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
역사 혁명- 왜 나는 이 책을 썼는가?
유신의 애강남부
슬픈 노래를 들어도 울적한 마음을 달랠 길 없고, 기분을 돋구어준다는 독한 위스키와 달콤한 와인을 마셔도 마음 속 깊은 수심은 가셔지질 않아서, 그리하여 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글쓰기 세라피 즉 내가 살아 남기 위한 흔적을 나남기는 삶의 원초적 투쟁의 과정이고 이런 측면에서 훗날 되돌아보면 거대한 역사적인 기록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고 또 많은 어려움과 힘든 과정을 극복해낸 인간애의 뭉클하고 담대한 생명력이 담겨 있을 지는 모르는 희망적 결론이 도출되겠으나 주된 내용은 망국에 대한 격하고 비통한 심정이 담긴 슬픈 애가 그리고 사마천 사후 이천년이 경과된 그간 세계사 이천년 기간 사이의 역사 속에서 사마천의 역사를 이어가고 국가와 사회의 흥망성쇠의 법칙을 사적으로 입증해내어는 역사적 혼의 가치가 주된 맥락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유신은 그의 불멸의 작품 "애강남부"의 창작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楚歌非取樂之方 魯酒無忘憂之用 追為此賦 聊以記言 不無危苦之辭 惟以悲哀為主 (초가비취락지방 노주무망우지용 추위차부 료이기언 부무위고지사 유이비애위주).
과거 역사에 대한 탐구와 지식과 현재와 미래 삶의 전개
아마도 유신의 개인적 삶의 궤적과 그가 속했던 나라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유신의 이 싯구절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지 모른다. 뉴튼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최근의 빅뱅이론 과학자처럼 과거를 이해하는 사람이 미래를 보다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광대하고 망망한 우주천체사에 대한 이해는 차치하고서, "과거 역사를 보다 많이 잘 이해하는 사람이 미래 앞날의 전개에 대해서 보다 더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다 (The more you know about the past the better prepared you are for the future)”라고 말한 루즈벨트처럼, 과거사를 좇아 돌이켜보고 반추한다며, 나의 연구과 인류 삶의 발전에 대한 기여도가 짐작되리라 여긴다.
유신의 시 구절처럼 나 또한 슬픔과 외로움의 노래나 박정희의 시바스 리갈도 나의 상심과 애수를 달래 주지 못했다. 막다른 심연 캄캄한 잠수함 속에서 더이상 삶을 연장할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도 마지막 힘으로 펜을 들어 자신의 사랑과 삶의 마지막 모습을 남겼던 러시아 수병의 노트처럼 내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사명은 역사적 글쓰기 이것이었다. 유신과는 달리 나는 피닉스의 부활처럼 민족중흥의 횃불을 타오르게 하는 새희망의 역사가 다시 쓰여지는 담대한 기록이 주된 내용일 것이다.
가을 추 -믿음 소망 사랑
가을은 복받은 최고의 계절이다. 보라, 추수감사절이 어느 계절에 있는가를? 춘생 하장 추수 동장 (春生 夏長 秋收 冬藏)이라는 옛말이 있다. 황제내경에 나오는 이 구절이 자연질서의 법칙 하늘의 이치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만추-늦가을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 주는 대중가요 하나에 이쯔와 마유미가 불러 히트한 “고히비토요” 제목의 엔카가 있다. “가레하치루~” 이런 발음의 가사로 시작되는 고히비토요(연인이여) 노래는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외로운 사람이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의 요절시인 키이츠는 “가을에 부치는 시”를 쓰게 된 동기를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을은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가! 공기는 상쾌하고 더운 기온도 이제 한풀 꺾인다.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흠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다. 시린듯한 봄의 초록보다 이렇게 볏 밑동이 널린 가을 들판이 더 좋은 적은 없었다. 따스하게 여겨지는 그림이 있듯이 볏집 널린 들판이 어쩐지 더 따스하게 보인다. 내가 일요일 산보(워킹)를 하면서 이런 것에 영감을 받아서 이 시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단풍잎에 비애를 느끼는 심정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으리라.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피하고 싶지만, 결코 피할 수가 없겠지! (I'd try to ignore it but I can't help noticing that winter is just around the corner).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였던 이브 몽땅이 부른 “가을 낙엽”이라는 노래가 그런 심정을 웅변해 준다.
그런데 나는 가을의 본령을 가장 잘 표현한 최고의 시인은 반악이라고 생각한다. “추흥부”를 읽고 감상해 보면 반악의 뛰어난 서정적 감수성에 대해서 누구도 나의 단정적 결론에 큰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으로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등산의 산길은 아스팔트 도로 주행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가는 길 기복이 많고 그래서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등산을 일본어로 “爬山” (하우)라고 말하는데, 여기의 파산-파(爬) 글자가 기어오르다 뜻으로 파충류 단어의 파(爬) 한자이다.
대개 사람들이 힘들 때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가? 힘든 노동에 지칠 때 노동요를 부르듯이 말이다. 이런 보편적 감정을 잘 표술해 낸 유신의 “窮者欲達其言 勞者須歌其事 (궁자욕달기언 노자수가기사)” 구절이 생각난다.
사마천의 역사와 임소경에 부치는 편지
사마천은 임소경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人情莫不貪生惡死 念父母顧妻子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 (인정막불탐생오사 염부모고처자 지격어의리자불연 급유소부득이야)”. 보통 사람들은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고자 하며 조금이라도 더 살고자 하지 기꺼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인지상정을 먼저 꺼내 적어 놓았다. 칠족을 뒤로 하고 국가적 대의에 자신을 희생하는 예양같은 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인지상정의 인간적인 정을 뛰어넘어 의리에 죽음을 불사르는 “직업적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 취해야 할 과감한 행동이 무엇이고 그것의 동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사마천은 자세히 논하고 밝혔다. 이런 직업적 의무론의 구체적 사례 중 하나를 보자. 화마의 현장에 갇힌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서 불길 속으로 뛰어 드는 소방관의 행동같은 것이 있는데 소방관의 살신성인의 과감한 행동의 동기는 오로지 직업적 의무만으로 설명된다. 마찬가지로 사마천의 추구는 사관으로서의 창조와 파괴의 인간 역사 속에서 참다운 역사와 그 실 전달의 충실한 사명을 담대하게 지켜내는 것에 있었다.
사즉생과 절구절국(竊鉤竊國)
영화 타이타닉호에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만들지 산자와 죽을자를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최후의 선택을 결단해야 하는 선장의 행동은 오로지 선장으로서 요구되는 그의 직업적 의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사람은 타고난 각자의 몫에 따라서 요구되는 삶이 결정되는데,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각자 가진 직업의 몫에 따라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때 이순신처럼 “사즉생”의 선택을 할 것인가의 최후의 선택은 죽음의 회피 심리에 따른 일반적인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한번 더 생각하고 보다 큰 뜻을 위하여 국가와 사회와 인류의 차원으로 승격하여 그 결정적 순간 자신의 직업적 의무에서 나오는 최후의 선택인 것이다. 남의 허리춤에 찬 지갑을 훔친 좀도둑은 사형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은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장자의 절구절국(竊鉤竊國)의 비유가 있는데 이와같이 상대적인 개념이 통하는 우리 인간 사회’이 존재하고 또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Necessity) 이론이다.
최근에 2011년판 빅토르 프랭클의 “삶의 의미" 책 서문을 다시 읽어봤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직업적 소명에서뿐만 아니라 사랑 그리고 어려움에 직면해서 갖게 되는 용기에서도 찾아진다고 진단했다. 소명을 통해서든 또는 일반 평범인에게서도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하여 비범한 영웅적 삶을 드러낼 때는 누구든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조건은 히포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가 논증해 놓았다.
반악 추흥부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의 생각 먹은 대로 일이 굴러가거나 성공되지 않을 때나 그런 한계에 부딪힐 때엔 애상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먼 여행을 떠나보라. 영국의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의 책에서 미국의 아팔라치 산맥의 160 킬로 산림 종주 여행 이야기를 관심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요참에 100킬로 산속 여행길을 4박 일정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또 160 km 넘는 험한 첩첩산중 길을 10박으로 다녀온 적도 있었다. 사방 100 마일 이내에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인가 한 채 보이지 않는 문명 세계와는 전연 격리된 황야의 윌더니스 속을 걸어봤다. 인간사회와는 멀리 떨어진 자연 속으로 머나먼 여행길을 떠나 보라. 이 드넓은 자연 속에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자각하면서 어떤 비장미를 느낄 것이다. 마치 하늘 끝 별을 곧 딸 것 같은 높고 가파른 산을 올라 보라. 공자는 등태산의 심정을 감개무량으로 표현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는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우리 보통사람들은 좌절감과 두려움과 애상감이 먼저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면 마치 신선처럼 거꾸로 하늘로 올라가는 착각을 느끼며 합일의 감정이 나타나기도 하는 경우를 경험했는가? 그 때 저 높은 폭포수를 오를 수 없는 비애감이 함께 솟아 나기도 한다.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큰 강을 만날 때 나무 그네를 타고서라도 넘을 수 없는 큰 강 앞에 직면했을 때 이룰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을 때 실패의 애수를 느낄지 모른다.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의 그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가 있던가? 먼 여행길, 큰 산을 오르는 것, 건널 수 없는 강 앞에 직면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가슴속까지 막막하게 밀려오는 슬픔과 애상과 우수와 그 서운한 마음을 어찌 가눌 수 있을텐가! 이렇듯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렇듯이 가을이 되면 애절한 분위기를 느낀다. ‘가을엔 떠나지 말라’는 제목의 대중가요가 그것을 잘 표현한 것 같은데,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람의 슬픈 감정을 원초적으로 잘 표현한 "초사"에 연결된다. 굴원과 송옥의 초사에 닿아 있는 반악은 “추흥부”에서 분명하게 초사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밝혀 놓았는데 그 구절은 다음이다: 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 憭慄兮若在遠行 登山臨水送將歸 (비재추지위기야 소슬혜초목요락이변쇠 요율혜약재원행 등산임수송장귀).
아아 슬프구나, 가을의 분위기는! 쓸쓸한 소슬바람이 불고, 그것에 나뭇잎이 흩어져 날리고 떨어짐을 보노라면, 우리들 또한 변하고 시들어감을 느낀다네. 이 외롭고 처량한 감정은 먼 여행길, 큰 산을 오를 때, 건널 수 없는 강을 직면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그런 비장하고 애잔하고 서운한 마음과 같이 가누기 힘들 것 같으니.
빅토르 위고 세익스피어 멜빌
나를 키운 삶의 시작은 레 미제라블의 빅터 위고이었고 내 삶의 중년은 시이저의 셰익스피어이었으며 내 삶의 장년은 백경의 멜빌이었다. 그간 날 단련시키고 완성시킨 것은 반악과 유신의 글이었다. 사마천의 말대로, 대개 사람은 무척 힘들 때면 부모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다. 춘추공양전대로, 대저 사람들은 배고프면 밥달라고 타령하고, 노동할 때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다. 유신의 窮者欲達其言(궁자욕달기언)의 싯구절대로, 실패한 사람은 그것을 말로써 설명하고자 원한다. 인생의 극단적인 끝까지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밖으로 표현해 내고 싶은 일반적인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를 세상에 드러내어 성공한 사람들을 우리들은 성인이라고 부른다. 실패에서 느낀 비분강개함을 역사적 기록으로 풀어내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 손자 등의 성인 등극의 공식을 사마천은 열거하고 구구절절 잘 설명해 놓았다.
빅뱅 이론
뉴튼의 물리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그리고 최신의 빅뱅이론이 증거하지 않는가? “물극필반”. 삶의 마지막 순간을 경험하거나 극단적인 끝지점까지 가보지 못하고서야 어찌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조건은 노자 도덕경에 이미 단언되어 있다. 최신의 심리학 이론으로 본다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살아 남은 빅토르 프랭클의 삶의 의미론에 가깝다.
성 어거스틴과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르네쌍스 부활
누구든지 죽음에 처해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황이 된다. 마태복음 19장 예수님의 말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자기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이 선언을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다시 확인해 읽었다. 담대한 고백 어거스틴의 이 버림의 조건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서도 다시금 확인했다. 내 젊은 방황의 시절 유럽 여행길에 로마에서 아씨시의 교회를 찾아갈 때의 그 뜨거운 여름날을 난 아직도 열정적으로 그리고 감격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처럼 선명하게.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자기 가진 모든 재산을 세상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전혀 새로운 삶을 결단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탈리아에서 르네쌍스가 전개될 수 있었겠는가? 아씨시가 거대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여 자기와 세상적 구원의 결단적 삶을 내디디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이탈리아의 르네쌍스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나는 성인들처럼 내 스스로의 결단으로써 내가 하이데거의 개념인 끔찍한 내팽개쳐짐 내던져짐의 개념 즉 독일어로 "geworfenheit "(게보르펜하이트)의 상황에 처하고 그 순간에 진실을 발견했다고는 말하기 힘들 지 모르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던져지고 동아줄마저 벗어 놓고 하나님의 손안으로 떨어질 때 그동안 찾았고 구했던 보배가 쥐어짐이 느껴졌다. 따라서 이것은 나의 운명이고 필연이고 역사적 실존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작은 연구가 어찌 곤궁할 때 저술한 공자의 춘추에 비견할 수 있겠으며, 죽음을 시사여귀로 여기고 목숨을 버린 굴원같은 충신이 지은 이소부에 가깝겠으며, 눈이 어두워진 후에야 국어를 편찬한 좌구명의 방대함을 따를 수가 있겠고, 다리가 잘린 후에야 쓴 손자병법만큼 체계적일 수 있겠으며, 한비자나 삼경만큼 대대로 인구에 회자될 수 있겠는가? 다만 사마천과 양온이 남긴 두 통의 편지를 끝내 흠모하고 아버님이 남겨주신 명심보감과 어머님이 물려주신 성경 그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고자 할 따름이다.
굴원과 천문
하늘은 영원한 침묵을 이어간다. 영원히 이어질 우리 사람들의 삶에서 죽고 산다는 것은 끝없이 밀려왔다 쓸려가기를 반복하는 밀물과 썰물 같은 것, 하얀 포말같이 끝없이 부셔지고 일어섰다는 반복하는 바다의 하얀 파도 같은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유신은 애강남부에서 시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死生契闊(사생계활)”이라고 표현했다. 契闊(계활)의 단어 뜻은 모였다, 흩어지다이니 동의어로 聚散(취산)이란 말을 쓸 수 있다. 해안선에서의 밀려왔다 쓸려가기를 무한 반복하는 파도치기와 같이 죽음이 먼저 일어난 것인지 삶이 먼저 일어난 것인지 그 구분선을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부평초같이 물결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가리켜 부초인생, 또는 聚散浮生(취산부생)이라는 말을 쓴다. 가장 흔희 쓰는 말은 인생무상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떨어져 분리된 관계가 아니라 어디가 앞뒤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돈된 상태 즉 카오스 상태이므로, 죽음 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 살다가 죽는 것인지 그것을꼭 끄집어내서 어렵다는 것 즉 장자가 비유한 “호접몽” 의미이다. 파도는 맞물려 돌아가는데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가 끝이라는 말인가? 우리는 모른다. 물론 유전공학으로 증명된 것은 달걀보다 닭이 먼저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부모에게서 태어났건만 우리 부모는 또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그래서 삶과 죽음의 관계가 이렇게 불가분의 맞물려 돌아가는 문제라면 하늘은 영원히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내게 무슨 여한이 있을까? 우리는 다만 끝없는 우주 여행을 할 뿐이거늘!
하늘과 바다
굴원이 ‘하늘에 묻다’의 ‘문천’이 아니라 ‘천문’이라고 표현한 구절은 “死生契闊 不可問天 (사생계활 불가문천)”이다. 부모상을 당해 3년 간 묘옥을 쳐놓고 ‘호량지락’을 누린 그 기간 중에서도 다 들어보지 못하는 많은 분량의 주제이고 또 그렇게 앞서간 조상들에게 내가 감히 여쭈어 볼 수 있는 그런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제아무리 생사의 간격이 큰 현재의 나와 과거의 선조들간의 시간적 틈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거는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로써 지금 나의 머릿속에서 함께 같이 살아 있는 활화산의 대상이 아닌가? 화복이 함께 숨어 있다는 우리의 전통적 인생관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이란 것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면 미래의 내 후손에게 나의 삶을 내가 답해야 할 차례가 아니겠는가? 아니 누구에게 물어야 할 의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 내려야 할 자기 자신의 실존적 문제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내 스스로 의문을 풀고 답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사르트르의 실존적 고뇌 즉자적 자세에 해당한다. 동해와 황해 태평양을 제패한 바다의 제왕 김춘추와 김법민이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항해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듯이 또 윤동주와 오스카 와일드가 바라본 밤하늘의 별이 스치듯이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이름자 그대로 나의 학해와 삶의 항해를 이끌어주는 삶의 가이드이자 나침반인 북극성의 별이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 고갱의 물음처럼, ‘우리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아야 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팩트) 간의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 즉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로 규정한 카아 또는 아담 스미스나 흄의 역사의 개념에 따라서 판단해봐도 그렇지 않는가?
春秋(춘추)와 西狩獲麟(서수획린)
공자는 춘추 하나로 공자가 되었다. 춘추가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어찌 공자가 있을 수 있었을까? 춘추하면 공자요 공자하면 춘추다. 사마천의 공자세가에서 기록하길 “孔子曰 後世知丘者以春秋 而罪丘者亦以春秋” 즉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후세에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또한 춘추 때문일 것이다.” 또 공자는 말했다: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나는 하늘도 사람도 원망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자는 아마도 하늘이 아니겠느냐)”.
춘추의 마지막 구절은 “西狩獲麟 (서수획린)”이다. 서수획린은 공자의 “절필지운”이기에 더 이상 공자에게 그 의미를 직접 물어볼 길이 없다. 그런데 이 마지막 춘추의 구절을 두고서 2천년이 넘도록 오늘날까지 부지기수의 학자들이 그에 대한 해설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하게 해석해내는 이가 없다.
공자가 죽기 전 3년에 춘추의 역사서를 쓰기 시작하다 한 사건이 일어났다. 노나라 왕이 서산에 사냥을 갔다가 기린을 잡았다는 그 사건 말이다. 이 사건을 보고서 공자는 슬퍼하면 “吾道窮矣(오도궁의)”라는 말을 남기고, 2년 후 죽을 때까지 더 이상 글을 쓰질 못했다. 그러므로 서수획린은 공자의 절필지운이 된다. 대개 “내 도가 다했다”라고 해석하는 공자의 마지막 구절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설서를 시도하고 써내려왔는데 쟁쟁한 유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시대에 따라서 각기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주역에서 말하길, “積善餘慶(적선여경)”-착한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는 경사스런 일이 생기고, “泣麟傷鳳(읍린상봉)”-기린을 보고 울고 봉황을 보고 슬퍼한다. 이 구절의 의미처럼, 사람은 각기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각자 사정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 하거나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춘추좌씨전의 “古之遺愛也 (고지유애야)”의 해석대로, 사람에 대한 사랑만이 그것을 말해줄 것 같다. 니이체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적은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 “사랑은 영원하다”의 의미처럼 말이다.
세잔느는 자기가 그린 사과 그림 하나로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호언했는데 정말로 세잔느는 유럽 화단을 강타했고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 낸 일세의 화가가 되었다.
삶과 죽음
나는 첨성대 연구 하나로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대치하고 있는 한중일의 세계 역사 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고 천지개벽의 새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진실로 기대한다.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옥스포드대 학자들이 새로운 성경 번역이 몰고올 세계 변혁의 역사 또 당시까지 비밀로 닫혀졌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의 일화같은 사례들은 차치하고서, 나는 한 싯구를 인용하고 싶다. “꽃은 해마다 피고지고 같은 모습인데, 사람은 해마다 다른 모습일세”.
死生契闊 不可問天 (사생계활 불가문천)
만약 자설과 문무왕이 보면 만시지탄을, 간적과 선덕왕과 이세민과 무측천,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보면 염화미소를 지으며 대견해할 것이며, 베버 토인비 헤겔, 장형과 갈릴레오, 사마천과 양운, 반악과 유신, 도연명과 손작, 장도릉과 장삼봉, 장백단과 유백온, 이들은 언젠가 내가 오작교 평대에 오르는 날 만나서 좋은 말씀을 나누리라! 거기서 안평대군과 정지상과 정포은과 점필재와 김하서와 삼학사 김상헌 추사와 조동탁이 내 미천한 글을 읽고 박수쳐 주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고 아니 비웃고 말면 그건 못난 나의 비재와 둔재 나의 전적인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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