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전장터”라고 여기는 편이 보다 나을 것이다.
위대한 시인 롱펠로우도 우리 세상을 전장터로 표현했고, “새옹지마” 고사도 우리 삶을 전장터로 여기는 것을 보여준다.
롱펠로우는 그의 “인생찬가”에서 “"이 세상 넓은 싸움터에서, 야전훈련장과 같은 인생에서, 쫓기는 사슴이 되지 말고, 싸워 승리하는 들소같은 용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는 “ “전화위복”을 뜻하는 고사로 그 자체가 바로 전장을 뜻하지 않는가?
나는 그 동안 우리 인생의 전쟁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전장터에서 "우정 friendship과 문화 culture"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나는 조금의 시도를 하였다. . 이것은 나의 동료에게 확인하고자 한 나의 온통 관심사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50년 전 마르크스는 전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예견했었지만 마르크스의 예견이 매우 어리석었다는 것으로 나타난 것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로 전세계 시민의 우정을 예견했었지만 나의 예견은 철저한 어리석음이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터에서 즉 나의 적들과 대치하는 이 세상에서도 최소한 친구 같은 "우정"과 최소한 인간의 도적적 공유 "문화"가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슬프게도, 너무 순진한 환상이었다는 것이다.
우정과 문화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신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지, 인간은 이성의 화신이 아니다. 아무리 인간 사이에 지식과 이해가 많이 쌓여진다고 해도 인간 사이에 우정과 문화가 존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적 이익 추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배고픔의 현실에서는 다른 사람의 살갗이라도 뜯어먹고 살야 나야 하는 것은 인간본능적 행동이다. 오로지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거짓과 배신을 할 수 밖에 없다. 살아남는 것이 인간 본성인 이상 그것은 더이상 도적적 배신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동안 가져온 인간 사이에 진정한 우정과 문화가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사막 위의 신기루이자 거대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생존투쟁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 밖에 남는 것이 없다. 영화 "THE ROAD"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약속이 깨어지기 마련인 것처럼 환상도 부수어져야 할 것이다.
전장의 포로가 되어서도 각자 인간적인 친구로서 서로 존중해 주는 귀족들 사이의 "우정"이 존재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고 있는 영화가 1937년 프랑스 영화“위대한 환상Grand Illusion”이다.
영화 전 파트를 볼려면 ==>
영화 줄거리
전쟁 영화 라면 아군과 적군 사이에 서로 총을 쏘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전투장면이 등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을 지 모르나 불란서 영화 황금기인 1930년 대 1937년에 나온 가장 전쟁영화의 고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 La Grande Illusion” 엔 그러한 전투 장면이 전개되지는 않는다.
영화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불란서 공군비행사인 마르샬 은 비번 중에 갑자기 적군 영토지역인 독일영공으로 침범하여 군사기밀을 공중 사진 촬영을 해 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직속상사인 보듀 와 함께 마르샬은 첩보 비행기를 몰고 이륙한다. 그러나 독일군에게 비행기는 격추되고 그들은 전쟁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갖혀 지내면서 일상적인 포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수용소 땅굴을 파고 탈출을 감행하려다 탄로가 나서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프랑스 한 도시가 다시 수복하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서 동료 포로들과 프랑스 국가를 합창하는 난리를 치기고 한다. 포로수용소 규칙을 위반한 이런 일로 인해 마르샬은 독방에 감금된다. 더우기 포로들은 험준한 산악의 천연의 요새 지역으로 소개된다. 이곳 포로수용소 소장은 마르샬의 정찰임무 비행기를 격추시킨 바로 그 사령관이다. 여러 번 탈출을 감행하다 실패한 마르샬 일행임을 보고 받고 이들에게 이곳은 절대로 탈출 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지역이니 탈출은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들은 피리를 불며 독일군초병의 감시를 벗어나는 계획을 실천하는데 이때 피리를 불지 말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바람에 마르샬 상사인 보듀는 초병에게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게 되고 간호원이 보살피지만 결국 죽게 된다. 보듀가 희생하는 과정에서 마르샬과 동료 포로인 로전탈은 스위스독일 국경 을 넘어 스위스 농가로 잠입하여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이 농가에는 홀어머니와 그녀의 딸이 살고 있는데 이들 군인은 이 2 모녀와 함께 살며 숨어 지내게 된다. 마르샬은그녀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결국엔 하얀 눈발자국을 따라 탈출 포로을 수색하던 독일군에게 발각되는데 마지막 순간 독일군포로 수용소 장군은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에 이들은 스위스 국경으로 넘어 달아난다. 하얀 눈으로 덥힌 알프스 산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되는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 감상평
전쟁 영화이라면 으례 아군과 적군 사이에 서로 총을 쏘고 피흘리는 죽어나가는 전투 장면이 등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을 지 모르나 불란서 영화 황금기인 1930년 대 1937년에 나온 가장 전쟁영화의 고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 La Grande Illusion” 엔 그러한 전투 장면이 전개되지는 않는 다 .
영화 감독은 모네 들 인상파 화가로 유명한 구스타브 르노와르 의 아들인 쟝 르노와르 (Jean Renoir) 이다 . 르노와르 감독 자신이 일차대전에 참가하여 총상을 입고서 다리를 절단하여야 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절대로 다리 절단수술만은 안된다고 반대하여 평생을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다 .
비행기 조종사로서 정찰 임무에 참가한 그의 직접적인 전쟁 경험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영화스토리는 포로수용소에서 8번이나 탈출에 성공한 불란서 한 포로의 이야기를 리서치한 것이다.
전쟁 영화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우 대개 반전 색채를 띠게 되는 것은 전쟁에서 파괴되어가는 반문명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 영화도 전쟁의 의미를 회의하게 만드는 반전 드라마의 의미 전달이 다분하다. 1937년 베니스 비엔날레 에 출품되었으나 나찌 독일의 괘벨스 가 파시즘 뭇솔리니를 움직여 대상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괴벨스가 공적 1호로 평한 영화로서 나찌즘의 독일에선 유태인인 로젠탈을 편집으로 지어버리고 상영하였고 1939년 미국 상영에선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국민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격려한 영화이기도 하다 .
1937년 촬영된 영화로서 1930년 대 중반시기인 이 시기에는 2차대전의 발발 전쟁 위기감이 일고 있었으나 히틀러의 나찌 독일이 1차대전에 패배에 대한 보복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으리라는 일종의 희망이 존재한 곳을 반영하기도 함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히틀러의 선전영화가 전성기로 들어서고 그 유명한 히틀러의 체제선전영화 “의지의 승리 ” 영화가 나온 시기가 1935년임을 볼 때 인간의 전쟁 회피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를 알 수 가 있을 것 같다 .
주인공 마르샬 역엔 장 가뱅이 열연한다 .
“Grand Illusion” (위대한 환상) 은 1차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영화이기는 하지만 독일군 2차대전영화이나 월남전에서 보는 그런 일반적인 전쟁영화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 전쟁 때면 더욱 생생해 지는 계급간의 격차를 드라마로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 비록 적군과 아군 사이 이라고 해도 그런 전쟁 상황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개인간의 “존중 ”을 보여준다 . 고상한 인간성의 발로에 의미를 전달하고자 영화라고 본다 .
포로 수용소에 감금된 적군 포로이지만 독방에 감금된 마르샬에게 하모니카를 넣어 주는 독일군 병정 .
음악과 예술은 아픔을 잊게 달래 주고 전쟁중에서도 인간성의 고상함을 유지해 주는 역활을 한다 . 적군의 지역에 서 피신하고 있는 중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 그런 중에도 축음기로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은 전쟁의 아픔을 잠시라도 사라지는 해주는 것이다 .
인간의 약점을 분명히 들어내 주는 장면은 : 자연은 어디서나 다 똑같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니 “ 전장터를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자연)이 결코 아닌 것이다 .”
영화는 처음 부터 끝까지 인간으로서 함께 공유하는 “인간속의 유대성”을 이해시킬려고 시도한다 .
군대는 가장 계급적인 사회임을 보여주는 조직이다 . 장교 와 사병 으로 확연히 구분된 가장 분명한 계급사회이다 . 장교인 마르샬은 말한다 : “ 우리는 꼭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 비록 엿같은 전쟁이지만 . 끝내고 싶지 않더라 해도 .”
전쟁영화에서 보여주는 적군과 아군이라는 국가간의 가름보다 인간의 가치가 계층 차이에 의해 정해 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
포로수용소 소장인 장군은 살기등등한 점령군사령관의 모습이 아니고 귀족출신으로서 포로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 그의 귀족같은 우아한 면모와 공손한 태도는 적막한 깊은 산속 요새에 피어나는 한떨기 꽃을 두고서 보듀 와 나누는 대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 그 꽃은 우정과 상호이해성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
포로수용소 소장은 보듀가 그의 가슴에서 죽어가자 소장으로서 임무에 자괴감을 느낀다 . 총격을 가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빈다 . “내 병사들이 어리지는 않지만 그들은 단지 군인이었을 뿐입니다 .” 여기에 보듀 는 이렇게 답한다 : “내라도 그렇게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 임무는 임무이니까요 .” 보듀는 포로수용소 소장과 같은 귀족출신이다 . 그 또한 적군의 용기를 인정하며 절대로 악의적인 폭력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 이들의 관계는 자라 오면서 형성된 사회 계급에 대한 이해성을 바탕으로 이뤄워 졌던 것이다 .
영화에서 각 인물들의 묘사는 사회적 계급에 따라 형성되고 있으나 연대성이나 일체감 또는 이해성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기저하고 있다 . 불란서 포로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막사로 처들어오는 독일군병사들을 보고서 보듀 가 하는 말 : “한 편은 어린아이들이 병정놀이를 하고 다른 한 편의 군인은 어린아이들처럼 놀고 있다 .”
물론 그를 움직이는 최고의 원칙은 “전쟁에선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는 생각이다 .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성, 포용성, 관대성이 이 세상에서 가능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내 개인적인 (삶의 경험에 지친) 생각으로는 그것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가슴과 마음을 이어서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게 되는 흥분이 일어나는 것을 감추지는 못하리라.
"위대한 환상" 은 인간적이고 상호존중과 인격적 진실성을 보여주지만 또한 전쟁의 참극으로 인해 지불하는 크나큰 대가가 무엇인지도 함께 보여준다.
암튼 우리 인생은 어떠한 슬픔일지라도 계속 살아 남아야야 한다. 그런 와중에 우정과 사랑은 피어나고 또 그렇게 지곤 한다.
'영화 이야기 > 영화 (프랑스·이태리·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바라기밭, 뽕밭, 갈대밭, 수수밭 속에서 정사 (0) | 2015.08.01 |
---|---|
붉은 수수밭과 노란 해바라기 필드 (0) | 2012.10.22 |
빌리,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0) | 2012.10.01 |
Mademoiselle Chambon (0) | 2012.06.20 |
도장을 찍고 봉인을 하다 (0) | 2012.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