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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충신장

충신장 제8막

by 추홍희블로그 2018. 8. 11.

동정추월


충신장 제8막의 내용은 순례길 참배길 여행기에 해당한다.  제7막에서 “동정추월”이라는 말이 언급되는데,  “소상팔경도”가 바로 연상된다.  제7막에서 유라노수케가 “동정호수의 가을달을 경배한다” 는 말을 건네는데 상대방 기생은 성적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라노수케가 아랫층에서 2층 난간에 있는 기생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 말을 하고 있으므로, 기생의 부풀어 오른 풍만한 가슴이 마치 8월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고 크게 보이고 자기는 그런 것을 즐긴다는 성적 농담을 문학적 언어로 비유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유라노수케의 인생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는 소상팔경의 도가적 원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유라노수케가 동정호수의 가을 보름달을 경배한다는 말은 그의 진심을 나타낸 말에 해당될 것 같다.  사람들이 보름달을 경배하는 까닦은 달은 바다와 조수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우주의 법칙을 존중하는 농력의 문화 때문일 테이고, 또 다른 이유는 “달도 차면 기운다”  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존중하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 히로시게가 그린 “가나사와 하츠케이 金沢八景” 중 “세토의 가을 달밤”의 그림을 보라.


제8막은 “도행여로”라는 소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혼인하기 전 어머니와 딸이 함께 떠나는 순례길을 그려내고 있는데, 신부의 이세 집에서 신랑의 집이 있는 교토의 산기슭에 이르기까지 길따라 산따라 강따라 신사와 사찰따라 늘어선 고적지과 명승지를 순례하고 참배하는 순행길을 간략하게 적고 있다.  제8막은 담담한 순례기 내용에 해당한 관계로 극적인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가부키 같은 연극에선 중요하거나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 단막이다.  사실 충신장 원문에서도 가장 짧은 대목에 해당한다. 


제8막의 서두는 “부세 浮世라는 말을 맨 처음 쓴 사람은 누구였을까?”라는 물음표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부세’라는 말은 파도처럼 부침이 많은 흘러왔다 흘러가는 이 짧은 세상 허망한 우리 인생이라는 의미이고, 비슷한 말로 우세 憂世가 있다.  

떴다 가라앉았다, 너울거리는 파도가 치는 것 같은 부침이 반복하는 인간 세상을 표현하는 단어가 “부세 浮世”이다.


“浮世”라는 말을 맨 처음으로 쓴 사람은 완적(210-263)이라고 한다.  완적의 《大人先生传》중에 “소요부세 여도구성 逍遥浮世,与道俱成”이라는 문장이 맨 처음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완적은 죽림칠현의 일인이었으니, 당대의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유학을 비판하고 대신 노장사상에 깊게 물들어 있었던 사람이었다.  완적은 그가 지낸 보병교위라는 관직명에서 유래한 “완보병”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步兵’이라는 말의 뜻을 살피건대, 완적은 오늘날로 치면 걷기의 달인이고, 전통적으로 보면 풍류객의 모델이었던 것 같다.  충신장의 저자가 ‘부세’라는 말을 누가 맨 처음 썼는지를 알고 있으면서 질문형으로 서두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浮世’라는 말은 일본의 그림 화풍의 하나로 유명한 ‘우키요 浮世絵’와 연결하면 이해하기가 더욱 쉬울 것 같다.  


떴다 가라앉았다, 너울거리는 파도가 치는 것 같은 부침이 반복하는 인간 세상을 표현하는 말이 “부세 浮世”이다.  우키요의 대표적인 화가 호쿠사이 葛飾 北斎(1760-1849)의 ‘카나가와 해변의 큰 파도”의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물결치는 대로 이리 부대끼고 저리 부대끼고 살아가는 서민층의 일상생활을 주제와 소재로 그리는 화풍으로써 우리나라의 “민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그와 같이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그림이므로 권력층과는 대립측면이 강하다.


소동파가 완적에 대한 회고시를 남긴 것이 있는데 소식의 시가 충신장에서 동정추월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 같다.



千古風流阮步兵。平生遊宦愛東平。


천고의 풍류객 완보병은 벼슬살이로 평생 타향살이를 했지만서도 

동평지방을 잊지않고 그리워했었네.


千裡遠來還不住。歸去。 空留風韻照人


천리길 멀다 하지 않고 달려와서도 머물지 않고 돌아가버리고.

부질없이 풍류만을 남겨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비추었네.


紅粉尊前深懊惱。休道。生留得許多情。


단장한 미인이 따라주는 술잔 앞에 번뇌가 더욱 깊어지네.

쉬어 가게나.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정을 남겨 둘 것인가?


記得明年花絮亂。須看。泛西湖是斷腸聲。


다만 기억하게나, 내년 버들가지 어지러이 흩날릴  

모름지기 보게 것은, 서호를 떠도는 것은 온통 애끓는 소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