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굴복한 순간
M의 방에 혼자 있을 때 일만 잠시 놓으면 그토록 피하고 싶어했던 그 분이 꾸준하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가 오시는 것을 밤마다 느껴야 했던 내 처지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내가 너무나도 두려워했던 그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았다. 1929년 여름 학기에 나는 드디어 항복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무릎을 끓고 기도했다. 아마 그날 밤의 회심은 온 영국을 통틀어 가장 맥빠진 회심이자 내키지 않는 회심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선명해 보이는 그 일이 그 당시 내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지 이런 조건의 회심자까지 받아주신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는 그래도 제발로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끌려가는 와중에도 발길질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화를 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도망갈 기회를 찾는 탕자에게도 하늘의 높은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그 분의 사랑을 그 누가 찬양하지 않으랴? ‘끌고 오라’는 것은 악한 사람들이 너무 남용한 탓에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말이다. 그러나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것야말로 하나님의 자비의 깊이를 잴 수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준엄함은 인간의 온화함보다 따뜻하다. 그의 강요는 우리를 해방시킨다.” 루이스, “예기치 못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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