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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essity긴급피난

“정의의 역사”에서 철로를 이탈한 전차 사건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9.

 “정의의 역사”에서 철로를 이탈한 전차 사건 


가정 사례1.  당신이 전차 기관사라고 가정하자.  다음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철로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고,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전차를 멈출 수가 없다. 곧 5명이 죽고 만다는 예측은 사실로 들어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오른 쪽에는 비상 철로가 있는데 거기에는 1명이 서 있다.  영화에서 제임스 딘의 연기로 유명한 “치킨 게임”처럼 누군가 죽게 되는데 누가 먼저 핸들을 어디로 꺾을 것인가?의 상황과 비슷하다.  이 때 비상철로 핸들을 꺾으면 1명이 죽고 5명이 살게 된다. 이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5명보다 1명이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철로원의 선택에 동조할 것이다.  한 사람 희생 sacrifice으로 5 사람을 살리게 되니까.


사례2. 

그런데 만약 당신이 전차의 기관사가 아니라 전철 위의 구경꾼이라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는 비상철로가 없다.  전차가 5명을 들이받기 직전 마침 옆에 덩치 큰 사람이 나타났고 그를 철로에 떨어뜨린다면 전차가 멈춰설 수 있는데 그러면 한 명이 죽는 대신 나머지 5명이 살게 된다.  이 때 덩치 큰 사람을 미는 행위가 옳은가?  홍수에 떠밀려간 어린아이를 다리 위에서 쳐다보는 사건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그 덩치 큰 사람을 미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밀어 죽게 하는 행위를 나쁜 짓으로 죄의식을 느끼고 끔찍해 하고 그런 일을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그럼 앞의 사례1과 결론은 똑 같은데 왜 샌덜의 질문과 같이, 사례1에서는 옳게 여겨진 원칙이 왜 사례2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한 사람을 구하기 보다 5사람을 구하는 편이 낫다면 왜 이 원칙을 사례2에 적용해서 남자를 밀면 안되는가?  사람을 밀어서 죽게 하는 행위는 어떤 바람직한 이유를 내세워도 잔인하다고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사람을 전차에 치어 죽게 하는 행위는 덜 잔인한가? 사람을 미는 행위가 잘못인 이유는 다리에 서 있는 남자의 의지를 거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절한 정원”에서 나타나는 어차피 곧 죽고 말 치명적인 병이 든 남편을 희생양으로 삼은 젊은 아내의 사례는 마찬가지의 이유를 제공하는 걸까?  처절한 정원에서 그 남편은 아내의 계획에 스스로 동의했다.  그렇다면 동의라는 절차가 지켜지면 죽음 (안락사, 낙태 등)도 정당화되는 걸까? 

아니면 처절한 정원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해법은 다 죽거나 아니면 다 살거나 하는 현실적 방법이 있을까? 


샌델이 말하는 바와 같이 “도덕적 추론을 타인을 설득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도덕적 추론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가려내는 수단이자, 우리가 어떤 생각을 왜 하는가를 이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도덕적 딜레마는 도덕 원칙 간에 서로 충돌하면서 생긴다.  

1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  

2. 아무리 명분이 옳다 해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원칙

이런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면, 그 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적절한지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샌덜이 다루지 못한 이슈를 하나 보자.  “처절한 정원”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오해 (정보의 비대칭성, 대화 부족, 죄수의 딜레마 등의 이론이 설명해주는 바와 같이)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즉 사람은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단순히 “운이 나쁜 것”으로 돌리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 것으로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샌덜도 수긍하는 바와 같이, 전차 이야기의 가설에는 실제 삶에서 부딪히는 선택의 불확실성의 문제 부분이 빠져 있다.  “처절한 정원”에서 말하는 자기가 직접 총살에 처해지지 않는 이상 자기부터 먼저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다들 자긍심을 느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적 사건에 부딪히는 전까지는 순수한 가정이기 때문에 실제 상황하고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삶과 죽음의 순간과 같은 실제의 전쟁 상황을 겪어 보지 않고서 어떻게 단순히 책상 머리에서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을까?  “만약 **했었더라면~~~”식의 “If 가정법”이나 실험실의 가정법에 의존하는 경제학 공식처럼, 다른 조건이 다 일정하다면 순수 가정법이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될 수 있을까? 


사후적 위험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써 선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인간사회의 역사를 살펴 볼 때 선제적 공격의 전쟁을 정당화하지 않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20 원칙에 따라서 누구든지 사후에는 정당화 이유가 많이 찾아낸 진다.)  어찌됐든 전쟁 상황의 경우란 국가 공동체 삶의 보존 유지라는 공적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사적인 문제하고는 영역이 다를 것이다.  


사적인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죽이는 행위는 용납될 수 있는가?  영국의 한몸두머리 아이 분리 수술 “Mary and Jodie” 사건에서 두 아이중에서 한 아이만을 선택해야 하고 다른 아이는 죽어야 할 오로지 하나의 선택을 하여야 하는 사례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사적인 결론 대신 공동체의 공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