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숲 속에 멈춰 서서
이 숲의 주인이 누구인지 난 알고 있다.
그가 아랫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눈 덮인 숲을 누가 지내가겠느냐고
여겨 내가 여기 멈춰서 있는 걸 모를 거다.
근처에 농가 하나 없는 곳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겨울 초저녁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내 애마는 이상하게 여길 터.
애마는 내가 무슨 착각한 것 아니냐며
말방울을 흔들어 물어본다.
방울소리 말고는 살랑대는 바람과
솜털같이 흩날리는 눈송이뿐.
숲은 조용하고 어둠 캄캄하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 몇 십 리를 더 가야 한다.
잠들기 전 몇 십 리를 더 가야 한다.
*[1]
**[2]
무주 구천동 가는 새벽길 2012.12.30.
(무주 리조트 2012.12.30.)
[1]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Whose woods ther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2] 요사이 청춘들은 모두가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학원에다 연수에다 취미, 봉사 활동까지 보다 나은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에 열중한다. “스펙” 쌓기는 어느 회사 어떤 조직을 가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취직이 가능하다”는 능력제일주의라는 점에서 “skills currency”라는 말로 표현한다. 또 오래 전에 탐독했던 경영학 그루 찰스 한디의 “포트폴리오 인생 portfolio life”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내 인생 프로젝트가 무엇이고 내 참된 자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곤 한다. 자신의 참 아이덴디티가 무엇인지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미술학과 학생이 입시 시험 때 제출하는 작품은 하나만 제출하지 않는다. 여러 작품을 함께 묽음으로 제출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여러 일을 해 나간다. 유한한 인생에서 그렇다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숲 속의 두 갈래길”의 영어원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프로스트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 인생은 둘 다를 모두 취할 수가 없고, 하나를 취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한 길을 택하면 그 순간부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또 항상 “남의 손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상대성의 법칙에 따르면 만족을 찾아내기 어려울 지 모른다. 어느 누구든지, 평생 한 가지 일만 몰두하는 경우는 쉽지 않다. 같은 직업내에서도 관심 영역을 넓혀가거나 색다른 영역을 창조해 가기도 한다. 전문화 시대에서, 미술 선생이 음악 선생을 하기에는 힘들지 모르지만, 인권법전문변호사가 파산전문기업변호사로 변신하는 경우는 가능할 것이다. 기업인이 대통령에 출마하는 경우도 잦다. 대통령이 “꿈”인 이상 누구나 추구할 수가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담 스미스가 밝혔듯이, 인간의 삶의 개선 추구의 꿈은 어머니 뱃속부터 가지고 나오는 본래적인 것이고, 또 그것은 무덤에 묻히기 전까지는 없어지지 않는 인간 본성의 하나라고 여긴다. 이런 결단은 인생의 한 순간에서 절심함을 체험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절실한 순간을 로버트 쉴러는 “계시적 순간 revelatory moment”이라고 말한다. “포트폴리오 인생”이라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다시 물음을 한다. 어떤 일에 가장 재능이 있는지를 모른 채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찰스 한디의 말을 인용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죽는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삶이란 정체성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이고 우리는 사다리를 오르면서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발견해 간다.”-찰스 한디, 포트폴리오 인생,중에서.
'시와 언어 > 창의력과상상력-에라스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은 사랑처럼 (0) | 2015.08.16 |
---|---|
너에게 묻는다 (0) | 2015.08.16 |
해안가 하얀 절벽 위에 서서 (0) | 2015.08.16 |
새앙쥐에게 전하는 말 (0) | 2015.08.16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0) | 2015.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