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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필/산보자의 명상록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는 소리를 남기지 않고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3.

대나무, 대나무밭, 바람, 바람소리 -대나무 숲에 바람이 일어도 대나무는 소리 내지 않고, 기러기는 저수지 위를 날라가도, 기러기 날라간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

 

차에서 내리니 가지산 쪽에서 초겨울의 된바람 삭풍이 몰아치는 듯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려왔다.  바람은 수천 개의 고원처럼 수천 개의 갈래로 분다.  바람의 종류에는 소슬 바람 회오리바람 바다의 용오름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갈바람 샛바람 하늬바람 높새바람 마파람……

 

십리대밭을 지나면 나는 바람이 생각나고, 바람은 채근담의 글귀의 생각나게 한다.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풍래소죽 풍과이죽불류성  군자는 지나간 일을 가지고서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의 글귀다.  이 문장의 뜻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문장 후반부에 기러기 철새가 지나가는 것을 보충하고 이 문장의 의미를 달고 있다.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故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풍래소죽 풍과이 죽불류성 안도한담 안거이 담불류명 고군자 사래이 심시현 사거이 심수공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는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가 저수지 위를 날라가도, 저수지엔 기러기 날라간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와 같이, 군자는 일이 생겨야 마음이 비로소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사라진다.”

 

이 문장의 의미는 사람에겐 일-임무 task가 주어지면 일 그대로 하고 주어진 임무가 끝나면 그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미를 확대하면 맡은 바 지위와 직분에 따라 최선을 다하되 소위 어깨에 완장차고 설치는사람들처럼 지위와 일에다 자신의 인격-에고 Ego까지 걸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론을 가장 쉽게 해석하면,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서 연연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재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 의지에 따라서 임무를 완성해야 할 타고난 운명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은 자기 하는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질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사람의 가진 힘이 막강하다고 해도 사시사철 계절을 바꿀 수는 없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바꿀 수도 없는 법이다.  외부 환경을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바로 대나무 숲과 기러기 지나가는 자리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나무 숲은 멀리서 보면 숲이지만 막상 대나무 밭에 들어가면 푸른 하늘이 다 보일 만큼 대나무는 솔솔 뚫려 있다.  그렇게 소소한 대나무 밭에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소리가 한밤의 퉁소소리처럼 피부 속으로 느껴진다.  대나무 밭에 바람이 이는지, 그친 지는 눈과 귀로 쉽게 확인된다.  (“와호장룡 臥虎藏龍,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영화에서 대나무밭에서의 결투 장면이 인상 깊게 떠오른다.)  기러기 또한 마찬가지로 저수지 위로 기러기가 날라가면 기러기 그림자가 선명하게 비춰진다.  정주영의 한우목장으로 유명한 서산의 저수지, 정여립의 혁명 서기가 서린 모악산 금평저수지, 청록파 박목월의 경주 월평 저수지, 어느 연못이라도 하늘의 새와 구름이 지나가면 거울처럼 그림자가 비춰지는 것은 자연의 당연한 이치이고, 동시에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그림자 자취는 찾아볼 수도 없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이다.  바다를 생명처럼 여기는 섬나라 사람 영미국 사람들은 기러기 지나간 흔적대신 배가 지나간 흔적은 알 수 없다는 표현을 쓸 것 같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1] 그것을 거슬러 떼를 쓰거나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거나 작은 일에 목숨까지 내거는 무지몽매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교훈을 말한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한문 문장의 뜻을 잘 이해하려면 영어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도 좋은 접근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2]  영어의 표현을 살펴보면 대나무와 기러기를 비유한 뜻이 무엇인지를 더욱 이해하기가 쉽고 또렷해지는 것 같다.  채근담의 이 교훈과 맥이 닿은 영어의 표현은 아무래도 콜린 파웰의 리더십 13원칙에 들어있는 표현같다.  나는 군생활을 미군부대 카투사로 군무했는데, 흑인 출신으로 미군역사상 가장 최고위직에 올랐던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웰 장군이 내가 존경하는 인물에 가장 상위에 들어 있다.  유명한 콜린 파웰의 리더십 13 원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콜린 파웰의 리더십 13 원칙

 

1. 좋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우려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  아침이 되면 더 나아질 것이다.
2.
화를 내도 좋다. 다만 그 화를 이겨내라.[3][4]
3.
자신의 지위(, 의견, 상황)와 자아 ego를 너무 지나치게 결부시키지 말라.  그 지위가 떨어지면 자아도 함께 추락하기 때문이다.

4. 하면 된다!
5.
결정은 신중히 하라.  잘못된 결정으로 곤경에 빠질 수 있다.
6.
부정적인 상황(불리한 사실들)이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라.  

7. 다른 사람의 선택을 내가 대신 해줄 수 없다.  나의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8.
사소한 일들을 점검하라.
9.
공적은 참여한 사람들과 나눠 가져라.
10.
침착성을 잃지 마라.  정중한 태도를 보여라.
11.
비전을 가져라.  적극성을 부여하라.[5]
12.
두려움이나 비관론적 반대 의견들에 너무 개의치 말라.
13.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힘을 배가시키는 요소다.[6]

 

“Avoid having your ego so close to your position that when your position falls, your ego goes with it.”  파웰의 이 표현의 해석은 자신의 지위()과 인격을 너무 지나치게 결부시키지 말라.  지위나 일이 끝나면 자아도 함께 없어지기 때문이다.”  파웰의 이 표현을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 

 

자신의 지위(의견, 상황) 자존심을 너무 지나치게 결부시키지 말라.  지위에서 물러나거나 (상황이 나빠지거나,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존심도 함께 추락하기 때문이다.  지위()와 자아 Ego를 지나치게 일치시키지 말라, 지위가 하락할 때 자아 ego도 함께 추락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지위가 오를수록 일과 인격을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공사의 구분을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일이 전부라고 여기는 관료제 승진 문화가 지배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전관예우”, 공무원이 공무처리를 하면서 민원인에게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괴이한 태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맡겨진 지위나 일을 잠시 하는 것뿐이기에, 일로써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할 수 없다.  일이 전부가 아니고, 부서를 옮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관료제 조직 사회에서는 마치 부서가 인격과 일치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따라서 힘있는 부서가 따로 정해지고, 또 그 일을 맡는 사람에 대한 인격 평가도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마치 사람이 있고 나서 일이 있는 것처럼 오해되는 것이다.  이를 인치라고 말할 수 있는데 법치하고는 반대되는 말이다.  하지만 조직이 먼저 생기고 나서 즉 일이 있고 나서 사람이 그 일을 맡게 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제 아무리 처음 생긴 신생 조직이라고 해도 법률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서 그 조직이 생기는 법이지, 신생조직자체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어떤 지위에 오르면, 예컨대 타이틀이나 직함이나 완장을 차게 되는 순간, 마치 모든 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거나 공적과 일치시키려고 하려거나, 그리하여 밤샘근무를 하거나, 만기친람하는 등 과잉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도록, 지위와 일에다 인격을 너무 지나치게 결부시키지 말라는 충고가 파웰의 교훈이라고 해석된다. 

 

영미인들은 상관 보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데, 이것은 일과 인격은 구분되어 있다는 사고방식 때문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관료제 문화가 뿌리 박힌 대륙국가들은 완장차고 설치는 모습이 나타나고 이런 예는 특이한 사례이긴 하지만 나치정권의 폐해가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조직의 일이란 일이 먼저 있고 나서, 사람이 그 일을 맡는 것이고, 또 그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을 맡기 때문에 그 일에 마치 자신의 전부를 건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 좋다.  파웰의 3번째 원칙은 채근담의 풍래소죽風來疎竹의 교훈과 상통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서 따지고 싸우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이런 종류의 대화를 듣곤 하는데 나의 생각은,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미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1]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표현으로 “평온의 기도문”은 인구에 회자된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어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함을 주시고, 이 둘의 차이점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2] 중국인이 채근담의 이 문장을 영어 번역을 한 것 중 매우 잘된 좋은 번역을 인용한다. “When the wind blows through a clump of scattered bamboos it makes a swishing sound.  But as soon as it has passed, it leaves no sound behind, and silence reigns once more among the bamboos.  When a goose flies over a pond in winter its reflection is seen on the water.  But as soon as the goose has passed its reflection vanishes.  So the mind of a real gentleman starts to work only when an event takes place or a problem arises.  Once the matter becomes a thing of the past, his mind returns to stillness and repose.”

[3] 영어 사전에서의 설명을 인용하면, “get over something: 1. to feel better after an illness or bad experience She's just getting over the flu.”

[4] 화낼 일이 있으면 화를 내도 좋다.  다만 그 화를 이겨내라. 즉 화를 낸 다음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화낸 것을 잊어버리고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이겨 내라.

[5]  “be demanding”의 의미는 우리말의 속어 표현으로 “쪼다”, “다그치다” “달달 볶다” 표현 같은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부하나 다른 조직원이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능력을 뜻한다.  영어 사전의 설명을 참조하라.  “2. Requiring others to work hard or meet high expectations: a demanding teacher.”

[6] “Colin Powell's 13 Rules of Leadership”, “Parade” 1989.8.13 issue; Colin Powell, “My American Journey”, Random House, New York, 1995.

1. It ain't as bad as you think. It will look better in the morning.

2. Get mad, then get over it.

3. Avoid having your ego so close to your position that when your position falls, your ego goes with it.

4. It can be done.

5. Be careful what you choose. You may get it.

6. Don't let adverse facts stand in the way of a good decision.

7. You can't make someone else's choices.  You shouldn't let someone else make yours.

8. Check small things.

9. Share credit.

10. Remain calm. Be kind.

11. Have a vision. Be demanding.

12. Don't take counsel of your fears or naysayers.

13. Perpetual optimism is a force multipl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