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The Prodigal Son”
추홍희 편역
“돌아온 탕자 The Prodigal Son”
차례
ch |
내용 |
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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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문 |
“돌아온 탕자 The Prodigal Son”의 비유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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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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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방탕한 자식-푸쉬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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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방탕한 자식- 앙드레 지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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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말테의 수기 중-릴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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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문턱- 카프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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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플로스강의 물레방아 중-조지 엘리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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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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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방탕한 자식-크리스티나 로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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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방탕한 자식- 엘리자베드 밴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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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방탕한 자식-존 뉴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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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방탕한 자식-리 골드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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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방탕한 자식-키플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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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방탕한 자식-릴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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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모랫톱을 넘으며-테니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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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이니스프리 호도-예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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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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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방탕한 자식-뒤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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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방탕한 자식-팔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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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방탕한 자식- 램브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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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방탕한 자식-티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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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방탕한 자식 -슬레포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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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발레 |
방탕한 자식- Diaghile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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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음악 |
방탕한 자식-Prokofie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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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찬송가 |
주일학교 설교와 찬송-engli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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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
한국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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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임진왜란 포로 귀환 협상-유정 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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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환향녀-병자호란 포로 귀환 문제 조정 논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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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1 |
누가복음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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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2 |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앙드레 지드-영어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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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3 |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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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머나먼 외국으로 떠난 탕자는 오랜 방랑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 동안 허망한 꿈을 쫓느냐고 지친 끝에 심한 궁핍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부지할 의욕마저 상실하게 되자 떠나온 아버지의 모습, 어머니가 허리 굽혀 보듬어주던 넉넉한 공간의 침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울타리가 처져 있어서 항상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었던 농장[1], 우애는 없었지만 방탕한 성격의 동생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동생 몫의 땅을 팔지 못하도록 계속 지켜온 인색한 형님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고, 탕자는 스스로 생각해 보니 자신의 행복도 찾지 못했고, 행복 대신에 그가 추구했던 무절제한 향락 또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2] 탕자는 상상해 봤다. “아버지는 내가 죽은 걸로 여겼다고 처음에는 내게 화를 내겠지만 내가 지음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나타난 것을 기뻐하실까? 만약 내가 다 헤진 누더기를 걸치고, 내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 회칠을 하고 돌아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고, “아버지, 제가 하나님과 아버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사죄하면, 아버지께선 두 팔을 뻗으며 “집으로 어서 들어오거라, 내 아들아”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탕자는 생각 끝에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여기고 출발했다.[3] [4]
집 앞에 다다르다-무엇 때문에 주저하는가
지붕 너머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이 훤히 들어오는 고향의 언덕배기에 다다랐다. 초라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숨겨보려는 생각으로 어둠이 깔릴 때까지 주저하고 기다렸다. 막상 고향에 돌아왔지만 집으로 바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1] 정원, “소쇄원”같이 시냇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울타리가 담장이 쳐서 있어서 그곳을 넘고 도망치고 싶었다는 것을 뜻한다. 토마스 에디슨이 기회를 상실하는 이유는 작업복을 입고서 일을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궂은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와 같이 사람들은 갇혀서 궂은 일-농사-을 시키면 그것을 싫어하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기존의 번역은 “도망치고 싶은 집”으로 번역했는데 탕자가 고백하기를 자기는 집을 떠났다는 생각이란 한 번도 하지 않했고 항상 부모님을 사랑했다는 말-“저는 부모형제를 외면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Never did I cease loving you.”을 하듯이 그는 담장 처진 막힘의 농장이 싫어서 외국까지 멀리 떠난 것이지 부모형제를 버리고 집-개념의 정의하기 나름일지 모르지만-자체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막힌 농장을 뛰어 넘고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는 의미이었다. 한자가 아닌 우리말이나 영어에서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말해준 초등학교 시절의 대표적인 예,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띄어쓰기 하나 차이 때문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고 해석하게 되는 잘못을 깨우친 띄어쓰기와 문장 연결의 중요성을 상기하라. 영어번역의 쉼표를 유의해서 문장 전체를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When, after a long absence, tired of his fancies and as if fallen out of love with himself, the prodigal son, from the depth of destitution he sought, thinks of his father’s face; ….”, Gide,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3] 우리나라에서 아버지의 –교회의 무한한 사랑을 강조하면 렘브란트 그림의 주제처럼 탕자의 귀환 결심을 주체성-자유의지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하지만 영미인은 가장 교회-주권자 아버지의 용서의 역할에 앞서서 탕자가 분연히 일어서 귀국하는 자신의 자유의지의 결단을 가장 먼저 꼽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도” 우리나라 중고등 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는 이 시에서 첫 구절은 “나 일어나 이제 가리, 호수의 이니스프리 섬으로 가리” “아 이제 일어나 가리, I arise I go to Innisfree”. “새벽을 깨치리로다!”라는 말처럼 결단은 누운 침대에서 하늘에서 빛을 받아 분연히 일어선 것처럼 스스로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결단에 있다. 일본 영화 주제가 “決められたリズム“의 가사- “起こされたこと 着せられたこと”가 말하는 결단의 마음도 이와 같은 분위기를 준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벌들이 잉잉대는 숲 속에 나 홀로 살으리. >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장도로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예이츠의 시.
[4] “When, after a long absence, tired of his fancies and as if fallen out of love with himself, the prodigal son, from the depth of destitution he sought, thinks of his father’s face; ….”, Gide,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인간이 한계 상황에 처했을 때의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선택에 대한 문제는 그 상황에 닥쳐 보지 않고서 마치 탁상공론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죽음의 순간에서도 선택의 결단을 할 수가 있을까? 용서를 구하는 선택의 결단은 하나님의 의지인가? 아들의 선택인가? 한계상황에서도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방탕한 자식-앙드레 지드
무엇 때문에 주저하는가?
집에서 분주히 저녁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대문 앞 계단에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자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뭇거릴 수 없었다. 나는 집안 마당으로 들어섰다.[1]
“방탕한 자식”인 나는 고향에서 보냈던 지난 날의 온갖 기쁘고 슬펐던 일들을 회상해 보았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고, 어느 것 하나도 옳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언덕배기를 돌아서 내가 떠나왔던 고향집 푸른 지붕을 보았을 때 내 가슴은 억누를 수 없이 두근거렸다. 나는 무엇 때문에 곧장 집으로 달려가지 않고 망설이고 주저하였을까? 집에서는 모두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방탕한 자식- 어머니와의 대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 아들이 이렇게 살아 돌아왔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 죽었다고 슬퍼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구려!”[2]
나는 엄마의 발 밑에 엎드려 엄마 무릎에 이마를 파묻자 어머니께선 반항아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의 손길의 느끼면서 나의 마음은 형언할 길이 없는 감정이 솟아 올랐다.
나는 무조건 용서를 구했다. “나는 무릎을 끓고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가리고는 다른 손으론 용서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전 감히 아들이라고 칭할 수 조차 없는 죄인입니다. 이 집의 자식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그냥 막노동 일꾼으로라도 부려 주십시오.”
“아들아 너는 아직도 반항 정신이 강하다는데, 우리 좀 더 솔직하게 흉금을 털어놓을 수 없겠니?”[3]
“저는 모든 자만심을 버리고 이제 이렇게 무릎을 끓고 있잖아요?”
“너는 어쩌자고 그토록 오랫동안 이 어미를 버려 두었니?[4] 아들아, 이 엄마는 지금까지 너를 기다리느라고 내 눈물은 흐르다 못해 메말라 버렸단다.”[5]
“어머니께서는 저를 그렇게 눈이 빠지도록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군요.”
“아들아, 네가 언제 돌아올지 기다리지 않은 적은 한시도 없었단다. 밤마다 잠들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맨 처음 너를 생각했단다. 오늘 밤에 그 애가 돌아오면 문이나 열어 줄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으로 잠들지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란다. 난 항상 기도를 드렸다. 날마다 열심히 기도를 올리면 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기도에 매달렸단다.”[6]
“어머님의 기도로 인해서 제가 이렇게 돌아왔습니다.”[7]
“그래 네가 부모형제를 두고 먼 곳으로 떠난 이유가 무엇이었더냐?”
“저는 부모형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저는 항상 잊지 않고 내 마음에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형제에 대한 사랑을 결코 외면한 적이 없습니다.”[8]
“도대체 무슨 이유로 왜 먼 외국까지 떠났니?”
“그저 제 자신이 뛰쳐나갔을 뿐입니다.”
“그렇게 뛰쳐나가서 행복했니?”
“저는 행복을 찾아서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찾아서였단 말이니?”
“제 자신을 찾아서 큰 도전을 한 것입니다.”
“넌 가지고 간 돈을 탕진해 버렸지?”
“저는 주신 돈을 쾌락으로 바꾸고, 부모님의 가르침을 환타지 소설쯤으로 여겼으며, 도덕을 감정에 휘둘리게 내버려두었으며, 절제를 탐욕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9]
“누가 그렇게 가르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잖아?”
“새로운 정열이 제 마음에 불을 붙여서 저는 더욱 아름답게 불태우려고 했습니다.”
“성스러운 들판에 모세가 순수한 불꽃을 태웠지만 그는 무엇 하나 낭비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라.”
“저는 모든 것을 불사를 정도로 위대한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빈곤은 쾌락의 뒤를 쫓게 마련이란다.”[10]
“곤궁함 속에서 부모님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돈에 궁핍함을 느끼게 되니 부모 생각이 났다는 말이지?”
“전 메마른 황야에서 갈증을 가장 심하게 느꼈습니다.”
“빈곤함을 겪게 나서야 부귀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구나.”
“제 말의 의미는 제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지자 모든 것을 비울 수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재산을 털어서 사랑을 사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네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이겠죠.”
“사람은 누구나 머리를 쉬게 할 집이 필요하다. 바람 부는 들판에서 잠을 잘 수는 없는 법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들판에서 하늘을 베고 삼아 자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니? 잠자리도 불편했을 것이고 먹을 것도 부족했을 것은 안봐도 다 안다.”
“그래요, 전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풋과일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배고픔에 상한 음식까지 먹기도 했습니다. 저는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지쳤습니다.”
“굶주림 때문에 되돌아 온 거구나!”
“그뿐만이 아니라 전 공포와 질병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들판의 나무 열매와 메뚜기로 벌꿀로 겨우 연명을 했습니다. 고생을 해보려는 의욕이 제 열정에 불을 당겨 주었지만 저의 체력이 점점 고갈되고 말았습니다. 추운 밤이면 따뜻한 방안이 그리웠습니다. 끼니를 거를 때 풍성한 음식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드디어 무릎을 끓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더 이상 빈곤과 굶주림과 싸울만한 용기와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11]
[2] A joyful feast, for my son whom I thought dead is alive. The son we wept for has returned to us.
[9] I changed your gold into pleasures, your precepts into fantasy, my chastity into poetry, and my austerity into des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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