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 모델
“키케로 추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로마법은 영미법의 재판 실상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영미국에서 키케로는 모범적인 변호사의 모델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영미국의 학교와 대학에서 키케로를 배우고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1] 키케로를 극구 모방하고자 하는 “키케로 추종자”의 모습을 보이는 대륙법국가들과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19세기 영미국의 모범적인 법조인상에 대한 논문을 참조해 보면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다.[2]
키케로는 영미법국가에서 법조인의 롤 모델인가?
역사상 자료인 키케로의 연설은 영미국의 판례법 재판의 현실적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진 면이 많이 보인다. 판례법 재판 진행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증인 심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지, 판례법의 재판과정에서 변호사가 일장연설을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류의 보통 사람들이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력에 따라서 사안을 판단하지, 마치 우리나라 일제시대 신파극으로 유명했던 “검사와 여선생”의 한 장면처럼 방청객의 “심금을 울리는” 일장연설은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에 가깝다. 물론 법정 재판에서 모두 연설과 최후진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증인의 법정 증거의 도입과 결론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취조심문이나 반대심문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극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긴 해도 그것은 증인에 대한 질문과 대답 과정에서 나오는 대화의 일부에서 포착되는 것이지, 검사나 변호사나 판사의 일장연설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판례법 재판에서는 키케로가 재판의 승소 요인으로써 든 수사학적 유머 능력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영미국인들은 모든 사람들은 진실을 파악할만한 인식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며 따라서 진실은 자연스럽게 발견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영미국인들은 겉모양의 포장에 의해서 진실이 호도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하며, 또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작이나 선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유창하게 말을 잘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을 역으로 해석하면 상대방을 조작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말이 된다. 영미인은 자기 주관적인 자기 결정권을 가진 자신의 판단력을 믿기 때문에 “검사와 여선생” 같은 감동적인 연설에 의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 정의, 기본 상식 truth, justice, common sense이 통하는 사회가 영미국인의 공동체 현실이 아니던가? 따라서 “말 잘하는” 선동가의 일장연설로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고 믿는 경우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이 법조 실무하고 동떨어져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키케로처럼 독방에서 홀로 책을 통해서 “완벽한 웅변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 진실은 표현기교로써 호도되거나 감춰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설령 그런 기교나 지식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고 해서 개인이나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을 능력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영미국의 판례법 교육(로스쿨)은 시험 기술, 말 잘하는 웅변술, 수사학 기교 등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영미법 시스템과 법 현실은 진실을 추구하고 따라서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법조 윤리를 강조한다.
“완벽한 정치인 perfect orator”의 모델은 실재하는가?
우리나라 같이 대륙법의 전통이 지배라는 문화에서는 시험공부를 통해서 완벽한 perfect 사람이 탄생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영미국인은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3] 물론 모든 장점을 갖춘 이상형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거나 또 그런 이상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이상적인 인간형이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런 이상형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모방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 비추어 완전무결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은 인간 역사상 당연한 것인데도 시험공부를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하루 이틀 살아온 존재도 아니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현재 70억이 넘는 인구 중에 그렇게 완전무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보면 키케로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완벽한 인간형은 현실적인 인간형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키케로가 상정한 완벽한 모범적인 사람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모방으로써 완벽한 인간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은 흠결이 있고 또 거짓말이라고 여기게 되며 따라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신뢰받기 어렵다.[4] 영미국인들에게 말 잘하는 선동꾼은 진실한 면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트롤로페의 저서 “키케로의 생애”를 읽어보면 19세기 영미국 법조인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은 말만 번지름하게 잘하는 사람은 신뢰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겼다.
영미인들은 남에게서 모방한 것을 가지고서 마치 자기 창작물인양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크게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실성이 우선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 외형적 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문화는 학문 추구의 장이든 일상적 사회 생활면에서 엄격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데 인색한 측면이 나타난다고 보고된다. 흔히 한국에서 여지껏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한 한국의 한계를 거론하는 데 그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을 지 모른다. 한 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적 허구가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는데, 어떤 부정한 수단을 써서라도 일단 챙기고 보자는 목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 기저에 깔려 있고 또 팽배된 것 같다.
[1] “We learn our Latin from him at school; our style and sentiments at the college.”, Middleton, Conyers, The Life of Marcus Tullius Cicero, III, (Boston- Wells & Lilly, 1818), 313.
[2] Mary Rosner, “Reflections on Cicero in Nineteenth-Centuiy England and America”, Rhetorica: A Journal of the History of Rhetoric, Vol. 4, No. 2 (1986), pp. 153-182;
William McDermott, “Reflections on Cicero by a Ciceronian”, The Classical World, Vol. 63, No. 5 (1970), pp. 145-153.
[3] “The “perfect orator” is, we may say, a person neither desired nor desirable. We, who are the multitude of the world, and have been born to hold our tongues and use our brains, would not put up with him were he to show himself.” (Anthony Trollope, “The Life of Cicero”, Ch xi, Cicero’s Rhetoric.)
[4]“Trollope labels Cicero a liar and a scoundrel: a liar because he has not acquired "that ... aversion to a lie which is the first feeling in the bosom of a modem [Victorian] gent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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