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 애절양 -남자가 자기 페니스를 자르는 희망 없는 암울한 "3포 세대"
오늘날 젊은이들을 “3포 세대”라 한다. "3포 세대"는 취업과 결혼과 출산 이 3가지를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고통 받는 상황을 가리켜 만들어 낸 자조어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개혁을 설파하던 2백년 전의 조선 시대의 암울한 시대와 벼란 다를 바가 없는 현재 상황이 아닌가?
200년 전 실학의 대가 정약용 선생의 개혁 정책을 다시금 절실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애절양 哀絶陽-다산 정약용 (丁若鏞)의 詩- 번역
갈대 우거진 마을에 젊은 아내 슬피 우는 소리 크게 나네.
관청 문 앞에 달려가 통곡하고 하늘 보고 울부짖네.
군대 간 남편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지만
남편이 페니스를 스스로 잘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시아버지는 죽은 지 이미 3년이 지났고,
갓 태어난 아이는 아직 탯줄도 마르지 않았는데
이 집에서 군대가고 세금내야 할 사람은 3명으로 적혀있네.
억울한 사연 하소연 하려 해도 관청 수위가 호랑이같이 무섭게 막아서고,
마을이장은 큰 소리치고 남은 소마저 끌고 가네.
남편은 화가나서 칼을 갈아 방에 들어가더니 온 방이 피로 흥건하네.
남편은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이 죄로구나!”하며 스스로 한탄하네
남자의 페니스를 자르는 궁형도 가혹하고,
불알을 까는 거세 또한 안타까운 거라네.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은 자연 섭리이고,
아들 딸 낳고 기르는 일은 하늘의 이치이니,
말과 돼지를 거세해도 슬픈 일이거든,
하물며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겠는가?
돈 많고 지체 높은 권문세가는 일년내내 호화 파티 열고 살면서도
쌀 한 톨 베 한 쪽 세금 한 푼 내는 일이 없네.
다같이 평등한 국민인데 이렇게도 불공평하고 차별이 심하다니!
창문 열고 안타까이 서서 시구편*을 노래하며 답답한 마음 달래보네.
*여기에서 시구편은 "시경"의 "시구편"을 말함. 시구편은 “뻐꾸기”새에 비유하여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시로써 국가는 국민을 “공평무사”하게 대해야 함을 시사하는 詩임.
다산 정약용 (丁若鏞)의 詩- 애절양 哀絶陽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대 우거진 마을에 젊은 아내 슬피 우는 소리 크게 나네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 문 앞에 달려가 통곡하고 하늘 보고 울부짖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군대 간 남편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지만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남편이 페니스를 스스로 잘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는 죽은 지 이미 3년이 지났고 갓 태어난 아이는 아직 탯줄도 마르지 않았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이 집에서 군대가고 세금내야 할 사람은 3명으로 적혀있네.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억울한 사연 하소연 하려 해도 관청 수위가 호랑이같이 무섭게 막아서고,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마을이장은 큰 소리치고 남은 소마저 끌고 가네.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남편은 화가나서 칼을 갈아 방에 들어가더니 온 방이 피로 흥건하네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남편은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이 죄로구나!”하며 스스로 한탄하네
蠶室淫刑豈有辜 (잠실음형기유고) 남자의 페니스를 자르는 궁형도 가혹하고
閩囝去勢良亦慽 (민건거세양역척) 불알을 까는 거세 또한 안타까운 거라네
生生之理天所予 (생생지리천소여)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은 자연 섭리이고
乾道成男坤道女 (건도성남곤도여) 아들 딸 낳고 기르는 일은 하늘의 이치이니
騸馬豶豕猶云悲 (선마분시유운비) 말과 돼지를 거세해도 슬픈 일이거든
況乃生民思繼序 (황내생민사계서) 하물며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겠는가?
豪家終世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돈 많고 지체 높은 권문세가는 일년내내 호화 파티 열고 살면서도
粒米寸帛無所損(립미촌백무소손) 쌀 한 톨 베 한 쪽 세금 한 푼 내는 일이 없네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다같이 평등한 국민인데 이렇게도 불공평하고 차별이 심하다니!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창문 열고 안타까이 서서 시구편*을 노래하며 답답한 마음 달래보네
다산 정약용
이 “애절양”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시절인 1803년에 쓴 시다. 이 시를 지은 동기를 <목민심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시는 계해년(1803년) 가을, 내가 강진에서 지은 것이다. 그때 갈대밭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군보*에 올라 있어 마을 책임자가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 가자 남편은 칼을 뽑아 자신의 페니스를 자르면서 ‘내가 이 페니스 때문에 이런 재앙을 겪는구나!’ 하였다. 그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페니스를 가지고 관가에 가서 울면서 호소하였으나 관가 수위가 막았다. 내가 이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
* 군보(軍保) ; 正軍과 保人: 군대를 안 가는 대신에 쌀이나 베를 세금으로 내는 조선 시대 군역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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