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다. 즉 자극에 생각없이 그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슈뢰딩거의 고양이 Schrödinger's cat”의 개념이 떠오른다. 좋은 소식도 되고 나쁜 소식도 될 수 있다는 이중성이다. 그렇다고 (또는 그런 이중성 때문에 사람의 판단력은 비이성적이고 한정적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하나의 이벤트를 중첩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헛것을 본다거나 환상을 본다고 하지 않는가?
“슈로딩거 고양이”는 이벤트가 벌어진 경우 죽거나 살아 있거나 둘 중의 하나다. 둘 다 함께 일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벌어지기 전에는 둘 다가 겹쳐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중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틀린 명제이다.
사람들은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다 알고 있듯이 행동하고 또 자연 현상처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처럼 확실하게 행동한다. 그런데 과연 미래 예측도 그러할까? 아니지 않는가? 꿩 먹고 알 먹고 알 먹고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환상을 보고, 또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될까?
슈로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 상자 속의 고양이는 “분명히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라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은 50%, 죽어 있을 확률도 똑같이 50%”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위 개념이 시사하듯이, 사람은 “파블로프 개 Pavlov’s dog”로써 “자극 stimulus”에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 response”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극과 반응 그 사이에 공간이 존재한다. 생각하는 “공간(space)”이 존재한다. 이 공간은 벽이 아니라, 생각하는 공간이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사람은 이 공간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된다. 최소한 “파블로프의 개”가 생각 있는 “슈로딩거의 고양이”와 싸우고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은 역설적인 존재다.
'선거와 정치경제학 > 선거의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의 러닝메이트 선거 제도 (0) | 2015.08.11 |
---|---|
선거 광고의 결정판 (0) | 2015.08.11 |
제임스 뷰캐넌-공공선택 (Public Choice) 이론 (0) | 2015.08.11 |
SNS지표로 예측해 보는 대통령 당선자는 누구? (0) | 2012.12.02 |
치킨 게임 Chicken Game (0) | 2012.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