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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calling+힐링/SecondLife

풍요를 향한 길을 잘못 걸어온 일본

by 추홍희블로그 2011. 7. 3.

풍요를 향한 길을 잘못  걸어온  일본

 

원래 경제활동은 인간을 기아와 질병과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여유있는 복지사회가 실현되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거꾸로 간다.  사람들은 더욱더 쫓기고 있고(선진국중 가장 노동시간), 아이들은 성적순으로 선별되며 (세계각국의 아이들을 취재하고 있는 그림책 작가 비여네르 다미코씨는 “일본아이들만큼 자기결정권을 빼앗긴 불쌍한 아이들도 없다”고 말한다), 자연은 여전히 파괴되고 있다.

 

효율을 다투는 사회의 제도는 개인의 행동과 연쇄적으로 반응하고 있으므로, 생활도 교육도 복지도 경제가치를 구하는 효율사회의 톱니바퀴에 말려들어간다.  경쟁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한쪽이 이기적으로 변하면, 다른 쪽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으로 되지 않을 없으므로,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 자신을 지키는 힘은 돈밖에 없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인간의 능력은 경제가치를 늘리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로 판단되며, 똑같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도 해도 경제 가치에 공헌하지 않는 사람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어떤 재계 인사는 “일본은 기업의 우열을 이윤의 많고 적음으로 서열화하고, 설사 양심적 개성적 창조적이라고 있는 독특한 사풍을 가진 기업이라고 해도 이익이 많지 않으면 평가받지 못한다.”고 탄식했다.

 

그런 일본에서 복지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할 리가 없다. 일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어도 경제가치와 무관한 노인과 신체장애자와 정신장애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매우 낮다. 복지사무소에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족처럼 친절하게 일하는 직원보다도 생활보호를 신청하는 가난에 찌든 자를 뛰어난 작전으로 쫓아내는 직원이 유능하다고 평가된다.  그것은 경제 가치로 따져서 마이너스인 사회보장에 대해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유능한 관리라는 생각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카소네 내각의 행정개혁과 민생노선은 그러한 가치관을 널리 퍼트리고, 흐름을 사회적으로 촉진하자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디로 “자연환경의 보호나 복지사회는 경제가치를 줄이고 게으른 자를 만들어내며 일본을 선진국병에 걸리게 한다.  경제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은 돈을 만드는 곳에만 사용되어야 하며 국민 사람 한사람은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풍요를 동경한 일본은 풍요를 향한 길을 잘못 걸었다.  부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 생활을 억압하고 있다.  예컨대 남아도는 돈은 땅값을 천문학적으로 폭등시키고 착하기만 근로자들로부터 주거를  빼앗았다.

 

아이들은 효율사회의 어른들의 관리를 받아 주체성을 잃고,  사교육비는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부는 분배되지 않으며,  복지의 보호를 바라는 사람은 모욕을 당하고 있다.

 

“노인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늙은 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정치가도 있다.

 

민주정치는 돈의 앞에서 인신매매되고 있다.

산성비와 프레온가스는 물론이고 산업폐기물과 쓰고 버린  쓰레기로 자연은 오염되고,  사람들은 핵공포 앞에 두려워 떨면서 에너지 비용에 떠밀려가고 있다.

 

かさとば))

“부자나라, 가난한 시민,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 테루오카 이츠코 지음, 홍성태 옮김, 궁리, pp 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