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모방과 창의성의 관계
사람의 본성은 창조적인 일을 남기려 하지 모방하는 일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입 안에서는 맴도는 잠자리처럼 수없이 새로운 표현을 찾아내었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단 한 줄의 하이쿠 표현도 제대로 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간 사람들의 글을 읽고서 모방 추종하여 어떤 완성을 이뤄내기도 힘들었다. 결국 세월만 흘러가 버리고 말았으며, 창의적인 글 하나 쓰려다 내 몸에 사리가 108개나 쏟아질 지도 모르겠다.
남의 텍스트를 그대로 “모방 copy”하는 일은 창조적이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타인이 이미 발표한 것을 모방하여 공표하는 것은 저작권법이 일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허용되지도 않는다. 그 주된 이유는 모방은 창조적인 일과는 다르고, 창조적인 일은 진짜이지만, 모방은 가짜이고, 가짜로는 인간 사회의 발전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창의적인 존재로서 자기만의 것을 가꾸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정치철학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자유와 속박의 문제로써 자유는 창의이고 속박은 모방에 해당된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앞서간 위인들의 작품을 읽고 골방에 틀어박혀서라도 암기하고 모방하는데 있는 힘을 다해 애쓰는가? 호이징거의 “호모 루덴스”라는 “놀이 인간”의 개념이 시사하듯이 인간에게는 주어진 것을 따라 하는 놀이가 필요할 테고, 또 그런 습득과 놀이의 과정의 새로운 창조를 낳은 진화의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모방과 창조적인 일을 비유로써 쉽게 설명하는 데 벌꿀의 예를 자주 들고 있다. 에라스무스가 들고 있는 벌의 비유를 읽어 보자.
“자연계에서 한 예를 보자. 벌은 벌집에 꿀을 모이기 위해서 하나의 수풀에서 재료를 모와 오는가? 그게 아니라 벌은 온갖 종류의 꽃, 잡목, 수풀 모두를 정말 열심히 날아다니지 않는가? 또 벌이 모아온 것 그것이 바로 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벌은 그들이 모아온 재료를 자신의 기관을 이용하여 액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이전의 꽃이나 수풀이 가졌던 향기나 맛은 가려낼 수도 없을 정도로 모든 재료들이 적당한 비율로 서로 혼합된 것인데 벌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암양은 한 가지 풀로 뜯어 먹고서 우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암소는 온갖 가지 풀을 뜯어 먹고 또 풀에서 즙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그 즙에서 변화된 우유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Erasumus, Ciceronianus (The Ciceronian) at 82)[1]
“키케로 추종자”를 비판하는 에라스무스의 글을 출발선으로 삼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엮어 펴낸다.
추홍희
[1] If Cicero s method is not convincing, let us consider an example from nature. Do bees gather the material for their honeycomb from one shrub? Do they not rather fly about all kinds of flowers, shrubs, bushes, with wonderful zeal, frequently seeking from afar what they may store in their hive? Nor is what they bring straightway honey. They fashion a liquid with their organs, and after it is made their own, they give that forth in which you do not recognize the taste or the odor of flower or shrub but a product mingled in due proportion from them all.
Nor do the she-goats feed upon one kind of foliage that they may give milk like only to these; but they feed on every kind of leaf and give forth not the juice of herbs but milk transformed from them.
No. Yet it makes a difference where the bee gathers the liquid, or upon what leaf the she-goat feeds. If, indeed, yew-tree honey is made from the yew-tree, will not likewise the taste of the milk from the she-goat savor of oak leaves and willows?
Bu: Well, take artists. Do those who seek fame in plastic or graphic art devote themselves to the imitation of only one master or do they take what they please from each for the perfection of art, so imitating that they may possibly surpass? What about the architect? Does he, when preparing to build some great house, take all the details from a single building? Not at all, he selects from many what he finds to his taste, else no great praise would he gain when the spectator recognizes this or that building reproduced. And yet to be a slave to the copy in art is more tolerable than in oratory. What is the reason then that we have devoted ourselves so religiously to Cicero alone? They sin twice who not only set themselves to just one copy but also, being ignorant of rhetorical rules, read no one except Cicero and nothing outside to teach them how to appreciate him. For what profits it to have your eyes fixed on Cicero if you have not skillful eyes? What would it profit me who am ignorant of the art of drawing, if I should look whole days at the pictures of Apelles and Zeu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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