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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충신장

충신장 제4막

by 추홍희블로그 2018. 8. 13.

충신장 제4막의 주요 내용


한간은 궁중에서 향응이 벌어지던 그날 거기에서 칼부림 사건을 일으킨 후 곧바로 자기 집 안에 갇히게 된다. 이 유폐된 공간에 벚꽃이 떨어진다.  무사를 규율하는 무가의 법률에 따라, 다툼을 한 양당사자 모두를 함께 처벌하는 “훤화양성패”의 원칙이 지켜져야 했지만 모로나오는 처벌을 면하고, 한간 혼자만 처벌을 받게 된다.  한간은 즉시 사형에 처해지고, 그의 영지는 완전 몰수되며, 당연한 결론으로써 그의 가문 또한 완전히 절단나게 된다.


충신장 제4막에서는 한간이 할복 자살하는 사형 집행 장면이 묘사된다.


(충신장이 맨 처음 서양에 소개될 때 서양 지식인들에게는 이 할복의 장면이 경악적인 장면으로 받아 들여졌다. 이 아코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1701년 18세기 초인데 세계적인 역사 발전의 추세를 볼 때 야만적인 형벌 집행 방법은 살아진 지 오래된 때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서는 더 많은 수의 즉시 사형 집행 즉 거의 집단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수 천명을 단두대의 형장에서 목을 짜르고, 그 짤린 목을 대중들의 눈 앞에 전시해서 공포의 정치를 자행했던 끔찍한 역사가 일어났었고, 또 세계1차 대전 2차 대전에서 나타난 잔인한 수단에 의한 학살의 역사가 펼쳐진 것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은 아닐 수도 있을 지 모르지만, 아마도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전쟁 시기가 아닌 평화 시기에 이루어진 46명의 집단 사형 집행극 즉 할복 자살이라는 그 살인 집행 방법이 문화적인 충격에 해당되어서 그만큼 관심이 더 높아진 배경은 아닐까 내 스스로 자문자답해 본다.)


한간은 사형 언도가 내려짐에 따라 할복을 택한다. 가신의 최고책임자인 유라노수케에게 피 묻은 혈흔 단도를 건네면서, 이 단도를 자신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서 자신의 울분을 꼭 복수해 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자결의 죽음을 택하고 죽는다.


이 절명의 순간, 한간은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가 1336년 미나토가와 전투에서 가마쿠라 막부의 군대에 마지막까지 분전하다가 중과부적의 군세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자 결국 할복자결로써 삶을 마감했던 마사시게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며, 자신이 혼조가 말리는 바람에 모로나오를 칼로 내려치지 못한 것이 골수에 남아 있는 결코 잊지 못하는 울분인 바 자신이 못다하고 죽는 그 한을 대신 갚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결연히 할복한다.


모로나오는 막부와 같은 집안 출신으로서 막부의 오른팔 격인데 한간 혼자서 처벌받은 이유는 아마도 “토사구팽”의 고사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황석공의 “삼략”에서 “높이 나는 새가 죽으면 좋은 활이 감춰지고, 적국이 멸망하면 군사책략을 도모하는 신하들은 사라지게 된다”는 “高鳥死良弓藏 敵國滅謀臣亡”의 구절의 의미가 설명되는데, 모로나오는 신흥 무사 세력에 속하고, 반면 한간은 천황을 떠받드는 구시대적 문신 그룹에 해당할 것인 바, 또 천황세력에서 막부세력으로 넘어온 한간의 전력을 볼 때 배반의 기도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측면 즉 토사구팽의 논리에 따라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또 사실적인 측면에서, 한간의 조부는 풍신수길의 오로 가운데 재정을 담당했던 최고의 실세이었고 또 히로시마 지역에 기반을 대영주였기에 이런 한간의 가문의 배경을 감안해 본다면 풍신수길의 세력이 다시 살아 날 어떤 여차의 틈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막부의 강한 의지가 그 숨어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음직하다.

아코 사건에서는 전쟁이 아닌 평화시기에 벌어진 다툼이었으므로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다스리지 않을 이유가 더 컸으나 아마도 이런 숨어 있는 가문의 배경과 막부의 대처 의지에 따라 결국 46인의 무사 전원에게 할복자살하라는 사형 언도가 떨어졌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해 본다.


한간이 처형된 직후 그의 유해는 약사사라는 가문의 절에 안치된다. 


한간의 영지가 몰수되고 가문이 폐쇄되자 유라노수케는 성을 순순히 내주는 결정을 하고 성채를 떠나는데, 이 때 가신 무사들은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자신들의 삶의 근거지에 추방당한 것에 큰 분노를 느끼고 꼭 복수할 것을 맹세하고 떠난다. 젊은 무사들은 떠나면서 아쉬움이 크게 남아서인지 성채를 자꾸 뒤돌아보는데, 유라노수케는 분노의 눈물을 억지로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