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화신- 에리식턴Erysichthon
고대 그리스 신화에 에리식턴 Erysichthon 이야기가 있다. 에리식턴 왕은 신들의 정원에 여러 가지 크고 장엄한 나무들이 많이 있음을 보고 그 정원의 큰 나무에 욕심이 생겼다. 나무는 그늘의 만들어 주기 때문에 휴식처인 정원에 필수품이다. 그러나 에리식턴은 신의 휴식처인 정원의 신성한 나무를 베어다가 자신의 왕궁에 짓는 데에 사용해 버렸다. 정원이 졸지에 사라진 것에 분노한 신은 에리식턴에게 특별한 형벌을 부과하였는데 그 벌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차지 않고 오히려 계속 배가 고프게 되는 벌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차지 않는 기아의 형벌은 탐욕에 대한 대가로 받은 벌이었다. 계속 먹어도 배가 차지 않고 오히려 고파서 참을 수가 없게 된 에리식턴은 먹어 치우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치워야 했다. 자기 집을 팔고 하인을 팔고 곧이어 가진 모든 재산을 다 팔아 치워 삼키고 말았다. 더 이상 돈이 없게 되자 마침내 에리식턴은 자기 부모와 자기 딸까지 팔아서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부족하여 에리식톤은 계속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몸까지를 먹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먹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그였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버린 것 즉 에리식턴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게 되는 식인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탐욕이 지나치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식인종의 신화가 최근 까지 전해 내려 오고 있는데 사람 고기를 먹는 카니발리즘이 유행하게 될 때는 문명의 종착점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을 때 인류의 문명이 멸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신화가 되지 않겠는가?
에리식턴의 신화는 법과 정의가 사라진 세계의 참혹한 모습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자신의 존재 기반마저 스스로 무너 뜨리고 마는 우를 범한다. 서로 나누기 보다 모든 것을 독식하고자 하는 과욕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에리식턴의 탐욕이 빚은 참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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