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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화+Culture Studies/나라야마 부시코

인생칠십고려장-신화인가? 실재인가?

by 추홍희블로그 2015. 7. 30.

인생칠십고래희

인생칠십고려장

 

 

추홍희 지음


 

인생70고려장

 

서지정보


 

 

인생70고려장

 

차례

 

I

 

인생7십고려장신화인가? 실재인가?

5

 

1

과연 추석날 부모를 생매장할 자식이 나타날 수 있을까?

 

 

 

1924년 추석날 부모 생매장 사건

 

 

2

“고려장 高麗葬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人生七十古來稀

 

 

3

고려장은 역사적 사실인가?

 

 

 

고려시대 때의 중국의 역사 기록

 

 

 

“계림유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고려장에 대하여

 

 

 

조선 시대 세종 실록과 연려실기술 역사 기록

 

 

 

서양인으로서 고려장을 언급한 최초의 기록

 

 

4

고려장 설화

 

 

5

고려장을 다룬 영화

 

 

6

고려장을 다룬 소설-전상국의 소설고려장

 

 

7

고려장을 다룬 노래-“꽃구경따뜻한 봄날

 

 

8

언어는 허구인가? –바르트의 개념

 

 

9

현대판 고려장은 실재하는가?

 

 

 

 

 

II.

 

“나라야마 부시코

26

 

 

고령화 사회- 일본의 고려장 전설- “나라야마 부시코영화와 소설

 

 

 

사람은 자신이 죽을 장소와 죽을 때를 정할 수 있는가?-“평화로운 죽음의 이미지

 

 

 

“까마귀 먹이가 되는 건가!”

 

 

 

나라야마 순례 길

 

 

 

고려장의 원인- 고부간의 갈등에서 오는가?

 

 

 

고려장을 한 날은 왜 눈이 내리는 걸까?- snow과 물 water의 속성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비판

 

 

 

누가 희생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기어서라도(물구나무를 서서라도) 들어가겠다라는 속어의 기원

 

 

 

나라야마 부시코주제가

 

 

 

약자의 절규를 외면하는 것이 살아남는 지혜로 통하는가?

 

 

 

“바다 게의 속성

 

 

 

 

 

III

 

사회의 진보와 국가의 후퇴

50

 

1

죽음의 병상화-릴케의 Hospitalisierung des todes” 죽음의 익명화

 

 

2

죽음의 일상화-푸코의 생명 권력 이론

 

 

3

악의 진부화-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무사유의 삶공범자 Schreibtischtäter 이론

 

 

4

기술의 발전, 기계화된 노동 구조-안더스의 산업체 조직 인간론

 

 

 

 

 

IV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복지국가의 건설과 인간 양심의 회복

 

 

 

자선의 의미

 

 

 

양심의 회복-아담 스미스

 

 

 

복지국가 모델

 

 

 


 

 

1.     과연 추석날 부모를 생매장할 자식이 나타날 수 있을까?

 

1924년 추석날 부모 생매장 사건

 

1924 9 13일자 동아일보의 사회면은 왼쪽 상단에 억새 사이로 둥근 보름달이 떠 있는 큰 그림을 삽입해 놓고, 그 밑에는  오늘은 추석이라는 제목으로 팔월 한가위 민속 명절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자세한 해설 기사를 싣고 있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은 추석- ‘더도 덜도 말고 장 팔월한가위만 같아라하지요.  오늘이 바로 팔월 한가위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추석이라고 부르고 가배일이나 가배절이라고도 씁니다.  추석은 한문문자로 된 말이겠고, 가배는 우리의 옛말을 한문으로 취음하여 쓴 것입니다.  가배가 또는 한가위란 가위의 와전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정월 보름날을 대보름이라고 하는 것 같이 예전 신라때는 팔월 보름날을 한가위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 ” 

 

추석 명절을 역사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한 위의 기사와 그림 오른쪽 상단 옆에는 부친을 생[]- 엄숙한 사실을 보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평안북도 정주에서는 그곳 성외동에 사는 박창균이라는 사람이 생활 곤란이 극도에 달하여 자기 부친을 산채로 장사 지냈다고 한다.  부친을 고려장을 지냈다.  이것을 옛말로는 들었으나 사실로 듣고서는 놀라지 아니할 수 없다.  놀란다는 것은 무슨 자식이 애비에게 불효하였으니 그런 불효자식놈을! 하고 놀라는 도학선생의 분노심으로 놀래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산채로 장사 지냈다는 이 사실과 이러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그의 형편을 대조하여 생각할 때, 엄숙한 경악을 느끼는 바이다.  물론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단순한 경제적 곤박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교육이 없는 것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종래로 극단의 가족주의를 지켜오던 조선에서 부모를 생매장했다는 것은 실로 경제라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전 인격을 지배하는 지를 알겠다.  이 근본원리에 대하여 일찍이 마르크스는 우리 의식은 우리 주위 사정이 지배한다.”고 말한 바와 같이, 그 사람의 생활은 필경 그 사람의 전 인격을 지배하는가 보다.  속담에 이 설움 저 설움 해봐야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라는 말도 대개 이런 깊은 속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날마다 더욱 살기 어려워져 가는 우리 조선 사람의 장래는 과연 어찌될 것인가?  물질 때문에 죄악을 짓지 않는 공평한 세상이 이 땅 위에는 [정녕] 세워지지 않고 말려는가?  이 엄숙한 사실 속에 불지를 연료를 눈 있는 사람은 찾아낼 것이다.”[1]  

 

 


(사진 동아일보 1924 9 13일자, 동아일보 아카이브 캡쳐)


 

 

2. “고려장 高麗葬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어대사전 중 가장 방대한 분량을 망라하고 있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편찬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고려장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나이든 노인을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버려두고 오는 일  노인들에게 아파트 한 채 얻어 드린 후 다시 찾아 뵙지 않는 것은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지 모르겠어.  ② 역사.  고구려 때 늙고 병든 사람을 구덩이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는 것을 기다려 장사하는 풍습을 이르는 말.  고분 古墳을 속되게 이르는 말.”[2]

 

고려장에 대한 중국어 백과사전의 설명은 한국어 대사전의 설명과 틀리지 않게 설명하고 있고[3], 일본어 사전의 설명 또한 위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4]   기로노인 버리기늙은이 기 耆老 버릴 기 棄로 노인을 유기하는 것을 말한다.

 

한중일 3나라가 고려장에 대한 개념을 각각 달리하여 이해하고 있지 않음이 확인된다.  고려장이란 자식이 늙고 병든 부모님을 산채로 높은 산에다 유기해 버리는 반인륜적인 폐습을 말한다.  인생칠십 고려장이라는 속된 말이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이 말의 유래에 대해서 손진태 같은 민속역사학자는 인생칠십고려장인생칠십고래稀라는 말에서 와전되었다고 반박하며 고려장의 역사적 존재를 부정하였다. “인생칠십고래희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곡강[5]시에 나오는 표현으로써 사람이 70살 넘어서까지 오래 살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의학기술과 삶의 수준의 발전으로 평균기대수명 average life expectancy 2010년 현재 78 (남자 75세 여자는 82)로써 100세 시대가 곧 도래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사람의 목숨은 인명재천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의 사람 평균 수명은 두보의 시대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나서 보통 사람들도 70세를 훨씬 넘어서까지 오래 사는 세상이며 이를 흔히 “100세 시대라고 표현한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고려장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또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고려장 형태가 존재하고 있을까?  두보의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이 문제를 보다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두보의 곡강시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朝回日日典春衣

每日江頭盡醉歸

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조정에서 퇴청할 때면 날마다 화려한 옷을 전당잡히고  

날마다 곡강가에서 술을 마시고는 취해서 돌아온다네

외상 술 마시는 것은 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이지만

사람이 칠십까지 살기는 극히 드문 일이라네.

 


 

3. 고려장은 역사적 사실인가?

 

고려시대 때의 중국의 역사 기록

 

우리나라에서 고려장은 전설이나 민간 설화 형태로 존재해왔을 뿐만 아니라 역사상 고려장의 존재는 부정하기 힘든 엄연한 사실이다.[6][7]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 있는데 아들이나 손자가 부양을 하지 않을 때는 징역 2년에 처한다.  또 “상이 끝나기 전에 상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는 자는 징역 3년에 처한다.”는 고려시대부터의 법률이 이를 입증한다.  살인을 금지한 법이 창세기부터 존재했지만 살인죄는 현재까지 항상 일어온 바와 같이, 고려시대 때부터 고려장을 금지한 법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고려장이 현실적으로 존재했음을 쉽게 역설적으로 유추해 낼 수 있다. 

 

계림유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고려장에 대하여

 

중국 송나라 손목이 편찬한 계림유사는 수 많은 판본이 존재한다.[8][9]  계림유사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父母病閉于室中穴一孔與藥餌死不送 부모가 병들면 방에 가두고, 거기에 구멍 하나를 뚫어서 약과 음식을 넣어주고, 죽어도 장사 지내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에 대해서 일부는 고려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피병”(병을 피하여 거처를 옮기거나 격리 수용하는 것)의 풍습을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병든 늙으신 부모를 따로 격리 수용하는 풍습은 1960-70년대까지 이어진 현상임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을 감안한다면 고려장의 역사적 존재와 그 사실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고려시대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고문 중에 하나임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계림유사의 해당본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여름날 계곡에서 떼지어 목욕함이 남녀가 분별이 없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조수가 그치고 배가 멀리 있으면 윗동네 아랫동네 물 속에서 남녀가 모두 알몸을 드러내었다.  부모가 병이 들면 방안에 가두고 구멍 하나를 뚫어 약과 음식을 주고 죽으면 들여보내지 않았다. 나라의 성은 삼면이 산을 등지고 있는데 북쪽이 가장 높고 험준했다. 개울이 있어 굽고 꺾이어 성 가운데를 관통하니 서남이 아래에 해당하여 (그리로) 흘러가는 까닭에 땅이 약간 평평했다. 성 둘레는 이십여 리인데 비록 모래와 자갈을 섞어 쌓았으나 그 형세가 모두 굳고 튼튼하였다.” <계림유사>


 

 

조선 시대 세종 실록과 기타 역사 기록

 

1429년 임금이 전교하기를, 고려 말엽의 백성들은 부모가 죽으면 그 집을 헐어버렸으며 혹 죽으려 할 때 기운이 아직 끓어지지 않았는데 와사에 내어다 두기도 하였고.

(麗季之民父母잔 則毁其家 혹수사기유미절출치와사, 증보문헌비고, 85.)

 

고려 말기에 무지한 백성들이 사심을 내어 부모가 죽으면 곧 그 집을 헐고, 혹 죽음에 이르러 목숨이 아직 끓어지지 않았는데도 바깥 집에 옮겼으므로 비록 다시 살아날 도리가 있어도 마침내 죽음을 면치 못했고

(高麗之季無知知民類生邪心 父母*卽毁其家, 연려실기술 별집 권2, 축전전고

 

연려실기술에 제주 지방의 풍장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서양인으로서 고려장을 언급한 최초의 기록

 

그리피스 Griffis[10]1882년 출간 영어 책 은둔의 나라 한국 Corea: The Hermit Nation”에서  고려장 Ko-rai-chang”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피스의 책에 언급된 부분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왕조는 한국인의 미신 속에 뿌리박고 있는 적어도 두 가지의 잔인한 악습을 철폐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이와 같은 풍속이 한국에서는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고 성행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풍속은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유행되어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세한 내용은 완전하게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노인을 산 채로 묻어 버리는 풍습이었다.  인제 人祭는 아마 산신이나 바다신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풍습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미신적이고도 끔찍스러운 제례 풍속들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성행되었으며, 불교가 들어온 후에도 확실하게 이것을 철폐하지 못했다.  인제(사람제사)의 경우 희생자를 골라 목 졸라 죽인 다음 이들을 바다에 던졌다.  서해 장산도는 사람을 속죄양으로 바치는 해신제의 장소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특기할 만하다.”

 

“To the house of Ni belongs also the greater honor of abolishing at least two cruel customs which had their roots in superstition.  Heretofore the same rites which were so long in vogue in Japan, traces of which were noticed even down to the seventeenth century, held unchallenged sway in Corea.  Ko-rai-chang, though not fully known in its details, was the habit of burying old men alive.  In-chei was the offering up of human sacrifices, presumably to the gods of the mountains and the sea.  Both of these classes of rites, at once superstitious and horrible, were anciently very frequent; nor was Buddhism able to utterly abolish them.  In the latter case, they choked the victims to death, and then threw them into the sea.  The island of Chansan was especially noted as the place of propitiation to the gods of the sea.”[11]

 


 

 

4. 고려장 설화

 

깊은 곳에 사는 야인은 어버이가 늙어서 능히 걷지 못하면 자식이 성찬을 베풀어 대접하고 묻기를, ‘아버지 곰이 되고 싶습니까, 호랑이가 되고 싶습니까,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하고 가죽을 꿰매어 주머니를 만들어 아버지를 주머니 속에 넣어 나무에 걸어 놓고 쏘되 살 한 개로써 죽이는 것이 참된 효자였다.”

 

이와 같은 (其深處野人 칙부로불능행 자설성의 기록이 성현의 용재총화(10)에 나온다고 강덕희의 연구에서 밝히고 있다.(강덕희, 한국 기로설화의 연구, 15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82)에는 모두 36화의 기로설화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김용의 325. 3 “한국구비문학대계수록 고려장 설화 표 정리 328-329.)


 

 

5. “고려장을 다룬 영화

 

1963년 김기영 감독, 김진규 주연의 한국영화 고려장이 상영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내용은 빈곤과 기근에 시달리는 두메산골 화전민 마을에서 칠순 노모를 산 속에 유기했다가 자신도 나중에 똑 같은 운명에 처해질 지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산 속에 버렸던 노모를 다시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당시 영화감독의 제작에 관련된 기사를 바탕으로 재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화전민들이 대대로 살아가는 어느 산간벽촌에 홀아비인 구룡(김진규분)은 간난이(김보애분)와 결혼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한다.  간난이는 자신의 딸을 구룡에게 시집보낸다.  그라나 곡식을 훔쳐 친정에 갖다 주는 것이 발각되자 내쫓겨난다.  그 후 간난이가 다시 구룡의 아내로 들어온다.  열 형제와 공모한 무당의 횡포를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열 형제와 싸움을 벌인다.  늙은 노모를 업고 산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노모는 나무를 꺾어 아들이 하산 시에 행여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내려오도록 지혜를 발휘한다.  노모를 깊은 산 속으로 유기한 후 독수리가 그 노모의 내장을 파먹는 장면이 나온다.  노모를 유기하러 깊은 산(선인봉)으로 향하는 죽음의 계곡은 일본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튜디오내에 만들어진 인공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벼락이 쳐서 고목나무가 쓰러지고, 마을의 절대권력자로 군림해 온 무당은 죽는다.  영화 장면은 마을 사람들 모두 씨를 뿌리러 가자며 흩어지면 끝난다. 


 

 

6. 고려장을 다룬 소설

 

전상국의 소설 고려장

 

1978년 전상국의 소설 고려장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치매에 걸려 패악을 부리는 늙은 노모의 병원비를 감당 못한 아들(현세)은 눈 내리는 밤 노모를 등에 업고 나가 엄동설한 추운 길 거리에다 유기해 놓고서, 경찰서에다 유기 노인이 있다고 신고 전화를 걸고, 자신은 통금에 쫓겨 필사적으로 달려 도망친다는 줄거리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아들(현세)은 박봉의 말단 공무원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들과 그 아래로 3명의 아들을 두고, 아내와 실성한 칠십 나이든 노모와 함께 단칸셋방에서 살아간다.  현세의 아버지는 소달구지꾼이었는데 일본사람이 시키는 대로 일했다 하여 해방이 되자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고 죽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순경이 되었던 현세의 형은 6.25가 일어나자 처형을 당했다.  당시 현세의 형수는 유복자를 임신 중이었는데, 남편의 사후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유복자를 키워 효부로 소문이 자자했었으나, 유복자 아들이 군에 입대하자, 갑작스럽게 재혼을 했고, 그러자 이때부터 현세의 어머니는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냈다.  현세의 어머니가 실성하자, 현세의 큰 누님은 무당을 찾아 다니며 어머니의 병을 고쳐보고자 열성을 다했으나, 집안에서 미친 여편네로 여겨져 감금당하게 되었다.  그 후 현세의 작은 누님이 기도원을 돌아다니며 어머니의 병을 고쳐보려 했으나 오히려 그녀가 병이 나 버렸다.  결국 현세의 단칸셋방으로 들어오게 된 현세의 어머니는 병세는 깊어 갔다.  성행위와 관련된 욕설로 현세의 아내에게 끊임없이 욕을 해가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센 힘으로 현세의 아내 또는 아이들의 목을 조르기도 했고, 밤잠을 설쳐대며 현세 부부의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있거나, 요강 속의 오줌을 간장 독에 쏟아 부어버리는 이상한 행동들을 나타내게 된다.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한 현세는 어머니를 국립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데, 결국 병원 입원비용 때문에 온 식구가 하루 두 끼의 밥을 겨우 먹을 수 있는 정도로 더욱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현세는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본인도 모르게 지방에서 서울로 전출되는데 이 때 그는 브로커가 내미는 돈을 받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가망이 없으니 어머니를 퇴원시키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이제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현세는 어머니를 유기하기로 작정하고 적당한 병원을 물색하러 돌아다닌다.  마음에 드는 병원을 찾은 현세는 그날 밤 어머니를 그 병원 관할구내의 길거리에 버리기로 작정한다.  현세의 등에 업힌 노모는 말한다, “애비야, 눈이 많이 왔구나.”  노모는 추워 죽겠다며 아들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징징대고 있다.  현세는 노모를 뒤돌아보지 않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파출소에다 유기된 노인이 있다고 신고한다.  병원 앞에서 몰래 지켜보고 서 있던 현세는 경찰이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선다.  하느님! 하며 현세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난생 처음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현세는 통금위반으로 경찰에 잡혀가는 것을 겁내고 필사의 뜀박질로 도망친다.[12]

 

전상국의 소설 고려장에서는 노모를 노망 들었다”, “망령 들었다라고 말하며 귀신화시키는데, 이와 같이 문제 해결의 중심을 노모에게 돌리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를 대변한다고 생각된다.  (이런 측면은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노모가 절구통에다 강제로 건강한 자기 이빨을 부러뜨리며 일부러 귀신화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는 노모의 병적 치매가 소제로 다루지 않았다.)  고려장소설에서 문제의 초점을 노모와 아들의 개인적인 차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고령화 사회의 도래가 인구분석적이고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는 사실을 놓친 미흡함이 보여진다.  지금 현재 세상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존에 몸부림치는 현세가 병원을 해결책으로 암시하는 것은 소설의 출간시기가 70년대임에 비추어, 현재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요양원, 요양병원의 대규모 출현을 미리 알려주었다고 여긴다. 한편 경찰이 유기된 노모를 병원에 직접 입원시킨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한국의 노인 복지 담당 행정 체계를 고려할 때 현실과는 차이가 날 것 같다.  필자가 이 책에서 분석하고 강조하는 주제는 소설이나 영화의 구조처럼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늙고 병들은 노모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현재의 한국의 현실적 상황에 놓여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시각과 생각에 관심을 두고 분석하는 것이다.   


 

 

7. 고려장을 다룬 노래-문학과 대중가요

 

 꽃구경따뜻한 봄날

지게 위에 업혀서 산으로 올라가는 공양길은 꽃구경인가? “꽃상여길인가?

 

장사익이 부른 노래 꽃구경이나 김형명 시인의 따뜻한 봄날에서의 계절 배경은 꽃피는 봄철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흔히 하는 올 겨울을 버텨나기가 힘들 것 같다라는 진단이나 예측, 또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식량난의 존재를 여실하게 증거해 주었던 보릿고개의 역사를 고려해보면, 춥고 배고픈 사람은 먹을 양식이 부족하고 추운 엄동설한에 깊은 산 속에 버려졌다는 일본의 기로 전설이 보다 현실적인 내용인 것 같다.  봄철은 사랑이 하늘로 두둥실 떠다니는 계절인 반면, 무성한 나뭇잎이 지고 난 갈 결은 세상 떠난 사람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따라서 이른 봄철에 꽃상여같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 것 같다.  앙상한 가지와 같은 지게 위에 어머니를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계절적 배경은 봄철보다는 겨울철이 보다 어울리는 것 같다.  고려장의 전설은 일본의 나라야마 부시코에서와 같이, 엄동설한에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깊은 산에다 버렸다는 먼 옛날의 이야기 또는 아직도 살아 있는 현실성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 온 이야기인 것 같다.

 

장사익의꽃구경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잘 알려진 가사를 보자. 늙으신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버리려 가면서 늙은 노모에게 꽃구경을 가자고 살짝 속이는 아들에게 노모는 아들이 돌아올 때 행여나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는 길거리에 솔잎을 뿌린다는 내용의 노랫말은 고려장을 시적 유퍼미즘으로 승화하는 것 같다.  꽃구경노래는 김형영의 시집다른 하늘이 열릴 때에 실려 있는따뜻한 봄날에 곡을 붙인 노래라고 한다.  따뜻한 봄날에서 솔잎을 길 위에 버리는 행위는 노모가 아들 지게 등에 업혀서 산으로 들어가는 도중 중간중간에 나무를 꺾어 놓았는데 아들이 노모를 깊은 산중에 내려 놓고 오려니까 노모가 나무를 꺾어 표시해 둔 곳을 따라가라는 말을 하자 이에 아들이 뉘우치고 다시 노모를 모시고 내려왔다는 충남의 민간 설화[13]에 바탕을 둔 것 같다.  하지만꽃구경따뜻한 봄날에서 도덕적 교훈 (“불효자의 뉘우침의 이야기 구조)을 가르치고자 하는 민간 설화의 결론과는 달리, 아들이 후회하고 다시 노모를 데리고 내려왔다는 결론은 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도덕적 가치를 함양시키고자 하는전래 동화의 목적과는 달리 독자나 감상자들의 느낌과 판단에 맡겨두고자 결론을 유보한 태도를 보인 것 같다.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로 더 알려져 있기에 이의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을 뿌려서 뭐 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8. “언어는 허구인가? –바르트의 개념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밝은 방에서 사진은 사진 찍힌 사람 그들이 거기에 존재 했었다는 사실을 인증해 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여기서 언어는 허구라고 말하였는데 아마도 그것은 사진은 인간이 조작을 못하는 기계적인 현상인데 반해서 인간의 말은 인간의 욕구와 기대에 따라서 마음대로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에 근거하는 것 같다.  그러나 “3인성호라는 4자성어의 의미를 수긍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링컨이 말한 대로, 수 많은 사람들을 역사적으로 조작하거나 기만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인간의 지혜에 속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인생칠십고래장[14]이란 말 자체에서 늙은 노인을 높은 산에다 유기하는 고려장이라는 악습의 존재를 사회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입증해 준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 늙은 노인을 산에다 갖다 버리는 오바스테산 姨捨山 (おばすてやま”이라는 지명과 그 존재 자체가 기로의 사실을 증언한다.  하지만 나라에 충성하기 보다 효를 보다 우선시했던 유교적 가치가 지배 이념을 형성해 온 조선시대의 문화에서 고려장의 존재는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어려웠을 것이며 (왜냐하면 그것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정한 조선으로서는 자기 부정이 되기 때문에), 또 그런 금기시된 말을 꺼내기조차 힘든 조선의 상황이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의 소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암시하듯이,[15] 유기할 때 아무도 모르게 버리는데 하물며 그것을 수면 위로 공개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9. 현대판 고려장은 실재하는가?

 

한국에서 현대판 고려장은 실재한다는 사실은 신문 방송의 기사를 조금만 서치해 보면 즉시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흔히 나타난다.[16]  동아일보 신문 전체 DB를 검색해 보면 수많은 현대판 고려장 기사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신문 기사를 읽어보면, 국어대사전 아파트 한 채를 사 주고 격리한 것도 고려장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러한 생계곤란에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만 했던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고려장은 역사적 팩트임이 확인되는 것 같다.  하지만 국가의 사회 복지 체계가 보다 확실히 정착되어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는 노부모를 길 거리에 버리는 그 같은 일들은 더 이상 신문 사회면 기사에서 찾기 어렵지 않을까?



[1] 동아일보, 1924 9 13일자 사회 2신문 기사내용에서 철자법과 문맥을 현대어법으로 약간 수정하였다

[2]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2009, 442.

[3]“在高丽时代(公元918~1392年)的朝鲜,父母年老以后,如果比较病弱,子女就会用一种藤椅(JIGAI)把老人背上高山,遗弃掉,等老人自生自灭之后埋葬.”  http://baike.baidu.com/view/5935344.htm.

[4] 민중서림, “한일사전”, 2006, 163.

[5] 두보의 시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朝回日日典春衣

조정에서 퇴청할 때면 날마다 화려한 옷을 전당잡히고  

每日江頭盡醉歸

날마다 곡강가에서 술을 마시고는 취해서 돌아온다네

酒債尋常行處有

외상 술 마시는 것은 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이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이 칠십까지 살기는 극히 드문 일이라네.

[6] 늙은 부모를 깊은 산 속에 갖다 버리는 나쁜 풍습이 고려시대까지 존재했었지만 조선시대에서는 충효를 국시로 삼았고 그 같은 나쁜 풍습을 바로잡았다고 한다유교이념에 기반한 조선의 건국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타남을 참고하라.

[7]부모가 병이 들면 방안에 가두고 구멍 하나를 뚫어 약과 음식을 주고 죽으면 들여보내지 않았다.”

[8] 북송의 손목은 1103년에 서장관으로서 고려를 방문하고 돌아가서 견문록과 함께 고려어 약 350여 어휘를 채록하여 3권으로 엮어 편찬한계림유사를 남겼다. “고려사”(12)에 보면 송나라의 사신이 고려 숙종 8(1103) 6월에 고려에 왔다가 7월에 돌아간 것으로 기록 되어있다. “肅宗八年六月 宋遣國信使戶部侍郞劉逵……肅宗八年秋七月辛卯 宋國信使劉逵等還”.

[9] 陳泰夏, “鷄林類事硏究광문사, 1974, 31-33, “계림유사”,고금도서집성 소재, 한양대학교 국학연구원, 1974.

[10]은둔의 나라 한국 Corea: The Hermit Nation”의 저자 그리피스는 일본에 머물렀고, 따라서 일본의 책과 정보를 통해서 한국의 역사와 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이해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한국의 대한 사실과 정보를 일본의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한 그리피스의 그 같은 사실을 감안해 보면 그의 책에서 나타난 오류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된다.

[11] Corea, the Hermit Nation”, 1882, at 82-83.

[12] 박인선, “노인문제 교육자료로서의 단편소설 활용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5. 49-51에서 요약된 줄거리를 인용함.

[13] 최운식, “충청남도 민담, 집문당, 1980, 232 .

[14] 한편 손진태는 人間七十古來稀의 와전이라고 주장한다. 손진태, “한국민족설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7, 174-17.

[15]나라야마에 가는 방법은 반드시 지켜주셔야 합니다하나, 집을 나갈 때는 아무도 못 보도록 나가야 함. お山へ 行く 作法は 必ず守ってもらいやしょう 一つ,家を出るときは誰にも見られないように出ること.”

[16] “타락한 요양병원 老人은 두 번 운다”, 주간동아 기사, weekly.donga.com/docs/magazine/viewer.php?mgz_part=weekly. “요양병원을 혁파하라”, 주간 조선 시리즈 기사. 2014.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