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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언어/시- Poema

선거는 과학인가요? or 미친 짓인가요?

by 추홍희블로그 2012. 4. 20.

 

우리는 언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최"악"과 최"선"이 공존한다.  "상황이 닥치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존재"다.


이 명제에 대해서 기원전 430년 디오니소스 축제 때 처음 공연된, 소포클레스의 비극작품 “외디푸스 왕”으로 한 번 알아보자.


“외디푸스”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발이 부르튼 사람”을 뜻한다.

 

외디푸스 왕은 왜 발이 부르텄을까? Why?

 

외디푸스왕은 원래 "이민자"이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다닌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닐까?


 

위험에 처해있는 조국을 건져내는 가장 어려운 절대절명의 "스핑크스" 문제를 해결해 낸 국민적 영웅이 바로 "외디푸스 왕"이었다.

 

한편으로는 외디푸스 왕는 결점도 많은 인간이었다.

 

외디푸스왕은  충동적이고 화를 바로 내는 단점이 있었다. 동네밖에서 길을 가로막고 비껴주지 않는 노인을 보고 화가 나서 바로 죽여버릴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는 인간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느까게 되는 점 하나는 "알면 닥친다"는 것 즉,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

 

외디푸스왕의 어머니이자 그의 아내인 조카스타는 그들의 과거사를 아는 순간 자살을 하게된다. (우리 인간에게 기억이 없으면 책임이 나오지 않는다.)

 

외디푸스왕은 목을 매고 죽은 "저카스타"의 옷에 달린 브로우치로 자기 눈을 찔러 버린다.

 

자기 운명을 알지 못했다는 후회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아니면 근친상간이라는 점을 깨닫고 벗어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고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외디푸스왕은 두 눈이 먼 심봉사가 어린 딸 "심청"이를 키운 것처럼, 부모에게 닥친 재앙을 모르는 두 딸 "이스메네"와 "안티고네"를 함께 데리고 먼 이국땅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외디푸스왕처럼, 이민을 가는 목적은 기억에서 해방하고자 함인 것이다. 인간에게 새로움의 삶이란 기억으로 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기약되지 않는 제약조건이 있다.

 

구구절절히 사랑했던 소년 소녀가 사귀다 애절히 헤어지면 그동안 간직했던 사진과 편지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지 않았던가? 그것을 생각해 봐라. 

 

공맹의 말인가?  인간에게는 수오지심이 있다.  스티븐 핑거의 주장인가?  말이 있기 이전에 기억이 있었다.  승리의 기쁨도 수치심도 기억에서 나온다.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서 42.195km의 마라톤 들판을 달려온 연유도, 햄릿의 고뇌도 모두가 "기억"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작은 잘못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서 콘트롤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영역 밖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은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가진 것을 한 순간에 잃어 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잘못으로 가득한 죄인이다. 갈대만큼 약한 존재다. 인간은 약점으로 가득차 있고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디푸스 왕”의 마지막 부분 합창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 동포들이여, 외디푸스왕을 보아라.
그는 뛰어난 머리로 그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내었고
왕의 자리에 올라 세상 최고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의 위대함을 바라보며 어느 누군들 선망을 품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제 칠흑의 밤바다 같은 공포가 그를 삼켜버렸다.
이제 우리가 지켜보며 마지막 날을 기다릴뿐이니.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죽어서 마침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People of Thebes, my countrymen, look on Oedipus.
He solved the famous riddle with his brilliance,
he rose to power, a man beyond all power.
Who could behold his greatness without envy?
Now what a black sea of terror has overwhelmed him.
Now as we keep our watch and wait the final day,
count no man happy till he dies, free of pain at last."

 

 

비극 “외디푸스 왕”가 말하고 하는 것은 무슨 내용일까? 나는 이렇게 보고 싶다.


 

“식자우환”이라는 말처럼 인간은 알면 알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   인간에게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It's better not to know."

 

“검증되지 않은 삶은 의미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가지는 사람은 동시에 괴로움도 간직한다. 대의(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은 몹시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상기하라.

 

 


외디푸스왕이 자신이 입양아라는 "과거의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에게 그렇게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기억(memory)”이다.   우리 삶은 기억이기 때문에 때로는 즐거울 수 있다.  우리 삶은 기억이기 때문에 때로는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건너면 비로소 "행복함을 찾을 수 있다"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스핑크스의 퀴즈

 

 

 

 

아침에는 4발로 걷고, 점심때는 두발로 걷고 저녁에는 3발로 걷는 짐승은 누구일까? 그 답은 “인간”이다. 어느 누구도 풀지 못했던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낸 외디푸스이었다. 외디푸스는 매우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Oedipus Explains the Riddle of the Sphinx, Ingres. The riddle of the sphinx was: "What walks on four feet in the morning, two in the afternoon and three at night?" Oedipus answered: "Man: as an infant, he crawls on all fours; as an adult, he walks on two legs and; in old age, he uses a walking stick". Oedipus was the first to answer the riddle correctly and, having heard Oedipus' answer, the Sphinx was astounded and inexplicably killed herself by throwing herself into the sea, freeing Thebes from her harsh rule. Ironically, it is also a riddle to which many feel Oedipus himself is cursed to kill his own father and marry his mother (the words of the oracle) but it's really just the sensationalism of the generation gap."

 

 

이 수수께끼에서 “걷는다”는 말이 들어 있다. “외디푸스”라는 말 자체에도 "걷는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외디푸스"라는 말의 그리스 어원을 보면 "외디푸스(Oedipus)"는 “부르튼 발”이라는 뜻이다. 외디푸스는 인간은 많이 걷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발 (foot)은 그리스 라틴어 불어 영어로 모두가 "걷다 walk, travel의 뜻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인생은 걷는 것, 길 위의 방랑자이다. "김삿갓"이 "방랑자"인 것처럼, 외디푸스는 그런 방랑의 뜻이 들어 있다고 보여진다.

 

 

 

 

베에토벤처럼 "산책을 많이 하는 사람이 지혜롭다"는 말을 이해하겠는가?

 

인간은 걷는 존재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 한다. 기억이 쇠진할 때까지. 인간은 “발품”을 팔아가는 존재라는 것.

 

 

"The inn that shelters for the night is not the journey's end." A man, like the traveler, must be ready for the morrow." You must be ready to travel on the morrow.

 

 

호머의 "오딧세이"에서도 주인공은 걷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고행을 마다하고 다시 먼 길을 돌아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영웅은 꼭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명제가 사실인 것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타국을 떠도는 이민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는 태초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적인 존재이다. 우리의 삶은 목적이 아니라 (길 위를 걷는) 과정인 것이다. 제프리 초서의 "순례자"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다.

 

 

 

우리는 잠시도 쉴 수가 없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다시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 한다. 인간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존재다. 어쨋든 "다람쥐 쳇바퀴 treadmill 를 도는 존재"다. 만보계를 차고서 돌고 도는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을 타고 세일즈의 죽음인 다람쥐 쳇바퀴 인생, 걷고 또 걷는 타박네의 인생이 바로 우리 삶이다. treadmill.

 


아무리 지혜가 큰 사람이라도 해도, 살아 있는 동안,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 바로 그 개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진실을 찾는 사람에게는 고독하고 그러한 "신독"의 삶은 바로 고통의 삶을 수반하는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외디푸스왕"에서 말하고자 하는 뜻은,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고통에서 해방되기 어렵다"라는 명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외디푸스 왕=발품발이= 진실된 삶.  진실을 찾는 사람은 헤메인다=방황하는 존재=계속 걸어라=슬퍼할 겨를이 없다=내일이 없는것처럼 오늘의 삶을 부딪혀라=카르페디엠 Carpe Diem=맨발의 이사도라=우리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인간은 알아도 문제요, 몰라도 고통이다. 그렇다면, 쇼팬하우어식(결혼해도 고통이요, 안해도 고통이다, 그렇다면 하는 것이 낫다)으로 말한다면, 알고나서 고통을 느끼는것이 보다 낫다.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로서 결자해지를 할 수 있는 존재다. 피로이드가 말한 외부충격적으로 진실을 깨닫는 존재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거기에 있다.” “the truth is out there."

 

 

 

 

 

 

 

 

 

선거 승리의 진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길은 "발품을 얼마나 많이 파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은 식당 경로당을 몇 개 ()당을 찾아 다녔는가?

 

(식)당 (경로)당은 보수 진보 구분 없이 영원한 선거의 상식적인 당이다.

 

(), (경로)당은 (새누리) (민주통합) (통합진보) (국민생각)당보다 더 무시 못할 당이다.

 

 

당을 무시하고 살아 남는 정치인은 없다. 먹을 것, 잠자리 걱정을 해결해 주는 것이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 그들의 등을 따습게 하고 배를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훌륭한 정치가는 발품을 파는 사람이다.


"맨발의 청춘"이 바로 선거 승리의 공식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선거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죽을 때까지,

이사도라 던컨의 진실이 알려주듯이, 우리는 그렇게 녹슬지 않는 진실을 찾아가야 한다.

 

 

 

 

무용가 아사도라 던컨

Isadora Duncan on the Lido in Venice (Raymond Duncan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