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주천체 물리학
법칙이다. 그런데 이 상대성 이론을
철학논리학이론으로 연결하면 그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논리학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가 무엇인가? 그 중에서 이해하기 가장 쉽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단논법을 보자.
A: “인간은 머리와 가슴을 가졌다.”
B: “홍길동은 머리와 가슴을 가졌다.”
C: “따라서 홍길동은 인간이다.”
A: “인간은 양심을 가졌고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된다.”
B: “홍길동은 인간이다.”
C: “따라서 홍길동은 양심을 가졌고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된다.”
이런 간단한 명제가 성립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다. 한 명제가 옳으면 즉 A, B 가정이 옳으면 동시에 거짓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C의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은 그 어려운 천체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을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 남자가 예쁜 여자와 한 시간을 함께 앉아 있다면, 그 한 시간은 일 분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을 뜨거운 난로 위에 1분 동안 앉아 있으라고 하면 그 분은 1시간보다도 길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게 상대성 이론입니다.”[1]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면 “우주의 모든 사물들에 대해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흐르는 하나의 시간, 즉 절대적인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로 운동하는 각각의 물체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을-즉 각각의 물체들은 각자에게만 고유하게 속하는 시간을-갖는다는 것이다.”
그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철학논리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한 관찰 결과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갈릴레이가 달을 보고 관찰한 현상과 일반 보통사람들이 관찰한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갈릴레오나 일반인 홍길동이나 다 같이 똑 같은 두 눈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관찰이 서로 달랐고 경험이 달랐기 때문에 결론이 다르게 나온 것이다. 이것은 “한 명제가 진리이면서 동시에 거짓일 수는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배중률의 형식논리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인슈타인은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한 관찰 결과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어설픈 생각에 묻혀 살았는데,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A: “사회지도층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다.”
B: “홍길동은 사회지도층이다.”
C: “따라서 홍길동은 양심적이고 도덕적이고 진실성이 높은 사람이다.”
A: “부부는 일심동체로써 서로 믿고 거짓을 행하지 않는다.”
B: “홍길동과 김혜수는 부부사이다.”
C: “따라서 홍길동과 김혜수는 일심동체로써 상호 신뢰하고 거짓을 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 A, B 명제가 옳다고 해서 C의 결론이 옳게 도출되는가? 오늘날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국가를 믿지 못한다고 한다.** 사회전체는 차치하고 개인적인 측면을 보자. 부부 사이가 일심동체로써 서로 믿고 거짓을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립된다고 믿은 사람은 바보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참바보처럼 “한 명제가 진리이면서 동시에 거짓일 수는 없다”는 형식논리에 따라서 인간관계를 가져온 것이다. 공직자라면 그럴 리가 없어! 박사라면 그럴 리가 없어! 법조인이라면 그럴 리가 없어! 부부라면 그럴 리가 없어! 등등 인간관계의 모든 면을 근대도 아닌 캐캐묵은 구석기 시대 고전적인 형식논리로 살아온 것이 나의 가장 큰 잘못이었다.
사람은 상대적이다. 사람관계는 상대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고전적인 배증률의 논리로 이해하고 배신이란 현실성을 부정하고 산다면 그것은 나르시소스적 자살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지금 세상은 신의성실의 신뢰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남을 해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현대 사회가 벡의 주장처럼 “위험 사회”이라면 그것은 신의성실원칙과는 배치되는 결과를 말해준다. 인간으로써 제일명제가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아니된다”는 예수의 행동준칙이 오늘날 통하지 않잖아? 따라서, 사람이 어쩜 그럴 수가 있어! 양의 탈을 쓴 이리일 수가 있느냐고! 이런 뒤늦은 후회를 하는 사람은 그 얼마나 바보천치인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지가 1백 년이 지났는데도 캐캐묵은 고전적 형식논리에 억매여 살았다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 또한 기억하자고. 상대성 이론으로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아인슈타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매우 작은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이 최고 중심에 있다는 착각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업적과 그의 위대한 인간성을 통해서 사람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2] 하늘과 별과 예수와 아인슈타인은 사람들에게 진실성 “man to be honest”을 가르쳤습니다.
남을 속이고 가슴 속의 별과 같은 양심을 잃은 사람은 천벌☆을 받을 것!!
[1] 아인슈타인 대담에서 한 비유: "When a man sits with a pretty girl for an hour, it seems like a minute. But let him sit on a hot stove for a minute and it's longer than any hour. That's relativity.”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explains that the speed of light is a constant and that at great speeds, time slows down (relatively speaking) and space becomes distorted. the speed of light is a constant and that at great speeds, time slows down (relatively speaking) and space becomes distorted.”
[2] “Once it was recognised that the earth was not the center of the world, but only one of the smaller planets, the illusion of the central significance of man himself became untenable. Hence, Nicolaus Copernicus, through his work and the greatness of his personality, taught man to be honest.” (Albert Einstein, Message on the 41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Copernicus, 1953).
** OECD의 ‘한눈에 보는 국가별 비교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로 조사 대상 41개국 중 26위에 그쳤다. 사법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013년 기준 27%로 조사 대상 42개국 중 꼴찌에서 4번째였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54%)의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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