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키케로의 “의무론” (번역)
키케로 “의무론”-단기적인 이익 vs 장기적인 이익
당장 눈 앞의 단기적인 이익을 쫓는 행위와 장기적인 이익의 관점 차이-자기 이익추구와 도덕적 판단-자기 이익 고수와 공동체 이익 추구-short-term vs long-term 관점의 차이
앞에서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원칙이 대륙법의 매도자 책임 원칙에 비해서 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도자 책임 원칙이 기본적인 법체계를 형성하고 있고, 키케로의 “의무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키케로의 “의무론” 부분이 대학입시 시험 문제에 등장할 만큼 (서울대 입시 논술고사 99년 출제) 강조되고 있음을 볼 때 이 부분을 보다 정확하게 번역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키케로의 “의무론”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자기 이익을 쫓는 행위가 도덕적인 올바름과는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충돌은 불가피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 타협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보겠다. 옛날 그리스 로우즈 섬에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부족해지자 곡물가격은 폭등했다. 이 때 어떤 정직한 사람이 지중해 건너편 외국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배로 곡물을 가득 수입해 왔다고 보자. 다른 곡물 수입상들도 곡물을 가득 싣고 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가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항해 중에 곡물을 가득 실어오는 상선들을 실제로 보았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이 수입업자는 로우즈섬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밝혀야 할까? 아니면 입 다물고 침묵한 채 자기가 수입해 온 곡물을 가장 비싼 시장 가격으로 팔아 해치워도 될까? 내가 들고 있는 예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임을 가정하고 있어 만약 그가 사실을 감추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로우즈섬 사람들에게 사실을 감추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은 당연할 터인데 내가 여기서 질문하는 것은 그러한 침묵이 정말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인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고 의심이 드는 경우에 그가 어떤 이유와 근거에서 로우즈섬 사람들에게 사실을 감추지 않을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Cicero, De Officiis. 3.12.50.)
“… 안티파테르의 견해는 모든 사실은 공시되어야 한다는 것 즉 매도자가 알고 있는 사실은 매수자에게도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디오게네스의 견해는 매도자는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그것을 외부로 밝혀야 하는데 외부 공시의 방법과 정도는 국내법률의 규정에 미리 정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 규정에 의해 제한된 경우 이외에는 매도자가 매도할 물건에 대해서 불법적인 사기나 허위 또는 과장 광고가 없는 이상,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팔 수 있다는 입장이 디오게네스의 주장이다.
디오게네스: “나는 곡물을 먼 외국에서 수입해 와서 곡물을 매도하고 있는데, 다른 경쟁자들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팔지 않고 있으며, 시장에 공급이 넘칠 경우에는 가격을 더 낮춰서 매도할 것입니다. 이런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안티파테르: “무슨 말씀입니까? 각자는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동포 형제들의 이해관계까지를 고려해야 하고 또 공동체에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 공동체의 조건 아래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이 준수하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내재적인 자연 법칙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르 개인의 이익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것이며, 반대로 공동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땅한 사실들을 참작해도, 모두에게 풍족할 만큼의 곡물이 곧 도착할 거라는 좋은 소식을 동포 형제들에게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디오게네스: “하지만 감추는 것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은 분명히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서 상품의 내용이나 가장 좋은 품질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람들에게 뭘 감추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비밀을 아는 것은 곡물의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정보를 아는 것보다 매수자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매도자인 나는 매수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모든 정보에 대해서 그것을 다 알려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안티파테르: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하늘의 이치에 따라 맺어진 사회적 유대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고 보는데 이점은 수긍하리라 봅니다.”
디오게네스: “나도 그런 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유대감’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사유 재산이라는 개념이 전연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뜻하는 겁니까? 만약 그런 사회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결코 팔아서는 아니 되고 다만 공짜로 모두 나눠주어야 할 것입니다.” (Cicero, De Officiis. 3.12.51-3).
어떤 정직한 사람이 자신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어떤 결점 때문에 자기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집은 오염되어 사람이 사는데 문제가 많은 집인데도 건강에 나쁜 영향이 없는 좋은 집으로 알려져 있는 경우, 방마다 뱀들이 기어 나오는 집인데도 일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 또 목조 건물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붕괴 위험이 있음에도 이런 사실은 매도자인 집주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경우라고 가정하자. 만약 매도자가 주택 매수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매수자가 생각하는 주택의 적정 가격 보다 훨씬 더 높게 팔려고 하는 경우 이 매매를 부당한 거래 또는 ‘사기 fraudulent’ 매매에 해당된다(따라서 매수자가 매매를 취소할 수 있다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Cicero, De Officiis, 3.13.54.)
“안티파테르: “물론 부당한 거래에 해당합니다. 매수자에게 서둘러 거래를 끝내게 유인함으로써 매수자에게 주택을 점검할 기회를 주지 않은 잘못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매수자를 착각에 빠트린 행위에 해당합니다.”
디오게네스: “매도자가 집을 사라고 부추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매도자에게 집을 사라고 강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매도자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매수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매입했습니다. 만약 좋은 집도 아니고 잘 지어진 집도 아니면서 “주택 매매. 멋진 집임. 구조 튼튼함.” 이런 선전 문구를 걸어 놓는 것이 불법적인 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자기가 팔려고 내놓은 집에 대해 어떤 말도 언급하지 않고 그저 침묵한 것은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매도자가 사기를 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판단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도 모든 것을 다 그대로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말 한 마디 조차 꺼내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매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물건을 팔려고 내놓은 매도자가 그 물건이 지닌 결점을 모조리 밝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택 경매인이 집주인의 말이라고 하면서 “자 여기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기 않은 집 한 채가 지금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Cicero, DeOfficiis. 3. 13. 55.)
“그럼 키케로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말해보겠다. 미곡상인은 로데스인들에게 사실을 감추어서는 아니될 의무를 부담하고 있고 또 주택 매도자도 마찬가지로 매수자에게 사실을 말해야 될 의무가 있다. 단순하게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실은 적극적으로 비밀을 감추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도자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매수자에게 알려지면 매수자에게 유리할 경우 매도자가 자기 이익을 위하여 타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적극적으로 사실을 감추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감추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감추는 행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일까?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그런 사람은 솔직하고, 성실하고, 올곧고, 똑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믿을 수 없고, 은밀하고, 요령 좋고, 간교하고, 속임수를 쓰고, 교활하고, 사기와 배반에 물든 사람들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열거한 것과 같은 그리고 그보다 더한 비난의 수식어가 붙는다면 그게 과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Cicero, DeOfficiis. 3. 13. 57.)
단기적인 이익 vs 장기적인 이익
위와 같이 키케로의 “의무론” 중에서 매도자 정보 제공 의무에 관한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했다. 키케로의 의무론에서 말하는 매도자의 책임과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caveat emptor” 원칙과의 차이점을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과 상거래의 기본적인 성격에 비추어 본다면 상거래에서 매도자보다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출되지 않는가? 매매 거래에서 매수자에게 책임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는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원칙caveat emptor”이 대륙법국가에서 기반하고 있는 “매도자 책임 원칙 caveat vendito”에 비해 보다 현실적임은 분명하다. 특히 주식 증권 시장의 구조와 생리를 이해한다면 매수자 책임 원칙의 타당성과 그 중요성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본주의의 거래 속성상 매도자에게 “신의 성실 good faith”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보 제공 의무를 매도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대륙국가의 법은 상업 거래의 기본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물론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원칙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미법의 입법 추세는 소비자 보호법 등 매도자의 책임을 강화시켜 오고 있다. 또 현재 양 제도상의 장점은 서로 수렴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핵심 부분에서 서로 차이점이 존재하고 또 이런 차이점이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아담 스미스가 논증한 바대로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은 상대방의 호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시키는 것에 있다. 사람들이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요점은 바로 이익의 크기와 그 실현 시기를 언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영미국인은 “파이를 더 크게 키워서 더 큰 이익을 서로 나누자”의 사고에 쉽게 공감하여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반면 대륙국가 사람들은 “남의 손의 백 마리 새보다 내 손 안의 한 마리의 새가 더 가치 있다”고 여기면서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람은 모두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은 같지만 그 이익의 크기를 언제 어떻게 실현시키느냐에 따라서 역사적 결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익의 관점을 단기적으로 상정하느냐 아니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에 따라 ‘이기주의’와‘이타주의 altruism’가가름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되고, 이에 따라서 참되고 행복한 인간 사회가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을 역사가 웅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영미판례법에 기초한 대영제국과 미국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와 그 정신적 토대가 바로 여기에서 발견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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