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전 당시 그리스는 황금 문명을 꽃 피우고 있었다. 이 때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오늘날 학생과 제자가 서로 묻고 대답하는 “소크라테스의 토론대화법”이라고 알려진 ("하바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영화의 영향으로 미국의 법대 수업은 수업시간에 토론법으로 강의하는지 잘못 알고 있는데 모든 법대 수업이 토론법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법이 연설이나 강의방식도 있다) , 지식 탐구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함으로서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토론법은 다른 연설가들이 군중앞에서 강연을 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혁명적인 방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도시 속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진리는 서로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습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자신은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라고 믿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슨 새로운 지혜를 발견한 것은 아니라고 보왔고 자기 생각은 다른 사람들로 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자기 자신 또한 무슨 큰 지혜를 가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었다.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물으면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소크라테스이었다.
사람은 지식을 통해서 자연을 극복하게 된다. 지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어진다. 다른 사람과 관계되어 있는 상대적인 관계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그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서 우리는 지식과 삶의 의미를 얻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기본적인 생각은 바로 이러했다. 다시말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친구를 사귀며, 지적 자극을 받아 자신의 발전을 이룬다고 보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다고 여겼다.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며 지혜를 찾았던 소크라테스는 그의 새로운 토론 대화법으로 아테네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제자 중 "패드라"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출근 길에 소크라테스가 패드라스와 마주쳤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패드라스, 그동안 잘 안보이던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느냐?” 어린 소년 패드라스가 이렇게 답했다. “오전 내내 라시아스의 연설을 듣고 있었어요. 지금 성문밖으로 산책을 나가는 중이에요. 친구 아쿠메너스가 충고하기를 폐쇄한 성곽안에서 있는 것보다 확트인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고 했어요.”
바로 그날 패드라스는 유명한 연설가인 Lysias 연설을 듣고 그의 연설에 큰 흥미를 느꼈고 그 연설내용을 머리속에 암기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번잡거리고 4각 건물에 막힌 아테네 도시 안에서는 머리 속에 기억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인 친구의 충고에 따라 성문 밖을 막 벗어나던 참이었다. 의사인 친구 아쿠메너스는 패드라스에게 나무와 숲이 있고, 실개천이 흐르는 한적한 시골로 나가서 바람을 쏘이면 머리가 맑아질 것이라고 충고를 했던 것이다.
소크라테는 평소 성문밖을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소크라테스이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이 연설 라시아스의 연설 원고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소크라테스는 생각이 달라졌다. 소크라테스는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나 토론을 즐긴 사람이기에, 라시아스의 연설원고를 들으면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어린 소년 패드라스를 따라서 성문밖의 한적한 곳으로 함께 가는 것에 소크라테스는 동의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와 토론을 즐기는 편이라 지식을 얻을 목적으로 패드라스의 요청에 따라 한적한 시골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입장에선 소풍이나 바람을 쐬러 가는 목적은 아니었다.
Lysias 연설의 주된 내용은 "섹스"에 대해서였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단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사랑없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이 좋으냐?" 이런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2천5백년전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청소년들은 섹스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죄목이 어린아이들을 선동질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소크라테스가 패드라스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이 70세 때 시민들이 믿는 신들을 믿지 않은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를 범했다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그리스는 배심원 제도를 택하고 있었는데 30세 이상의 명망있는 시민 50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투표를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유죄여부 평결 투표결과가 유죄 281표 무죄 220표이었음을 볼 때 소크라테스는 사형이란 극형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형여부 2차 투표 배심원 투표에서도 사형찬성 36표 반대 140임을 볼 때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택한 것은 연결된 도시를 떠나 격리된 시골로 유배를 간다면 자신이 평생동안 갈고 닦아온 진리탐구방법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자기의 삶을 부정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요즘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서 연결된 "네트워크" 삶의 방식을 자신들에게는 큰 가치로 여긴 것이다.
수많은 연설가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있던 당시에 Lysias는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면 복잡한 감정이 관련되기 때문에 섹스욕구를 충족시키고 사랑없는 사람과 섹스를 하면, 감정적인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것임으로 사랑없는 섹스가 더 나은 선택이 된다고 설파하였다.
라시아스의 주요논점을 요즘의 예로 들어 설명해 보면, 중요한 시험를 앞두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대학생이 사랑하는 애인과 섹스를 한다면 서로가 만족해야 되고 즉 희생과 부담이 따르게 되므로 성적 욕구가 날 때 차라리 애인아닌 사람과 순수한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섹스를 하고 나면 자기의 하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다시말해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연애를 하면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는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옳다는 주장이다.
소크라테스와 라시아스의 연애관 즉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논쟁은 다음 글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소크라테스와 패드라스는 성문밖으로 나가 일리수스강가에 이르렀다. 강가에 자라고 있는 큰 플라타나스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크라테스가 패드라스에게 말했다.
“여보게 사랑스런 제자여, 나는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이잖아? 그래서 도시사람들이 내 스승이야. 시골의 자연 풍경이나 나무와 숲들이 나의 스승은 되지 못할걸세. 내가 생각하기엔 나를 이런 시골로 오게만든 것은 무슨 마법에 걸린 것 같아. 굶주린 소가 풀을 찾는 격이라고나 할까. 자네가 책을 들고 오지 않았다면 내가 따라 오지 않았을 것이야.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여기에 자리를 잡고 편하게 앉지 그래. 나는 편하게 눕겠네. 자네는 편한 자세로 내게 라시아스의 연설원고를 읽어주게나.”
우리 속담에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처럼 소크라테스는 자연으로부터는 하등 배울 것이 없고 그보다는 도시속의 사람들에게서 모든 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이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평생 아테네 성문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과 섞여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를 깨묻고 대화하기를 즐겼다. 이것이 그의 진리탐구 방법이었고 이를 평생 동안 실천해 왔던 것이다. 이런 소크라테스이기에 나무들이 멋지게 어우리고 개천이 흘러서 풍광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나온 소크라테스이었지만 그는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오로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서양의 소크라테스는 동양의 공자하고는 달리 학생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 공자는 신분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자기 제자들로 받아들였으며 말린 고기를 수업료로써 일률적으로 받았다. 공자도 소크라테스처럼 제자들과 토론을 통해서 지식을 터득하는 방법을 적용했으나 소크라테스하고는 달리 사변을 중요시하였다. 공자는 “배우되 사색치 않으면 체계적 지식을 가질 수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공허할 따름이다. 나는 일찌기 종일토록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자지도 않고 사색하였으나 무익하였으니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가르쳤다. 공자도 소크라테스처럼 사람은 사회속의 관계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왔지만 구체적인 학문과 지식의 방법론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서양의 스피치 문화와 동양의 문자문화의 큰 차이를 고전시대부터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할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 원시인시절부터 인류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하려면 자신의 의도를 알릴 어떤 도구가 필요했다. 이러한 도구하나가 바로 “말(words)”이었다. 사람은 말을 발명해 낸 순간 비로소 타인과 관계를 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 "말" 이외의 다른 수단은 “그림”이었다. 3만년전 크로마뇽인이 그린 사냥 모습의 라스코 동굴 벽화가 말해 주듯이 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됨으로서 인류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고구려 벽화 처럼 완벽한 그림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은 “말”과 “글”과 “이미지”가 모두 함께 들어 있는 동시 연결 형태이다.
소크라테스의 애제자 플라톤이 쓴 패드라스. 이 책에서 세상의 관심사를 해결하는데 참여하는 사람이 진정한 철학자라고 말하며 소크라테스와 패드라스의 얘기는 이런 말로 끝맺는다.
“친구라면 서로 같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메일, 메신저, 게임, Mp3,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갤럭시, ….길을 걸을 때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지금 세상의 현재 모습이다.
만약 우리가 인터넷으로부터 갑자기 단절된다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유명한 연설로 미국 독립혁명을 일으킨 패트릭 헨리의 외침이 나오게 될까?
소크라테스처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으면 지식의 습득도 없고 삶의 의미도 없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패드라스처럼 한시도 끊임없이 연결된 번잡한 도시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혼자 사색을 할만한 자기만의 공간과 격리가 필요할까?
인터넷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자기 스스로의 답변을 바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구인가?
소크라테스를 성문밖으로 이끌어낸 패드라스인가?
패드라스에게 충고를 한 소크라테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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