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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글쓰기/法窓夜話

프라이버시의 자유와 “숨길 것이 하나도 없다 (nothing to hide)”는 논리에 대해서

by 추홍희블로그 2015. 7. 30.

Mad man in authority 세상 권력이 미쳐서 칼날을 휘두르고 돈을 헬리콥터로 뿌려도 어느 누구 하나 경고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나 말 한 마디했다가는 자기자신에게 해가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침묵하는 사회가 됩니다. 


돈 있는 자도 침묵하고, 어리석은 자도 침묵하고, 모두가 침묵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국가적 위기에선 모든 국민이 피해자가 됩니다.  그러나 위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남이야 죽는 말든 내 혼자만은 살아나고자 하는 생존본능으로 자기 혼자 살아 남으려는 기만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옆에서 쓰러져가는 전우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고 모두들 알고 말합니다.  위기에선 모두가 침묵하게 되는 것은 그것만이 생존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하나 제대로 합시다.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이 살아 남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 진리가 있다면 인간은 누구라도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자기자신만은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은 바로 잘못된 것입니다.


또 썩은 환부는 즉시 수술해야 합니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썩은 고름은 도려내야 합니다. 


불법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대단한 탐정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불법 사찰이란 아무도 모르게 남의 불법을 찾아내는 “벽에 붙어 있는 파리”가 아니어도 결국 탄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는 있어도 자기가 당할 것이라는 보복이 두려워서 앞에 나와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분노가 폭발하는 때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해 내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민란도 혁명도 한 순간 우연적 계기로 폭발되고 세상천지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개인적 분노가 공적 분노로 폭발하는 것도 순간적인 일입니다.  혁명은 재판 끌듯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고되어 있다면 역사상 혁명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하나가 공고한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는가?” 하고 주저하고,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고 비 비웃을지 모르지만 물 한 방울이 모여서 큰 바위를 뚫는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십시오.  6백년 된 참나무도 작은 겨자씨 하나에서 출발했고 모든 역사는 단 한 사람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태어났듯이, 인간 사회는 한 사람부터 출발합니다. 


국민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수 없어야 하고 양심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아니됩니다. 


사람의 마음과 머리 속을 어떻게 족쇄를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만은 어떤 독재자도 파고들 수 없는 순수한 자신의 성채와 같습니다.  몸은 빼앗길지언정 인간의 마음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못한 것 없고 어떤 죄지은 사람 아니라면 비밀 침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펼칠지 모릅니다.  이런 논리를 "nothing to hide"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프라이버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대 다니엘 솔로브 교수는 “숨길 것이 하나도 없다 (nothing to hide)”는 논리에 숨어있는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UNDERSTANDING PRIVACY, Daniel J. Solove, Harvard University Press (May 2008), http://docs.law.gwu.edu/facweb/dsolove/Understanding-Privacy/ 


권력기관이 개인을 감시하고 개인 통신 수단을 검열하는 것에 대해서 “숨길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는 괜찮다”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내가 죄를 지은 잘못이 없다면 권력기관이 나를 뒤져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를 일만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권력기관이 검열을 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이 무사할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프라이버시라는 것은 무슨 나쁜 일을 감추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너무 많이 양보해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프라이버스 즉 사생활 보호의 주제가 “무엇을 숨기는 것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옮겨가게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프라이버시(사생활보호)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  무언가 감추어야 할 비밀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될 잘못이 있습니다.


따라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라이버시 개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각자 개인에 대한 정보를 사용하는 것에 관련된 사고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개인 사생활 정보를 보호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에 사용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생활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사생활 보호가 있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숨쉴 공간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함께 부딪히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기만의 숨쉴 공간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 숨이 막혀서 질식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간의 마찰과 충돌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 생활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침해에서 자유로운 개인적 공간을 얻게 해주는 것이 프라이버시인 것입니다. 


따라서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라면 숨통이 막히고 결국 질려서 죽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못하는 사회에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상이 솔로브 교수 주장의 요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프라이버시 개념은 서구선진제국과는 아직도 많은 차이가 나고 크게 뒤떨어져 있는 처지에 있습니다.  프라이버시는 "무언가 감출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무언가 나쁜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개념입니다. 


그보다는 프라이버시는 무언가 숨겨놓을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보물 창고하고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을 정리해 기록한 개인적인 일기장이나 이메일은 후대에 가면 역사적 보물이 됩니다.  가보를 깊숙이 보관해 온 우리 선조들의 생각을 한 번 보십시오.  보물은 무엇인가 나쁜 것이어서 가보로 감추고 보호하고 저장해 온 것이 아닙니다.  왜 보물이 중요한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보물을 감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고 여기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한 사회라면 질식사할 것 같아서 아마도 모두가 벗어나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의 사적인 공간 확보는 인간의 “내적 자유”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곳에서는 내적 자유가 형성될 수가 없습니다.  남이 내일기장을 훔쳐 본다고 한다면 제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마도 질식사하기 전에 이 나라를 탈출하고 망명하고자 할 것입니다. 

타인의 불법행위로 인해서 선량한 사람들이 내적 자유를 파괴당하고 인간 사회 형성의 가장 기초적 토대가 파괴당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In retrospect, all revolutions seem inevitable. Beforehand, all revolutions seem impossible.” 

“뒤돌아 생각해 보면, 모든 혁명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혁명은 불가능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