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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대혁명/국부론의 종언

국민의 행복도는 GDP 경제성장율과 비례하지 않는다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21.

4. 국민의 행복도는 GDP 성장과 비례하지 않는다


나라는 부유해진다하더라도 국민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돈이 많을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대부분 여겨왔다.  경제학 교과서를 통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대학 경제학 교과서로 자리잡은 하버드대 맨큐 교수의 “경제학 Principles of Economics”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2006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4,260달러다. 그해 멕시코 국민의 평균소득은 1만 1,410달러고 나이지리아는 1,050 달러다.  이처럼 커다란 소득 격차는 삶의 질을 측정하는 다른 지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고소득 국가의 국민들은 더 많은 TV 수상기와 자동차를 보유하고, 더 좋은 영양 상태와 의료 혜택, 더 긴 평균수명을 누리고 있다. 생활수준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우 크게 변한다.  미국의 경우 매년 소득이 (물가상승을 제외하고) 2% 정도씩 증가하며 평균소득은 35년마다 2배가 되었다.  그 결과 지난 1세기 동안 평균소득은 약 8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진정행복 지수를 살펴보면, 국민의 행복지수 순위는 GDP 순위하고 비례하지 않는다.  GDP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나라들도 국민의 복지와 행복도를 알아보면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  지난 60년 동안 서구의 GDP는 4배나 성장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 불행해졌다고 느낀다.  미국인의 경우 1950년대에 35% 2002년에는 32% 행복하거나 아주 행복하다고 답했다.  왜 이렇게 모순적인 결과가 도출되는가?  GDP가 소득과 국민의 행복도를 제대로 평가하는 지표라면, 맨큐의 해석대로 두 배 정도 더 풍요로운 삶을 향유해야 함이 타당하다.  스티글리츠 보고서 결론이나 영국 등 각국을 비교한 사람들의 행복도 조사를 보면 경제성장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과는 바로 일치되지 않는다. 


우울증

사람들은 단순히 심리적인 불안과 불행을 느끼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우울증 환자가 5백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도 1930년대에 비해 우울증이 10배나 늘어났다.  경제성장이 높아진 서구에서 오히려 불행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Oxford Economics을 인용하면, ”경제성장과 늘어나는 우울증은 통계적으로 연관성을 보여준다.”  스티글리츠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GDP가 상승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사람이 점점 팍팍해진다고 느낀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실제로 그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의 비판 


개인 이윤 추구 경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일찌기 핵심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칼 마르크스(1818-1883)이었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노동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불행해진다고 파악했다.  그가 보는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력이 사회적 부의 원천인데,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가치창조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에게 돌아가게 된다(이 부분을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이에 대한 개념을 마르크스는 이렇게 정의한다: “예를 들어 면화를 100파운드에 사서 100+10 파운드에 되판다고 하자. 이 과정의 완전한 형태는 G(화폐)-W(상품)-G’이고, 여기서 G’=G + △G이다.  곧 G’는 최초에 투하된 화폐액에 증가분이 더해진 것이다.  이 증가분 또는 최초 가치의 초과분을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결점 때문에 “국가는 결국 사라진다 withering away”고 체계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언은 실증되지 않았고 (사회주의가 실현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달리, 국가는 “리바이아단”(토마스 홉스의 개념 “Leviathan: 전체주의 국가”)마냥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5. 현 GDP체계상의 문제점


국내총생산 GDP: 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는 한 나라의 국민소득을 측정하는 하나의 경제지표로써 한 국가의 자국 내에서 일정기간(1년) 동안에 신규 생산된 모든 최종생산물(재화와 용역)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총 가치의 합을 말한다.  국민소득은 생산, 분배, 지출의 3면에서 볼 때 똑같기 때문에 (국민소득 3면 등가법칙), 간단한 수식으로, GDP=가계 소비+기업 투자+정부 소비(구매)+순수출(수출-수입) 으로 나타낸다.  경제의 총량 생산은 통계기술의 발달로 GDP지표로써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GDP지표로 표시되는 경제성장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있다고 그동안 믿어온 것이 사실이다.  


GDP 지표의 문제점


그러나 GDP경제 지표가 한 나라 국민의 행복도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1930년대 GDP 지표를 처음 개발한 개척자이자 197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츠네츠 Kuznets조차도 GDP가 한 나라의 복지상태를 나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 재무부 수석경제학자였던 크루거 Krueger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GDP는 사회의 웰빙을 극대화하는데 자원들이 이용되고 있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다.” 

GDP는 시장과 관련된 경제활동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시장가격으로 나타나지 않을 가정 내 활동은 포함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산과 강을 메워 아파트를 지으면 GDP는 증가한다. 하지만 그대신 환경오염이 늘어나고 자연자원이 고갈된다고 해도 GDP는 늘어난다.  성장이 파괴인지 모를 지경이 되어도 GDP는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GDP 지표 자체의 유용성이 크게 의심 받게 되었다.  사실 로버트 케네디 미국 대통령 후보가 이미 1968년 대선에서 GDP의 문제점을 제기했었다.  “GDP에는 대기 오염과 담배 광고, 살육의 고속도로를 가르는 앰블런스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문에 채우는 특수자물쇠와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수용할 감옥도 포함된다.  … 하지만 우리 자녀들의 건강, 교육의 질 혹은 그들이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  시의 아름다움이나 결혼생활의 건강함, 국정에 관한 논쟁에서 나타나는 예지, 공무원들의 정직성 등도 포함하지 않는다.  우리의 용기나 지혜, 국가에 대한 헌신도 반영하지 않는다.  요컨대 GDP에는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고 우리가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또 GDP가 무한적으로 증가할 수도 없을뿐더러, 한국의 대기업이 성장한다고 해도 한국의 GDP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국내 투자가 감소하고 대신 해외 직접투자가 확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은 해외 직접 투자를 확대해 왔다.  이런 해외직접투자는 한국의 GDP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한국기업의 해외 투자는 외국 공장 생산설비에 자본재를 공급해서 한국의 수출 확대를 이룰 생산기지가 된다.  현지생산국의 낮은 인건비에 의존하여 현지국에서 최종소비재를 생산해낼 때 해외생산공장에서 생산조립시 관련 부품등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재벌기업의 이익은 환율변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실물부문보다 금융부문에 더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대외무역수지에서 흑자를 달성해도 국가전체적인 부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인 것이다.  결국 재벌대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확대되어도 그것은 한국인의 고용사정이나 삶의 질의 향상과는 무관하다.  오로지 현지 생산기지가 있는 나라들의 GDP가 확대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