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소네트 35장
그대가 한 일을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고,
맑은 샘에는 진흙이 있는 법이니.
구름과 일식과 월식은 해와 달을 가리니.
아름다운 꽃봉오리 속에 징그러운 벌레가 사느니.
어느 누군들 실수가 없을 텐가? 나 또한 당연히 그려려니.
위와같이 비교하여 당신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대의 죄에 책임이 있든 없든 그 죄를 없던 것으로 하고
그대의 죄를 무마해주는 것은 나 자신 떳떳하지 못할 것이려니.
그대의 관능 죄를 이성적으로 숙고하여,
피고인 그대를 변호하리라.
내 자신에게도 정당한 탄원을 내리려니.
그대를 사랑하고 또 증오하여 크게 심란하니
내 또한 공범자가 될 수 밖에 없으련다.
배신하여 나를 훔친 고운 도둑님하.
SONNET 35
No more be grieved at that which thou hast done:
Roses have thorns, and silver fountains mud;
Clouds and eclipses stain both moon and sun,
And loathsome canker lives in sweetest bud.
All men make faults, and even I in this,
Authorizing thy trespass with compare,
Myself corrupting, salving thy amiss,
Excusing thy sins more than thy sins are;
For to thy sensual fault I bring in sense--
Thy adverse party is thy advocate--
And 'gainst myself a lawful plea commence:
Such civil war is in my love and hate
That I an accessory needs must be
To that sweet thief which sourly robs from me.
세익스피어가 말하듯이, 결점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그리고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하여 상처를 크게 받았다고 해도, 그 또한 그렇게 만든 내게도 잘못이 있기 마련이니 결국 내가 공범자가 아니겠는가? 그게 사랑한 죄이니라. 당신에게 죄가 있다면 다 "내 탓"이겠지!. Mea Culpa.
내가 소네트 번역을 옳게 했는지 살펴 봐 주세요.
세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가장 권위자로 인정받는 사람의 해석을 인용한다:
Sonnet 35 reveals a dark side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oet and his young dear friend, likely the Earl of Southampton, Shakespeare's patron. The poet clearly battles self-doubt and insecurity, and he shares the blame with his lover, who has betrayed him. Despite the pain that his lover has inflicted upon him, the poet decides to assume equal guilt in the corruption of their union. He accuses himself of irrationally 'authorizing' his lover's sins, and using a clever conceit of the courtroom, he illustrates that he is at once an accessory to the crime and the victim pressing charges; the prosecutor of his lover and his lover's chief advocate. All of the sonnets are a testament to Shakespeare's sensitivity and sweetness, but none more so than Sonnet 35.
소네트가 시이니만큼 詩적 번역( 詩는 읽는 것 즉 낭독이기에 운율이 하나의 조건이다)을 해야할 것이다.
우리나라 시조를 영어번역할 때 운융을 맟출 수 없듯이 영시를 번역할 때 운율까지 맞추긴 힘들다 ( 위에서 ---느니, 같은 끝말은 맞추는 경우 그렇게 어렵지 않긴 하지만).
사실 법과 시는 원래 출발은 같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와 변론을 포에시스poēsis 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는 예술의 영역 즉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영역으로 변론은 법과 진실을 찾는 영역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아름다움과 진실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성스럽다는 섹스도 불끄고 하는 이유가 무얼까? 가장 맛있는 음식도 그 음식을 만드는 부엌과 주방은 매우 지지분한 곳이다. 사람의 진실의 내면은 배 속의 창자같이 꼬이고 냄세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고 회파한다. 언제까지 못 본 채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다 우리 인간은 "게시적 순간"을 통해서 파멸로 부터 스스로 빠져 나가기도 한다. "계시적 순간 revelatory moment"은 도덕적인 또는 종교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정치적인 면에서도 나타난다.
"동트기 전 새벽녘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시적 순간으로 받아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해다. 4년전에 지금만큼 부동산 주택값이 떨어질 줄 알았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계시적 순간이 정치적인 면으로 나타난 것이 소위 "안철수 현상"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도킨스의 신의 유전자라는 개념이 유행했던 때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서구에서 기독교는 가장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LA의 수정교회가 파산한 것도 그런 하나의 흐름을 확인하는 사례이고. 그동안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기독교가 쇠퇴하지 않는다고 공언했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별 것이겠는가? 세계사의 흐름 속에 한 부분일 뿐이다. 아무리 팍스 아메리카라고 하지만 미국의 쇠퇴는 시간의 문제이다. 왜 정치적 경제적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것인지 그이유는 진화론적 사회 발전관을 가지단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가서, 법학과 시학이 동시에 어울려지기는 무척 힘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 영역이 다흐기에. 세익스피어 같이 동시에 마스타한 경우도 많다. 세익스피어는 법률가는 아니었지만 토마스 무오, 윌리엄 덴버, 프란시스 베이컨, 벤담, 뛰어난 천재들이 법률가이었다. 이들은 법학과 시학적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였다. 그러나 사실 일반 독자들이 세익스피어 희곡에서 법률적인 면까지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진실의 언어와 아름다움의 언어위 영역에서 이 둘을 옹시에 구사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익스피어뿐만 아니라 여러 뛰어난 천재들에게서 이 둘의 결합을 찾아낼 수 있다. 法과 詩가 소수만의 전유물로 떨어진 세상은 법과 현실이 유리된 세계이고, 사람과 언어가 박제된 세상이다. 예술과 과학이 유리된 세상은 잘못된 것이다. 아름다움과 진실의 면은 같은 영역일 것이다. 법과 시가 모두에게 이해되어지는 세상을 위하여~~~~진실과 아음다움의 회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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