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가, 처용무로 잘 알려진 “처용 處容”이란 말은 의미는 무엇인가?
한자의 의미를 살펴보자.
處처의 한자 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처소處所라는 말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거주하는 곳을 말하고, 處世처세한다는 말에서는 처신하는 것을 뜻하고, 處理한다는 말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을 뜻하고, 처서處暑라는 말에서는 여름 무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를 뜻하고, 정부기관의 업무담당처를 행정처 行政處 업무처 業務處라고 부르는 말에서 보듯이 행정기관 단위를 이른다.
용容은 容顏 容貌라는 말에서와 같이 얼굴 모양 상태를 뜻하는 글자이고,
용량容量에서와 같이 다 차있다, 포함하다는 뜻이고, :~ 。관용 寬容, 용인 容忍이라는 단어에서와 같이, 사람의 도량 크기가 커서 용서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tolerance 뜻이다. 한 사람이 가진 도량의 크기는 얼굴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 않는가? 뭐 요사인 얼굴성형 시대에서야 예전과는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처용 處容이란 말의 의미는 용서를 내린다는 결정을 담당하는 정부 사법 기관을 그리고 거기서 처벌 대신 관용을 베푸는 결정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졌다고 무조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처벌하는 것이 만능이 아니다. 때로는 처벌 대신 관용을 베풀어 그 효과가 더 큰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만약 죄를 지은 사람이 어디로 영영 도망가 버렸거나 아니면 억울하게 죽었거나 또는 바다에 빠져 익사해서 시체라도 찾지 못한 경우라면 어떡할 것인가? 이런 경우는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 줄 수 있을까? 억울한 것을 풀어 주는 그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원한을 풀어주는 것을 “해원 解怨”이라고 말한다.
바닷가 마을에서 익사한 사람의 초혼제를 지내는 것 그런 유형이다.
처벌보다는 용서와 해원을 추구하는 종교가 도교의 종지이다.
노자의 “이덕보원 以德報怨”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고 싶다. 도교는 원수에게도 덕으로써 갚으라는 화해와 용서의 추구한다.
원수로써 덕을 갚는다는 “以怨報德”이 아니라 정반대로 원수를 덕으로써 갚는다는 “以德報怨”을 주장한다.
신라 향가로 전해져 내려 오는 “처용가”는 이와 같이 해원무의 성격을 가진 가사라고 나는 새롭게 해석해 냈다.
조선초기 악학궤범에 실릴 만큼 끈질 긴 생명력을 가진 처용가의 가사를 우리는 그동안 잘못 해석해 왔던 것이라고 나는 반박하고 새로이 해석하는데 성공했다.
사법적 판결을 담당하는 사람의 마음은 추상같이 단호하며, 그 얼굴은 장사같이 무서운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다.
또 온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외유내강형에 속하는 것 같다.
처용무의 가면은 이런 사법처리 담당자의 얼굴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진실인데 그 얼굴 모습이 아랍인닮았네~ 그래서 신라와 아랍 상인이라고 해석하는 큰 오류를 가진 해석이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거짓 주장에 다름 아니다.
처용무의 처용가면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일본의 동대사 축성식이 열린 모습을 그려 놓은 그림이 있는데 거기에 참가한 무사의 모습이 처용무의 가면 모습과 거의 유사하게 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8세기부터 일본이 아랍 상인과 교류를 했다는 주장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그런 결과를 전혀 찾아 보기 어렵다. 따라서 처용무의 처용가면을 아랍상인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아랍 상인이라고 해석하는 주장이 얼마나 큰 허구인지 알 수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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