지 못했는데, 그 얼굴은 아마도 해와 함께 지고, 일어나, 절정에 오르다, 다음날까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는 마치 규칙적이고 변치 않는 영광의 승리처럼 보였다.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는 기이한 우연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터키가 붉고 환한 얼굴색으로 아주 즐거운 미소를 짓는 때, 바로 그 중요한 순간이, 내가 보기에 하루 24시간 중 그의 업무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시간대이고, 그 때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는 것, 이 또한, 기이한 사실이었다.  그 시간 때에 그가 일을 아예 손 놓고 있다거나, 업무를 마다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그가 지나치게 원기 왕성해진다는 데 있었다.  그는 특이하고, 흥분하고, 당황하고,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부주의하고 경솔함을 나타냈다.  그는 잉크병에 펜을 담그면서 조심하지 않는 듯 했다.  내 서류들에 그가 남긴 잉크 얼룩들은 모두, 정오, 12[29]를 넘긴, 오후에 떨어뜨린 것이다.  실로, 터키는 오후만 되면 경솔해지고 또 얼룩을 만들어 사고를 칠 뿐만 아니라,어떤 날에는 더 심한 경우도 있고, 또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그럴 때는, 그의 얼굴 또한, 무연탄 위에다 검은 숯댕이불을 붙여 댕긴 것처럼, 화염에 쌓인 깃발마냥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의자로 불쾌한 소음을 내고, 또 모래통을 쏟기도 하고, 또 펜을 고치려고, 안달하다가 산산조각이 나자, 불 같은 성미로 바닥에다 홱 내던져버리고, 또 자리에 일어서서 탁자 위에 기대어, 엉망진창으로 서류를 뒤섞여 쌓아두기도 했는데, 이런 것은 그처럼 나이 지긋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아주기에는 매우 민망한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여러모로 내게 무척 중요한 사람이고, 또한 12, 정오가 되기 전까지는 가장 빠르고, 꾸준한 존재로써, 쉽게 견줄 수 없는 방식으로 대단한 분량의 일을 완수했는데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비록 내가 그에게 가끔, 잔소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의 기행을 기꺼이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타이르더라도 아주 부드럽게 했는데, 그 까닭은 그가 오전에는 매우 정중하고, 아니 더없이 온후하고 공손한 사람이지만, 오후에는 자극을 받으면 말투가 약간 급해지는, 사실상, 무례해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내가 말한 대로, 그의 오전 근무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 그를 내보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12시 이후 나타나는 그의 불같은 태도가 불편했다.  나는 사태를 평온하게 해결하려는 사람이라서, 혹시라도 그의 험악한 반박을 불러오지 않도록, 그를 면전에서 야단치는 것은 삼갔고, 대신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내가 시간을 따로 내서 (그는 토요일이면 언제나 더 심해진다), 아주 부드럽게, 넌지시 말해보기로 했는데, 이는 이제 그도 늙어가고 있고, 그러니 근무를 단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12시 이후에는 사무실에 나올 필요가 없이 점심 식사 후에바로 숙소로 귀가해서, 오후 차 마시는 시간[30] 때까지,조용히 쉬고 있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된다고 말하며, 그는 헌신적인 오후 근무를 고집했다.  그가 긴 자로 사무실 맞은 편 끝을 겨냥하는 동작을 보이면서까지- 만약 자신의 오전 근무가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오후 근무는 더더욱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내게 웅변조로 장담할 때, 그의 얼굴색은 참기 힘들 정도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존경하는, 변호사님,”[31] 터키가 이렇게 말했다,“저는 저스스로 변호사님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전에는 그저부대원들을 소집해서 배치시키면 되지만, 오후에는 제가 직접 부대의 선두에 서서, 적진으로 용감하게 돌격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그러면서 터키는 자를 들고 격렬하게 찌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터키, 얼룩은?” 이렇게 내가 말하며 넌지시 비추었다.  .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변호사님, 이 머리카락을 보세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나른한 오후에 얼룩 한 두점이 나온다고 해서 이렇게 머리가 희끈희끈해진 사람을심하게 문책할 정도는 아닙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설령 문서 한쪽 전체를 얼룩지게 할지라도- 존중받을만 합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우리 둘 다 같이 늙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동료 의식[32]이라는 감정에 호소하게 되면 내가 이에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가 일찍 퇴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그가 그대로 남아 있도록 내버려두기로 생각을 굳혔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후 시간에는 덜 중요한 서류를 다루게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내 직원명부에 두번째에 올라 있는 니퍼즈는 구레나룻수염을 기르고, 창백한 얼굴인데, 대체적으로, 약간 해적같이 보이는 스물다섯살 가량의 젊은이였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가 두가지 사악한 권력-야망과 소화불량-의 희생자로 보였다. 야망은 단순한 필경사에게 요구되는 일을 참아내지 못하는 어떤 성향, 예컨대 법률문서의 원안 작성처럼, 엄격히 전문가[33]의 영역에 속하는일에 주제 넘게 끼어드는 것에서 포착되었다.[34]  소화불량은 간혹 신경질적으로 성미 급하고 또 이를 드러내며 짜증을 낸다든지, 필사중에 실수를 저지르면 소리나게 이를 간다든지, 한창 열 올려서 일하는 가운데, 입안에서 쉿쉿거리며, 쓸데없는 악담을 내뱉는다든지, 특히 그가 일하는 책상 높이에 끊임없는 불만을 표한다는 것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니퍼즈는 기계를 만지는 데는 매우 뛰어난 재주가 있지만, 자기 책상 하나 자기 마음에 맞게끔 조절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책상다리에, 종이 판지조각 등, 갖가지 종류의, 토막들을 넣다가, 마침내는 압지를 여러 번 접어서 절묘한 조정을 시도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떠한 새로운 시도도 답이 되지 못했다.  만약, 그의 등을 편안하게 하려고, 책상 뚜껑을 턱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각도로 높이고, 책상을 마치 네덜란드식 가파른 집 지붕처럼 이용해서 글을 쓰고자 할 때면, 그의 두 팔이 저려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와는 다르게 책상 높이를 허리춤까지 낮추고서, 책상 위로 몸을 구부려 글을 쓰려고 하면, 이번에는 그의 등이 따끔거리게 아팠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안의 진실은, 니퍼즈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35]  그게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이 달리 있다면, 그것은 필경사의 책상을 아예 치워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병든 야망의 표출 가운데는 그가 자기 고객이라고 부르는, 초라한 외투를 입은 정체불명의 친구들이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끼어있었다.  사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가 때로는, 꽤 중요한 지역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간혹 소액전담법원[36]에서 사소한 업무도 보았으며, 더 툼즈[37]형사 법원 주변에서도 조금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내 사무실로 니퍼즈를 찾아와,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가 그의 고객이라고 주장한, 한 사람이 다름아닌 빚쟁이였고, 부동산 소유권증서라고 주장한 것은, 어음장[38]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든 결점과, 그가 내게 끼친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니퍼즈는 같은 영국 출신인 터키와 마찬가지로 내게 매우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깔끔하고, 민첩하게, 필기를 했고, 제 마음이 내키면, 신사적인 태도를 충분하게 보여주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그는 항상 신사답게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말이 나온 김에 첨언하면, 그런 모습이 내 사무실의 신망을 더해주었다.[39]반면에 터키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가 내 사무실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의 옷은 기름때에 찌든 모습인데다 음식점의 찌꺼기 냄새를 풍기기 십상이었다.  그는 여름에 바지를 아주 헐렁하게 입고 다녔다.  그의 외투는 매우 초라했고 그의 모자는 집어 주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영국인답게 타고난 예의바름과 정중함을 갖추었고, 또 서로 믿을 수 있는 영국인인만큼,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항상 모자를 벗기 때문에,[40] 모자는 내게 상관이 없지만, 그가 입은 코트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의 코트 복장에 대해서, 내가 그를 설득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내가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니, 사람은 소득이 매우 초라할 정도로 적으면, 그토록 윤기나는 얼굴과 윤기나는 외투를 동시에 뽐내고 다닐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었다.  언젠가 니퍼즈가 목격한 대로, 터키의 돈은 주로 값싼 적포도주를 구입하는데 쓰여졌다.  어느 겨울날 나는 터키에게 매우 고상하게 보이는 내 코트, 부드러운 솜털이 들어간 회색 코트로써, 매우 편안하고 따스했고, 무릎에서 목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한 벌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터키가 내 호의를 고맙게 여기고, 오후만 되면 나타나는 그의 경솔함과 난폭스러움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솜털 담요같이 포근한 코트를 감싸고 단추를 꽉 채워주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었다고 나는 진정 믿는다.[41]  말에게 귀리를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말에게 해롭다[42]는 속담과 마찬가지에서 말이다.  사실, 경솔하게 날뛰는, 말이 귀리를 먹으면 더욱 날뛴다는 속담과 꼭같이, 터키도 코트를 입고서는 더욱 잘난 체했다.  코트가 그를 건방지게 만든 것이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오히려 망쳐지는 그런 사람이었다.[43]

 

터키의 자기 방종의 습성[44]에 관해서는 내 나름대로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측은한 니퍼즈에 대해서는 그가 다른 방면에서 어떤 결함이 있던 간에, 적어도,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젊은이라는 것을 나는 사뭇 확신하고 있었다.[45]  그러나 사실, 그는 타고난 천성대로 살아가고, 또 쉽게 흥분하고, 술기운이 있는 성격을 타고나서,별도로 음주할 필요가 없었다.  조용한 내 사무실에서, 니퍼즈가 가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위로 몸을 구부리고, 팔을 넓게 벌려, 책상 전체를 붙잡고는, 마치 책상이 자기를 방해하고, 괴롭힐 의도를 가진, 악의적인 임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양, 이리 움직이고, 저리 획 내치면서, 책상을 바닥에 심하게 갈아대는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건지 생각해 보면, 니퍼즈에게, 술과 물은 둘다 불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46]

 

니퍼즈가 툭하면 짜증내고 그에 따른 신경과민이 그것의 특이한 원인-소화불량- 때문에, 주로 오전에 나타나고, 오후에는 그가 비교적 순해진다는 사실은 나에게 다행이었다.  터키의 발작은 12시경이 되어서야 시작되므로, 두 사람의 기행을 한꺼번에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발작은 경비병의 근무 교대처럼 서로 번갈아 이어졌다.  니퍼즈의 발작이 시작되면 터키의 발작이 그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스런 자연의 배려였다.

 

내 사무실 직원 중 세번째인 진저넛은 열두살쯤 된 소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짐마차 마부였는데, 자기가 죽기 전에 아들이 마부석 대신 판사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주당 1달러[47]를 받고, 법학도[48]이자, 심부름꾼이자, 바닥을 쓸고 닦는 청소부로서 내 변호사 사무소에서일하게 만들었다.[49]진저넛은 자기만의 자그마한 책상을 갖고는 있으나,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책상 검사를 해보면, 서랍에는 여러가지 견과류 봉지들이 수북했다.  실로, 머리 좋은 이 젊은이에게는 위대한 법학이라는학문 전체가하나의 과일 열매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50]진저넛이 하는 업무일 뿐만 아니라, 그가 더 없이 민첩하게 수행하기도 하는 일은, 터키와 니퍼즈에게 빵과 사과를 배달하는 임무였다.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일은 다들 알다시피 무척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일이라서,내 사무실의 두 필경사는 세관과 우체국[51] 근처의 수많은 노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잘 익은 스피첸버그 사과[52]로 자주 목을 축이고 싶어했다.  또한 그들은 그 특이한 빵-작고, 납작하고, 둥글고, 아주 향긋한-을사러 진저넛을 뻔질나게 보냈는데 이 빵의 명칭을 따서 그의 별명을 붙여 주었다. 어느 추운 날 오전에 업무가몹시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터키는 생강빵을 그저 바스락거리는 얇은 비스킷처럼 여러 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곤 했는데사실 생강빵은1페니에 여섯개나 여덟개씩 팔린다그럴 때면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입에서 바삭거리는 조각들을 집어 삼키는 소리와 뒤섞였다.  어느 무더운 오후에 터키가 흥분해서 저지른 실수가운데, 그가 한번은 생강빵을혀에 갖다 대고 침을 묻혀서, 그것을 봉인해야 할 저당담보증서에다살짝 갖다 붙인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때 그를 즉시해고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가아시아인이 깍듯하게절하듯이 고개를 숙이며,[53]존경하는, 변호사님, 제비용으로 문방구를 즉시 사와서 수정할테니 관대하게 봐주세요.”라고 말하며 사과하는 바람에 내 마음이 진정되었다.[54]

 

현재 나의 주요 업무-부동산 매매 및 등기 전문 변호사, 그리고 각종의 난해한 법률 서류 작성-는 법원의 판사직을 맡고 난 이후로 눈에 띄게 늘어났다.[55]  이제 법률문서 필경사의 일감이 크게 불어났다.  나는 기존의 직원들을 다그쳐야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 했다. 구인 광고를 보고, 어느날 아침 한 젊은 남자가, 여름이라, 사무실 문을 열어놓았는데도, 사무실 문앞에 꼿꼿이 서서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의 모습-맥없이 단조롭고, 애처로워 동정이 가는, 정말 슬픈 표정이 내 눈에 선하다!  그가 바로 바틀비였다.

 

그가 가진 자격증에 대하여 몇 마디 물어본 다음 나는 그를 고용하기로 했다.  그토록 특별하게 침착한 면모를 갖춘 사람이나의 필경사 군단에 들어오게 된 것이 기뻤는데 이는 그런 면모가 터키의 변덕스러운 기질과 니퍼즈의 불같은 성격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리라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었다.[56]

 

미리 말해 두었어야 하는 일이지만 반투명유리 접문을 사이에 두고 내 사무실 공간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쪽은 필경사들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내가일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이 문을 열거나, 닫을 수 있었다.  나는 바틀비를 접문 바로 옆의 한구석에 배치하기로 했다.  사소한 작은 일들을 처리해야 될 경우를대비해서, 이 조용한 사람을 내가 즉시부를 수 있는 위치에 두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의 책상을 사무실 그 쪽에 나 있는 조그만 옆창문에 바싹 붙여놓았다.  원래는 그 창을 통해서 벽돌집과 그 지저분한 뒷마당의 모습을 위에서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으나, 나중에 건물이 높이 세워지는 바람에, 현재는 약간의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 외에는, 전혀 경치를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유리창가에서 1미터 이내 사이로 벽 하나가 있었고, 빛이 마치 거대한 둥근 천장의 아주 작은 구멍 틈에서 새어 나오는 것처럼, 저 높은 곳에서, 두 고층 건물 사이를 타고 내려왔다. 더욱 완벽한 배치를 위해서 나는 바틀비 쪽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그를 내 시야에서 완전히 가릴 수 있게끔, 높다란 접이식 녹색 칸막이를 설치했다.  이렇게 해서, 그런대로, 사적인 자유와 서로간의 소통이 공존할 수 있었다.[57]

 

바틀비는 근무 초기에 엄청난 양의 필사를 해냈다.  필사하기를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58] 마냥, 그는 내 문서들을 막 집어 삼키는 듯했다.  소화를 시킬 휴식 시간도 갖지 않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는데[59] 낮에는 햇빛을 받고 밤에는 촛불을 켜고 필사를 해냈다.  만약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에 무척 기뻐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필사 일을 묵묵히, 단조롭게, 기계적으로 해나갔을 뿐이었다.

 

글자 한자한자[60] 꼼꼼하게 따져가며 필사의 정확성을 검증해 내는 것도, 당연히, 필경사의 일중에 빠뜨릴 수 없는 한 부분이다.  한 사무실에 두 명 이상의 필경사가 있으면, 한 사람은 필사본을 읽고, 다른 사람은 원본을 쳐다보면서, 필경사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이런 검토 작업을 한다.[61]  이 일은 아주 따분하고, 피곤하고, 졸리는 작업이다.  어느 정도 활기발랄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정말 참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나는 쉽게 상상이 된다.  예컨대, 활기 넘치는 시인 바이런[62]이 바틀비와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앉아서 꼬불꼬불한 필기체[63]로 손수 꼼꼼하고 빽빽하게 쓰여진, 무려 오백 페이지 정도에, 이르는 법률 문서를 검토했으리라고는 나는 믿기 어렵다.

 

가끔씩, 일이 한창 바쁠 때는, 조금 간단한 서류를 비교하는 일을 내가 손수 돕는일을 마다하지 않는데, 이런 목적으로 나는 터키나 니퍼즈를 불러왔다.  바틀비를 칸막이로 가리고, 내 가까이에 둔 내 의도는 이런 사소한 경우에 그를 바로 부리고자 함이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근무 시작한 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까지는 바틀비가 끝낸 필사를 검토할 필요성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  소소한 일이긴 하지만 바로 처리해야 될 일이기에 즉시 일을 끝내려고, 나는 급히 바틀비를 불렀다.  내가 급하기도 했고 또 즉각적인 반응을당연히기대하면서,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책상에 놓인 원본을 들여다보면서, 필사본을 쥔 오른손을 책상 옆으로, 조금 힘들 정도로 내뻗었다. 이는 바틀비가 자신의 은둔처에서 나오는 즉시, 사본을 넘겨받아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작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런 자세를 하고 계속 앉아 있는 채 나는 그를 부르면서, 내가 그에게 요청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작은 분량의 문서를 나와 함께 검토하는 일-에 대해 빠른 속도로 말했다.  바틀비가 자신의 은신처에서 움직이지도 않고서, 그의 특유의 온화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64][65][66]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놀란 것, 아니, 대경실색한 것을, 한 번 상상해 보라.[67]

 

놀란 마음을 가다듬으며, 나는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 귀로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바틀비가 내 뜻을 완전히 잘못 오해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68]  나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어조로 내가 요청한 것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나 매우 분명하게 들려온 것은 종전과 같은 대답인,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이었다.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되물어보면서, 나는 몹시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저쪽으로 성큼 큰 걸음으로 내걸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정신 나간 거니?  내가 여기 이 문서를 서로 비교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거다-자 이걸 받아.”  라고 말하며 그 종이 문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눈이 뚫어지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은 야위게 생겼고, 회색 빛 눈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불만의 인상이라곤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불안, 분노, 초조하거나 불손하다는 태도가 나타났더라면, 다시 말해, 그에게서 보통 사람의 면모가 있었다면,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를 사무실 밖으로 사정없이 내쫓아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차라리 키케로 석고흉상을 문밖으로 내치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섰다.  나는 그가 자신의 필사 일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서, 잠시 동안 그를 노려 쪼아 보고 서 있다가 다시 내 책상으로 되돌아와 앉았다.  이것 참 묘하네’, 이런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일까?  아무튼 나는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많아서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고심 끝에 그 문제는 나중에 한가한 시간이 나면 다시 꺼내기로 하고 당분간은 접어 두기로 했다.  그리하여 다른 방에서 니퍼즈를 불러 서류 검토를 신속하게 끝냈다.[69]

 

이 일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나서, 바틀비는 장문의 문서를 완성했는데, 그것은 형평법 법원에서 일주일 동안 진행된 증언[70]에 관한 네 통의 사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문서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크게 중요한 소송이었고 따라서 고도의 정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  사전준비를 다 마친 다음, 4통의 사본을 4명의 직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내가 원본을 읽을 생각으로, 옆방에서 터키, 니퍼즈, 진저넛을 불렀다.[71][72]  이에 따라 터키, 니퍼즈, 진저넛이 각자 손에 문서를 들고, 차례대로 앉았을 때, 나는 이 흥미로운 그룹에 동참하라고 바틀비를 불렀다.

 

바틀비! 빨리.  내가 기다리고 있잖아.”

 

카펫이 깔려 있지 않은 맨바닥에 책상다리가 살살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그가 자신의 은둔처 입구에 나타나 서 있었다.

 

어떤 일이 필요하세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필사본, 필사본이야.” 내가 재촉하듯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필사본을 검토할거야.  자 이걸 봐.”라고 말하면서 그를 향해 네번째 사본을 내밀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73] 라고 그가 말하고는 조용하게 칸막이 뒤쪽으로 사라졌다.[74]

 

그 순간 나는 마치 얼어붙은 소금기둥[75]이 되어, 앉아 있는 직원대열의 맨앞에 그대로 꼼짝없이 서 있고 말았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나서, 칸막이 쪽으로 다가 가서, 그렇게 예사롭지 않는 행동을 보인 이유를 캐물었다.

 

거절하는 거야?”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내가 당장 무섭게 격노하여, 더 이상 무슨 말을 나눌 필요도 없이, 그를 내 면전에서 모욕적으로 내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이상하게도 적대감을 누그러뜨릴 뿐만 아니라, 묘한 방법으로 나를 움직이고 당황하게 만드는 그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바틀비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해봤다.

 

이 문서들은 바로 네 필사본이고 이걸 우리가 검토하려는 것이다.  이건 네 일을 덜어주는 것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한번의 검토로 네 개의 사본이 모두 처리되니까.  이건 다들 쓰는 보편적인 관례다.  필경사라면 누구라도 자기 필사본을 검토하는 일에는 돕고 나설 테다.  그렇지 않니? 말도 하지 않을 텐가?  대답해 봐!”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가 플루트 소리 내듯이 높은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바틀비에게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동안, 그는 내가 하는 발언을 주의깊게 새겨듣고,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아주 확실한 결론에 대해 반박할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대답할 때는어떤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에 지배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76]

 

그렇다면, 나의 요청-즉 일반적인 관례와 일반 상식에 따라 내가 한 요구를 따르지 않기로, 네가 결정했다는 뜻인가?”

 

그는 그 점에 대해서는 내 판단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그의 결정은 두번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77]

 

사람이란 유례없이 무모할 정도의 불합리한 방식으로 협박을 당하게 되면, 그가 지닌 가장 명백한 믿음마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말하자면, 그 모든 정의와 그 모든 이성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모두 상대방 편을 들고 있다는 의심을 어렴풋이나마 해나간다는 것이다.[78]  따라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는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잡을 요량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79]

 

터키,” 내가 말했다.  넌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옳지 않아?”

 

존경하는, 변호사님터키가 아주 맥없는 어조로 말했다.  전 변호사님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니퍼즈,” 내가 말했다.  너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같으면 그를 사무실 밖으로 내쫓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센스가 뛰어난 독자라면, 때는 오전이기 때문에, 터키의 대답은 공손하고 차분한 형태로 표현된 반면, 니퍼즈는 성깔 있는 형태로 대답하고 있음을 인식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를 위하여, 앞의 문장을 반복하여 말하면, 니퍼즈의 험악한 마음 상태가 지금 켜져 있고, 터키는 그것이 꺼진 상태였다.)



[1] 나는 나이가 꽤 든 사람이다.  나이든 사람(elderly man)이란 어휘는 올더맨(alderman)이 연상되는데 올더맨(alderman) 젠틀맨(gentlemen)은 지역의 법관, 정치행정을 담당한 지역 유지급 인사를 지칭하는 단어다. 

[2] “avocation”은 직업이라는 뜻에 앞서서 부업이란 뜻으로 통했다.  기독교 국가에서 본업은 하나님의 사명에 봉사하는 천직 vocation은 성직자이면서 세속의 부업(avocation)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의 일을 한다는 의미를 준다.  직업은 본업과 부업으로 구분된다.  변호사는 최소한 두 개의 복수 학위 (당시에는 신학과 법학)를 가졌다.

[3] “legal scrivener” 직업에 대한 III11.A.장의 자세한 설명을 참조하라.

[4] “I believe~“이 말은 자기 자신이 알고 있기로는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이 인지했거나 알고 있는 정도와 범위내에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의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증언은 자기 자신이 직접 오감으로 경험한 사실에만 효력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2차적인 정보(“전문 증거”)는 증언으로써의 효력이 원칙적으로는 주어지지 않는다. 

[5] 단어의 강조 표시는 원문에서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이탤릭체의 사용은 낱말의 강조를 의미하는데 이 책의 한글번역에선 이탤릭체를 사용하는 대신 밑줄을 그어 표시했다.  자모음이 결합된 한글의 특성상 이탤릭체보다 밑줄 강조가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6] 역사상 자료인 키케로의 연설은 영미국의 판례법 재판의 현실적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진 면이 많이 보인다.  판례법에서 재판 진행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증인 심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지, 판례법의 재판과정에서 변호사가 일장연설을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류의 보통 사람들이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력에 따라서 사안을 판단하지, 마치 우리나라 일제시대 신파극으로 유명했던 “검사와 여선생”의 한 장면처럼 방청객의 “심금을 울리는” 일장연설은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에 가깝다.  물론 법정 재판에서 모두연설과 최후진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증인의 법정 증거의 도입과 결론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취조심문이나 반대심문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극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긴 해도 그것은 증인에 대한 질문과 대답 과정에서 나오는 대화의 일부에서 포착되는 것이지, 검사나 변호사나 판사의 일장연설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판례법 재판에서는 키케로가 재판의 승소 요인으로써 든 수사학적 유머 능력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는 듯하다.

[7] retreat는 휴양지, 별장, 기도원의 뜻을 갖는다.  바틀비의 은둔처를 hermitage라고 표현하는데, 허미티지는 수도원으로써 포도밭을 일구면서 일과 공부를 함께 해나가는 곳을 말한다.  우리말의 은신처와 은둔처는 격리된 곳을 의미하는데 도망자로서 몸을 피해 숨기고 있는 곳을 은신처라고 하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조용한 곳으로 낙향한 경우를 은둔처라고 말하는 차이가 있다.  원문에서 자유 의지의 정도가 따라 구분되는 어휘를 사용한 경우 그에 따라 번역에서도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8] 등장인물들의 성명은 이름의 상징성, 프라이버시 존중,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명 대신 가명을 쓰고 하고 있는 가운데 이름과 가족성씨까지 그것도 두 세 번씩 거론하면서 강조한 인물은요한 야곱 아스토르이다.  아스토르는 당대 미국 재계 서열 18위에 오를 정도로 대부호이었다.  III11장 설명을 참조하라.

[9]신중 prudence”의 가치에 대해서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61편에서 자세하게 논하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5장을 참조하라.

[10] 여기서 말하는 방법론 methodology”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따를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이해하면, 우선 개념을 정의 definition하고, 이에 따라 분류해 나가고, 그것을 다시 subdivision department 세분해가는 체계적인 방법론이 떠오른다.  뒷부분에서 화자가 설명하는 대로 전제와 가정 assumption”을 먼저 하고 그 바탕 위에다 자신의 것을 추가하는 일 처리 방식을 말하는 것 같다.  법조인들이 이런 체계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아마도 동일한 개념에 대해 같은 정의(definition)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논쟁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론은 뉴튼의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다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only by 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의 고백해서 알 수 있듯이, 선례를 통하여 새로운 창조를 일구어 내는 통합적 방법론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만약 이상론에 반대되는 현실론(realism)으로 이해한다면, 객관성(objectivity)을 확보하는 객관적인 분석(objective analysis) 태도를 취한 실증주의(positivism) 방법론을 지칭하는 것 같다.  “I do not generate the object from the thought, but the thought from the object.”  콩트는 말했다: “과학으로부터 예측이, 예측으로부터 행동이 나온다.  Saoir pour prevoir et prevoir pour pouvoir.”

[11]I will freely add that I was not insensible to the late John Jacob Astor’s good opinion.” ‘거리낌없이(freely)’는 뒤에 나오는 바틀비가 자주 쓰는 ‘prefer not to’ 즉 탐탐치 않게 여기고 주저하는 모습을 말하는 ‘recalcitrant’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단어이다..

[12] 당대 최고 부호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변호사라면 돈과 지위를 함께 가진 성공한 변호사라는 것을 암시한다. 

[13] avocations은 본업(vocation)에 접두어 a가 붙어 부업의 뜻을 갖는다. 

[14] 뉴욕 주에서 1848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형평법 법원(Equity Court; Chancery Court)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Common Law Court)으로 통합되었다.  형평법은 왕의 직속하에 설치되어 보통법원이 법적 엄격성을 너무 강조한 결과 보통법원에서는 구제받지 못하는 사건들을 취급함으로써 출발했다.  법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정의의 관념에서 보통법 법원에서 외면받는 억울한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렇게 형평법은 국왕의 직속 법원으로 설치된 역사적 유래와 그 사명으로 인해서 정의의 사도라는 별칭이 붙었다.  형평법원의 최고재판관으로는 도덕성이 매우 높고 정의감이 투철한 천주교의 주교 가운데서 임명되었다.  형평법원이 발전해 감에 따라 형평법원의 법관을 변호사들이 맡기 시작하였는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1478–1535)가 변호사 출신으로서 최초의 형평법원 수장이 되었다.

[15] 형평법 법원은 보통법 법원(Common Law)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지금은 형식적으로는 통합되었지만 실제 내용적으로 보면 아직도 각자의 법 체계와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최근까지도 형평법 법원이 남아 있었다.  법인격체인 회사의 경우는 인격체인 회사의 대표자가 행사하므로 어떤 사건이 종결되려고 하면 형평법 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형평법 법원 체계가 현재까지 존재하는 대표적인 주가 델라웨어 주이다.  미국에서 절대다수의 회사의 본사가 델라웨어 주에 법인 주소를 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델라웨어 법원은 회사에 관련된 일을 전문적으로 특화하여 형평법 법원의 역사와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어 기업들이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기업은 환경오염이나 소비자보호법의 사례에서 보여지다시피 배심원(jury) 재판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있고, 또 현대의 고도로 전문화된 기업 소송 업무는 전문 판사가 아니면 맡기가 쉽지 않을 것이므로 전문 법관이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판단하는 형평법 체계를 선호한다.)

[16] 형평법 법원에서 마스터(Master in Chancery Court)”는 판사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고,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계가 매우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사법부 독립의 영미법 체계에서 기능적으로 행정부의 관료적(편의적) 판단과 사법부의 사법적 판단의 경계는 분명하게 (magistrate의 경우 불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원래 마스터라는 자리는 어떤 사건이 대법관 판사에게 보고해야 할 사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하는 즉 대법관을 보좌하는 (사법 판단은 판사만이 할 수 있다) 자리이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행정적 관료와 사법적 판사의 위치를 동시에 갖고 있는 자리였다.  이런 중간적이고 혼합된 성격은 대륙법 국가에서의 검사의 자리에서 볼 수 있다.  (1850년대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형평법 법원의 마스터라는 자리는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사법부 판사의 위치에 속한다.

[17] “Old Boy” 네트워크를 가진 변호사에 속한다.  권위와 전통은 자랑할만한 가치가 있고 대개 존경의 대상이 된다.  ‘old’가 들어가는 명칭은 대개 좋은 의미를 갖고 있다.  오래된 법원 건물을 자기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것은 오랜 전통과 최고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8] 법관의 덕목 중에 최고는 침착성에 있을 것이다.  Horace: “aequam servare mentem (To preserve a calm mind; equanimity).”

[19] 화자인 변호사가 형평법 폐지에 대해서 섣부른 평가를 경계하면서도 일단 형평법 법원 폐지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모든 면에서 신중하게 고려하고 섣부른 단정을 거부하였던 그가 왜 여기서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에 통합되는 법원 개혁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일까?  아마도 그 까닭은 진화론자들이 자유방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사회에는 자연 법칙같은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으로 (예컨대 적자생존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인위적인 강제 개입은 우려된다.  다른 이유는 인위적인 강제 개입을 시도하게 되면 인간 사회의 본성상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시도라고 해도 결과는 엉뚱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를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 13장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을 참조하라.

[20]종신직“life lease”의 어휘를 쓴다.  “Life Lease”는 물권법 법률용어로써 살아 있는 동안까지는 계속 권리를 향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는 죽을 때까지 평생 근무할 수 있는 종신직이다.  보통 판사직은 오래 근무하는 평생 직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화자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을 때 그도 오랫동안 맡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지만 갑작스럽게 형평법원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화자는 형평법원의 판사직을 그만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N. Y. Field Code of 1848).

[21] 화자가 해고된 사정이 도입 부분에서 설명되는데 결말 부분에서 바틀비가 우체국에서 해고된 사정과 비교된다.  헌법과 행정부의 교체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해고되었다는 점에서 이 둘은 동병상련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영국에선 형평법 법원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에 통합된 때는 1873년이었다.  뉴욕은 이보다 앞선 1848년에 양 법원이 통합되었다. 

[22] 빅토리아 시기의 건물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는데, 디킨스의 황폐한 집소설에 묘사되는 법원의 건물 풍경과 비슷하다.

[23] 원문에서 “dead-wall window”, “my windows”, “his window” 표현을 쓰고 있다.  보스가 자리잡은 곳은 창문이 두 개 이상인데 비해 부하직원은 창문도 없이 막힌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변호사의 사무실 위치는 고층빌딩에서 주변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view 있는 창가를 가장 선호한다.  요즘의 먹방이라는 법조 은어는 창문도 없이 꽉 막힌 구석진 방에 자리잡고 있는 신참 변호사를 의미한다.  대저택에는 방 room이 많은데 대개 주택 가격의 차이는 방의 수로써 결정된다.  방은 빛이 들어와야 좋으므로 창문은 방마다 달려 있게 되고 그리하여 창문 숫자가 부의 척도로 여겨졌다.  오늘날 시내 전체가 조망되는 펜트 하우스는 부유층의 전유물인데, 빛이 드는 창문의 숫자가 부의 척도를 나타냈다.  영국에서 창문의 수에 따라서 세금을 매겼는데 이로 인해 세금을 줄이려고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리기도 했다.  영국에서 그 동안 150여 년간 시행되어 오던 창문세 window tax”가 폐지된 때는 1851년이었다.

[24] 왜 법원은 정사각형 구조 court를 선호할까?  궁정이나 법원의 건물 구조는 대개 사각형 구조를 띈다. “four corners rule”라는 법해석 원칙이 있는데 여기서 four corners”는 글이 써진 4각형의 문서 종이를 말한다.  법관은 문서에 써진 문구로써 해석하지 다른 별도의 보충 자료를 필요치 않는다는 법 해석 원칙을 말한다.  4각형 종이는 균등, 평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군대 병영의 막사나 사무실을 쿼터라고 부른다.  천막을 치고 외국인들이나 피난민들을 임시 수용하는 곳을 쿼터라고 말한다.  보통법원의 초기 형태는 지방을 순회하면서 열린 순회재판소이었다.

[25] 당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1850년에 지어진 트리니티 교회 (영국 성공회 소속)이었고, 그 높이는 284피트(86m)에 달했다.  당시 뉴욕 인구수는 약 50만 명이 조금 넘는 대도시로 급팽창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높은 빌딩에서 뉴욕시가지를 조망하기 위해서 성당 계단을 오르는데 1실링을 지불했다고 한다.

[26] 등장인물의 이름들 속에 내포된 의미에 대해서는 III11장을 참조하라.

[27] 1806-1807년 영국과 터키는 전쟁을 벌였고 (이후 세계1차 대전에서 적대국으로써 맞선) 영국(기독교)과 터키(이슬람)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적대관계였다.

[28] “Dinner over”라는 말에서 영국 이민자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정찬 the big meal of the day이 저녁 만찬 dinner이지만 그에게는 점심이 정찬 dinner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가 저녁에 먹는 음식은 저녁식사 Supper라는 말을 쓸 것 같다.  영국식 간단한 아침 식사를 “English breakfast”라고 말한다.

[29]정오시간은 시간의 중요성 time is of essence과 결정적인 순간 critical moment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30] tea-time, 오후 티타임 휴식 시간은 전통적으로 오후 4시경에 갖는다.

[31]존경하는, 변호사님은 원문의 “with submission, sir,”이란 표현인데, 이 말은 상대방이 공적으로 지위가 높을 때 공손함 the sense of humility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법정에서 “with submission”을 쓰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기 의견을 나타날 때 쓰는데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란 정도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이렇게 쉼표를 넣는 까닭은 존경의 대상이 법관이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한 논리가 타당하기 때문에 수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사람의 지위를 보고서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경향이 커서 쉼표 없이 존경하는 변호사님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우리말에는 한자문화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쉼표 물음표 등 문장부호를 활용하는 글쓰기가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With submission” 이 말을 법정에서 쓰는 것을 들어보긴 했지만, 봉건제가 폐지된 오늘날 흔히 쓰는 말투는 아닌 것 같다.  오늘날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이런 종류의 말은 "with all due respect" 또는 "with respect to my learned opponent" 이런 표현을 선호할 것 같다.

[32] 변호사는 동료 의식 fellow feeling이 매우 강한 집단에 속한다.  동료 의식은 법조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기초적인 개념인데 이것은 자신이 상대방을 공정하게 대우하면 그 상대방 또한 자신을 공정히 대우할 것이라는 상호 호혜성에 기초한 관계이다.  “association”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 III 2장 연상주의 이론을 참조하라.

[33] 변호사는 특수한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전문가에 속한다.  변호사는 직원을 고용해서 즉 분업을 통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직원에게 대신 떠넘길 수 없는 일 즉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하는 고유의 업무 영역이 존재한다.  예컨대 증인의 선서를 주재한다든가, 법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주어진 일 등을 처리할 때는 직원에게 대신 떠넘길 수 없고 자신이 직접 손수 처리해야만 한다.  변호사가 부담하고 있는 의무의 성격상 변호사가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서 문서 작성만 해 주는 대필성격의 업무를 맡지는 않을 테고 또 설령 대필 정도만 했다고 해서 변호사 자신의 전문가 책임 의무를 면책 받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바틀비같은 법률 사무소 직원이 제한적으로 대필해 주는 경우 고객은 전문가 책임을 묻지 못할 수도 있다.

[34]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제 국가에서 공무원은 상하관계에 있고 결재 제도를 택하고 있으므로 공무원은 상관의 지시 사항에 따르면 대개 면책되기 때문에 공무원 자신의 고유 업무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고는 엄격하게 구별해 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예컨대 사법적 판단을 행사하는 검사마저 행정부의 편의성이 우선하여 검사 동일체라는 허구적 법리(한국에서의 검사는 실질적으로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헌법적 기관이고 사법적 판단이란 독립성을 의미하고 독립성이란 수직적 수평적으로 독립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검사는 결재 지시 제도에 기반하는 국가 대리인 모델을 따르고 있으므로 사법 판단의 독립성 원칙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를 신봉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일반직 공무원들에게 개인의 고유 업무의 개인 책임 의무를 부담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대륙법국가의 직업공무원제도에서 공무원은 국가의 지시를 행하는 대리인의 지위이므로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면 다른 곳으로 전출입이 가능하고 따라서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그에 개별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륙법국가에서 개별적 책임이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은 국가책임으로 귀결될 뿐이다.  현재 행정부에서 기안자 또는 담당자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은 공무원에게 법적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정 편의상 관리 의무를 높인다는 차원이지 영미법국가처럼 법적 책임을 부담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35] 변호사는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고,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그 내용을 우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예컨대 트러스트 설립 조건 등의 법률 문서를 작성할 때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고객 자신도 포함된다) 문서를 정정하고 수정해야 하는 반복적 수고를 하게 된다.  고객의 요구 지시 instruction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36]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이나 소액 사건을 다루는 소액전담법원 (뉴욕주에서는 “Justices Courts”으로 불렀다) 이곳에서는 변호사의 개입이 꼭 요구되는 곳은 아니다.  소액사건인 경우 서로 원만하게 합의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도되는 곳이기도 하여 변호사의 개입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37] 더 툼즈 형사 법원 건물은 1836년에 설치되었다.  더 툼즈 The Tombs”툼즈 (공동묘지)”라는 무시무시한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흉악범을 다루는 형사 법정과 중범죄인을 수감하는 감방이 있는 그곳의 속칭이다.  더 툼즈에 해당하는 영국 런던의 표현은 올드 베일리(Old Bailey)”이다.  뱃속에서 무덤까지 (from the womb to the tomb)"복지구호로 잘 알려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말과 같은 뜻이다.  무덤은 죽음을 뜻하고, “잠들었다 (fell on sleep)”는 표현은 사람이 죽었다는 뜻의 유퍼미즘 (euphemism)에 해당한다.  유퍼미즘은 당사자가 가질 수 있는 정서상의 거북함을 순화시키는 간접 어법의 표현 방식이다. 

[38] 주식이나 채권의 소유권 증서하고 어음장은 그 증서 모양이 비슷하다.  흔히 어음이 부도났다고 말하는데 어음증서의 모양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부동산 소유권 증서하고는 법적 효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원문에서 “bill”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의 “bill”은 법원 소장을 bill, 영장을 bill, 어음장을 bill이라고 하므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다. 

[39] 변호사 사무실 근무 직원들이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 입는 까닭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인간 세상이나 만물의 움직임에는 인과법칙이 작용한다는 사고에서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대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정중하게 대할 것이라는 self-fulfillingprophecy자기 실현적 논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40] 영미국의 문화는 실내에선 모자를 쓰지 않는 것 No Hats Indoors”이 에티겟이다.  특히 미국 군대에선 예의범절의 차원을 넘어서 엄격하게 지켜지는 규율에 해당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빵모자(야물케 또는 키파라고 부른다)를 쓰는 유태인이라고 해도 미국 군대에서는 실내 모자 착용이 금지된다.(Goldman v. Weinberger 475 U.S. 503 (1986)).  우리나라에서는 실내에서도 모자를 착용하는 문화이기에 영미인들의 에티겟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41]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unintended consequence)”에 대해서 III 13장을 참조하라.

[42]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면 배가 거북스럽게 불러오고 소화불량을 가져오게 된다.”“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겐 호의를 베풀어도 소용이 없다.”

[43] 여기서 자선 charity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드러난다.  자선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영미법에서의 구빈법 Poor Law”의 기본 개념과 변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1601년 처음으로 국가가 나서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려는 구빈법이 제정된 이후 산업 노동력이 크게 부족할 당시인 1834년 영국은 구빈법을 개정하였는데 “New Poor Law 신구빈법의 기본적인 관념 하나는 열등처우의 원칙 the principle of less eligibility”를 도입한 것이었다.  열등처우의 원칙이란 산업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졌는데 노동 의욕의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의 빈민 구제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생계 보조금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이 받는 임금수준보다 더 적어야 한다는 기준이었다.  국가가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있어서 최저 생계비 이상을 지급하면 다른 사람들(현재 일을 하고 있어서 생계비 지급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일하면서 받는 임금 수준보다 일하지 않고 대신 국가에서 생계보조비를 받는 금액이 보다 많다면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이라는 전제가 이 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44] 자기 방종self-indulgent과 자기 통제 self-control는 서로 반대 개념이다.

[45] 당시 금주 운동(예컨대 The Drunkard's Progress)이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메인 주에서 금주법이 제정된 때가 1851년이었다.   

[46] 포이에르바하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 The Essence of Christianity”은 1841년 독일어 초판 되었고, 조지 엘리어트의 영어 번역판이 1854년 출간되었다.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에서 설명한 대로, 인간은 물(자연의 힘)과 술(인간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은 육체의 불순물을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물 속에서는 눈에 씌어진 비늘이 벗겨지므로 보다 분명하게 볼 수가 있고, 보다 분명하게 생각하고, 보다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  물은 탐욕의 불길을 끄고 없애준다.  물 속에 들어가면 불타는 개인 이기심이 줄어들고 사라진다.  물은 마음과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효력을 가졌다.  하지만 물이 가진 신성성은 보충될 필요성이 있다.  물은 자유와 평등의 근원적인 요소이다.  물은 인간에게 자연의 힘을 상기시켜주지만, 인간은 또 한편으론 동식물과 같은 자연과 구별되는 존재이다.  인간은 포도주와 빵으로부터 자기 만족을 얻는다.  사람들은 물에서 자연의 순수한 힘을 찬미하고, 빵과 포도주에서 인간의 마음과 의식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찬미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례에서 물을, 성만찬에서 포도주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예식으로 여긴다.

[47] 당시 1850년대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얼마였을까?  당시에도 소년 노동 착취 금지법이 존재했다.  당시 직물 공장에서 하루 일하고 받는 급료가 25센트에 불과했다.  막노동자의 하루 급료는, 72센트-$1.12이었다고 한다.  1860, 막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96센트-$1.25이었다고 한다. (Margo, “Wages and labor Markets in the U.S” at 33).  변호사 사무소에서 12세 소년이 장차 변호사가 되기 위한 도제 수업을 받는 조건으로 주당 $1의 임금을 받았다면 그건 소년 착취의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보여진다. 세계 최고 갑부이자 최고의 자선가로 유명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15살 때인 1850년 피츠버그 전보 회사에 사무실 심부름꾼 소년으로 취직하여 주당 $2.50 급료를 받았음을 상기하라.

[48] 변호사 사무실 수습 사원의 급여 수준이 박봉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변호사 감독하에 법 지식과 법 실무를 배우고 익히면서 변호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는 도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변호사 제도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법률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면 변호사로 임명되는 도제식 법조인 교육 제도이었다.  하바드대 로스쿨이 설립된 때는 1817년이었다.  미국의 일부 주(캘리포니아주)는 현재까지도 로스쿨 대학 학위를 수여받지 않고서도 대신 변호사 사무소에서 도제식으로 일정 기간 일하고 배우고 나서 (로스쿨 이수 요건을 면제받는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면 정식으로 변호사로 임명되는 도제 방식을 아직까지도 유지해 오고 있다.

[49] 오늘날 “Law clerk”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도제 수업을 받는 법학도뿐만 아니라 로스쿨을 졸업하여 판사 시보 등으로 근무하는 법조인을 지칭한다.  오늘날은 선진국은 거의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 제도이기 때문에 최소한 14-16세 정도까지는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할 나이는 최소 12세 이상은 넘어야 가능하다.  (현재 미국의 경우 의무 교육 16세까지, 일할 수 있는 최소 나이 14세 이상).

[50] Nutshell은 땅콩이나 아몬드처럼 씨를 가진 과일을 말하고, “in a nut-shell”은 관용어구로써 핵심 요점을 간결하게 정리해 놓은 것을 뜻한다.  링컨 대통령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때는 1836년 이었다.  물론 링컨 대통령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는 얘기는 과장된 측면이 많다.  왜냐하면 링컨이 변호사로 임명된 주된 요인은 그가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법률 제정에 큰 기여를 하는 등 이미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을 널리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참작하여 법원이 특별하게 변호사로서 임명장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영미법은 사법부 국가이기에 변호사는 법원에 의해서 최종 임명된다.  그리고 의회 의원은 법률 제정의 임무를 담당하고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변호사로서의 업무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된다.  영미법국가에서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여기 문장 부분은 법률 과목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핵심 요점이 잘 정리된 요약집을 통해서 시험 공부하는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다.  화자 변호사가 실로 머리 좋은 이 젊은이에게는 위대한 법학이라는 학문 전체가 하나의 과일 열매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이렇게 말하는 것은 법학이라는 큰 학문은 하나의 간결 요약집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강조하는 것 같다.  법은 “6법전서를 통째 암기한다고 해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들에서 하나의 통일된 법체계를 완성하려고 (예컨대 나폴레옹 법전) 시도했던 거대한 야망은 (통일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 그 자체에 대한 의미는 차치하고서) 결국 (법의 본질상)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51] 당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밀려들어오는 이민자들로 뉴욕은 크게 발전해 가고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이 밀려 들어 오면서 세관과 우체국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52] 스피첸버그 사과는 뉴욕의 명산품.  스피첸버그Spitzenbergs”는 독일어이다. “spitzen: to sharpen, to peek”.

[53] 당시 뉴욕 근처 농장에서 흉년이 들어 임차농들이 지주들에게 임차비 인하를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그 중 다수가 인도인이었다고 한다.  뉴욕 주정부는 인도인들이 머리에 두건을 두르는 것 같은 괴기한 복장을 금지한 법률 “An Act to prevent Persons Appearing Disguised and Armed” 1845년에 제정했다.  The law made it a crime for any person to “appear in any road or public highway, or in any field, lot, wood or enclosure” with their “face painted, discolored, covered or concealed” or disguised in any manner to hide their identity. If they were arrested and could not give “a good account” of themselves, they faced being deemed a vagrant and being sentenced to six months in jail.” http://occupywallstreet.net/story/new-york%E2%80%99s-anti-mask-law.

[54] “With submission, sir, it was generous of me to find you in stationery on my own account.”  원문의 영어표현은 터키 자신이 잘못을 범했고 그런 큰 실수를 하면 즉시 해고감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변호사에게 깎듯이 절을 하면서 사과를 하는 장면 같다.  자신의 실수가 들키자 이에 변호사가 자신을 해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당황해서 말이 헛 나오면서 문법도 약간 틀리게 말해진 것 같다.  작가가 이런 정황을 전달하고자 일부러 문법을 약간 틀리게 표현한 것 같다.  터키가 자신의 실수가 변호사에게 들키니까 임시변통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면 “(생강 과자를 검인지로 사용한 실수 그건) 회사를 위해서 내 돈 들여서 문방구를 사온 것인데요 그러니 한 번 봐주세요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하였는데 그게 바로 예기치 않게 변호사에게 들켰으니 바로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당황한 표정을 살린다면 존경하는 변호사님, 제 비용으로 문방구를 즉시 사와서 수정할테니 관대하게 봐주세요.”-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유가증권, 유언 상속, 트러스트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seal 문서 봉하는 밀랍)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Signed, sealed, and delivered” is the ceremony with the authenticity of legal documents.중요한 법률문서를 다루는 일에 잘못을 범하면 해고당할 수 있다.  화자인 변호사가 즉시 해고해버릴 마음이 일어났다고 말한 것을 볼 때 그런 상황을 터키가 즉시 알아차리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 것 같다.

[55] 영미법 판사는 거의 종신직이고, 전관예우의 부패 비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인 변호사는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형평법 판사를 그만 두어야 했다.  형평법 법원의 판사 경력은 그 변호사가 유능하다는 징표가 되고 그 결과 고객이 더욱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미판례법국가는 유능한 변호사 중에서 판사를 임명하는 법관임명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의 판검사 재직 후 변호사를 개업할 시 전관예우의 관행에 기대어 큰 돈을 버는 법제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56] 히포크라테스의인간 본성론 On the Nature of Man” 이후 4기질론 Four Temperaments: 다혈질 sanguine, 신경질 choleric, 우울질melancholic, 냉혈질 phlegmatic이 자리를 잡아왔다.  사상의학적 관점에서 화자 변호사는 냉혈질, 바틀비는 우울질, 터키는 다혈질, 니퍼즈는 신경질로 분석한 각자의 성격 비교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Wright, N., "Melville and 'Old Burton," with 'Bartleby' as an Anatomy of Melancholy", Tennessee Studies in English 15 (1970), 1-13.

[57]프라이버시와 교류 privacy and society”의 개념은 서로 상충되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즉 균형 잡기가 중요하다.  프라이버시 권리의 확립은 미국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립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라이버시 기본권의 중요성을 갈파한 미국의 브랜다이스 대법관의 유명한 프라이버시 기본권 The Right to Privacy" (4 Harvard L.R. 193 (1890)) 논문이 하버드대 로스쿨 논문집에 실린 해는 1890년이었다.  

[58] 그가 영국으로부터 온 이민자임을 암시한다.  당시 큰 사회적 혼란이었고 또 그 결과 더욱 미국 이민을 부추긴 대사건이었던 1845-1852년 사이에 걸쳐 일어났던 아일랜드 대기근사태가 연상될 만하다.

[59] 미국에서 노예노동은 악명 높았다.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여 다시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보내는 탈주 노예 법 Fugitive Slave Act” 1850년에 제정되었다. 

[60] 법조인에게 글쓰기는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철자법도 무척 중요시 여긴다.  일반인들에게는 철자법이 하나 정도 틀렸다고 해서 큰 사단이 벌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겠지만 법조인의 경우엔 약간 다르다.  판결이라는 영어 단어는 judgment이다.  흔히 잘못 하기 쉬운 실수로 judgement으로 쓰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실제로 로스쿨 수업 시간에 한 교수가 시험 답안지에 “judgement”으로 철자법을 틀리게 쓰는 학생에게는 감점을 주겠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철자법 하나 틀렸다고 해서 문제가 된 실제 법원 케이스도 존재한다.  물론 지금은 법이 개정되어서 소송 문서에 철자법 하나 틀렸다고 해서 판결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겠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던 no reformation for mistake"예전에는 그런 사례가 발생했다.  법률문서는 제 아무리 확실하게 문구를 작성한다고 해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생기고 또 사람의 일인 이상 문구를 실수로 잘못 작성할 가능성”-이를 scrivener's error”이라고 말한다-이 결코 배제될 수 없을 것이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던예전에는 한 문구가 틀리면 전체 법률문서가 무효로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유언장에서 실수가 발견되는 경우는 대개 유언을 남긴 사람이 이미 사망하고 난 뒤의 일이기에 사소한 실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여부는 법률 쟁점이 되기도 한다. 

[61] 이러한 확인 작업을 Proofreading이라고 말한다.  이런 작업은 무미건조하고 보통 사람들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따분한 성격의 일이다.

[62] 바이런 Byron (1788-1824)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으로 귀족계급이었다.  그는 터키(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독립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방하기에서도 얻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학습은 모방을 통해 습득된다.  즉 모방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63] 타자기 typewriter가 처음 개발되고 특허 등록되어 실용화되기 시작한 때는 1872년 이후이다.

[64] 바틀비가 “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니까 화자인 변호사는 “You will not?”이라는 의미이냐며 되묻는데 이에 바틀비는 다시 “I prefer not.”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 I would prefer not to.”는 표현은 거절 의지를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선택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다는 외양적인 뉘앙스의 측면에서 법정의 판사들이 선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유는 법정은 양 소송 당사자 중에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피하려는 본래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표현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명령적인 command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이 제시한 기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이고 따라서 재판관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내리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편 대륙법국가의 소송체계는 양당사자를 배제하고 국가의 대리인으로서의 검사가 양당사자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결을 내릴 수도 있는데, 이런 진실 발견의 소송체계하에서는 선택적인 판단이 아니라 최선의 the best”의 판단 모형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65] 영미법국가의 법원(특히 형평법)의 소송 형식은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원고의 입장이든 방어권을 행사하는 피고의 입장이든)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자기에서 가장 유리한 방안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을 선택 할 수 있다니!  이런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영미법은 보통법 법원에 제소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형평법 법원에다 제소하는 것인지부터 당사자의 선택적인 사정에 놓인 경우가 흔하다. (소송을 해야 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의 판단 그 자체부터가 선택적인 의미를 갖는다).  법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는 격언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대응책이 달라진다는 법 구제의 속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기, 바둑, 체스를 둬 보면 알겠지만, 전투는 공격과 수비로 이루어지고 수비전술은 공격전술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66] 선호 preference, 선택 choice, 경향 inclination,습관 등 이런 단어들은 인간은 자유 의지 free will를 가졌는가의 철학적 사고에 관련되어 있다.  근대 이전까지는 (예컨대 부모에 의한 중매 결혼의 사례에서와 같이) 인간의 삶(생로병사, 직업, 결혼 등)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문제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부신 산업혁명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는 자연의 과정으로서 단순하게 받아들여졌던 운명적인 문제들이 선택의 문제로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낙태에 대한 찬반여부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것도 의학의 발전에 따른 선택 choice의 문제로 인식이 전환되었기 때문이리라).

[67] 법조인은 뉴튼의 물리학 법칙처럼 마치 기계가 돌아가듯이 정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상식이 깨졌을 때의 놀라움을 한번 상상해 보라.

[68] 자신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의 문제 즉 의사 소통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긍하고 있다.

[69] 여기서 바틀비는 자신이 마치 독립적인 사업자의 경우처럼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비록 변호사 사무소에 직접 고용된 상태이기는 하나 요즈음 같으면 같은 직장 내에서의 하청업자의 신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글 내용으로는 고용 계약상 지배인과 종업원 사이임이 분명하지만 다시 말해 여기서 고용계약은 구두계약이었는데 바틀비가 독립적인 사업자의 신분인지 아니면 고용된 피고용인 신분인지는 별도로 따져볼 여지 없이 고용자인 변호사가 상사와 직원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약 고용 계약이 문서상 존재했다면 보통법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겠지만 구두계약이었으므로 만일 소송을 제기할 경우 형평법 법원의 관할 대상이 된다.  이러한 소송의 종류가 구두 계약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인 “assumpsit”이다.  바틀비의 입장에선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감을 받아서 일을 처리해준다고 여겼다면 그것은 독립적인 단독 사업자에 해당하고 또 바틀비는 자신을 그렇게 이해했을 지도 모른다.  독립적인 사업자 신분은 도예공이나 대장장이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설령 고객이 일을 맡겼다 하더라도 그 일을 시작할 의무가 없었고 따라서 일을 제 때 끝내지 못했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부담할 이유도 없었다.  이들 장인들이나 예술가들은 고객이 성화를 부린다고 해서 일을 끝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내켜야 일을 시작하는 것이며, 고객이 아닌 그들 장인 자신이 일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고 또 끝낼지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이러한 장인들은 노예 신분하고는 달랐다.  노예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적인 일 preference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도 일단 주인이 시키면 그것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노예의 계약 관계와 장인의 계약 관계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70] 화자인 변호사가 서두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배심원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해본 경험도 없는 그런 야심 없는 변호사라고 말했는데, 형평법 법원에서 이렇게 일주일간의 긴 증언을 받아내는 일을 했으면서도 자신은 정작 배심원 앞에서 변론을 펼친 적이 없는 변호사라고 말하는 까닭은 형평법 법원에서의 재판은 12명의 배심원단이 개입되는 배심원 재판이 아니라 판사 한 명이 재판을 주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배심원 재판을 행하는 보통법 법원과는 달리 형평법 법원에서는 단독 판사가 진행한다.  따라서 재판의 절차와 법원칙에서 양법원간에 차이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71] 궁정, 법원, 대학 건물들은 대개 정()사각형 구조이다. 

[72]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은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4가지 기본 덕목으로 지혜, 정의, 용기, 중용을 들었다. 지혜: 선한 마음, 훌륭한 판단력, 재치, 사려깊음, 창조성, 정의: 경건함, 진실성, 공정성, 공평무사함, 용기: 인내, 자신감, 고상함, 순종, 근면함, 중용: 절제, 위엄, 겸손, 자제력.

[73] “I would prefer not to”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하고 싶지 않습니다”.  “preference”의 표현은 인간의 자유 의지 free will와 외부적 속박 constraints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또 선택적 대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형평법적 측면에서 살펴 볼 여지도 충분하다.

[74] 이 글에서 경제적인 측면은 크게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의 우선주열풍이 연상되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주를 영어로 preferred stock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우선주가 처음 발행된 때는 1836년이었고 그 후 철도건설 산업이 굉장히 크게 일어나 우선주 발행의 붐이 불었다.  Evans, The Early History of Preferred Stock in the United State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19, No. 1 (Mar., 1929), pp. 43-58.  회사가 우선주 (preferred stock; preference shares) 발행을 통하여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1840년 영국에서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우선주 발행 광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1849년 영국 철도 회사의 주식 발행 총액 중 66%가 우선주 발행이었다고 한다.  회사가 우선주 발행을 선호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채권은 이자지급이 연체되면 채권자가 파산을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우선주는 배당금 지급을 연체해도 파산을 신청할 수 없었던 당시 우선주 발행의 특권에 기인하였다.  우선주 발행은 당시에 가히 혁명적인 수단이었음은 그 후 1880년대 미국에서 철도 건설 붐이 일어날 때 우선주 발행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의 역사를 통해서 여실하게 알 수 있다.

[75]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적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세기 19:26). 

[76] 형평법 법원은 비록 일반적인 법원칙이 확립되어 있다고 해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자연 법 정의 natural justice”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법철학적 사고를 전통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형평법은 보통법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정의의 관념에 크게 지배하고 있다.  형평법 판사는 만약 일반적인 법원칙이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터무니 없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면 그런 법원칙은 잘못된 것임으로 그 경우에는 새로운 법원칙을 세울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형평법에서는 법보다 정의가 우선 적용되고, 따라서 정의가 최고의 고려사항paramount consideration”이 된다.  인구에 회자되는 정의가 승리한다 justicewill prevail.”는 표현은 형평법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77] 법정의 결정-배심원의 평결이나 판사의 판결-은 한번 내려지게 되면 다시는 번복할 수 없는(irreversible)” 성질을 갖는다.

[78]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법원은 항상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려고 하고 또 그런 이미지를 가꾸고 지켜 간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도 법을 더 이상 지키는 것이 무모하다고 어느 순간 여기게 되면 (프랑스 혁명 때처럼) 혁명적으로 들고 일어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79]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의 개념은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스에게 매우 중요한 기초 개념이었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공정한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데 이런 공정성을 유지하는 본성을 양심 conscience이라고 부른다.  교통사고에서 주위의 목격자를 찾는노력을 흔히 볼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은 보강증거 Corroboration를 찾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자신의 주장에 제3자가 호의적으로 (엄정한 제3자의 입장에서 공공 이익을 위하여 변론을 행하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이끌어짐) 나서서 정식으로 변론을 맡는 독립적 변호인 역할을 “amici curiae” (“법원의 친구라는 뜻인 라틴어이고 그 발음은 아미커스 쿠리에)이라고 말한다.  당사자소송 원칙이 지배하는 보통법 법원과는 달리 형평법 법원에서는 법적 진실을 찾는 목적으로 제3자적 독립적인 위치에서 법원을 위해서 변론을 펼치는 “amici curiae” 변호사 역할을 하는 허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amici curiae” 변론 제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무료 변론을 펼치는 프로 보노 pro bono” 변호사 역할과는 다른 점을 유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