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사람들은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홀연히 나타난 혜성으로부터 눈을 뗄 수 있을 텐가?
사람들은 때때로 울리는 종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한 분신을 떠나 보내는 종소리를 외면할 수 있을 텐가?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고, 본토의 일부분이다.
한 줌의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가면 대륙은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며,
바닷가 해안선도 그렇고,
친구의 임대 농장이든 또는 자영 농장이든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는 까닭은, 내가 인류 전체 속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내게 사람을 보내 묻지 말라.
종소리는 그대 자신을 위하여 울린다.
*[1]
**[2]
뉴질랜드, 마운트 왕가누이, 2010.2.
[1] John Donne, "For whom the bell tolls"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중에서.
Who casts not up
his eye to the sun when it rises?
but who takes off his eye from a comet when that breaks out?
Who bends not his ear to any bell which upon any occasion rings?
but who can remove it from that bell which is passing a piece of himself out of
this world?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2] 종소리는 당신의 깨우침을 위해서 울린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예전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또 죽을 때도 그 예식을 교회에서 관장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출입금지선을 쳤고, 사람이 죽으면 교회에서 종을 치고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누가 죽었는지 알아 보려고 교회 목사에게 달려와 물었다. 그런데 교회목사의 눈에 사람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보였다. 이런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설파한 시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이다. 작가 존 던은 영국의 중세 시대 교회 목사였다. 또 하나 존 던의 인간 사회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바로 모든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결코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은 섬이란 본토에서 떨어져 있어 본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고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나 실제로 자세하게 섬을 관찰해 보면 섬은 결코 고립되지 않고 항상 본토 대륙과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런 지구상의 진실을 존 던이 시로 갈파한 것이다. 존 던이 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누구든지 그 자체로서 섬이 될 수 없다. 부모 탯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긴 하지만 우리는 하루도 누군가로부터 공급을 받지 않으면 하루도 못 버텨 내고 죽고 말 것이다. 아무리 깊은 산 속에 홀로 떨어져 산다고 해도 물과 전기와 인터넷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항상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존재의 운명은 아닐지라도 (때론 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독방의 감옥에 갇힐 지라도 거기에는 간수가 지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토마스 모어가 그의 유명한 소설 “유토피아”에서 유토피아는 대륙과 격리된 섬으로 그렸으나 사실 유토피아는 항구가 있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며,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이민자이었다. 아무리 고립된 섬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막거나 피할 수 없다. 태평양 한 가운데 고립무원의 섬에 혼자 떨어져 살고 있던 로빈슨 크루소에게도 사람들이 찾아오게 된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누군가와 같이 살아간다. We cannot live alone. 따라서 사람은 누구든지 그 자체로서 섬이 될 수 없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사람은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한 사람이 죽으면 인류의 한 쪽이 사라지는 것이 된다. 2-1=1이다. 종소리가 울린다는 것은 인간은 누구든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사실적 묘사이다. 한편 모래톱이 파도에 쓸려 나갔다 다시 밀물에 밀려 오듯이 죽음은 다시 삶으로 들어오게 된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영원토록 이어간다. 인류 전체의 삶을 이와 같이 볼 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고, 그 과정은 바다처럼 영원한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삶이,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의 동반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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