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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문무왕릉비문-투후 제천지윤-한국의기원원

“독재국가” 아니면 “법치국가”이냐의 기로에 서 있는 중대한 “헌법위기”의 상황에서

by 추홍희블로그 2015. 9. 1.


"정부가 사업자와 함께 TF를 구성하고, 사업을 컨설팅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평가와 심의까지 하는 행태는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


그렇다면 “독재국가”에서 “법치국가”를 확립해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이 무엇일까요? 그게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요?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면 행정부의 결정에 대해서 “법원”에다 행정소송을 추진해서 “밥의 심판”을 받아야 함이 마땅한 수순이 아니겠습니까?

그냥 앉아서 말로만 하지 말고 즉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지 않습니까?


Take action!


“법치국가”라는 의미는 행정부의 모든 행위, 처분, 결정에 대해서 법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서 다시 다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의원님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독재국가”이냐 아니면 “법치국가”이냐의 기로에 서 있는 중대한 “헌법위기”의 상황이라는 말인데요, 


이와 같은 측면에서 법치국가의 의미를 좀 더 자세하게 부연 설명하고자 합니다.


사법부 독립과 사법 심사 제도 judicial review


마버리 Marbury 케이스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 심사권과 위헌명령심사권한을 동시에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법원이 어떻게 헌법 위기의 상황 속에서 헌법을 수호해 냈는지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나라의 헌법 위기와 그 해결책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버리 사건 Marbury v. Madison” 은 미국에서 위헌법률심사 제도를 헌법 원칙으로 수립한 최초의 판례이다. 마버리 사건은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어떻게 행정부와 입법부를 기속(羈束 얽어 매어 묶음 binding)하며 헌법 수호자로써의 최고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사법 심사-행정부와 입법부의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적인 견제


사법 심사 judicial review 제도는 의회의 제정법률 또는 행정부의 명령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여겨질 때 이를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final 심사하여 그것을 무효로 되돌릴 수 있는 헌법상의 제도를 말한다. 사법심사 제도는 권력분립의 최종 표현으로써 행정부와 입법부의 독주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사법부에 의한 권력 견제 legal check 장치”로써 이해되고 있다.

사법 심사 제도는 헌법상의 명문규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법원의 판례로써 확립된 헌법 원칙이다. 미국에서는 “마버리 사건”판례를 통해서 사법 심사 제도가 헌법상의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 다수의 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이 “최종적인 헌법 수호 the final, respected arbiter of that law”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건설을 책임진 미국의 건국 영웅들의 한 사람인 토마스 제퍼슨의 다음과 같은 말을 확인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정부 모든 부문의 권위, 안녕, 국민의 도덕과 사회의 모든 행복은 고결하고 훌륭한 재판의 운영에 달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법권은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분명히 구별되고 이들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또한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해 내야 한다는 것은 이들이 사법부를 견제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법관은 항상 법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고 모범적인 도덕을 가진 매우 인내심 있고 냉정하고 주의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립적인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해서는 아니되고 또한 법관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단체와도 의존관계에 있어서는 아니된다. … 법관의 임기는 그가 위법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 한 보장된다.”

이러한 독립된 성격을 가진 법관들로 사법부를 구성하고, 연방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지위를 차지하며 이들 대법관이 내리는 판결들은 헌법 수호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마버리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입법부의 권한은 규정되고 제한된다. 그리고 그러한 제한이 오해되거나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헌법을 성문헌법으로 제정해 놓은 것이다. …

법률 문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사건이 원심 재판에 속하는 사건이라면 항소심 사건이 아닌 것이며, 만약 항소심 사건이라면 원심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항소심 재판의 핵심 요소는 원심 법원에 제기된 소송에 대해 파기 정정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새로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비록 정부 공무원에게 어떤 서류의 교부를 명령하는 집행 명령의 소를 법원에 제기할 수는 있다고 해도, 정부 공무원에게 어떤 서류의 교부를 법원 명령을 발부한다는 것은 사실상 원심의 명령을 인용한다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것은 항소심 재판권에 해당되지 않고, 원심 재판 법원이 맡아야 할 사항인 것이다. …

따라서 법률에 의해 대법원이 정부 공무원에 대해 원심사실심리 재판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그러므로 주어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더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 본안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항소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

헌법은 헌법을 위반한 어떠한 입법행위도 통제한다는 것과,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 입법부가 일반 법률에 의하여 헌법을 개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해서 다툴 수 없는 간단한 명제이다. 이 두 가지 선택 사이에 중도란 있을 수가 없다. …


헌법이란 보통의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고칠 수가 없는 최고, 최상위의 법이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반 법률과 같이 입법부가 변경을 원할 경우 제정법률과 동일한 수준에서 변경 가능하다고 볼 것이다. 만약 앞 문장에서 전반부가 옳다면, 헌법에 위반하는 제정법률은 법 law이 아니다. 만약 앞 문장에서 후반부가 옳다면, 성문헌법은 무제한적인 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국민에게 떠맡기는 어리석은 시도라고 본다. …

모든 성문 헌법의 제정자는 헌법이 국가의 근본법이자 최상위법을 형성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은 분명하다. 또한 논리적으로, 헌법에 위반한 입법부의 법률은 무효가 된다는 것은 헌법상 모든 정부의 기본 개념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사법부의 영역이자 사법부의 의무는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는 것이다. …

(왜 헌법 수호의 책임이 법관에게 주어져 있는가?) 법관의 선서 내용을 보자. 법관은 다음과 선서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든 가진 사람들이든 똑같이 공평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사법 정의를 실천할 것이며 또한 미국 헌법과 법률에 마땅히 따라서 나의 모든 능력과 지식을 다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임무들을 끝까지 그리고 사심없이 완수할 것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

만약 헌법이 정부에 대한 통제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면 왜 법관은 미국 헌법에 따라서 그의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선서를 한다는 말인가? … 법관에게 다른 선서를 명하거나 또는 법관의 선서를 빼앗아가는 것은 똑같이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

헌법의 특별한 조문들은 모든 성문 헌법에 핵심적인 법원칙을 재확인하고 더욱 강화시키는데 바로 그것은 헌법에 위반하는 법률은 무효이며 또한 이 원칙은 정부 부처 뿐만 아니라 법원 역시 기속한다. 이러한 법원칙은 완전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사법부 독립과 사법 심사 제도 judicial review


마버리 Marbury 케이스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 심사권과 위헌명령심사권한을 동시에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법원이 어떻게 헌법 위기의 상황 속에서 헌법을 수호해 냈는지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나라의 헌법 위기와 그 해결책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1] 

 

“마버리 사건 Marbury v. Madison[2]은 미국에서 위헌법률심사 제도를 헌법 원칙으로 수립한 최초의 판례이다.  마버리 사건은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어떻게 행정부와 입법부를 기속(羈束 얽어 매어 묶음 binding)하며 헌법 수호자로써의 최고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1) 사법 심사-행정부와 입법부의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적인 견제

 

사법 심사 judicial review 제도는 의회의 제정법률 또는 행정부의 명령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여겨질 때 이를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final 심사하여 그것을 무효로 되돌릴 수 있는 헌법상의 제도를 말한다.  사법심사 제도는 권력분립의 최종 표현으로써 행정부와 입법부의 독주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사법부에 의한 권력 견제 legal check 장치”로써 이해되고 있다.

 

사법 심사 제도는 헌법상의 명문규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법원의 판례로써 확립된 헌법 원칙이다.  미국에서는 “마버리 사건”판례를 통해서 사법 심사 제도가 헌법상의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 다수의 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이 “최종적인 헌법 수호 the final, respected arbiter of that law”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건설을 책임진 미국의 건국 영웅들의 한 사람인 토마스 제퍼슨의 다음과 같은 말을 확인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정부 모든 부문의 권위, 안녕, 국민의 도덕과 사회의 모든 행복은 고결하고 훌륭한 재판의 운영에 달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법권은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분명히 구별되고 이들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또한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해 내야 한다는 것은 이들이 사법부를 견제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법관은 항상 법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고 모범적인 도덕을 가진 매우 인내심 있고 냉정하고 주의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립적인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해서는 아니되고 또한 법관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단체와도 의존관계에 있어서는 아니된다. … 법관의 임기는 그가 위법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 한 보장된다.[3]

 

이러한 독립된 성격을 가진 법관들로 사법부를 구성하고, 연방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지위를 차지하며 이들 대법관이 내리는 판결들은 헌법 수호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이런 대법원의 역할은 헌법상 명문 규정에 의해서 담보된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2) 마버리 사건이 일어난 정치적 배경


행정부와 사법부 간의 대립과 긴장 관계 형성

 

마버리 사건은 신생독립국 미국에서 공화파와 민주파의 양 정파간의 정치적 분쟁이 극심한 때 일어났다.  1800년 당시 미국은 국외에선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이 격화된 가운데 미국과 프랑스와의 준전시 상황이 벌어지고, 프랑스 혁명 (1789년–1799)에 대한 시각 차이, 건국과정에서 중앙집권파와 지방분권파의 이념적 대립이 격화되고, 내란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혁명기의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다.[4]

 

영국과의 식민지 전쟁을 벌이고서 1776년 독립한 미국에게 프랑스는 강력한 우방이었으나 프랑스 혁명이 발발(1789)한 후 미국은 영국과 우호관계를 맺게 (1794) 되고, 프랑스와는 우호조약을 폐기 (1798)하며 해상전쟁에 돌입하게 되는 상황(1798년–1800)으로 돌변했다.  이러한 신생독립국의 국내외의 혼란된 정치상황에서 반란죄가 큰 이슈가 되었고 제퍼슨은 친프랑스파로서 내란죄 폐지론의 입장에 섰다.

 

1796년 대선에서 공화당파(중앙집권주의자; 연방정부+대법원권한 강화) 아담스 후보가 제퍼슨 후보에게 승리하였다.  그러나 4년 후 1800년 대선에서는 제퍼슨이 주도하는 민주당파(지방분권주의자;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원칙 강조)가 승리하였다. 

 

1800 12 6일 끝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아담스 대통령은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의 과도기간을 이용하여 1801 131일 자신의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인 마샬을 대법원장에 임명하고, 16명의 순회법원 판사와 42명의 치안판사(JP)를 한꺼번에 대거 임명하였다.  퇴임 대통령이 야밤에 도주하듯이 급히 법관들을 임명 (제퍼슨 신임 대통령은 마샬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에 반대했다)한 것을 빗대어 이를 “Midnight Judges Act”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법부 법관은 임기가 보장되기에 새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법관 인사들을 채우면 사법부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시킬 수가 있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인사들을 서둘러 임명한 것이다.  마샬은 1801년에서 1835년까지 34년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였다.

 

하지만 정권교체기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급하게 이루어진 까닭에 마버리를 포함한 원고들은 미처 아담스 대통령의 퇴임 일인 1801 32일까지 임명장을 전달받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마버리는 제퍼슨 대통령의 새정부 국무장관인 매디슨 Madison에게 전임 대통령이 서명한 법관 임명장을 교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마버리는 매디슨에게 자신의 법관 임명장을 교부하라는 “의무이행 집행명령 Mandamus”의 소송을 연방대법원에 제기하였다.  사건 이름이 Marbury v. Madison이고 이는 원고와 피고의 이름을 각각 나타낸다.

 

보통의 대법원 소송사건은 하급법원부터 차례로 올라가 연방대법원은 항소심, 최종 상소심을 관할하게 되는데 마버리 사건은 1798년 의회가 제정한 법원조직법 Judiciary Act에 명시된 하급법원이나 정부 관리에게 연방대법원이 직무 집행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원고가 행정부에 대해 의무이행의 집행명령을 내려달라고 대법원에다 Mandamus 소를 직접 청구한 것으로써 당시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3) 마버리 사건과 사법 심사 제도의 확립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의 입장은 쉽게 판결을 내리기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임이 분명했다.  마버리의 청구를 인정하여 원고승소의 판결을 내린다면 행정부가 법원의 명령을 무시할 것이 분명하였고 또 그런 변명의 수단들을 행정부가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피고 행정부는 재판 참가를 거부했었다.  이런 가운데 만약 연방대법원이 재판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즉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다면 대법원이 헌법과 법률에 열거된 자신의 정당한 권한을 포기하고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였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반면 행정부에게 의무이행명령(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면 행정부가 집행을 거부할 것이 분명해 보여서 최고 사법 기관으로써의 대법원의 권위가 타격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법률을 통과시키고 정식으로 법률 효력을 발휘한 의회 제정의 법률에 근거하여 즉 “의회 주권(의회우월주의 parliamentary sovereignty)”원칙의 대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서 대법원은 마땅한 재판권을 가졌으므로 대법원이 재판권을 포기할 법적 이유가 없었지만 한편으론 법원의 판결이 집행권이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의 도래 즉 사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되어 있다는 결과가 된다면 그것은 사법부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딜레마[5] 상황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당파적인 대립이 극심했던 당시 구정권과 신정권의 힘겨루기의 양상이 벌어진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마샬 대법원장은 어떻게 어려운 법적 난제를 해결해 낼 수 있었을까?

 

(4) 마버리 사건의 법적 쟁점

 

마버리 사건에서 법적 쟁점은 다음 3가지로 요약되었다.  ① 원고는 임명장을 교부 받을 권리가 있는가?  ② 원고에게 그 권리가 있고 또한 법률상 구제수단이 존재한가?  ③ 법률상 구제책으로써 연방대법원이 명령을 내려야 하는가?[6]

 

이 같은 법률 쟁점에 대해서 대법원은 ① 새행정부가 내린 임명 보류 결정에 따라 법관 임명장을 정식으로 전달받지 못해서 소를 제기한 원고에게 임명장을 교부를 요구할 권리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대통령이 퇴임 이전에 정식으로 서명했고 당시 국무장관이 서류를 봉인하는 등 법관 임명에 따른 절차적 요건이 완결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② 그에 따라 원고에게 권리가 발생했고 또 그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 당했으므로 원고에게 법적 구제를 주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3번째 요건에서 ③ 연방대법원이 그러한 법적 구제를 마련해 줄 사항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당시 1789년 법원조직법에서 연방대법원이 연방정부 공무원의 집행명령에 대한 재판권을 갖고 있다는 규정은 연방대법원의 권한을 규정하고 있는 연방헌법 3조 규정을 위반하여 법률 무효(strike down)가 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부연하면 헌법해석상 연방대법원은 헌법의 명시 규정대로 대사•공사•영사에 관련된 사건에서만 “원심 original” 재판 관할권을 갖고 그 밖의 사건에는 “상소심 appellate” 재판권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7]  이러한 판결에 따라 원고는 대법원의 최종적인 심판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원고의 소 청구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연방 대법원은 최종적인 위헌 법률 심판권 the final, respected arbiter of constitutional law을 확인하면서 해당 법원조직법의 규정을 위헌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미국 헌법상 최초로 “사법 심사”제도를 확립하게 된 결정적인 판례가 되었다.  마버리 사건으로써 확립된 사법심사 제도는 연방대법원이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최고의 헌법 수호 기관임을 확고히 지켜주게 되었다.

 

(5) 판결이유에 대한 비판적 견해-삼권 분립 원칙

 

토마스 제퍼슨의 비판에 따르면, 문제된 법관 임명장이 아직 발송되지 않았기에 당시 보편법 Common Law 원칙에 따라 법률적 효력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어 신임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한 행위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재량권의 행사에 해당된다고 주장할 여지도 충분하였다.  미국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은 주프랑스 대사를 지냈고 프랑스혁명에 호의적인 생각을 가진 계몽주의자 변호사였다.  개념법학적인 태도가 강한 대륙법제에서는 근래까지도 행정부의 재량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심사를 부정하는 흐름이 강했다는 점을 참조하라.

 

무엇보다 사법심사가 국민주권의 원칙하에서 국민 대표인 의회에서 다수결로 입법한 법률을 폐기한다는 것은 다수결의 민주정치 원칙에 위반하는 결정이며, 사법심사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여 3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시킬 위험이 있었다.  다시 말해 사법부의 영역은 국민의사의 대표인 의회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에 대해서 법해석과 법적용을 할 뿐 입법부의 권한을 심사할 수 없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마샬 대법원장은 연방대법원에게 부여된 권한에 대한 헌법 해석을 하면서, 당시의 법원조직법 규정을 위헌 법률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연방대법원의 원심 재판권을 스스로 제어하였고 대신 사법부가 의회와 대통령이 통과시킨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 권한을 가졌다는 사법 심사 제도를 확립하고 사법부 우위의 빛나는 전통을 정립해 나갈 수 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러한 사법 심사 제도가 헌법 원칙으로 확립되기란 말처럼 결코 쉽지 않았다는 점은 당시의 정치적 딜레마 상황을 인식하면 수긍될 것이다.  신생 독립국 미 건국의 영웅들이 활동하던 당시는 정치적 대표 기관인 입법부의 권한이 매우 높았다.  대의제 민주주의 representative democracy 헌법을 제정한 건국 당시는 바로 “의회 주권 (의회우월주의 parliamentary sovereignty”원칙이 지배하고 있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 majoritarian legitimacy에 민주주의 정통성을 확보한다.  대의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건국 영웅들은 정치적 토론과 합의에 기초하여 각종의 법률을 제정하였고 이러한 인간 이성의 발현과 성숙한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건국의 기초를 튼튼히 다져갔다. 건국 당시 “사법부는 비교할 것도 없이, 3부 중 가장 약한 부이었고”, “힘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고 오로지 법률 판단만을 할 뿐이며, 심지어 자신의 판결을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만큼 그 기능상 가장 위험성이 없는 기관 the least dangerous branch”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3권분립의 이론을 주창한 몽테스키외는 그의 “법의 정신” (1748)에서 “법관은 법의 문언을 발표하는 입에 다를 바 없으며, 법의 효력이나 엄정성을 변화시킬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이라고 파악했다. 당시의 법원은 주어진 법률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는 존재일 뿐 스스로 법을 창설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 극심하게 대립된 당파적 정세를 고려하면 연방대법원이 연방의회가 제정하고 연방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서명하여 정식으로 법률 효력을 가진 법률에 대해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다시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판결은 실로 담대한 결정이었다.  마샬 대법원장이 당시 딜레마에 처한 상황을 그의 판결문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는데 이는 크게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다: “이 사건의 독특함, 이 사건은 전례가 없는 초유의 특이성, 그리고 여기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 내는 지난함 때문에 본 대법원의 판결문에 나타난 법원칙을 낱낱이 밝히고자 한다.

 

정치적•법적 딜레마에 처한 상황 속에서 사법 심사 제도를 확립한 마샬 대법원장은 위대한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 길이 존경을 받고 있다.  그 표상은 연방대법원 빌딩에 새겨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률가 18인의 조각상 가운데 마샬이 들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미국 연방 대법원 빌딩에 새겨진 세계 역사상 최고의 법률가 18인의 부조상>[8]

 

(6) 판결 이유

 

연방대법원에서 변론 재판이 1803 2 11일에 열렸고 10여일 후인 1803 2 23일 대법관 전원일치 (6:0)의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정리된다.

 

미국 연방 헌법은 대통령이 상원의 자문과 동의를 거쳐 대사 공사 영사 그 밖의 모든 미국 관리들을 지명하고 임명하며 임명장을 부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행정부의 재량에 따라 임명되는 공무원이라면 법원의 사법심사의 개입이 불필요하지만 법관같이 법률에 의해서 정해진 직무가 있고 또 구체적인 임명 절차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이 그 그러한 권리의 존재 확인과 또 그 권리가 침해된 경우 법적 구제 절차를 명령할 권한이 있다.

 

마버리 소송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마버리는 치안판사(JP) 임명장을 의회가 제정하고 대통령이 서명해서 효력을 발생한 법률에 따라 그의 자리는 5년간의 임기가 보장되기 때고 또 일단 정식 임명장이 발부된 후에는 임의대로 취소될 수 없는 법적으로 보호된다.  이러한 법적 요건에 대한 원고 마버리의 청구 기초 사실이 확인되는 바 원고의 소 제기는 충분히 법원의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법원이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우선 해당 헌법 조항을 살펴 보자.  3 (사법부) 1 . “미국의 사법권은 1개의 대법원 (one Supreme Court), 그리고 연방 의회가 필요시 제정하는 법률에 의해 설치되는 하급 법원에 속한다.  2 절…제2.  “대사와 그 밖의 외교 사절 및 영사에 관계되는 사건과, 주가 당사자인 사건은 연방 대법원이 원심의 재판 관할권을 가진다. 그 밖의 모든 사건에서는 연방 의회가 정하는 예외의 경우를 두되, 연방 의회가 정하는 규정에 따라 법률 문제와 사실 문제에 관하여 상소심 재판 관할권을 가진다.

 

헌법 조문의 문구를 그대로 적용 해석하면, 연방대법원이 대사 공사 영사와 관련되지 않는 소송에서 사실심리 원심 재판권을 보유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연방 대법원은 헌법 명시 규정 이외의 “그외 정부 공무원에 관련”된 소송에는 항소심 재판권만 있을 뿐이고 사실심리 원심 재판권이 없다는 결론이며 따라서 대법원은 원고청구의 소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은 있지만 집행 영장을 발부할 성격은 아니라고 결론을 지은 것이다. 

 

(여기서 헌법 해석의 핵심 문제는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헌법상의 명시 규정에는 없는 사항인 정부 공무원의 재판권에 대한 내용이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는 명문 규정이 새로이 들어가 있는데 이러한 법률이 사법부의 최고 수장인 대법원의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고 또 그렇다면 대법원은 헌법이 법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최상위법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따라서 법률을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할 권한이 대법원에 부여되어 있느냐의 여부에 있었다.)[9] 

 

마버리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입법부의 권한은 규정되고 제한된다.  그리고 그러한 제한이 오해되거나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헌법을 성문헌법으로 제정해 놓은 것이다. 

 

법률 문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사건이 원심 재판에 속하는 사건이라면 항소심 사건이 아닌 것이며, 만약 항소심 사건이라면 원심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의 핵심 요소는 원심 법원에 제기된 소송에 대해 파기 정정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새로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비록 정부 공무원에게 어떤 서류의 교부를 명령하는 집행 명령의 소를 법원에 제기할 수는 있다고 해도, 정부 공무원에게 어떤 서류의 교부를 법원 명령을 발부한다는 것은 사실상 원심의 명령을 인용한다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것은 항소심 재판권에 해당되지 않고, 원심 재판 법원이 맡아야 할 사항인 것이다. 

따라서 법률에 의해 대법원이 정부 공무원에 대해 원심사실심리 재판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그러므로 주어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더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 본안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항소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은 헌법을 위반한 어떠한 입법행위도 통제한다는 것과,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 입법부가 일반 법률에 의하여 헌법을 개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해서 다툴 수 없는 간단한 명제이다. 이 두 가지 선택 사이에 중도란 있을 수가 없다. 


헌법이란 보통의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고칠 수가 없는 최고, 최상위의 법이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반 법률과 같이 입법부가 변경을 원할 경우 제정법률과 동일한 수준에서 변경 가능하다고 볼 것이다.  만약 앞 문장에서 전반부가 옳다면, 헌법에 위반하는 제정법률은 법 law이 아니다.   만약 앞 문장에서 후반부가 옳다면, 성문헌법은 무제한적인 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국민에게 떠맡기는 어리석은 시도라고 본다.


모든 성문 헌법의 제정자는 헌법이 국가의 근본법이자 최상위법을 형성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은 분명하다.  또한 논리적으로, 헌법에 위반한 입법부의 법률은 무효가 된다는 것은 헌법상 모든 정부의 기본 개념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사법부의 영역이자 사법부의 의무는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는 것이다.  

 

(왜 헌법 수호의 책임이 법관에게 주어져 있는가?)  법관의 선서 내용을 보자.  법관은 다음과 선서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든 가진 사람들이든 똑같이 공평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사법 정의를 실천할 것이며 또한 미국 헌법과 법률에 마땅히 따라서 나의 모든 능력과 지식을 다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임무들을 끝까지 그리고 사심없이 완수할 것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10] 

 

만약 헌법이 정부에 대한 통제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면 왜 법관은 미국 헌법에 따라서 그의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선서를 한다는 말인가?  … 법관에게 다른 선서를 명하거나 또는 법관의 선서를 빼앗아가는 것은 똑같이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헌법의 특별한 조문들은 모든 성문 헌법에 핵심적인 법원칙을 재확인하고 더욱 강화시키는데 바로 그것은 헌법에 위반하는 법률은 무효이며 또한 이 원칙은 정부 부처 뿐만 아니라 법원 역시 기속한다.  이러한 법원칙은 완전하게 적용되어야 한다.[11]

 



[1] 헌법재판소는 헌법 위기의 상황을 불러오는 어떤 초유의 사태나 또는 법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헌법이 파괴될 상황을 막기 위해서 성문 헌법을 마련해 놓았다.

[2] Marbury v. Madison, 5 U.S. 137, 1 Cranch 137 (1803).

[3] http://www.cooperativeindividualism.org/jefferson-thomas_correspondence-c-02.html

[4] 미국의 1800년 대선 결과 자료: http://www.presidency.ucsb.edu/showelection.php?year=1800.  1800년 미국 대선 결과: 토마스 제퍼슨은 선거인단 73 (52.9% 지지율), 존 아담스는 선거인당 65 (47.1% 지지율)을 얻었다.  1800년 대선 당시 미국은 동서간의 지역색이 뚜렷하였고 또 당선자의 지지율이 53%정도이었던 것을 볼 때 최근의 우리나라 대선에서의 정치적 지형과 비슷하다.

[5]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그 도전 세력에 대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이를 “민주주의의 역설 democratic paradox”이라고 부른다- 즉 민주주의는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인데 선거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당 강제 해산 조치가 과연 민주주의 원칙과 양립하느냐의 의문을 낳게 된다.  마찬가지로 논리로, 사법부의 지위와 역할은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는데 만약 사법부가 입법부의 제정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자기 모순이 아닌가 하는 권위의 원천과 정당성의 문제를 낳게 된다.  다시 말해 국민 다수를 대표하는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사법부의 쿠데타가 아닌 지의 의문을 낳게 된다는 측면에서 딜레마 상황인 것이다.

[6] Does Marbury(P) have a right to this commission?  If P has a right, is there a remedy at law to realize it?  If there is a remedy, is it one that can issue from the Supreme Court?

[7] The Constitution is the “supreme law of the land.” As such, it is “superior” and “fundamental and paramount.”  It establishes “certain limits” on the power of the government it creates.  This includes the Congress and the Executive.  Without such limits, “it would be giving to the legislature a practical and real omnipotence.”  Thus, “a legislative act contrary to the Constitution is not law.”

[8] 메네스 MENES (C. 3200 B.C) 이집트 왕국 개창.  함부라비 HAMMURABI (C.1700S B.C.) 바빌론 왕조 개창.  모세 MOSES (C. 1300S B.C.) 히브리 민족 노예 해방, 구약과 십계명.  솔로몬 SOLOMON (C. 900S B.C.) 솔로몬 재판.  리쿠르구스 LYCURGUS (C. 800 B.C.) 그리스 스파르타 개혁 입법.  솔론 SOLON (C. 600S B.C.) 부채 탕감 개혁.  드라코 DRACO (C. 600S B.C.) 고대 그리스 성문 법률 제정, 법의 복잡한 기술적 난해성을 뜻하는 “draconian” 말의 유래.  공자 CONFUCIUS (551-479 B.C.) 자율 규제에 기초한 사회 주창.  아우구스투스 OCTAVIAN (63 B.C-14 A.D.) 로마 초대 황제, 선례 구속 원칙 시행.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1821) 프랑스 황제, 대륙법을 총정리한 나폴레옹 법전 편찬.  존 마샬 JOHN MARSHALL (1755-1835)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원장, 사법부 독립 원칙과 헌법 재판 제도 확립.  블랙스톤 WILLIAM BLACKSTONE (1723-1780) 영국의 법학자 법률 교과서 저술.  위고 그로티우스 HUGO GROTIUS (1583-1645) 네덜란드 법조인 국제법 정립.   루이 9 LOUIS IX (1213-1270) 프랑스 왕, 십자군 원정, 국민 청원권 인정.  존 왕 KING JOHN (1166 1216) 마그나 카르타 반포.  샤를마뉴 CHARLEMAGNE (C. 742-814) 신성 로마 제국 서유럽 통합.  무하마드 MUHAMMAD (C. 570-632) 코란 이슬람 법.  유스티누스 JUSTINIAN (C. 483-565) 비잔틴 제국 유스티누스 법전 편찬, 정의론..

[9]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경우로 가상해서 다시 설명해 본다면, 헌법재판소의 헌법 재판은 대통령이 국회가 만든 법률을 선포하고 따라서 정당한 법률적 효력이 발생한 헌법재판소법률에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헌법 재판권을 구체적으로 행사하고 있는데 만약 헌법재판소법률에 헌법상 명문 원칙에 어긋나는 조항이 들어 있다고 하는 경우라면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그것을 위헌조항이라고 위헌법률심사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하고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헌법 재판은 헌법재판소 법률에 따라서 행사되므로 그러한 법률 조항의 폐기는 국회 또는 행정부의 소관인 입법 사항으로 판단하여 되돌려 보내고 헌법재판소는 그것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의 책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에 주어진 마땅한 권한으로써 스스로 위헌법률임을 무효 선언할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 문제가 될 것이다. 

[10] "I do solemnly swear that I will administer justice without respect to persons, and do equal right to the poor and to the rich; and that I will faithfully and impartially discharge all the duties incumbent on me as according to the best of my abilities and understanding, agreeably to the Constitution and laws of the United States."

[11] Marbury v. Madison, 5 U.S. 137 (1803), 154-180.  It is also not entirely unworthy of observation that, in declaring what shall be the supreme law of the land, the Constitution itself is first mentioned, and not the laws of the United States generally, but those only which shall be made in pursuance of the Constitution, have that rank.  Thus, the particular phraseology of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confirms and strengthens the principle, supposed to be essential to all written Constitutions, that a law repugnant to the Constitution is void, and that courts, as well as other departments, are bound by that instrument.  The rule must be discharg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