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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필/산보자의 명상록

고백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14.

다음은 톨스토이의 "고백" 번역을 카피했다.  내가 번역을 한 작품이 아니라 남이 한 것을 여기에 가져온 까닭은 내가 이어서 예술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톨스토이와 화가 마티스의 견해를 인용할 것이다.  나는 내 블로그에서 변호사에서 (또는 법학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전업해서 성공한 위대한 사람들을 자주 인용하고 많은 글을 여기에 할애하고 있다.


법대를 다니다 중도포기하고 화가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마티스일 것이다.  마티스는 피카소보다 1년 먼저 유명한 상을 수상한 화가이었다.  또 다른 화가로는 쿠르베 그리고 칸딘스키가 있다.  


나는 아티스트 페이지에서 마티스, 베르메르, 쿠르베를 주요하게 다룰 것이다.



톨스토이- 고백


고백 A Confession , by Tolstoy

나의 인생은 정지하였다. 나는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잠잘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생명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소원의 성취가 이성적이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의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원했다면, 내가 나의 욕구를 만족시켰던지 아니든지, 아무것도 그것에서 얻을 것이 없으리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을 것이다. 천사가 나에게 와서 나의 욕망을 채워 주겠다고 제안한다 하더라도 나는 무엇을 물어야 할 지를 몰랐을 것이다. 만일 술 취한 상태에서 내가, 소원은 아니더라도, 옛날의 소원이 남긴 습관이던 어떤 것을 느꼈다면, 맨 정신의 순간이 되면 나는 이것이 망상이며, 정말로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심지어 진리조차 바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테면, 살고 살았으며, 걷고 걸었다, 결국 벼랑 끝에 도달하여 나의 앞에는 파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았다.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였으며, 앞에는 오직 고통과 실제적인 죽음-완전한 전멸-만이 있다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이런 지경에 온 것이다, 건강하며 운 좋은 사람인 내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나에게서 인생의 모든 방향을 제거하여 버렸다. 나는 자살하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에게서 인생을 쫓아 내버린 힘은 어떤 단순한 욕구보다도 더욱 강하고, 완전하며, 그리고 더욱 넓게 퍼져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살고자 하는 힘과 유사했으나, 오직 반대 방향이었다. 나의 모든 힘이 나를 인생으로부터 몰아내었다. 자멸에 대한 생각이 이제는 과거에 어떻게 나의 인생을 향상시킬 것인가의 생각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나에게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유혹적이라서 내가 그것을 너무 성급하게 실행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약아져야만 했다.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문제의 매듭을 풀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사용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호의를 베푼 사람인 나는 매일 저녁 내가 혼자서 옷을 벗는 내 방의 칸막이 가로장에 목을 매지 않도록 나로부터 노끈을 숨기고, 내 목숨을 끝내기에 너무나 쉬운 방법에 유혹되지 않도록 총을 가지고 사냥에 나가는 것을 그만 둔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지 못했다: 나는 삶이 두려웠고, 그것으로 도피하기를 원하였으며, 그러나 여전히 그것에서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주변에서 완전히 좋은 행운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때에 이 모든 일 들이 내게 일어났다. 나는 아직 오십이 아니었다; 나는 나와 함께 살며 내가 사랑한 좋은 아내, 좋은 자녀들, 그리고 나 자신의 커다란 노력이 없이도 발전되고 증가되는 커다란 사유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나의 친척들과 아는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송을 받았으며 많은 자기 기만 없이도 나의 이름이 유명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니거나 정신적으로 병이 들기는 커녕 반대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내가 전혀 만나 보지 못한 것 같은 마음과 몸의 능력을 구가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풀을 깎는 농부들과 견줄 만 했으며, 정신적으로는 연이어서 여덟 시간 및 열 시간 동안을 그러한 진력으로부터 초래되는 어떠한 질병도 경험하지 않고서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이것에 도달한 것이다-나는 살 수가 없다, 그리고 죽음이 겁이 나서, 내가 나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교묘한 방법을 써야 했다.


나의 정신적 상태는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나의 인생은 누군가 나를 가지고 노는 어리석고 심술궂은 조롱이다. 비록 나는 나를 창조한 누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설명-누군가가 나를 세상에 내어 놓음으로써 내게 악한 일과 멍청한 조롱을 하였다-은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이 떠오르는 표현의 형태였다.

어디에선가, 내가 삼십 또는 삼십오 년간을 어떻게 사는지 쳐다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내게 떠올랐다: 배우고, 발전되며, 몸과 마음이 성숙하며, 그리고, 성숙된 정신적 능력으로서 모두 나의 앞에 놓인 인생의 정상에 도달함으로써, 나는 정상에 서 있다-마치 지극한 바보같이-인생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보면서도. 그리고 그는 즐거워했다.


그러나 나를 보고 웃는누군가가 존재하든 말든, 나는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어떤 한가지의 행동이나 나의 전체 인생에 대하여 어떠한 이성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단지 아주 처음부터 이것을 깨닫는 것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 놀라와 했다-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었다. 오늘이나 내일 질병과 죽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나에게 올 것이다(이미 그것들은 왔다); 오직 썩는 냄새와 벌레들 만이 남을 것이다. 조만 간에 나에 관한 일들은, 그것들이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계속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찌해서 사람은 이것을 깨달을 수 없는가? 그리고 어찌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사람은 오직 삶에 취해 있을 때만 살 수 있다; 그가 깨어나자마자 그것은 모두 어처구니 없는 사기이며 어리석은 사기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다: 그것에는 재미있는 것도 재치 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다, 그것은 단순히 잔인하며 멍청할 뿐이다.


오래 전에 들은 것으로, 들판에서 성난 짐승에게 쫓기던 나그네에 대한 동양의 동화가 있다. 성난 짐승을 피하다가 그는 말라버린 우물에 들어 갔지만, 우물의 아래는 턱을 벌리고서 그를 삼키려는 용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불행한 사람은, 성난 짐승에게 죽을 까봐 기어 나오지도 못하고, 용에게 먹힐까 봐 우물 바닥으로 뛰어 내리지도 못하다가, 우물 벽의 틈에서 자라는 나뭇가지를 잡고서 그것에 매달린다. 그의 손들은 점점 약해진다 그리고 그는 곧 위에서나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에 자신을 내맡길 수 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매달려 있다. 그때 그는 검고 흰 두 마리의 쥐가 그가 매달려 있는 가지의 줄기 주위를 규칙적으로 돌면서 그것을 갉아 먹는 것을 본다. 그리고 곧 그 나뭇가지 자체는 부러져서 그는 용의 턱에 떨어질 것이다. 나그네는 이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가 어쩔 수 없이 사라질 것을 안다; 그러나 여전히 달려 있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지의 잎들에 있는 꿀 몇 방울을 보고서, 그것들에 혓바닥으로 도달해서 핥는다. 그처럼 나도 인생의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죽음이라는 용이 피할 수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를 조각 낼 것임을 알면서; 그리고 나는 내가 왜 그러한 고통 속에 떨어 졌는지 깨달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전에 나를 위안해 주던 꿀을 핥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꿀은 더 이상 내게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밤과 낮을 의미하는 희고 검은 쥐들은 내가 매달려 있는 가지를 갉아 먹었다. 나는 용을 확실히 보았다 그리고 꿀은 더 이상 달지가 않았다. 나는 단지 피할 수 없는 용과 쥐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로부터 나의 시선을 떼어 낼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동화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면서 대답할 수 없는 진리이다.


이전에 나의 용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켜 주던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기만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자주, ‘너는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그냥 살아라라고 듣게 되어도, 나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해왔다. 나는 낮과 밤이 주위를 돌면서 나를 죽음으로 데려 가는 것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내가 깨닫는 모든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만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모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나의 눈을 잔인한 진리로부터 떼어 놓은 두 방울의 꿀: 나의 가족에 대한 사람, 그리고 글 쓰는 일-내가 일컫는 바, 예술-은 더 이상 나에게 달콤하지 않았다.


가족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가족-아내 그리고 자식-역시 사람이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놓여있다: 그들은 거짓 속에 살거나 무서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그들을 사랑하고, 양육하며, 지켜줘야 하는가? 그들은 내가 느끼는 절망에 이를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것인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진리를 그들에게 숨길 수 없다: 지식의 각기 발걸음은 그들을 진리로 인도한다. 그리고 진리는 죽음이다.


 “예술, ?” 성공의 영향력과 사람들의 칭찬 아래서, 나는 오랫동안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이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확신하고 있었다-나의 작품들과 그 기억들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파괴하는 죽음; 그러나 곧 나는 그것들 역시 사기임을 깨달았다. 예술은 인생의 장식이며, 인생의 유혹이란 것이 내게는 명백했다. 그러나 인생은 나로서는 그 매력을 상실했다, 그러니 어찌하여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가? 내가 나의 인생을 살지 않고 어떤 다른 인생의 파도에 태어나 있는 한-비록 내가 표현은 할 수 없더라도, 인생이 의미가 있음을 믿는 한-모든 종류의 시와 예술을 통한 인생의 조명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예술이라는 거울로 인생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웠다. 그러나 내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며 나 자신의 인생을 살 필요를 느꼈을 때, 그 거울은 내게 있어서 불필요하며, 과잉이며, 우스꽝스럽고, 또는 고통스럽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지금 내가 본 것으로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없었다, 결국 나의 위치는 어리석고 자포자기 상태였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내 인생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 때는 그런 시각을 즐기는 것이 모두 매우 좋았다. 그런데 인생에서의 빛의 동작-희극, 비극, 감동적, 아름다움 그리고 무서움-은 나를 즐겁게 하였다. 내가 용을 보고 쥐들이 나의 지지대를 갉아 먹는 것을 보았을 때는 어떤 꿀의 달콤함도 내게는 달콤하지 않았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단순히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나는 그것을 조용히 견뎌냈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러나 나는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출구가 없는 줄로 아는 숲 속에 사는 사람 같다면, 나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어 버린 것을 두려워하며 길을 찾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길 잃은 사람 같았다. 그는 자신이 딛는 걸음마다 점점 더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는 이리저리 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나 자신을 죽이고자 하였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그 공포는 내가 있던 위치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그 끝을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어찌하였든 나의 가슴의 혈관이 터져 나가든, 또는 무엇이 폭발하여 모든 것이 끝난다는 주장이 아무리 납득이 가더라도, 나는 그 끝을 끈기 있게 기다릴 수 없었다. 어두움에 대한 전율이 너무나 거대했다, 그리고 나는 올가미나 총알을 가지고 가능한 빨리 그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것은 나를 가장 강력하게 자살을 향하여 몰고 간 그런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