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장 제 5막의 주요 줄거리 내용
야마자키의 산길과 도적떼 출현
충신장 제5막의 서두는 “독수리는 굶주려도 낱알 이삭을 주워 먹지 않는다”는 속담을 인용하고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선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런 유사한 표현을 하나 더 소개하면, “鳳飢不啄粟”와 “孤雁不飲啄”라는 한시어구가 있다. 鳳飢不啄粟 봉기불탁조는 봉황은 굶주려도 떨어진 밤알 쪼가리를 쪼아 먹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고안불음탁 孤雁不飲啄은 기러기는 물 한 모금도 마시거나 먹지도 않고도 멀리 날아간다는 뜻이다. 앞의 구절은 이백의 한시에 나오고 뒷 구절은 두보의 시에 등장한다.
맹금의 왕자인 호랑이와 독수리는 자기들만의 영역을 지키고 살아 가는데, 인간은 이와 달리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서로 섞여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간 세상에선,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는 도적 떼가 그치지 않고 나타난다.
충신장 제5막은 아름다운 야마자키 산 속의 길에서 한 밤 중에 일어난 일을 긴박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5막의 장면 중에서 가부키의 스타로 잘 알려진 사다쿠로 역의 우산을 쓴 무사가 등장한다.
늙은 농민이 쓰고 가는 우산을 빼앗는 사다쿠로의 극중 모습에서 18-19세기 후반 악역 무사 모습으로 분장한 가부키 스타가 탄생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우산을 들고 있는 또는 색욕에 불타는 농염한 무사의 이미지가 덧쓰워졌다.
(일탈된 무사의 이미지가 우리나라에선 근래 근대화 시절 화끈한 밤 무대에서의 트레이드 마크 “어우동”의 역으로 나타난 사실을 참조해 보라.)
운명은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산기 가도는 오사카와 교토를 잇는 주요 대로를 말하는데, 오사카의 북부 지역인 호쿠세츠 北摂를 통과하는 지역이다. 호쿠세츠 지역은 고고학적으로 옛 무덤이 발견되는 곳이라고 하니까 아마도 고대에는 신성한 지역 또는 수렵 사냥터로 여겨졌다가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교토의 나생문처럼 무덤군으로 변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섭게 여겨지거나 또는 종교 사찰 시설들이 들어선 곳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사카 지역에 이주했던 초기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성지로 여겨졌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가도는 ‘출세가도’라는 말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름길을 말하고, 오늘날 같으면 고속도로에 해당된다. 고속도로는 그 본래적 의미가 함의해주듯이,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사냥터가 있는 산기 가도는 지름길이어서 우리나라의 육십령 고갯길처럼 혼자서 가기에는 무서운 길이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가야만 도적떼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험한 산길인 것 같다. 유명한 영화 “나생문”의 설정 배경이 여기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그래서 길 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대개 고갯길은 서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만나는 이정표가 된다. 우리나라 길 가운데 “아리랑” 고개가 있는데, 운명의 장난이라고 했던가? 운명이 장난치려면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각자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하지 않는가.
제5막의 줄거리를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간페이는 산기 가도가 통하는 길목 모퉁이 어귀에 숨어 살아 가고 있다. 간페이의 장인인 요이치베가 그의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살아 가고 있는 이 곳으로 숨어 들어와 자신의 예전 직업인 사냥을 하며 연명해 가고 있다. 비 내리는 어느 저녁 사슴 사냥을 나선 간페이는 이 숲 속 산길을 지나가는 허름한 모습의 두 명의 무사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예전의 동료 무사임을 알아보게 되는데 간페이는 이들로부터 죽은 망군의 위령탑을 세우고자 건립자금을 모금하러 다닌다는 말을 듣게 된다. 간페이는 이것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게 될 천재일우의 기회- 즉 두 번 다시 없을 하늘이 내려주신 축복의 기회라고 여기게 된다.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말은 한자어에서 유래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우담화”라는 3000년 만에 한 번 피는 꽃과 같은 희귀한 기회를 의미한다.
간페이는 주인의 경호를 담당하던 하급 무사이었는데 주인의 운명이 결정되던 그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잘못에 회한을 가누지 못하고, 주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서 먼 훗날에 용서를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멀리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런데 간페이는 생각지도 못한 이 산기 가도 고갯길에서 옛 동료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지난 날의 잘못을 다시 용서받게 될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으로 여긴다. 불교의 교리를 많이 인용하고 있는 충신장의 내용인데, 이 장면에서도 우담화를 인용하면서 간페이가 얻게 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동료 의식’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 간페이가 예전의 동료 무사들을 만나서 자신의 과거 잘못을 울면서 빌고 있는데, 예전의 동료 의식을 발휘해서 자신을 거사 동지들의 모임에 끼어 달라고 진심어린 호소를 하는 것이다. 이 두 명의 두사들은 간페이의 눈물어린 요청을 받아들이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과거의 잘못을 울면서 비는 회한의 눈물일까? 아니면 같은 무사로서의 동료 의식이 발동해서일까?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법조계에서의 하나의 큰 문제점이고 따라서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전관예우’의 현상 또한 ‘동료 의식’에 기반하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길 위에서 서로 맞부딪히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다. 산기 가도의 고갯길에서 일어난 불상사는 무슨 내용일까? 비극적인 죽음이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일까? 멜빌이 밝히듯,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또한 노여움 때문에, 또한 증오 때문에, 또한 이기심 때문에, 또한 영적으로 교만한 마음 때문에 살인죄를 저질러왔다.”
‘역사는 밤에 일어난다’는 말이 나폴레옹의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역사는 밤에 일어 나는가? 대개 밤 중에 험한 산길은 피하는 것이 옳다. 밤길을 걷기가 낮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고 또 만약의 위험한 사건 즉 도적떼를 만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요이치베가 도적떼가 득실거리는 밤길을 피하지 않고 급히 가는 바람에 결국 죽음의 사고를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 하나가 운송 수단이다. 전쟁은 군사와 전쟁 장비를 얼마나 빨리 운송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서 승부가 가려지기 일쑤인데, 신속한 이동의 문제가 생명인 전쟁에서 구비구비 돌아가는 해안 길을 택할 장수는 별로 없을 것이다. 2차 대전에서 미국이 원자폭탄을 터트린 곳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였는데, 이곳은 일본의 서쪽에 해당하고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지역으로써 다이코쿠 신의 숭배가 동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일본의 수도인 교토나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속하고 또 인구밀도가 높은 핵심지역에 비해서 전쟁의 주된 공격처로 선택되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전쟁은 인천상륙작전이 그러했듯이, 적이 예상하지 못하게 비상식적으로 먼 길을 우회하여 적의 경계를 벗어나 결과적으로 승기를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아코 사건에서도 그러했고, 일본 역사상 여러 막부의 말기의 전쟁에서도 적이 예상하지 않는 해안 도로를 따라 기습을 감행한 경우가 많았다.
다시 제5막의 줄거리 요약으로 돌아가서.
요이치베 노인은 간페이의 아내 오카루의 아버지이니 간페이에겐 장인이 되는 관계이다. 요이치베는 자신의 사위가 다시 무사가 될 수 있도록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기의 딸을 유곽에 팔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제6막에서 설명된다). 딸을 유곽에 판 자금을 들고 기쁜 나머지, 밤길을 걷지 말라는 충고를 거부하고, 단숨에 무서운 밤길을 달려 오다 그만 밤 길목을 지키고 있는 도적 떼를 만나고 만다. 그 도적은 과거 한간의 가신에 속했던 무사였지만 가문이 폐쇄된 후 도적으로 변신한 오노 사다쿠로이었다.
사다쿠로는 요이치베가 죽기 전에 자신의 딸이 기뻐하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고 목숨만은 살려 달려고 매달리는 그의 인간적인 사정에는 아량곳하지 않고, 자신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살인을 하게 되는 것이니 돈이 원수라며 (“金がありやこそ殺せ。金がなけりや何のいの。金が敵じやいとしぼや”, 충신장 제5막 대사 ) , 잘못이라면 돈지갑을 들고 밤길을 자청한 그의 잘못이라면서, 돈을 빼앗고 살인을 하고 마는 잔악무도한 무뢰배이다.
그런데, 요이치베의 돈지갑을 강탈한 사다쿠로는 마침 그 때 거기서 멧돼지를 발견하고 멧돼지를 향해 두 발의 총알을 쏜 간페이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비록 간페이는 멧돼지로 오인하고 사격을 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잔악무도한 살인범 도적을 향해 범행 현장에서 쏘게 된 것이다. 어둠 중에 일어난 일로써 자신이 직접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정의를 실현한 셈이다. 하지만 간페이는 그가 멧돼지를 향해 쏜 두 발의 총알 탄환에 맞아 죽은 것은 멧돼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이게 무슨 변고냐 하며 크게 놀란다. 그런데 죽은 사다쿠로의 품속에서 50냥의 돈을 발견하고, 이것은 마침 하늘이 내려준 은사인 거사 준비 자금이라며 그 지폐를 이마에 붙이고서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치고 단숨에 집으로 귀가한다.
길 위에서
산기 山崎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보통명사로써는 반도의 해안 길을 말하는데, 해안 길은 빙빙 둘러가는 길이어서 시간이 걸려서 관광객이 아닌 이상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인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기에는 곤란한 도로이다. 99굽이 구비구비 돌고 도는 대관령길이 그러하듯이 회도는 대개 아름답다. 습지나 해안가를 따라 만든 도로를 지그재그 길이라고 부른다.
해안가 고갯길에서 지나온 구비구비 길을 내려다 보면 인생의 어떤 회한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 ”강물의 흐름과 같이 川の流れのように”이라는 대중 가요의 노랫말이 그것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일본의 국민가수로 칭해진 엔카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의 이 “川の流れのように” 노래는 히바리가 타계한 해인 1989년에 발매되어 그 해 최대 히트곡을 기록하였고,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간직되어 널리 사랑 받는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노래 가사를 음미해 보면 “이세물어” 에서 소개한 이야기와 그 의미가 서로 통하는 것 같다. 일본인의 마음을 담고 있다는 이 노래는 필시 충신장의 제5막에서 묘사하는 세로를 걸었던 무사의 한탄을 노래한 것을 연상하게 된다.
제3막에서, 충의 충신과 충효를 일직선상으로 연결되는 개념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인생길은 직선이 아니라 커브 길인 것 같다. 직선이 아닌 커브 길은 난초의 이미지에서 잘 나타난다. 난초 그림의 핵심의 난초의 풀잎처럼 고개가 꺾여진 모습에 있다. 일본의 국가명은 “미즈가요 君が代”라고 말하는데, 미즈가요 란은 풀잎이 꺾여진 난초-“君が代蘭”을 지칭한다.
인생길을 걷다가,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것-그것이 상책이라고 말들 한다.
야자수 나무는 예수가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의 이야기에서 나오듯이, 사막 길을 여행할 때 생명수를 공급해 준다는 사실에서 “여행자의 나무”로써 알려져 있다. 야자수의 상징은 생명수이고, 생명 보전의 길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여행자의 나무는 일본어의 표현은 “다비비노키 タビビトノキ, 旅人の木”이다.
야자수 나무는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인 물을 공급해 주는 나무이다. 부채꼴의 모양을 하고 있는 나뭇잎이 무성한 큰 나무이어서 열대 지방에선 사람들이 쉬어가는데 안성맞춤인 나무이다.
야자수 나무는 한자어로 “선파초”이고, 선파초와 비슷한 것이 바나나 나무이다. 5월 단오절은 전통적으로 남자의 날로 알려져 있는데, (5월 단오절에 여자가 머리 감는다는 것은 남자와의 결합을 함의하고 있다), 오늘날 노란 바나나 열매의 모습을 남자의 성기로 연상시키는 광고들이 많이 있음을 참조한다면, 이미지의 연상 효과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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