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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필/산보자의 명상록

고로쇠 나무의 말의 기원- 사람의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 미네랄 워터-“골리수 骨利樹”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3.

고로쇠 나무의 말의 기원- 사람의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 미네랄 워터-“골리수 骨利樹”

 

요즈음 건강음료수를 판매하는 대형 재벌 회사는 대개 연구소를 두고 있는데 고로쇠 수액이 건강에 좋은 음료수임이 위와 같은 이유들로 잘 밝혀져 있다.  그런데 고로쇠 수액이 건강음료수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민간요법과 전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좌정구도중이던 한 수도사가 득도하여 일어서려는데 끓고 앉았던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힘겨워 하다가 한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려는데 그 나무 가지가 부러지면서 물방울이 떨어져 그 물을 받아먹고 나자 퍼지지 않던 무릎이 활짝 펴졌다고 해서 “골리수 骨利樹”라고 불렀다 한다.  이는 심산유곡에 절이 들어서 구도자의 이야기인데 예로부터 높은 산세로 인해 지형전략상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투가 잦았던 지리산 지역에서 전투 중 병사들의 갈증을 화살이 꽂힌 나무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그것을 생명수로 마셔 갈증을 해소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나무를 골리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로쇠”는 “骨利樹”의 우리말 편한 발음에 해당됨은 옛 문헌을 검토해 보지는 않았지만 일견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복수 발음 “ㄹ” 탈락 현상으로 “고리수”가 자연적일텐데 왜 “고로쇠”로 변형되었을까?  “무쇠팔” “무쇠다리”라는 말이 전해주는 것과 같이, 일반인들은 “쇠”처럼 관절이나 뼈가 튼튼했으면 기대했을 터인데, “쇠”가 들어간 이유는 일반인들의 그러한 기대를 반영하고 또 “철”의 미네랄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  육체 노동에 의존한 농업사회에서 튼튼한 뼈를 유지한다는 것은 생존뿐만 아니라 부를 낳은 조건이었다.  철은 포항제철이 생산하는 철강이 산업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실에서 알다시피, 철기 시대 때부터 경제적 군사적 발전을 가져오고 인간의 삶의 발전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로써 매우 중요시하게 여겼다.  고로쇠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철과 같이 사람들에게 고귀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어머니께선 낙상 골절당하기 오래 전부터 평생을 좌골신경통으로 고생하셨는데, 그 때문에 고로쇠 나무에서 채취하는 고로쇠 약수에 관심이 많았다.

 

고로쇠 수액이 약수로 여겨지는 까닭은 이런 유기체적 약효 성분 측면뿐만 아니라 나무와 물 수액의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찾아지는 것 같다.  왜 수액이 성수처럼 신성시되는가?

 

나무는 물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식목일 날 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거나 정원의 꽃 화분에 물주기를 해 보면 안다.  나무는 물을 먹고 사는데 나무에 물이 흐르는 것을 육안으로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나무 껍질을 벗기면 물기를 볼 수는 있지만 물이 흐르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무엔 물이 분명하게 흐르고 있다.  수액이 없으면 나뭇잎이 열매가 달릴 수도 없다.  나무의 수액은 나무의 뿌리에 스며들어 줄기를 타고 올라가 나무에게 삶의 기운을 불어넣고, 초록빛 잎을 자라게 하고, 그 잎이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게 만들고, 꽃을 피우고, 과일과 열매를 맺게 해준다.  분명하지만 보이지 않게 그 속을 흐르는 나무의 수액.  그와 같이 우리 사람도, 우리 사회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속에 사람 몸의 피같이 무언가가 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이나 나무나 그 무엇이 없으면 고사하고 말 것이다.  사람의 눈에 보인다고 해서 확실한 것이 아닌 것이다.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이 구절을 킹제임스성경으로 읽어보면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는 것 같다.[1]  믿음으로 실현될 현실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을 말한다.  다가올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짐으로 결코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대어성경버전을 보자: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다시 말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수긍할 것입니다.



[1]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  Through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worlds were framed by the word of God, so that things which are seen were not made of things which do app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