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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Think Like a Lawyer

순사는 때려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늘여 조지고 도둑놈은 먹어 조지고 마누라는 팔아 조지고"-늦장 재판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22.

 재판 지연과 사법 정의 실현의 문제


영미법 국가에서 대법관을 ‘자스티스 Justice’라고 부른다.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최고의 법관을 우리는 ‘대법관’이라는 호칭을 쓰는 반면 영미국인들은 ‘Justice’라고 부르는데 Justice의 뜻이 바로 ‘정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독일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히틀러 나치 일당 독재 체제가 들어서게 된 원인을 분석한 것으로 유명한데 아렌트는 “악의 일상화 banality of evil”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악마도 일상적으로 나타나면 더 이상 악마라고 인식하지 않고악에 대한 가치판단력이 무디어져서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없이 악의 체제마저 받아들이게 된다.  악과 불법 등이 일상화되면 그것들에 대한 가치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아렌트는 지적하였다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우리나라의 사정을 묘사한 소설의 한 토막을 인용한다. “순사는 때려 조지고간수는 세어 조지고검사는 불러 조지고판사는 늘여 조지고도둑놈은 먹어 조지고마누라는 팔아 조지고.” (“육조지”, 정을병, 1974.)

 


“지연된 재판은 이미 정의가 상실된 것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이 유명한 법률격언은 신속한 사법 절차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지연된 재판에서 제아무리 정의롭고 진실된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이미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 인간은 한번 살지 못하는 유한성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가 말한 대로, 길게 보면, 사람은 결국 죽는 존재이다.  재판에서 이겨본들 재판이 크게 지연되고 당사자가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설령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그 동안 지체된 시간 은행 복리 이자를 쳐서 계산하면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돈으로 환산되는 손해비용보다 더 큰 손해가 지연된 재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일 것이다.  정신적 고통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비용에 해당한다.  재판 지연의 문제로 인해서 영미국에서는 형평법원 자체를 폐지하는 법원대개혁의 역사를 낳게 되었다.  재판지연의 문제는 사법불신의 문제를 낳기 마련이고 사법부는 국민불신을 해소하고 사법정의를 실현하고자 수백년 동안 내려오는 전통적인 법원 구조 자체를 거의 혁명적으로 탈바꿈시킨 예가 바로 영미국의 형평법원을 폐지하고 보통법원으로 통폐합시킨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사법부 통치 국가인 영미국에서의 형평법원이란 우리나라에서의 “검찰”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보다 쉬울지 모르겠다.  사법부 통치 역사가 없는 대륙법체계하고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형평법 법원의 창설과 기능 역할 역사를 비교법적으로 분석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이 해당한다.  그런 형평법원이 재판지연과 자의적 판결로 국민의 사법 불신의 감정이 드높아지자 형평법원 자체를 폐지시켜 버린 것이다.  유명한 디킨슨의 “황폐한 집”은 법률 지연과 사법 불신의 폐해를 극명적으로 잘 보여주었고 영국에서 법원 대개혁을 촉구하는 국민 여론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재판 지연은 사법 불신의 원천

 

재판이 지연되는 만큼 국민들의 사법 불신이 그에 비례해서 높게 나타난다. 정당 해산 심판의 경우를 본다면 재판을 길게 끌고 가는 동안 진행되는 여론 재판의 문제점이 나타나기 쉬운 위험성이 존재한다.  “재판에서 지연은 곧 정의가 아니다. To delay is injustice.”라는 법격언이 말해주듯, 재판이 지연되는 사법 제도에서는 완전한 정의를 실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재판 지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서, 영미법은 이미 거의 1천년 전에 “국왕은 재판을 결코 지연시켜서는 아니된다 …to no one will we refuse or delay, right or justice."는 법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국민 기본권의 원조라고 부르는 1215년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의 제40조의 조항에 들어 있는 법률 규정이다.

 

재판의 한자 어원을 살펴보면 재판은 가위로 제왕절개 수술하듯이 단칼에 해내지 않으면 둘 다가 죽을지도 모를 그런 신속성을 필수적인 요소로 한다.  재판 裁判의 한자 재裁라는 말은 가위로 비단옷을 자를 때를 나타난다.  비단옷에 두 번 가위질을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비단옷은 단칼에 잘라야 바르게 잘라지는 것처럼 사건에 대한 판단은 단번에 현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판단에 가깝다고 본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판단도 여러 가지 고려사항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영미법과 대륙법은 재판구조와 절차에 대한 기본적 개념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영미법은 ‘재판 trial’을 양당사자 사이에 ‘분쟁을 종식’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반면, 대륙법은 재판을 ‘진실을 발견’해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  영미법 재판구조상 판사는 ‘즉결 재판’의 원칙을 따른다.  재판정에 나타난 증거를 보는 즉시 바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크다.  일단 재판이 시작되면 끝장을 볼 때까지 진행한다.  재판을 무한정 끌 수 없다.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하는 구조이므로 판사의 독단이 지배하기 힘들다.  재판정에 나타난 증거에 의해서 단칼을 잡아 내려치는 자세로 ‘한 번 재판’으로 끝내게 된다.  배심원 jury 재판 구조이기에 재판을 ‘두 번 다시 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또 영미법은 항소법리와 사실심리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이런 원칙은 배심원 재판 구조상 나타나는 당연한 귀결이다.  반면 대륙법은 항소심 appellate court과 사실심 trial court의 엄격한 구분이 크지 않다.  재판의 구조를  ‘1심’과 ‘2심’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 재판 trial은 1심도 trial이고 2심도 trial이어서 재판이 두 번 행해지는 셈이고, 고등법원이 원심에 해당된다.

 

재판을 문제를 해결하고 분쟁을 종식시키는 결과론적 측면보다 진실을 찾아내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대륙법국가의 법문화 전통과 인식구조하에서는 1심과 2심에서 사실심리를 병행하는 재판 구조의 문제점을 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1심과 2심에서 사실심리를 병행하는 재판 구조로 인해서 분쟁당사자들은 1심 법원의 사실 판단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또는 경시하는 사고가 팽배하고 그저 대법원까지 가기 전에는 승복의 자세를 보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1심에서 패하더라도 2심에서 보다 진실에 가까운 증거제출을 할 수 있다면 2심에서도 법원의 사실 확정 자체가 달라지거나 번복될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법원 판결의 완결성을 수긍하려는 태도를 보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