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Caveat emptor케비어트 엠토”
11.1.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란 무엇을 말하는가?
매매는 매도자와 매수자라는 쌍방의 두 당사자가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한다. 매도자와 매수자는서로 대립하는 당사자인데 매매계약에서 누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되는지 그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두고서 대륙법국가는 로마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매도자가 책임을 다해야 함을 강조한 반면 영미법은 로마법의 입장과는 다르게 매도자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할 주체는 매수자이고 매수자가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여긴다.
매매과정에서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주의를 더 크게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는 이 “매수자 책임 원칙”은 일찍이 영국에서 확립되어 영미법의 원칙의 하나로 굳게 자리잡았다. 이 원칙은 매매 계약에서 매수자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매수자는 거래가 끝나기 이전에 매매물건을 직접 살펴보는 등 매수자가 사전에 모든 주의를 다해야 한다는 법의 일반 원칙을 말한다. 이를 라틴어 “caveat emptor”의 법률 용어로 부르고 영어로는 “Let the buyer be aware”으로 번역된다.
이 케비어트 엠토 원칙이 영미법상 처음 나타난 때는 영국의 에드워드 1세 때의 법률이고 그 후 여러 사례를 통해서 확립되었다. 미국에서 이 케비어트 엠토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 판결로는 1869년의 미국연방대법원 판결인 Barnard v. Kellogg 77 U.S. 383 (1869) 케이스가 있다. 물론 그 이전의 여러 케이스에서 법원칙으로 확립되어 있었음은 법률교과서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1834년 법률교과서에서 정의한 케비어트 엠토 개념을 보자. “in the absence of an agreement between the parties, the seller is responsible for defects only when he has been guilty of fraud.당사자 사이에 다른 별도의 특약 사항이 없는 매매 계약에서 매도자는, 사기를 치지 않는 이상, 물건의 하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계약법 일반 원칙으로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caveat emptor 매수자 책임 원칙”은 대륙법국가와 대비되는 영미법의 분명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매수자 책임 원칙이 가장 크게 나타난 거래는 예로부터 토지 거래와 주택 거래 분야이었다. 토지와 주택은 생활과 생산의 필수적 요소에 해당하기에 투기적 수요가 일어나기 어려웠고, 또 거액의 금액이 수반되는 거래이므로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는 토지와 주택을 함부로 매매하는 경우는 거의 상상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토지와 주택은 대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으로 잘 알고 대상이고 또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을 가졌으므로 토지와 주택의 매매는 매수자가 직접 점검하기 용이하다. 따라서 매수자가 미리 점검한다면 어떤 하자가 있는지에 대해서 찾아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배경에서 매수자 책임 원칙은 간결하고 분명한 법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토지 거래나 주택 매매 분야를 넘어서 일반적인 상거래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케비어트 엠토 caveat emptor 원칙이 나오게 된 요인을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매도자는 생산비나 투자비를 회수하고자 하는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서 물건을 판다. 매수자 또한 마찬가지로 사지 않는 것보다 사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기므로 매수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쪽 당사자는 각자가 취하는 이익이 서로 존재하기 때문에 매매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②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판단 능력을 갖고 있고 또 그에 따라 신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린다. 계약 상대방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서 누구나 갖고 있는 보통사람의 상식적인 신중함과 자신의 의사 판단력을 동원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일상생활에서의 거래의 기본이고 또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이런 행태가 에서 작동되는 인간의 일반 원칙에 가깝다. 매수자가 매수를 하고자 원할 때는 자기가 직접 손수 물건의 품질을 꼼꼼히 살펴보거나 검사하고 나서 자기가 사고자 하는 목적에 적당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매수를 그만 둘 것이다. 이와 같이 설령 물건에 대한 하자 책임이 매도자에게 있다고 해도 매수자는 자기가 사고자 하는 물건에 대해서 직접 점검을 하는 것이 매수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매도자는 매수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③ 사람들의 의식주에 관한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에 상거래가 일어난다.
④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살 것이므로 매수자는 자기가 모르거나 또는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는 물건은 사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⑤ 사람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일반적인 지식 수준을 갖고 있다. 매수할 때도 당연히 그런 수준의 지식을 행사할 것이다. 따라서 물건에 흠이나 하자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인 판단으로 알아낼 수 있거나 또는 직접 점검해 보면 찾아 낼 수 있거나, 만약 흠이나 하자가 숨어 있을 경우에는 흠이나 하자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여 매매당사자 사이에 특약을 맺고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흠이 있으니 매매가격을 낮추는 등). 이와 같이 물건에 대한 점검기회를 이용하면 보통사람이 갖고 있는 신중한 판단력과 지식으로 흠결 여부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⑥ 이렇게 해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흠결이 깊이 숨어 있다면 매수자는 위험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물건의 하자가 알 수 없는 요인에 의해서 생긴 경우라면 매수자는 운이 없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한 흠결을 매도자도 모르고 있었던 경우라면 매도자에게 손해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매도자는 그 물건을 팔기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는데 비용을 지출했음을 생각해 보라.
⑦ 물론 여기서 분명한 원칙은 매수자의 자유 의사에 따라 신중한 자기 판단력으로 매수를 결정했다고 해서 매도자가 사기를 친 경우까지 매수자가 책임을 덮어써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매도자가 매수자를 속인 경우에 어떤 매수자가 사기를 당하고서도 매수 계약을 하였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허위나 사기가 개입된 경우라면 당연히 매수하지 않았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매도자가 사기를 친 경우라면 매도자가 그 책임을 당연하게 부담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매수자 책임 원칙 caveat emptor”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보다 타당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같은 대륙법 국가들은 이러한 영미법의 원칙과는 다른 원칙을 갖고 있다. 대륙법국가들은 매매 계약의 성격을 정해 놓고 있고, 매매 계약에 있어서 매수자에게 “신의 성실 good faith”의 원칙을 부담시키고 있으며, 매매 계약은 당사자간의 특별 관계에 기초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매매 계약에서 매수자가 물건에 대한 흠이나 하자가 없음을 보증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만약 물건에 흠이나 하자가 발견되는 경우 매매를 취소할 수 있다고 여긴다. 또 매도자는 자기가 팔려고 하는 물건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에 따라 매도자는 매수자에게도 물건의 가치와 정보를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고 간주한다. 다시 말해 매수자는 물건을 사기 전에 꼼꼼히 챙겨 보지 않고 있다가, 대신 매수자는 매도자를 믿고 산다고 말하면서, 사고 나서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거나 또는 사정이 달라지게 되면 매매를 취소해 달라는 하는 것이 대륙법 국가의 기본적인 가정이고 이것이 대개의 현실의 모습이다.
이렇게 대륙법 국가의 사람들은 매매계약에서 신의 성실의 원칙상 매도자는 허위 또는 사기를 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매가격에 대한 정보도 매도자가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적극적으로 사기 치거나 또는 허위 과장 광고하는 행위는 금지될 뿐만 아니라 흠이나 부실을 숨기는 것도 금지되는 것은 분명하다.
또 매도자가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므로 매도자가 폭리 수준으로 가격이 정해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도자가 제시하는 가격 정보가 사고난 이후 내재 가치하고 달라진 경우 매수를 하고 나서도 매매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상업 행위의 기본 속성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단골 고객이거나 특수한 납품거래상이거나 하청인 경우 등) 한번 팔고 난 물건을 취소하고자 하는 매도인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설령 취소를 한다고 해도 취소 비용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도 매수자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기 보다는 매도자에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상거래의 속성상 어느 쪽이 유리하겠는가?
11.2.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인가?
대륙법국가에서는 키케로의 격언처럼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이라는 덕목을 가르쳐 왔다. 자기 자신의 정보는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고, 토론에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발언하는 것을 삼가는 경향이 크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 인간본성이라면 어느 누가 자기 결점을 스스로 밝히려고 하겠는가? 인간 본성상 자기 부족함은 감추고 자기 우월함은 자랑하려고 할 것이다.
소금이나 일용할 양식을 매도자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전제국가에서는 매도자가 물건에 대한 하자가 없다는 것을 보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폭리를 취할 가능성을 제거해야 할 것으로 매도자에게 의무를 부담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왕이나 가진 자들이나 상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기본적인 본성을 포기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독점은 폭리를 낳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소금이나 우유 등 생필수품마저도 매수자가 필요해서 물건을 산다는 측면을 감안해 보면 매도자의 신의성실에 기대하기 보다 매수자가 스스로 모든 주의를 다해야 한다는 원칙이 보다 옳은 것 같다.
여기에서 오해하거나 혼동해서는 아니될 것은 영미법에서도 근대 대량 생산 공업 사회로 전환되면서 매도자의 품질 보장과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규제 등 영미법에서도 당연하게 “매도자의 책임 caveat venditor”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미법에서 “소비자 보호법” 등 매도자 (공업 제품뿐만 아니라 금융상품을 포함한다)의 책임을 강력하게 부담시키는 법률이 존재하고, 토지나 주택 매매에서도 매도자가 공시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명확하게 법률로 규제하는 등 매도자가 불법적인 사기나 허위 행위를 분명하게 단속하고 있다.
11.3.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침묵은 금”이라는 속담과 같이 침묵은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일까? 셰익스피어 희곡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대사를 보자.
“그러니 참 이 세상은 정말 거꾸로 돌아가는 거지요! 이렇게 뻔히 사기치는 짓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자기가 알고 그대로 감히 말했다가는 돌아올 피해가 무서워서 모두들 눈감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세상은 정말 사악한 세상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말도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 리차드 3세, 3막 5장).
이 대사에서와 같이, 지금은 불의와 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고, 그렇지만 누군들 설령 진실을 알고 있다 해도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내기란 무척 어렵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는 자기 자신에게 해가 미칠 것임을 모두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동이다.In a time of universal deceit, tell the truth is a revolutionary act.“그런데 역사상 혁명이 일어난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거의 없다. 왜? 혁명이 그렇게 쉽다면 누군들 성공하지 않았겠는가! 인간인 이상 어느 누군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권력과 진실을 말하는 순진한 바보
솔직하게 진심을 말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이 세상이라고 한다.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을 일본말로 “바카 쇼지키 馬鹿正直”이라고 하는데 바카 쇼지키는 사슴을 말이라고 말하는 것에 숨어 있는 의도를 알지 못하는 “stupidly honest”, “바보스런 솔직”, “우직스런’을 뜻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마록”을 있는 단어 뜻 그대로 번역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고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자 고사성어 “지록위마”의 유래를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을 이용해 잘못된 것을 끝까지 우긴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예컨대 “정부가 비행기나 함정 폭파 사건 등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진실 규명을 외면하거나 단순 사고 사건으로 치장해 버리며 정부의 실패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의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가르킬 때 쓰인다.
정부의 변명이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격이라고 국민들은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권력은 외양 치장으로 진실을 가릴 교묘한 거짓말 skillful lying을 부릴 수 있는 능수능란한 자원을 가졌고 따라서 만약 진실을 그대로 말한다면 자기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순진한 바보”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왜 사슴을 보고 있는 그대로 사슴이라고 말하는 것이 “순진한 바보”에 해당하는가? 말하는 사람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지록위마”고사성어의 유래를 살펴보자. 진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가 실권을 장악하고 태자를 폐하고 대신 미련한 아들 호해를 왕의 자리에 앉혔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떠보려고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했다. 이에 왕이 말했다. "승상도 농담을 하는가?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 指鹿爲馬. 신하들이여, 그대들 눈에도 말처럼 보입니까?” 왕의 물음에 대해서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은 조고에게 모함을 당해 목숨을 잃었고, 말의 ‘외양 pretence’을 보고 말이라고 대답한 즉 거짓말을 한 신하들은 살아남았다는 역사를 사마천은 기록하였다. 물론 여기서 사마천은 조고는 새로이 등극한 왕에게 피살되고 말았다는 역사의 심판을 분명하게 기록하였다. 사람들의 말은 외양 속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숨은 뜻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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