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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언어/ 詩-영시

다산 하담별

by 추홍희블로그 2012. 10. 24.

기약없는 먼 유배길을 떠나기에 앞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며 - 다산 선생 "하담별" 한시

 

하늘에 잠드신 아버님이시여, 아버지께선 아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모르고 계십니까?
하늘에 잠드신 어머님이시여, 어머님께서는 아시고 계십니까 아니면 아버님처럼 아직도 모르고 계시나요? 저희 집안이 갑자기 기울고 무너져버렸습니다.
저도 거의 죽었다가 겨우 살아나 이렇게 유배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 비록 겨우 숨만 헐떨거릴 정도로 목숨만은 건지고 이렇게 몸은 살아있습니다만
심하게 고문고초를 받아서 제 몸은 크게 상하고 크게 이지러졌습니다.
저희 형제들을 낳으실 때 부모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밤낮으로 애지중지 보듬고 붙들어 부지런히 애써 길러 주셨습니다.
낳아 길러주신 하늘 같은 부모님 은혜를 기필코 꼭 갚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풀 베이듯 깡그리 멸문지화를 당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부모님,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요. 저는 끝까지 살아남아 어지러운 세상과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하는데 제 마음과 몸을 바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여, 부모님께 불효하지 마십시오.)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여, 제가 간절히 바라건대,
다시는 아들딸 자식 낳았다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마십시오.

-다산 정약용, “하담별”

다산 정약용(1762~1836),

 

1800년 개혁파 정조대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소수기득권층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보수기득권반동세력은 정권을 잡은 지 일 년도 안된 1801년 천주교를 믿은 개혁실학파 100명을 사형시키고 또 400명을 유배 보낸 신유사옥을 일으켰습니다. 정조의 개혁정치를 단행한 실학파 남인에 속했던 茶山 정약용선생도 이 때 일사이적(一死二謫)의 멸문지화를 당하였습니다. 즉 정약용 선생의 바로 손위 형인 정약종은 사형당하고 들째 형인 정약전과 다산 두 형제가 함께 유배살이를 당하는 모진 화를 입었습니다. 집안이 화를 당한 것은 그의 형제 뿐만이 아니라 조카 정철상과 이승훈, 이가환 등 많은 친인척들이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신유사옥은 보수기득권 세력 노론이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위협을 느껴 반대파를 숙청하고 새로운 사상과 종교인 천주교를 박해한 정치적 대탄압 사건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뀌어 멸문지화의 화를 당한 다산은 멀리 동쪽 포항으로 유배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산은 기약없는 유배길을 떠나면서 부모님 산소에 들르고 하직인사를 올렀습니다. 다산의 부모님 부 정재원과 모 해담 윤씨의 산소는 충청도 충주 하담荷潭에 있었습니다.

다산선생이 부모님 묘소에 절을 올리고 유배길을 떠난 이 때가 다산선생의 나이 40세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세조의 쿠데타에 맞서다 능지처참의 죽음을 당한 성삼문(1418-1456)의 나이 또한 40세이었습니다. 남자 나이 40세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고 또한 왕성하여 직업으로서나 학문적으로나 가장 절정의 시기에 이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때가 나이 46세인데, 가장 창창한 나이인 40세에 사랑하는 어린 자식과 아내와 형제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 표현하기 힘들 것입니다.

멸문지화를 당하고 살아남은 가족들과도 생이별을 하는 극한 슬픔의 심정을 다산선생은 이렇게 토해내었습니다.

다산선생의 “하담별(荷潭別)”이라는 제목의 한시입니다.

父兮知不知 母兮知不知
家門欻傾覆 死生今如斯
殘喘雖得保 大質嗟已虧
兒生父母悅 育鞠勤携持
謂當報天顯 豈意招芟夷
幾令世間人 不復賀生兒

 

하담별 한시를 한자 우리말 독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혜지부지 모혜지부지
가문홀경복 사생금여사
잔천수득보 대질차이휴
아생부모열 육국근휴지
위당보천현 기의초삼이
기영세간인 불복하생아

이 하담별 한시에서 어려운 한자가 몇 개 보입니다. “荷潭別” 이 시를 제가 풀어 번역해서 오늘 제 글 서두에 게재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기가 깨달은 세상이치를 자기 혼자만 두고 볼 수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저처럼 이렇게 SNS 블로그에라도 남기지 않나 저는 생각합니다.
자식 많이 낳고 또 잃어봐서 부모 자식간의 정을 구구절절하게 인식한 다산 선생, 정약용 선생도 이렇게 외치잖아요? “세상 사람들아, 자식 낳았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 말 뜻은 세상 사람들이여, 부모님께 불효하지 마십시오! 이겠지요.

다시 하담별 한시를 읽어보고 한시를 일반적으로 번역한 식으로 다시 축약해보겠습니다.

 

기약없는 먼 유배길을 떠나기에 앞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며 - 다산 선생 "하담별" 한시

하늘에 잠드신 살아계신 아버님이시여, 아버지께선 아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모르고 계십니까?
하늘에 잠드신 살아계신 어머님이시여, 어머님께서는 아시고 계십니까 아니면 아버님처럼 아직도 모르고 계시나요?
저희 집안이 갑자기 기울고 무너져버렸습니다.
저도 거의 죽었다가 겨우 살아나 이렇게 유배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 비록 겨우 숨만 헐떨거릴 정도로 목숨만은 건지고 이렇게 몸은 살아있습니다만
심하게 고문고초를 받아서 제 몸은 크게 상하고 크게 이지러졌습니다.
저희 형제들을 낳으실 때 부모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밤낮으로 애지중지하고 이리 보듬고 저리 붙들어 애써 부지런히 길러 주셨습니다.
낳아 길러주신 하늘 같이 높은 부모님의 은혜를 기필코 꼭 갚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풀 베이듯 깡그리 멸문지화를 당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부모님,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요. 저는 끝까지 살아남아 어지러운 세상과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하는데 제 마음과 몸을 바치겠습니다.  세상사람들이여, 부모님께 불효하지 마십시오.)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여, 제가 간절히 바라건대,
다시는 아들딸 자식 낳았다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마십시오.

 

위의 다산 선생 하담별 한시에서 어려운 한자 몇 개를 다시 보겠습니다.

 

欻 홀연히 홀
斯 떠날 사
覆 뒤집힐 복
喘 겨우 숨만 남아 헐떡거릴 천
嗟 탄식할 차
虧 귀퉁이가떨어져나가고 이지러질 휴
鞠 공들여 기르다 국
豈 어찌 기
芟 풀을 벨 삼
夷 꺽이고 상할 이

 

하늘에 계신 아버님, 아버지께선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하늘에 계신 어머님, 어머님께선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저희 집안이 갑자기 기울고 무너져버렸습니다.
저도 죽었다가 겨우 살아나 이렇게 유배길을 떠납니다.
제가 비록 목숨만은 건지고 이렇게 몸은 살아있습니다만
심한 고초를 받아서 몸은 크게 상하고 이지러졌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희 형제들을 낳으실 때 매우 기뻐하시며
밤낮으로 애지중지하고 애써 부지런히 길러 주셨습니다.
낳아 길러주신 하늘같이 높은 부모님의 은혜를 꼭 갚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풀 베이듯 멸문지화를 당할 줄 미처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부모님,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여, 부모님께 불효하지 마십시오.)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여, 간절히 바라건대,
다시는 아들딸 자식 낳았다고 기뻐하지 마십시오.

 

위와 같이 오늘은 다산 선생의 한시 "하담별 荷潭別”를 감상해 봤습니다.

 

아무튼, 전 불효자식으로서 오늘도 죄송합니다.

이 사진은 지난 7월 양평 용문산에 올라  여주 남한강쪽을 멀리 내다보면서.

 

다산 선생이 여주 남한강가를 쳐다보듯이, 여주 넘어 탄금대까지 생각해봤습니다.

 

*** 다산의 시와 관계없는 생각 하나 여기에 적는다. 

 

산다는 게, 다 그래.  남들은 다들 엄청 잘사는 것 같지?  그건 겉만 보니까 그러는 거야.  사실 내가 직업적으로 본 것은 남들은 다 문제 있는 거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을 한거잖아?  의사 입장에선 다들 아플 사람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암튼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완전한 곳이 아니라는 말이야.  인간은 부족한 존재라구.  알간?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잘났다고 우기는 존재지?  그러나 사실 불 끄고 섹스하는 것은 똑같고 하루 3끼 먹는 것은 다 똑같애.  자기가 밥해서 먹는 것과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는 것 차이지.
암튼 사람은 상대적인 거다.  남 천상천하유아독존식으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믿고 살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가정이었어. 인간은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는 거다.  서양사람들은 우리처럼 보리고개 없어서 먹을 걱정 안해서 우리처럼 “남의 손의 떡”이란 속담은 없는지 모르지만, 저들은  “옆집의 잔디 부럽다는 것”은 있다.  영국과 영국식민지국가들의 빅토리아 같은 곳은 정원의 도시라고 해서 옆집의 정원을 말하는 것은 맞긴 해.  그러나 여기서 잔디란 정원의 잔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양을 키우는 농장의 풀을 의미한다.  Grass is greener.  즉 “사돈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것처럼, 옆집의 농장 풀이 더 좋으며 즉 옆집이 장사가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 것, 바로 우리나라하고 다를 것이 없다.  탐 존스의 노래, 푸른 잔디 노래가 있지?  그래 풀은 양과 말을 키우는 서양애들의 핵심 산업이야. 영국의 엔클러저 운동이 바로 양을 키우는 지주들의 땅 사재기를 말하는 거고.  인간이란 어디를 가더라고 보편적인 존재지.  피부색이 다르다고 다른 것이 별로 없다는 거야.
세상에 태어나 부모복, 남편복, 자식복 이 3가지를 다 갖추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을거다.  옛말로 “9폭 치마”라고 한다.  옛날 울나라 여자들 치마가 3폭이다.  척이니 자니 하며 치수 재는 길이 공식 다 잊어먹었다.  요사이는 평수보다 제곱평방미터라는 단위가 더 익숙할 걸?  아직도 논밭 몇 마지기 이런 것은 통하는 지는 모르지만.  여자를 3폭 치마라고 말하니까 삼삼은 구 3*3=9 9폭치마는 여자 3명을 말하는 거다. 조선시대는 남성지배 사회구조이니까 여자3명은 엄마 아내 딸(또는 며느리) 이렇게 3명을 지칭하는 말이다.   9폭치마를 다 갖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어.  이말 뜻은 엄마는 부모, 아내는 처, 딸(며느리)는 자식이 되니까, 부모복, 처복, 자식복 이 3가지를 동시에 다 갖추기란 힘들다는 의미다. 
사람은 7가지 복을 다 갖추기란 힘들다는 거야.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어야 되는 거지.   탐욕하지 말라는 거다.
 다산 선생의 경우, 부모 잘 만나, 자기 머리 좋고 공부 잘해서, 그리고 세상 잘 만나서 높은 벼슬 자리에 까지 올랐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정변을 만나 관직을 잃고 목숨만을 부지한 채 기나긴 세월 동안 아내하고도 떨어져 살아야 했다. 다산에게 여복은 있었다고 해도 자식복까지 있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왜냐하면 9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다산의 자식 2남1녀만 살아남고 4남2녀는 어린 나이에 죽었다. 세상에 태어나 남쳐다 보고 남따라가고자 하며 자신에게 불평만 한다면 세상살이의 참된 의미는 모를거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도 언젠가는 떨어질 때가 있다.  난 사실 고관대작들 총리 지내고 그런 사람들 많이 만나봤어.  울 인생, 우리 모두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는 존재야.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이건 나의 사숙 케인즈가 말한 유명한 말이야.  난 항상 역사적인 조명으로 바라본 나의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친 말이지.  죽어서 천국을 건설하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 땅에서 지금 현재 RIGHT NOW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거지?  문제는 즉시 해결해야 하는 거야.  보수주의자들은 손 놓고 있잖아?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하면서.  사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기득권자야.  맬더스가 인구론에서 말을 것은 사실이기도 해. 세상 권력자들은 정말 무섭다.  중국 지도부 보라고?  6.25 한국동란 때 중공군이 처들어 온 것처럼, 미국이나 중국의 지도부는 사실 사람 하나 죽는 것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무서운 법이야.  우리가 어려서 귀신을 무서워했잖아?  있지도 않는 귀신 말이다.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사람이 무서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