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노란 색깔의 들꽃이 푸른 동산과 어울려 수채화 같은 정경 사진 속에 등장하는 그 이태리의 아이콘 같은 마을이 많이 모여 있는 고장은 타스카니 지역이다. 이 곳의 여름철 내리쬐는 태양은 무척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곳엔 많은 작가들이 몰려 들어 살고 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날 이태리 타스카니의 들판을 스쳐 지나가며 여행해 본 적이 있다. 지중해의 여름철 태양은 마른 들판에 성냥불을 갖다 대면 마른 장작불처럼 금방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는 표현은 과장법이 아닌 듯 싶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푸른 숲을 무성하게 낳는다. 그리고 땀이 스며 나오고,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한 여름날엔 시원한 한 줄기 소나기를 필연적으로 갈망한다.
사랑은 시원한 통풍과도 같은 자유의 바람인가? 그래서 여름철 한 줄기 소낙비처럼 필연성을 담보로 하는 것 같다. 중년의 사랑은 한 여름철 근육에서 땀이 베어 나오듯이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바람인지 모른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여름철에 그 때에도 바람은 언제 어디서 불어올 지 바람의 방향감각은 아무도 모른다. 바람은 종류는 무척 많다. 실제로 언젠가 바람의 종류를 우리말로 세어가며 적어보다 그만 지치고 말았다. 그렇듯 바람의 수효는 천 개를 넘는다.
우연으로 찾아 드는 사람의 바람도 나뭇가지에 이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소리없는 아우성일까?
바람이 이는 것이 필연적이라면 그런 바람을 그린 영화 중 하나인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 영화의 여운은 아직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성숙한 여인에게 숨어 있는 내면을 열게 만드는 메릴 스트립의 탄탄한 연기력이 없다면 타프 가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액션을 소화해 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 그 영화 말이다.
불륜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의 초점은 사랑과 절제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마치 곡예사의 연기를 보는 것과 같이 스릴감에 놓여 있을 것 같다.
내면적 본능이 스며 나올 듯 말듯 메릴 스트립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평범한 불륜 드라마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이 영화를 감동 깊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여자의 마음 속 깊숙이 숨어 있는 본능적 욕망과 삶의 억제적 감정 사이에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갈등을 잔잔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서정적 관점에서 담담하게 그려낸 이 영화 속에 사람 마음 속의 갈등이 언제 폭발하고 어떻게 잠재워질까?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이 영화는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시골길에 자동차 한 대가 바람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 밭이 펼쳐지는 미국 아이오아주의 한 시골 농장에서 평범하게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어떤 중년 아낙네의 마음은 시골의 풀 냄새처럼 풋풋하게 느껴진다.
풀섶에 아침이슬이 영롱하게 열리듯 땀이 베어 나오는 무더운 어느 여름 날, 갈대는 바람에 마냥 흔들린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파스칼이 표현했듯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사람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한다.
여름철 풀밭에 누워보면 김수영의 시 ‘풀’에서 나오는 “풀처럼 눕는다”는 표현을 두고서 그의 시를 사랑과 섹스의 몸짓으로 재해석하는 어느 평자의 논거에 난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풀섶의 갈대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사람의 살을 베어 내기도 한다. 갈대에 살이 부딪히면 사람의 피가 흘러 나온다. 갈대밭에 떨구어진 한 방울의 붉은 피는 장미의 가시에 죽어간 릴케의 비운을 떠올리게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이 시골 벽촌에 주위에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메릴이 행여나 누가 보지나 않는지 사방을 흘길 쳐다 본다. 이렇게 바람은 새색시처럼 수줍어하고 남에게 들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영화속의 대사 한 마디를 다시 읽어보자.
클린트: "부끄러워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메릴: "난 옥수수치는 것이 싫고. 시골먼지가 싫고. 이런 시골 벽촌이 싫고. 소가 싫고. 이런 똥 냄새가 싫고. 그런데 당신은 이런 것을 좋아하잖아요. 나는 이런 사람들도 싫어요."
메릴의 독백이 잊혀지지 않고 나의 머리 속을 계속 맴돈다.
메릴: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니 내가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되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산 그 3일이었던 같다. 그가 떠나고 간 뒤 나를 발견한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농장과 다리와 동네사람들이 너무 낯익고 그 이외 너무 아픈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떨어진 작은 읍내에서 수요일 밤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 둘은 그날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함에도 그를 보내야만 하는 현실적 가정의 벽이 놓여 있음을 깨닫자 그 참을성 많은 여자인 메릴 스트립도 그만 화를 내버리고 만다.
자유와 절제의 순간은 어느 선에서 그어지는 것일까?
그들에게 교차점은 필연적으로 놓여 있는가?
메릴 스트립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욱 감미롭게 들려 오는데 그녀의 독백은 두고두고 재음미해 볼 만 강한 느낌을 준다.
지난 여름철의 뜨거웠던 정사는 사진보다 더 강렬하게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 있음을 독백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비 내리는 교차점에서 고조된 갈등을 빗속에 실려 보낸 그녀의 관조의 미가 베어 나온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이미지’가 있다. 폭풍 전야 그 여름 날의 밤을 떠오르게 하는 강렬한 ‘이미지’는 내가 그 남자를 처음으로 만났던 그 때를 기억나게 한다. 그가 차를 멈추어 서고, 로즈만 다리가 어느 방향이냐고 길을 물어 본 그 순간, ‘사랑’만이 아니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막다른 그 순간."
"There are images that lie in my heart. The images with power to recall a summer’s night, the stillness before the storm, reminding me the first time I ever saw him when he stopped and asked for direction to the Roseman Bridge, the moment when there was nowhere else to go except was love. "
그런데 살면서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그 순간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잡고 느꼈을 때를 경험했다.
그리고 난 그렇게 살아 남았다.
모든 것이 사라진 그 죽음의 막다른 골목의 순간 벼랑 끝에서 뛰어 내릴 때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주신다는 그것을!
그것을 종교적 체험으로 묘사하고 설명하는데, 어찌됐든 우리는 우리가 미리 알 수 없는 어떤 순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개인적으로 체험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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