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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충신장

충신장 제2막

by 추홍희블로그 2018. 8. 13.

2. 충신장 제2막  


충신장 제2막의 배경은 “도정관”이다.  도정관은 모모노이 와카사노수케의 저택을 지칭한다.  “도정 桃井”이란 말은 “앵두나무 우물가”를 말하는데, 앵두는 꼭 퍼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상징한다.  정치적인 상징으로써는 삼국지의 “도원결의”하고 비슷한 맥락이 되겠다.


엔야 한간의 가신 최고책임자는 오보시 유라노수케 大星由良助이고 대성의 아들 이름은 오보시 리키야 大星力彌이다.  리키야와 혼조의 딸인 고나미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관계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서로 만났을 때 그들의 얼굴이 붉으스레 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가 사랑할 때는 서로의 마음과 가슴을 열어 제쳐 보지 않아도, 매화꽃과 복사꽃이 서로 다투어 붉게 피어날 때처럼, 그 표시가 슬쩍 나기 마련이다.  제2막은 복선을 깔고 있다.  제2막은 제9막에서 알 수 있게 되는 무언가를 미리 은근히 슬쩍 던져 놓고 있다.  


사람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서로 함께 일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서로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충신장에서, 모모노이 와카사노수케는 부하인 혼조에게 다음날 모로나오를 칠 거사 계획을 미리 밝힌다.  “선화양성패”라는 무가의 엄격한 쌍방처벌 법률에 따라 궁정내에서 칼부림을 하게 되면 자신 또한 처형될 것임을 잘 알고서 자신의 거사의 동기를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부하에게 진심을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는 것이다.  자신의 거사 동기는 모로나오는 와카사노수케가 젊다는 이유로 안하무인격으로 무시하는 등 여러 번 자신을 격분하게 만들었고, 그 울분이 누적되어 온 결과 더 이상 모욕을 참을 수가 없는 단계에 이르렀고 또 무엇보다 모로나오는 뇌물을 받는 부패한 고위 관료이기에 이번 기회에 국가를 위한 충정에서 이 부패한 고위 관료를 처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의 거사 계획을 담담하게 밝힌다.  자신은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이 결코 억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나 다만 가문의 맥이 끓기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이 가슴 속의 흉금에 들어 있는 울분을 듣고 난 혼조는 모로나오가 와카사노수케를 격분하게 만든 원인이 뇌물을 적게 갖다 바친 것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나서 와카사노수케에게는 알지 못하게 한 뒤 즉시 모로나오의 저택으로 달려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가의 뇌물을 갖다 바친다.  뇌물을 받은 모로나오는 다음 날 와카사노수케에게 다가와 자신이 지난 날까지 무례하게 대했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다.  이런 의외의 사태 전개에 따라 모로나오를 제거하려던 와카사노수케의 거사 계획은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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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어느 선까지 참을 수 있는가?  인내의 한계점은 어디에?


와카사노수케는 혼조에게 자신이 칼을 들고 일어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욕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모욕을 감내하고 참아 왔지만 더 이상 모욕을 참을 수 없기에 그 자를 제거해 버리겠다는 결심을 말한다.  

왜 무사들은 무엇을 참아 내지 못한다는 것일까?  인간 세상에서 남녀간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처럼 불평불만 또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본성의 문제인 것 같다.  트로이의 전쟁의 원인이 불평불만에서 기원하고 호머의 소설에서 주장하듯이, 인간 세상에서 싸움은 불화에서 기인한다.  왜 무사들에게는 다툼을 피할 수 있는 유연한 대처 방법이 부족하고 그 대신 보다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는 것일까?  미리 싸움을 피할 수 방법이 없는가?  


혼조가 저자 거리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싸움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며 “冬日陰夏日 面” 이라는 속담을 꺼낸다.  충신장 원문 표현은 “冬は日陰夏は日おもて”인데, 이를 현대어로 고쳐 표현하면, “夏は日向を行け、冬は日陰を行け”이다.  이 일본어 표현을 우리말로 옮기면 “겨울엔 그늘, 여름엔 퇴약볕”이라는 말이 되겠는데, 이 속담은 다툼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지혜를 말해 주고 있다.  겨울철엔 양지쪽을 피해 걷고, 여름철엔 그늘진 쪽을 피해서 걷게 된다 반대편 방향 쪽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을 맞부딪힐 가능성이 없을 것이므로, 서로 맞부딪힐 확률이 적을 것이다.  왜냐면 겨울철에는 사람들이 좀더 따뜻한 햇볕이 드는 양지쪽을 선호하고, 반대로 여름철엔 더위를 피하고자 그늘진 쪽을 걸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혜의 원칙이 무사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혼조가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에게 한 번 길을 양보하게 되면 상대방이 어디까지 요구할 지 그 한계를 미리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상대방에게 먼저 양보하거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하지만 왜 무사들에게는 그런 상인의 지혜가 통하지 않고 또 엄격한 무가의 법도를 별도로 필요로 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그것은 칼 싸움이 말해주듯, 한번 밀리게 되면 그것은 바로 곧 죽음으로 연결된다는 싸움의 실무 논리에서 나오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분쟁의 해결 방법에서도 보통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떤 다툼이 일어나면 어느 쪽이 다툼의 원인을 제공했는지를 파악해서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무사들의 세계에서는 다툼의 원인이나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다툼의 당사자 모두를 함께 똑같이 처벌한다는 엄격한 “훤화양성패” -(喧譁兩成敗 겐카료세이바이, 喧譁 けんか fight 다툼이란 뜻의 단어이고 兩成敗는 둘 다 패배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喧譁兩成敗는 같은 집안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누가 먼저 싸움의 소재를 제공했는지 등 이유 불문하고 둘 다 처벌해 버린다는 무사의 오랜 전통적 쌍방처벌 규율을 말한다)-라는 쌍방처벌법규가 전통적으로 지켜 내려왔다.  


칼을 든 무사가 칼을 함부로 쓰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들이 어릴 적 시절을 회고해 보면, 계집애들 사이에 말다툼은 다반사로 일어남을 목격했다.  제10막에서 벌어지는 장면에서 알다시피, 부부간에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의견 차이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고부간의 갈등이 말해주는 것처럼 말싸움은 한 집안 내에서도 비일비재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엄격히 처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왜 무사들에겐 작은 말다툼마저도 극형으로 다스려 버리는 것일까?  

군대에서 모든 사정을 검토하여 상부로부터 일단 작전 명령이 하달되었는데 만약 그것에 대해 또다시 토를 달게 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겠는가?  군대 전시 작전 상황에서 일단 명령이 내려지고 나면 그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반발하는 이가 나타난다면 바로 즉결처분이 내려질 것이다.  전시 작전 명령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수행해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의 상황에선 이와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 한다는 것이 이해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평화의 시대가 아닌가?  이런 평화의 시대에서도 전쟁의 법규가 그대로 통용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무사들에게 요구되는 가혹한 법규들이 지금의 달라진 세상 기준으로 본다면 너무 심하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누구나 갖게 되는 이런 의문에 대해서 그 답 하나를 말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그것을 명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묘안이 없기 때문에 일률적인 법 적용을 엄격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형평성을 따지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에 가혹하리만치 인정사정을 보지 않고 단 칼에 베어 버리는 엄격성을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니겠는가? 


혼조가 단도를 꺼내 소나무 솔가지를 확 후려쳐 베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우리들이 화를 참지 못해 나뭇가지를 내리 후려 치면서 대신 화풀이를 하는 모습에 비유된다.  울분이 쌓여 더 이상 참지 못하는 한계점에 다다르면 솔가지라도 대신 내리쳐서 울분을 발산하는 바로 그것이다. 



충신장 제2막의 이해를 위한 덧붙임 설명


빨간 앵두와 은근슬쩍


내 어릴 적 은근히 좋아하던 여자애가 다가오면 나의 얼굴은 붉으스레 홍조를 띠었다.  그 증세가 심할 경우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남녀가 사랑할 때는 서로의 마음과 가슴을 열어 제쳐 보지 않아도, 매화꽃과 복사꽃이 서로 다투어 붉게 피어날 때처럼, 그 표시가 슬쩍 나기 마련이다.  여담을 하나 해보자.  숫총각을 영어 속어 표현으로 체리보이 cherry boy라고 말하는데, 체리는 어느 유행가 가사 속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 났다네”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앵두” “앵도 桜桃”로써 버찌를 지칭한다.  앵도는 매화꽃 복사꽃과 거의 비슷하다.  어린 총각이 사랑하는 여자를 보면 얼굴이 붉으스레 홍조빛으로 물든다는 모습에서 이 표현이 유래한 것이다.  유부남이 사랑한다고 해서 얼굴이 복사꽃처럼 물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후안무치한 경우가 많아질 언정 처녀총각 새색시처럼 은근하게 얼굴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지만, 앳된 소년이 사랑하는 소녀를 보면 아마도 얼굴에 홍조빛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마음 속에 무언가가 설레이고 있기 때문이리라.  


설레인다는 것과 소통


설레인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과 같다.  희망으로 연결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희망은 한 마리의 새”의 표현을 보라.  설레임은 복선이 깔리는 것과 같다.  충신장의 제2막은 제9막에서 알 수 있게 되는 무언가를 미리 은근히 슬쩍 던져 놓고 있다.  


자기 마음 속에 혼자 간직한 오래 된 생각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의 감정이나 기분이 어떠한가?  마음 속이 후련해지고 얘기를 들은 상대방으로부터 동정을 얻을 때가 많을 것이다.  충신장에서 와카사노스케가 부하인 혼조에게 자기 속에 품고 있는 오래된 생각을 솔직히 털어 놓고 나니까, 상대방으로부터 “아주 좋아요 見事 well done!”라는 거사의 당위성에 자신도 적극 동감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사람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함께 일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서로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장자는 “진기소회 위천하배 盡其所懷 爲天下配”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마음 속에 품은 것을 모두 털어 놓음으로써, 천하의 사람들과 짝이 될 수 있다”는 대망론을 의미한다.  도는 천하의 도이고, 따라서 그것을 한 사람의 품 속에 넣어 감출 수만은 없는 것이며, 그 도가 천하에 충만하고 만세에 까지 행해질 수 있도록 널리 전파해야 한다.


정보 가치의 중요성


인간사에서 꼭 말을 외부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사람간에 통신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과 발짓으로 하는 수신호나 예전의 군사적 통신 수단으로 쓰였던 봉화불 같은 것이 그 예이다.  때로는 새가 사람간의 통신 수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로스차일드의 비둘기의 예가 그것이다.  로스차일드는 영국과 대륙간에 비둘기를 날려 보내면서 긴급한 정보를 남보다 미리 알 수 있었는데, 그리하여 전쟁의 중요한 정보를 재빨리 입수하여 증권시장에서 일확천금을 거둘 수가 있었다는 고전적인 이야기로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전쟁 승리의 요인으로서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손자병법에서부터 현대전까지 모두가 강조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