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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언어/창의력과상상력-에라스무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16.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은 얼마나 길고 더디던가?

그런데 삶의 희망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가 있을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지만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기욤 아폴리레르 Guillaume Apollinaire, Le Pont Mirabeau

 

*[1]

**[2]

 

프랑스 파리 세느 강 미라보 다리



[1] Le Pont Mirabeau by Guillaume Apollinaire, The Mirabeau Bridge Translated by Foreman

Below the Mirabeau bridge there flows the Seine
As for our love
Must I recall how then
After each sorrow joy would come again
Let night come toll hours away
Days go by me here I stay

Let us stay hand in hand face to face
While down below
The bridge of our embrace
Roll the waves weary of our endless gaze
Let night come toll hours away
Days go by me here I stay

Love goes away the way the waters flow
Love goes away
How life is long and slow
How hope of life can deal so strong a blow
Let night come toll hours away
Days go by me here I stay

The days the weeks are passing from our ken
Neither time passed
Nor love can come again
Below the Mirabeau bridge there flows the Seine
Let night come toll hours away
Days go by me here I stay.


[2]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세느강이 흐르고 있어 다리가 많이 있다. 그런데 수 많은 다리 중에서도 왜 유독 미라보 다리가 유명할까?  아폴리네르의 시로 유명해진 이름일 것이다.  미라보는 장소명이 아니라 사람 이름이다.  프랑스 혁명 (1798)이 일어나기 직전 그는 구체제를 청산하고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여 개혁을 부르짖었던 귀족이었다.  모든 귀족들이 기득권을 고집하고 부패하여서 프랑스 혁명을 불러온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보수와 진보의 두 이념적 흐름이 뚜렷이 형성되어 있다.  일본이나 한국의 정치 체제가 금전정치” “파벌 정치로 인해서 보수세력이 절대다수로 정치를 장악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다. 

프랑스는 혁명 이후 귀족 체제가 타파되어 평등 사회가 강조되어서인지 모르지만 미라보 공작의 이름 가운데 “de”가 빠져 있어서 미라보 공작을 가르키는 이름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미라보 de Mirabeau (1749-1791) 프랑스 혁명기를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아폴리네르는 혁명가는 전혀 상관없이 개인적인 사랑의 시로 미라보개인적인 사적인 이미지로 변형시키고 만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제 아무리 핏빛 선연한 무서운 혁명이었다고 해도 혁명은 잊혀지고 남녀간의 사랑만이 부각된다.  세월이 가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 치열했던 혁명의 열기와 배경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가 다시 밀려 올 때 희망은 사라진다.  과거의 반복은 희망의 종말일까?  울프가 견해에 따르면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파리의 세느강에서 장발잔이 타고 쫓기던 것처럼 시간에 쫓기며 유람선을 타 본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양쪽을 연결을 하는 통로의 기능을 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길목이다.  다리는 때로는 반역에 해당한다.  물결을 거스르는 역할을 하고 거래를 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라보 다리는 미라보의 이름을 간직할 만 하다.  미라보는 42세로 처형당한 그의 삶이 말해주듯이 반역자이었다.  그는 자기 계급의 이해를 멀리하였고, 박터지게 싸우면서 아내하고 이혼했고, 독일과 영국의 외국 체제를 동경했고, 외국과 거래했다.  미라보의 삶이 말해주듯 혁명사랑이 공유한 금실타래는 배반이라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표시였던 밤나무아래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고 속였다.  혁명과 사랑이 공유한 한 가지는 진실은 바로 배반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배반한다.  아폴리네르가 읊은 대로, 우리의 삶은 세느강처럼 길고 느리게 흘러가는데 왜 희망은 그토록 무참히 깨지고 마는 것일까?

여담이지만 여기서 하나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영어 번역과 대조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시 구절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희망이 강렬하듯이는 아마도 좋은 번역이 아닌 것 같다.  불어 원문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érance est violente”,  영어 번역 “Love goes away the way the waters flow/ Love goes away/ How life is long and slow/ How hope of life can deal so strong a blow” 임을 볼 때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번역은 조금 만족스럽지 못해 새로이 고쳤다.  덧붙여 아폴리네르의 시집이 발표된 때가 1913년이라는 시점 또한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