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저서--------/최후의 권력자

악법 필리버스터

by 추홍희블로그 2016. 3. 1.

더민주당이 “필리버스터”로는 집권여당 다수당이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직권상정"한 법안을 통과저지할 수 없을 것으로 미리 예언하고 예측한다는 저의 글을 제가 2월 25일에 여기 패북에 썼는데요, 그 글을 소개합니다.

저는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정치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은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긴 하지만, 저는 비록 "김종인"의 속이 천길만길이라고 해도 ,그 속을 훤히 내다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담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이해한다고 자부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오늘 김종인 대표가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는 발표가 이미 나왔으니 저의 글을 이제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의회민주주의 국가체제에서 집권여당 다수당이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직권상정"한 법안에 대해 소수야당이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이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지연전술이라는 "필리버스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필리버스터는 "선거법"이라는 보다 강력한 (자기이익 추구측면에서) 법안과 연계된 현 정치국면에서 무한정 지연 전술을 쓸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집권여당이 "직권상정"한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려고 하면 집권여당 내에서 "반란표"가 나아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현 의원들 중에서 반란표가 나올 확률은 제로(0)입니다.
따라서 집권 여당이 "직권상정"한 법안은 통과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취할 가장 마땅한 대안은 "양비론"이 아니라 정치선진국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법치 국가"형 모델을 합리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그와 같은 건설적 미래에 대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스탠스를 가져가야 마땅합니다.)

At any rate, 따라서, 집권 여당이 "직권상정"한 법안은 통과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나의 예언적 예측대로, ‘임시적 지연 조치’들은 법안 통과 저지라는 의도한대로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소수야당이 취할 수 있는 임시 방편은 마지막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언제 깨닫게 되는가? 단지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그때가 되어야 겨우 깨닫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They were too late.-만시지탄-이것이 우리 인간사의 고통이고 현실이다.

(이런 인간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사회의 문제점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며 상황개선론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은수미 의원의 감동적 필리버스터가 국가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은수미 의원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일까?

인간사는 한갓 인생 무상이고 모든 노력은 허무한 것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보다 중요한 측면을 한번 생각해 보자. 시각을 달리해서 동정심 compassion을 가진 사람들을 보자. 세상에는 “동정심 많고 호기심 어린 구경꾼”들이 존재하고, 그들처럼 “정말로 정직한 사람이며, 또한 동정심이 크게 느껴질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sns상에서의 나타나는 그러한 “진실한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 그저 고루하고 낡은 은퇴자의 자기 편할대로의 자기이익 추구자들의 생각처럼 단지 무시해도 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역사발전의 법칙을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동정심을 갖고 있다. 동정심은 “아, 인간이여!”의 그렇게 타인의 아픔 속에 함께 들어가 느끼는 감정 즉 공감을 말한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대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는 상반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또 다른 사람의 비참함을 목격하거나 아주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될 때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이런 동정심이 세상을 이끄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단언컨대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서의 주된 결론이 상호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이익 추구 self-interest는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사회적 구성원으로써 타인의 삶에 대해 본원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는 인간 속의 관계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던 그 사람이 어렵고불쌍한 이들을 만난 후 그의 불행과 고통에 깊은 동정심을 느끼게 되면서 곤경에 처한 인간 사회의 문제점과 인간 사회 발전의 조건에 눈을 뜨게 된다.

미국이 세계적 슈퍼파워 초강대국을 건설한 배경에는 미국인 중에는 “동정심 많고 호기심 어린 구경꾼 the compassionate and curious bystanders”들이 많이 존재하고 또 미국 사람들은 “정말로 정직한 사람이며, 또한 동정심이 크게 느껴질 사람 a perfectly honest man, and greatly to be compassionated”이 많다는 것이다.

“정이 많고 똑똑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배경을 감안해보면, 우리나라의 건설적 발전 모델은 독재국가 중국이 아니라 “법치국가” 미국에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