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하바드대학에서 탄생한 이유
우리 사람들 사고방식은 컴퓨터 부팅 프로그램처럼 일정하게 입력내어 있어서 일정한 사고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다음 그림을 보자. 미국 대학의 심리학자의 실험연구에 이용된 설문사항중 하나이다.
닭과 젖소와 건초더미를 함께 그려넣고 “젖소와 관계있는 것끼리 연결하시오”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서 한국 중국 일본학생들 즉 동양인들은 젖소를 건초더미와 연결시켰다. 반면 서양인들은 젖소를 닭과 연결시킨 경향을 보여주었다. 왜 이런 차이를 나타내게 될까? 연구를 진행한 인지심리학 Nisbett는 결론짓기를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패턴이 다른 이유른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보해석을 하는데 있어서 서양인들은 대상을 범주화하는데 비해 동양인들은 관계를 보다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그림에서 서양인들은 같은 동물처럼 젖소와 닭을 연결하는 반면 동양인들은 젖소는 건초를 먹으니까 젖소하고 건초더미를 연결시킨다고 한다.
(위 그림과 연구결과는 다음 책에서 인용한 거다.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Richard Nisbett, 2003, The Free Press, New York.)
유명한 뉴욕타임즈의 칼럼리스트인 브룩스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차이를 설명하는 글을 자주 쓰고 있다. 브룩스는 설명하길 서양문화는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동양문화는 집단주의를 강조한다고 말한다. 집단주의는 남을 먼저 배려하기에 집단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반면 개인주의는 개인능력을 우선시한다고 말한다.
비교법연구분야에서 유럽과 미국문화의 차이를 강조하는 Kagan같은 학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주는 면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앨런 우드가 천박한 미국 문화를 비판하며 보다 고상한 프랑스 문화를 존중한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나라별로 문화차이가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은 문화차이가 없다.
각 나라마다 결혼식 웨딩드레스는 하얀색이다. 하얀 색은 순결의 의미이다. 순결이란 신부가 처녀성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이 혼전동거가 보편화된 시대에 결혼식 때 순결을 지킨 신부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식 “맥도날드”는 세계를 장악하고 역으로일본의 “스시”도 세계화를 진행했으며 “한식”의 국제화는
“한류”의 단계를 넘어섰다.
“청바지”와 “속옷” 패션과, “내집마련주택소유의식”과 “빚내기부채”문화는 세계 공통으로 유행하고 있다. 의식주 뿐만 아니라 쓰고 말하는 “언어”에서도 문화차이는 그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중국은 집단사회주의적 사고가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인 펄 벅의 소설 “대지”를 읽어보면 어떤 면에서는 미국 보다 오히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중국사람들과 섞여 살아보면 함께 떠들며 몰려사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지, 집단주의 공동체사회의 이념에 따른 것이 아님을 보게 된다.
반면 서양은 개인주의에 따라 개인능력을 우선시한다고 하지만 “실용주의”사고가 일반주류적인 사고라는 것을 안다면 서양은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적 사고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유명한 개념으로 잘 알려진 “공리주의”는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에 기울어진 이념이다.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 자체가 “집단적 진보”를 믿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리주의는 선험적인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칸트의 목적론과는 배치되는 철학적 사고이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은 바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의 미국식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미국의 꿈(아메리칸 드림)”을 장려할 때 광활한 서부개척을 할 때 사회적으로 필요해서 개인 능력껏 최대의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이념적 취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미국사람들이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사회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서양인들도 예수의 박해받던 초기 지하교회(카타콤부) 공동체생활에서 부터 중세 수도원 사회나 현재 다국적 기업, 국가자본주의까지를 보면 모두가 개인보다 집단적 사고가 우선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전체주의 국가 공산주의를 제외하고서도 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사회주의국가 사고가 주류적인 사고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들만이 공동체사회 가치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과 유럽을 포함하여 서양을 볼 때 개인주의라는 규정은 어딘가 부분적인 이념적인 설명이라고 보여진다.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하나를 말하자만, 레닌혁명이 일어난 후 소련을 탈출하여 미국에 정착한 앤 란드가, 미국은 개인주의철학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에, 개인주의 이념을 집중적으로 전파노력한 것이 아닐까?
이념은 국가가 주입한다. 레닌의 소련이나 모택동의 중국이나 호지명의 베트남이나 김일성의 북한이 국가이념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서울대에서 신입생에게 나눠주는 이념책자가 바로이들나라의 국가 이념 주입과 다른 면이 아니다. .
자본주의는 스스로 그 체제에 동화되게 만든다. “돈에 대한 이익추구”에 모두가 이미 동화되어 있다.
“돈이 예절이다”.
이렇게 개인이익 추구방식은 비단에 빨간 물감이 스며드는 것처럼, 전세계적으로 이미 깊숙하게 뿌리 박혀 있다. “돈을 추구하는 탐욕이 세상 만악의 뿌리”라고 얘기하는 성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용된다. 진시황제의 통일도량형이나 MS의 윈도우시스템처럼, 돈을 쫓는 돈에 대한 탐욕은 동서양을 초월하는 통일된 인식틀이다.
아무튼 내 결론은 이렇다.
젖소를 닭과 연결시키는 서양인이든, 젖소를 건초더미와 연결시키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본성은 차이가 없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종이든, “피는 다같이 붉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동서양의 문화차이 존재를 거부하는 예는 “소셜 네트워크 문화”에서 잘 볼 수 있다.
“유투브”도 서양인 미국에서 생겨났다.
개인보다 “관계(관시)”를 중요시하는 “페이스북”의 성공도 서양인 미국에서 생겨났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이런 문화는 관계를 보다 중요시하는 네트워크 사고에 기반한다. 네트워크 사고는 동서양의 이분법적 차이를 무용하게 만든다.
부는 인간사회에서 각자의 협력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서로 통하는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 약속인 것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사회 정의”와 “공동 선”을 추구하게 된다. 네가 존재하기에 나도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부분에서 우리한국 사회는 확립되지 않았기에 한국사회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라고 말한다. 법과 질서의 중요성에 관한 글 보기==>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777304
한 사회를 깊게 이해한다면, 미국식 개인주의는 한마디로 “환상”이었슴을 알게 될 것이다.
이분법적 구분은 다 걸리는 “천망”인 것 같지만 실상 가보면 빠져나갈 것은 다 빠져나가는 “법망”이고 “이현령비현령(코에걸면코걸이고귀에걸면귀걸이)”가 아닐까?
동서양의 구분을 문화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이런 설명들은 대중에게 어필하게 될까?
울마눌을 통해 보면 여성들은 특히 해당되는데 혈액형 구분으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혈액형 운명론이 일본이나 한국등 동양인에게 크게 어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4형 성격결정론은 사람이 자기 태어난 날자로 운명을 점칠 수 있다는 별자리 점성술이 서양인에게 크게 어필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문화 차이 보다 “인간 본성”의 같음에 주목하는 것이 보다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단순한 설명이 보다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사람들의 이해력과 인내심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에 있다.
복잡한 인간 사회를 단순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이 이론적으로 매우 정교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었겠는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가 경제학적으로 매우 정치된 이론이라면 일반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을 싫어한다. 방송에 나와서 떠드는 잘 안다는 전문가들을 한번 체크해봐라. 그들은 잘 모르고 허튼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것이다. 전문가라는 것은 자기들보다 잘 모르는 일반사람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이런 안색이 안좋은 말은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내가 아니라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다. 원문을 여기에 가져온다. “ most people don’t know much about macroeconomics, …many macroeconomists don’t know much about macroeconomics.”
우리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만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어려운 것은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지한 자가 용감하다”고 했는데, 레닌처럼 공산주의자들은 단순한 논리를 구사하며 무지한 노동자와 농민들을 솔깃하게 만든다.
아무튼, 복잡한 만물의 이치를 마치 단순하게 설명할수 있다는 이론은 흠결이 많다는 것으로 밝혀져 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우주의 비밀을 캔 천재과학자 뉴튼은 겸손하게 말했다. “한사람이 한시대에 걸쳐서 우주를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다”.
마찬가지로 나의 이 글도 매우 단순화된 주장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뉴튼이 말을 빌려서 내자신의 부족함을 말한다,
“나는눈앞에 떨쳐진 거대한 바다의 진실을 모르는 채, 해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If I have been able to see further, it was only because I stood on the shoulders of giants (내가 남들보다 더 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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