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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Think Like a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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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홍희블로그 2015. 7. 26.

22년 전 당시 미국에 있을 때 하루 종일 CNN 생방송으로 OJ 심슨 사건이 생중계되었습니다. 온통 신문 방송 언론이 전국적으로 떠들어댔던 유일무이한 형사 사건의 생방송 중계 사건을 보았는데 당시 기억은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직 뇌리에 선하게 남아 있습니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되던 법정 재판에서 살인 용의자에 대한 혐의를 입증할 가장 결정적인 범죄 물증 제시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검찰은 가장 결정적인 살인 증거로써 피 묻은 장갑을 자신 있게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바드 로스쿨 교수 더쇼비치 등이 참가한 최고의 드림 변호인단은 피 묻은 장갑을 피고인에게 갖다 대고 장갑을 직접 손에 끼어 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웬걸 ~~~ 그 피 묻은 장갑을 피고인이 자기 손에 끼워 넣으려고 장갑에 손을 집어 넣는데~~~아차~~~~장갑이 작아서 손에 들어가지를 않는 겁니다~~~이게 어찌된 걸까요?? 하늘도 노한 것인가요?  세계에서 단 몇 개 밖에 없다던 그 비싼 가죽 장갑이 세상에 쪼그라들어도 그렇지 손에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자기 손에 들어가지도 않는 장갑을 끼고 살인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검찰이 자신 있게 결정적인 법정 증거로 제시한 물증이 피 묻은 장갑이었는데 그 장갑이 손가락에 끼워지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배심원들은 결정적으로 의심을 하고 말았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살인의 증거라고 내밀은 “피 묻은 장갑”이 글쎄 범죄자의 손가락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장갑을 끼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검찰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닙니까? 이에 검찰은 크게 당황하고 백 번 수소문해서 장갑이 쪼그라들 수도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해 봅니다만 한 번 크게 품은 사람들의 의심을 잠재울 수가 없었습니다.  피 묻는 장갑에서 채 취한 혈흔이 범죄자의 DNA하고 일치한다고 백 번 천 번 떠들어 보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 번의 결정적인 의심을 어떻게 결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그 보다 더 강력한 어떤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의심을 잠재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심에다 불을 더 지펴준 것은 경찰의 범죄 조작 가능성이 불거진 사실이었습니다.  피 묻은 장갑을 살인현장에 고의로 떨어뜨린 사람이 바로 경찰- 그것도 인종차별의 전력을 분명하게 갖고 있던 백인 경찰 팀장 마크 퍼먼으로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고 더 이상 빼도 박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왜 서양에서 증거 조작이 드러나면 아무리 진짜 범죄자라고 해도 무죄로 풀려 나오게 될까요?  그 이유는 경찰 등 국가기관의 힘은 정말 막강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국가 기관은 마음만 먹으면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국가 정보망과 컴퓨터 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진 경찰 국가 권력을 통제하지 않으면 오히려 국가 기관 자체가 먹히고 만다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심합니다.  경찰들이 어떻게 증거 조작을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고 단일 언어를 쓰는 나라이니까 미국 같은 다민족 다언어 국가하고는 분명히 다르고 또 우리나라 경찰이 그런 나라 경찰처럼 허술하게 부패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대동소이하다고 본다면 경찰이 범인 검거 실적 때문에 눈이 멀거나 또는 부패한 검은 돈의 유혹에 멀어 간혹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유능한 변호사들은 증거 조작이 있다면 그런 틈새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심슨 재판 사건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이어갑시다. 백인 경찰들이 아시아 이민자들을 경멸하고 멸시한다는 것은 한 두 번도 아니고 굳어질 때로 굳어진 인종차별 태도 문화를 가진 경찰 조직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범죄 물증을 바꿔치기 한다는 심증이 물증적으로 입증되자 경찰의 증거 조작에 대한 분노와 경찰의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는 불에 기름을 끼얹듯이, 대보름날 들판에 쥐불놀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삽시간에 전국을 강타하고 말았습니다.  검찰이 결정적인 물증으로서 피 묻은 장갑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도 과학적인 DNA 증거라든가 기타 다른 정황 증거상 여론- CNN방송에서 24시간 생중계를 했기에 전국적으로 관심이 매우 컸던 살인사건이었음- 이나 법률전문가 사이에서 심슨이 살인범죄자라는 것을 거의 다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피 묻은 장갑과 경찰의 증거 조작이 전혀 의도하지 않는 곳에서 예상치 않게 터져 나오는 바람에 피고인은 무죄로 평결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조작되었을 때 그렇게 조작에 대한 의심이 한번 가기 시작하면 결코 시계추를 거꾸로 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건 인지상정의 문제입니다.  왜 경찰이 흔히 증거조작을 할까요?  그 이유는 백인 경찰들은 영어를 못 읽고 그런 무식하고 돈 없는 사람들을 경멸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증거조작은 완벽하다고 믿는 우월감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20년 전의 미국에서의 심슨 재판의 사정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느 누가 단정 확언할 수 있을까요?  이제 대한민국도 미국만큼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됨으로써 “절차의 공정성”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된 달라진 새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못 배우고 돈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자신들의 업무에 자만심을 갖고 있는 권력기관들의 과거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사회에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성공 지상주의의 사고가 팽배하여 “절차적 정의”가 깡그리 무시되었지만 이번에는 20년 전 미국의 상황과 같이 한국 사회의 변화를 몰고 올 새로운 변곡점을 이룰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요?


“장갑이 손에 맞지 않잖습니까? 그렇다면 무죄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